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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가족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춘미 옮김 / 사과나무 / 2012년 6월
평점 :
<물의 가족>은 ‘고향의 물에 대한 모든 것을 쓰고 싶어 하던 시인’의 영혼을 통해 바라본 인간과 자연의 생과 멸에 대한 마루야마 겐지의 장편소설이다.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학연구센터 일본번역원장으로 있는 김춘미의 번역으로 사과나무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처음 출간 되었을 때 신경숙, 이문재, 윤대녕, 은희경 등 문체의 미학에 탁월한 우리 작가들로부터 ‘서정성과 영상미학이 최고조로 표현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쿠사바 마을의 물망천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주인공 ‘나’의 영혼을 통해 숙명적으로 전해지는 <물의 가족>은, 읽는 내내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누이인 야에코를 사랑하고 근친상간을 범하고, 그걸 엄마에게 들킨 후 ‘나’는 결국 집을 떠나가자키리 다리를 건너 아귀산이 보이고, 아마노나다(바다)와 물망천(강)이 흐르는 대나무 숲 오두막에서 스물 아홉의 나이에 죽는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토록 원하던 ‘물에 대한모든 것’을 쓰고 싶어한 청년의 영혼으로 계속 가족 주위를 맴돈다. 어느날 밤 물망천을 헤엄쳐 오던 ‘바다거북이’는 그렇게 떠도는 ‘나’의 영혼을 데리러 온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p.22)
-'내‘등에 고달픔이 달라붙어 있다.(p.23)
-그리고 나서 나는 이방인이 되었다.(p.24)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기에 머물고 있다.(p.25)
-해방된 내가 여기에 있다.(p.28)
(한없이 질질 이어지는 번민,시간의 파도가 끊임없이 실어오던 불안과 공포,그런 쐐기에서)
-나는 끝난 것이 아니라 시작된 것이다.(p.29)
-나는 드디어 쿠사바 마을에 돌아왔다.(p.30)
-나는 비가 되어 쿠사바 마을에 떨어진다.(p.32)
이러한 ’나‘ 는 결국 ’내‘가 죽어 있는 죽음을 통해 진정으로 정화되며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고 구원받게 된다.
-‘모든 물은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을 흘러, 악몽과 슬픔의 잔재를 씻어내고, 그리고 망망한 바다를 향해 조용히조용히 내려간다.’
-‘물망천은 울면서 흘러간다.’
소설 속에 그려진 가족들은 각자의 개성과 생을 살아나가는 방법들이 다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가족들이지만, 결국 한 고리로 이어져 있고, 한 세대를 건너 다음세대로, 어쩌면 영겁으로 그렇게 쭉 이어져 가는 것, 자연의 섭리 같은 것, 그 소중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책을 덮으며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이 책은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그만큼 섬세하게 표현된 언어들이 정말 영상으로도 표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림을 보듯이 읽을 것. 정독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