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미즈노 케이야 지음, 김문정 옮김 / 나무한그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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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책을 받아들고 나는 잠깐 고민했다. 유치해보이는 제목에, 어디 들고 다니기도 뭣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 겉표지를 달력종이로라도 좀 싸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코끼리도 쌩뚱맞은데, 게다가 꿈까지 이루어주는 대단한 코끼리란다. 차라리 '인생혁명'이라든가 하는, 사자성어 식의 제목이면 '그래, 네가 진지하게 인생고민을 하고 있구나'하는 인상이라도 제3자에게 심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라는 동화스러운 제목의 책을, 머리 속이 해맑아보이는 처자가 진지하게 읽고 있으면 과연 그런 인상이라도 심어줄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안면근육긴장을 조절하는 정신줄을 잠깐 놓기 때문에, 온갖 바보스러운 표정은 다 짓고 있다.) 

  첫인상이 안좋아서, 의무서평을 써야 하는 책인데도, 뒤로 미뤄두었다. 다른 책을 다 읽고나면 그 때 쓰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주변 일들이 좀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반 년쯤 지난 지금에야 겨우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마감시한이 한참 지난 후에야 쓰는 서평은 의외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것은 의무서평이되, 동시에 의무서평이 아니다.

 

  마음을 다잡고 읽어본 이 책은 생각만큼 엉성하지 않았다. 다른 책들과 달리, 작중 트레이너인 '가네샤'의 입을 빌어 말하는 저자는 책을 읽는 사람의 패러다임을 깨놓는 데 주력을 하고 있었다. 어르거나 구슬리거나 혹은 독자의 문제점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 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라고만 속삭이거나 하지 않고, 책을 잡고 있는 네가 지금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지, 그게 무엇 때문에 나약하고 잘못된 생각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신랄하게 풀어낸다. 요약본을 읽거나, 책 앞뒤에 있는 목차라든가 '가네샤 명언록'(이 네이밍 센스는 아직 적응이 안된다만..) 만을 읽는다면 여전히 엉성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어느 책에서나 흔히 하는 이야기라고, 혹은 실천해보았자 무언가 큰 변화가 내게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하는 불평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화자로 나오는 주인공에 있다. 우리가 그간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과 의심들을, 주인공은 책 안에서 여과없이 물어본다. '그냥 허울좋은 소리 아니에요?' '과연 이렇게 한다고 제 인생이 달라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는 건가요?' 이것은 주인공의 생각이자, 동시에 우리가 항상 가졌던 의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코끼리의 입을 빌려 그에 관한 대답을 최선을 다해 들려주고 있다. 굳이 멘토 역할의 코끼리 신 가네샤를 등장시켜가며 책 제목을 동화스럽게 지은 이유가 다 있었다.

