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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미즈노 케이야 지음, 김문정 옮김 / 나무한그루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받아들고 나는 잠깐 고민했다. 유치해보이는 제목에, 어디 들고 다니기도 뭣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 겉표지를 달력종이로라도 좀 싸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코끼리도 쌩뚱맞은데, 게다가 꿈까지 이루어주는 대단한 코끼리란다. 차라리 '인생혁명'이라든가 하는, 사자성어 식의 제목이면 '그래, 네가 진지하게 인생고민을 하고 있구나'하는 인상이라도 제3자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라는 동화스러운 제목의 책을, 머리 속이 해맑아보이는 처자가 진지하게 읽고 있으면 과연 그런 인상이라도 심어줄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안면근육긴장을 조절하는 정신줄을 잠깐 놓기 때문에, 온갖 바보스러운 표정은 다 짓고 있다.)
첫인상이 안좋아서, 의무서평을 써야 하는 책인데도, 뒤로 미뤄두었다. 다른 책을 다 읽고나면 그 때 쓰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주변 일들이 좀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반 년쯤 지난 지금에야 겨우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마감시한이 한참 지난 후에야 쓰는 서평은 의외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것은 의무서평이되, 동시에 의무서평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고 읽어본 이 책은 생각만큼 엉성하지 않았다. 다른 책들과 달리, 작중 트레이너인 '가네샤'의 입을 빌어 말하는 저자는 책을 읽는 사람의 패러다임을 깨놓는 데 주력을 하고 있었다. 어르거나 구슬리거나 혹은 독자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 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라고만 속삭이거나 하지 않고, 책을 잡고 있는 네가 지금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지, 그게 무엇 때문에 나약하고 잘못된 생각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신랄하게 풀어낸다. 요약본을 읽거나, 책 앞뒤에 있는 목차라든가 '가네샤 명언록'(이 네이밍 센스는 아직 적응이 안된다만..) 만을 읽는다면 여전히 엉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느 책에서나 흔히 하는 이야기라고, 혹은 실천해보았자 무언가 큰 변화가 내게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는 불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화자로 나오는 주인공에 있다. 우리가 그간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과 의심들을, 주인공은 책 안에서 여과없이 물어본다. '그냥 허울좋은 소리 아니에요?' '과연 이렇게 한다고 제 인생이 달라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건가요?' 이것은 주인공의 생각이자, 동시에 우리가 항상 가졌던 의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코끼리의 입을 빌려 그에 관한 대답을 최선을 다해 들려주고 있다. 굳이 멘토 역할의 코끼리 신 가네샤를 등장시켜가며 책 제목을 동화스럽게 지은 이유가 다 있었다.
때문에, 책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앞뒤만 훑어보지 말고 전체를 모두 읽어야 한다. 처음에는 '유치하군'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샌가 자신도 모르게 내용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이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 보통 우리 자신들이 매일 되풀이하는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주인공의 상황에 대입시키는 과정에서, 종내에는 내가 갖고 있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도 잡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내리기 무서워서 불평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서 얻는 후회보다 하지 않아서 얻는 후회가 마지막 날에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2009년 올 한 해에는 삶의 좌표를 좀 바꿔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모처럼 가져보았다.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속으로만 쌓아두고 있었던 그것을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했다. 사실, 마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가네샤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것은 항상 결심만 하고 의식만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계획만 짜고 멋지게 바뀌어 있을 미래의 모습만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그 코끼리는 정말 자신을 바꾸고 싶거든, 작은 것부터라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했다. 목표의 공언(이것이 아마도 '배수진'이렷다), 그리고 그 첫 단계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 음대를 가고 싶으면 전공레슨을 받기 시작하거나, 대학을 다시 가고 싶으면 수능재수반을 등록하거나. 그 과정이 거듭될 수록,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축에는 더 많은 원동력이 붙게 된다. 결국 '굴러가는 대로 놔두어도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거듭거듭 '실행의 반복'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먼저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설정 자체가 코믹해서 그런지, 책은 쉽게 읽힌다. 다만 중간중간 생각할 부분들이 있어서 그 때문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중간중간 가네샤가 제시하는 과제는 평소에 우리가 잘 하지 않던 짓이라 엉뚱해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우리의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본 웜업 훈련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쉬울 듯 하다. 마치 물에 들어가기 전에 손끝, 발끝부터 적시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가라앉아있는 '고인 물'에서 그만 헤어나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엉뚱한 코끼리 신을 믿고 한 발 한 발 걸어보자. 신념과 실행,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 테마를 명확하게 보여준 그이니만큼, 중간에 우리 손을 놓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