Red House - 붉은 틀
노순택 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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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틀'은 거대한 책입니다.

일단 사이즈가 그렇구요, 사진 또한 그렇습니다. 무게도 만만찮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노순택이라는 사진작가가 밀어붙이는 사유의 힘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너무 거대해서, 중압감을 견디며 보는 맛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차마 견디지 못해서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도 들게 하는 책입니다. 너무하다, 싶기도 합니다. 처음 보는 사진집인데 말이죠.

'붉은 틀'은 '북한'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얕은 의미의 북한을 의미하면서, 그것은 동시에 북한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규정하는 의미에서 '틀'을 쓴 것 같습니다. 사진도 일종의 '틀'인 셈이지요.

노순택은 '붉은 틀'을 세 가지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북한이 외부에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 두 번째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북한의 모습, 세 번째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북한의 모습. 그것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을까요. 또 스스로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작가의 힘이 고민의 끝에 다다라 있으므로, 이 책은 완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분명 '의문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었을 텐데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만 느꼈던 건, '대상과 나의 관계'입니다.

첫 번째- 대상은 늘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실제에 얼마나 가까울까요? 우리는 그것을 늘 의심하게 됩니다.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대상과 나의 관계가 너무 멉니다.

두 번째- 또 나는 대상에게 무엇인가를 원합니다. 그리고 대상이 내게 제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모습만을 찾아 찍어둡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와는 너무 멉니다.

세 번째- 내 안에는 대상과의 일치점이 존재합니다. 나와 전혀 다른 대상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상과 나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아니면 '어떤 것'이 '대상'으로 다가오는 계기도 없겠죠. 그렇다면 내게서 대상을 찾아보는 행위가 대상과 가까워지는걸까요?

일단 이 책에서는 이 세 장이 개별적이면서, 또한 보완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세 가지의 모두 보기가 가능해졌을 때, 확실하게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역시 예술행위(사진) 자체가 도구(렌즈)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에, 완벽한 합치점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이 되는 건 아닐까요? 어찌되었건, 근래에 보기 드물게 고민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를 만나서 행복합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진화된 고민과, 그에 대한 찰나의 대답을 들고 오길 바래봅니다.

그럼 저도 그 사진집을 앉혀 놓고, 더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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