  때문에, 책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앞뒤만 훑어보지 말고 전체를 모두 읽어야 한다. 처음에는 '유치하군'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어느 샌가 자신도 모르게 내용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이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 보통 우리 자신들이 매일 되풀이하는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주인공의 상황에 대입시키는 과정에서, 종내에는 내가 갖고 있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도 잡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내리기 무서워서 불평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서 얻는 후회보다 하지 않아서 얻는 후회가 마지막 날에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에 2009년 올 한 해에는 삶의 좌표를 좀 바꿔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모처럼 가져보았다.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속으로만 쌓아두고 있었던 그것을 거의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했다. 사실, 마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가네샤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것은 항상 결심만 하고 의식만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계획만 짜고 멋지게 바뀌어 있을 미래의 모습만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그 코끼리는 정말 자신을 바꾸고 싶거든, 작은 것부터라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했다. 목표의 공언(이것이 아마도 '배수진'이렷다), 그리고 그 첫 단계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 음대를 가고 싶으면 전공레슨을 받기 시작하거나, 대학을 다시 가고 싶으면 수능재수반을 등록하거나. 그 과정이 거듭될 수록,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축에는 더 많은 원동력이 붙게 된다. 결국 '굴러가는 대로 놔두어도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까지는, 거듭거듭 '실행의 반복'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먼저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설정 자체가 코믹해서 그런지, 책은 쉽게 읽힌다. 다만 중간중간 생각할 부분들이 있어서 그 때문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중간중간 가네샤가 제시하는 과제는 평소에 우리가 잘 하지 않던 짓이라 엉뚱해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우리의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본 웜업 훈련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쉬울 듯 하다. 마치 물에 들어가기 전에 손끝, 발끝부터 적시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가라앉아있는 '고인 물'에서 그만 헤어나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엉뚱한 코끼리 신을 믿고 한 발 한 발 걸어보자. 신념과 실행,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 테마를 명확하게 보여준 그이니만큼, 중간에 우리 손을 놓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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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꼭 알아야 할 모든 것
정영희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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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2030 여성을 타겟으로 요새 물밀 듯이 쏟아져나오는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 (나쁘게 말하면 처세서)의 일종이다. 이야기를 섹션 별로 잘 나누어놓았다는 것이 다른 책들보다 특화된 점일 뿐, 기존에 한 번씩 크게 히트를 쳤던 책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언제나 알파벳 이니셜로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친구들이라거나,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고나면 '어째, 생각보다 좀 허전하다...?'하는 생각이 든다거나 하는 점들이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추천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독자층을 제한해야만 하겠다. 기존에 이미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없이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사시면 된다. 그리고 굳이 열심히 살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고싶다'는 열정으로 자기계발서를 찾아다니며 섭렵하시는 분들께는 굳이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다. 혹시 친구가 샀거든, 빌려보시라. 그만큼 고만고만한 내용이라 굳이 자기 돈을 주고 '더 사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이미 이런 책을 많이 산 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거나, 요즘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블로우 때문에 심신이 지친 분들에게라면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해드려도 괜찮을 것 같다. 처음 접하는 이 분야의 책으로 크게 손색없는 구성이고, 내용이 허허롭게 비어있지도 않다. (읽어보면 다 한번씩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는 내용들이다. 다른 책에도 비슷한 얘기가 많아서 그렇지...) 그리고, 자기계발서의 특징인 '읽다보면 나도 왠지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는 점을 그대로 이 책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지친 분,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하고 매일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둔 분께는 그 친구를 위한 선물용으로 크게 추천한다. 책을 선물하고 1주일쯤 지나면, 당신은 그 친구의 푸념으로부터 자연스럽고 바람직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로 '약발'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에다 애살많은 성격까지 겹친 탓에, 나는 다른 책을 읽다가도 이런 책이 눈에 보이면 한 두 권씩 사서 '염탐용'으로 보곤 했다.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들 사나. '선배'들이 볼 때 내 나이 또래 여자들은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앞으로 승산이 있는 걸까. 소위 히트작은 다 읽어본 지금에 와서는, 책을 읽기 전과 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책을 읽을 때는 책 속의 '이니셜 친구들'이 끌고 나오는 그들의 일화에 눈이 반짝 하기도 하고, '와 이 친구는 참 멋있는데?'라거나, '이 친구는 참 인생 피곤하게 사네?'라든가 하는 여러가지 교훈(혹은 반면교사)를 얻기도 하지만 그건 그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희열과 열정은 책장을 덮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 이것은 책의 잘못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잘못이다.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든,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극단적인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이들도 아마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처세서 류가 꾸준히 판매량을 유지하기 쉽지 않으니까.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는 그야말로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상태인지' 알아보는 용도로 쓰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읽다보면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왠지 와닿는 것도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통에 여기저기 포스트잇으로 표시도 해놓곤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비슷한 책들을 굳이 더 사서 읽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한 책을 계속 보면서 맨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반추해본다든가 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터이지, 비슷비슷한 얘기를 다룬 책을 굳이 돈을 투자하면서 사들여 읽는 것은 그만큼 다른 데에 투자할 수 있는 그만큼의 재화를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니까 자신에게도 손해이다. 시간적으로도 손해이고. 게다가, 비슷한 자극을 계속 받으면 그 사람의 '자극에 대한 역치'가 올라가서 종국에는 어떤 자극을 받아도 꿈쩍도 안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른 처세서를 가진 분들이라면 굳이 사지 않으셔도 된다. 그냥 기존에 사서 좋게 읽었던 책을 골라 한 번 더 읽으시라. 어차피 거기서 받는 자극이나 이 책으로 받는 자극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커리어 관리와 인맥관리, 외국어, 여우같은 연애방법...거기에 더해진 재테크에 대한 각성 촉구까지. '여자에 대해 할 얘기가 이 정도까지밖에 없는가' 싶을 정도로 천편일률적인 구성이다. (사실 이 분야의 모든 책이 그렇다.) 이거 한 권 더 읽기보다는, 차라리 여행기나 롤 모델이 될 만한 사람의 자서전 등, 기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는 다른 책을 더 읽는 게 결과적으로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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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의 힘 100% 끌어올리기 - 일도, 공부도, 머리가 한다
쓰키야마 다카시 지음, 이민영 옮김 / 케이펍(KPub)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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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망한 것을 잘 못참아하는 성격에도 불구하고, 유치한 감이 없잖아 있는『두뇌의 힘 100% 끌어올리기』라는 제목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문예춘추』에 실렸다는 추천사 덕분이었다. 게다가 지은이가 애매모호한 이력을 가진 기고가가 아니라 뇌(혹은 사람의 정신)를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의라는 사실도 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한 몫을 했고, 무엇보다 내 두뇌가 몇 년 전부터 '대뇌피질에 곰팡이가 낀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 정도로 삐걱거리며 간신히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손에 쥐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상사가 한 말을 다시 반복해서 물어야 하는 사람, 분명히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과 말을 맞추어보면 자신만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는 사람, 외웠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안 가 그만 잊어버리고 마는 사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 지금까지 그러한 자신의 성향을 단순히 '아, 나는 눈치가 없나보다. 요령이 없다. 머리가 나쁘다.'라고만 생각하고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그러한 자신의 상태가 눈치가 없고 요령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기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어떠한 문제해결 자체에 대해서는 체념하다시피 했던 사람 중 하나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로는 적어도 '노력을 통해서 웬만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자인 쓰카야마 다카시는 책 속에서 그러한 고민거리들은 평소에 두뇌활성화에 짧은 시간을 꾸준히 투자함으로써 개선시킬 수 있다고 설파한다. 그는 우리의 사고처리를 전담하고 있는 전두엽을 튼튼하게 해주는 방법이라든가, 평소에 기억을 잘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생활습관 등을 15 장의 '습관' 챕터를 통해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책 속에는 그가 실제 진료했던 환자들의 케이스도 간략하게 소개되기 때문에 읽다보면 "어, 그래, 내가 바로 이래!"라는 감탄사 아닌 감탄사를 외치게 될 수도 있겠다. 실제 케이스가 제시되기 때문에 그냥 이론적인 내용을 줄줄 늘어놓은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이 많았으며 또한, 각 챕터가 짧고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내용은 전부 들어가 있다. 할 말을 다 하면서도 글을 간결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작가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다.) 실제로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짧은 시간에 꼬박꼬박 한 챕터씩 읽었으며 다 읽고 난 뒤엔 다음날 아침부터 뭘 시도하면 좋을지를 따로 정리해보곤 했다. 그것이 생각 외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믿는다.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저질렀던 실수가 많이 줄었고, 아직 버겁기는 하지만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고 계속 손끝에 쥐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버릇이 든 것 같다. 꾸준히 이런 연습을 지속한다면 지금처럼 '사고뭉치'라는 직장 내에서의 나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는 더 좋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고 있다.

  게으르거나 잦은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식의 자기계발서만 주어졌다면, 쓰카야마 다카시는 그들에게 좀 더 과학적이고 권위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류의 마음가짐으로는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년 첫날에 금연을 결심하고 1주일 후에 다시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가는 많은 남자들처럼,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얼마 안 가 밤참으로 치킨을 시켜먹는 많은 여자들처럼, 단지 굳은 마음가짐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아니다. 게다가 자신에게 '굳은 마음가짐'의 유효기간이 그렇게 긴 편도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금연을 하면서 니코틴 패치를 병용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헬스장에 매일 가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굳은 두뇌를 푸는 데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자기반성만으로는 부족할 지도 모르겠다. 전문의가 권해주는 일상 속의 두뇌운동, 우리가 뻣뻣한 근육을 풀기 위해 스파에 가서 마사지를 받듯, 이 책 한 권으로 우리의 굳은 두뇌에 활력을 넣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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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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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떠한가? 또, 당신이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이와 같은 질문에 흔히 나오는 우리의 대답은 대부분 다음과 같다.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며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나라, 자유분방하며 물자가 풍부하고 가끔 총기사고가 일어나긴 하지만 다들 한 번씩은 가서 살아보고 싶은 나라라고.

  그렇다면 당신이 미국의 바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벚나무를 자른 조지 워싱턴의 일화,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점, 남북전쟁이 있었고 그 기저에는 흑백 간의 심각한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점...그리고는? 떠오르는 것이 더는 없지 않은가? 미국은 언제나 그렇게 무난하고 좋은 나라였던가?

  사실 이런 질문에는 미국인이더라도 바로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들이 (혹은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매체를 통하여 얻는 부정적인 미국의 이미지보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여러 매스미디어는 미국의 뒷모습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상대적으로 게으르고 따라서 우리네 일반 대중들은 멀끔한 그 앞모습만을 기억하게 된다. 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면모들은 여러 가지 교묘한 수법으로 인해-미국과 관련한 중대한 사안이 발발했을 때,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다른 뉴스거리에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한다든가- 대중의 기억 속에서 손쉽게 소거되는데, 이것이 가장 심하게 자행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역사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은 역사분야에 큰 관심도 없을 뿐더러 이 분야의 화젯거리가 굳이 인구에 회자될 만큼의 유행성은 없기 때문이다. 은폐라고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사 속의 부끄러운 모습들은 너무 손쉽게 잊혀지고 지워져버리고 만다.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의 저자인 하워드 진은 그러한 분위기의 흐름을 책 한 권으로 어느 정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원래 이 책은 그가 이전에 썼던 『미국민중사』를 젊은 층이 읽기 쉽게 개작한 것으로, 개작하면서 최근의 '역사'인 조지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쟁까지 책 뒷부분에 덧붙였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서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하고 있는 것이 미국 자체가 아닌 미국의 정권이라는 점이다. 건국 이전, 처음으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디면서 자행한 살육부터 시작하여, 미국에 사는 사람들 중 소위 권력층, 엘리트 계급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갔던 증거들을 세세히 찾아내어 책 안에서 속속들이 밝혀놓고 있다. 두리뭉실한 서술법이 아닌 직접적이고 이성적인 화법, 같이 실린 그 당시의 사진들이 그 때의 현장감을 읽는 사람에게 부족함 없이 전해준다. 자신의 국가에 대해 흠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시각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시각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그보다도 책을 읽고 있는 우리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책을 읽으면 기존에 품고 있던 막연하고 좋았던 이미지를 자발적으로 버려야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되는데, 그 때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다보면 '의외로 흔들림없는' 저자의 대쪽같은 면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922년생이라는 그의 나이만큼이나 그의 시선은 굳세고 차갑다. 그의 꼬장꼬장한 태도가 결국 이 책을 손에 잡은 한 사람의 사고관을 뿌리채 흔들어놓는다.

  미국이 저 어디 남미 중 어느 한 나라만큼이나 우리나라와 관련이 없는 국가라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계 탑클래스 '미스터 강대국'은 샴 쌍둥이마냥 우리 나라의 앞날에 크게 관여를 하고 있다. 그가 갖는 영향력 때문에 우리나라의 언론매체도 미국에 관련된 방송을 할 때 그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방송매체로 접한 미국의 이미지만을 전부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해주고 싶다. 비록 '역사'를 다룬 책이라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는 모르겠지만, '천성은 어디 못간다'고 하지 않던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일관적인 태도로 몇백 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온 미국 정부에 대해 알아가는 데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 나라의 좋은 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추한 모습도 같이 알아두자. 그 뒤로, 미국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는 것은 독자 자신의 몫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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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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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마법같은 힘을 지녔다. 저자가 쓰는 자기자랑같은 에피소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게 만드는 힘. 생판 모를 것만 같은 일식요리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도 어려움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힘. (그것도 정말 빠르게!) 그리고, 회를 못먹는 탓에 초밥도 입에 못대는 나로 하여금 '초밥이란 것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한 경지에 이르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읽는 사람의 나이가 많든 적든, 소위 '장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의 화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에서 받게 되는 맑은 충격에는 차이가 없으리라. 어느 샌가 끓어오르는 자기발전에의 욕구라든가 하는 감정은 이미 부차적인 것이다. 범속한 마음가짐으로 범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마음가짐, 고집스럽고 가끔 편집증적이기까지 한 완벽주의와 무서운 노력은 비록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듣기만 하여도 털 끝이 바짝 서는 자극적인 화제이다. 그러한 것을 지면을 빌려서 화자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이번 기회는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한 장 한 장,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웠다.

  칼 한 자루를 쥐고 그 날 끝에 자신의 마음까지 같이 벼려 세우는 일본요리의 명인인 화자 안효주는 이번 책에서 자신이 그동안 초밥을 쥐며 겪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풀어놓는다. 비록 책을 읽고 있는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하다못해 즐기지조차 못하는) 초밥에 관한 화제가 주를 이루었지만, 그 안에서 슬쩍슬쩍 엿볼 수 있는 저자의 마음가짐이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푸근한 말투와는 전혀 상반되는 단단한 것이었다. 일상적이고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있는 책인데도 읽다보면 저자가 자신의 '업'인 초밥을 어떻게 다루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바보같으리만큼 우직하게 제자를 키우고 또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명성을 쌓았는데도 쉼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더 좋은 맛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매는 모습을 보며 '아, 이것이 '본분을 다한다'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또, 요리사가 쓴 책인 만큼, 어떻게 하면 초밥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지, 어떤 재료를 어떻게 골라야 좋을지에 대한 팁도 같이 나와있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저자의 삶을 다룬 이야기만 했다면 아무리 에세이라 할 지라도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을텐데 이 책에서는 읽으면서 슬슬 마음이 지칠 만한 때쯤에 그러한 '휴식거리'를 같이 넣어주어서 부담없이 가볍게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에세이에 곁들인 팁'이라고 하면 별 대단치 않은 것을 구색맞추기 식으로 넣어놓았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가 쉬운데, 기본적인 내용을 언급한 것은 맞지만서도 그 팁을 읽고 난 초밥혐오증 환자 하나가 완치될 수 있었을 정도라면 그 짧은 글 하나하나가 갖는 기본적인 내공이 무시 못할 정도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법 하다.

  지금은 비록 적은 봉급을 받고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지만, 언젠가 여윳돈이 나면 주방에 이 사람이 서 있는 '스시 효'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초밥을 사랑하는 사람이 직접 쥔 초밥을 나의 첫 초밥으로 입에 넣으면서 내 혀와 마음이 동시에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호사는 없으리라. 자신의 일에 갖는 애착이 사람을 장인으로 만들고, 그가 올라선 경지에서 나오는 내공이 초밥을 싫어하는 나와 그로 하여금 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든다. 중간 매개체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동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듯, 어떤 무언가가 한 사람으로 하여금 더 높은 곳에 오르게 만들면 만들수록 그 사람은 자신이 내려다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눈에 담고 직접 손을 뻗어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안효주는 초밥으로 큰 세상을 그의 눈에 담았다. 나는 무엇으로 나의 세상을 마음에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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