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마법같은 힘을 지녔다. 저자가 쓰는 자기자랑같은 에피소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게 만드는 힘. 생판 모를 것만 같은 일식요리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도 어려움없이 술술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힘. (그것도 정말 빠르게!) 그리고, 회를 못먹는 탓에 초밥도 입에 못대는 나로 하여금 '초밥이란 것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한 경지에 이르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읽는 사람의 나이가 많든 적든, 소위 '장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정도의 화자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에서 받게 되는 맑은 충격에는 차이가 없으리라. 어느 샌가 끓어오르는 자기발전에의 욕구라든가 하는 감정은 이미 부차적인 것이다. 범속한 마음가짐으로 범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마음가짐, 고집스럽고 가끔 편집증적이기까지 한 완벽주의와 무서운 노력은 비록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듣기만 하여도 털 끝이 바짝 서는 자극적인 화제이다. 그러한 것을 지면을 빌려서 화자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이번 기회는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한 장 한 장,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까웠다.

  칼 한 자루를 쥐고 그 날 끝에 자신의 마음까지 같이 벼려 세우는 일본요리의 명인인 화자 안효주는 이번 책에서 자신이 그동안 초밥을 쥐며 겪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풀어놓는다. 비록 책을 읽고 있는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하다못해 즐기지조차 못하는) 초밥에 관한 화제가 주를 이루었지만, 그 안에서 슬쩍슬쩍 엿볼 수 있는 저자의 마음가짐이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푸근한 말투와는 전혀 상반되는 단단한 것이었다. 일상적이고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있는 책인데도 읽다보면 저자가 자신의 '업'인 초밥을 어떻게 다루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찌보면 바보같으리만큼 우직하게 제자를 키우고 또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명성을 쌓았는데도 쉼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더 좋은 맛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매는 모습을 보며 '아, 이것이 '본분을 다한다'는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또, 요리사가 쓴 책인 만큼, 어떻게 하면 초밥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지, 어떤 재료를 어떻게 골라야 좋을지에 대한 팁도 같이 나와있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저자의 삶을 다룬 이야기만 했다면 아무리 에세이라 할 지라도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았을텐데 이 책에서는 읽으면서 슬슬 마음이 지칠 만한 때쯤에 그러한 '휴식거리'를 같이 넣어주어서 부담없이 가볍게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에세이에 곁들인 팁'이라고 하면 별 대단치 않은 것을 구색맞추기 식으로 넣어놓았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가 쉬운데, 기본적인 내용을 언급한 것은 맞지만서도 그 팁을 읽고 난 초밥혐오증 환자 하나가 완치될 수 있었을 정도라면 그 짧은 글 하나하나가 갖는 기본적인 내공이 무시 못할 정도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될 법 하다.

  지금은 비록 적은 봉급을 받고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지만, 언젠가 여윳돈이 나면 주방에 이 사람이 서 있는 '스시 효'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초밥을 사랑하는 사람이 직접 쥔 초밥을 나의 첫 초밥으로 입에 넣으면서 내 혀와 마음이 동시에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호사는 없으리라. 자신의 일에 갖는 애착이 사람을 장인으로 만들고, 그가 올라선 경지에서 나오는 내공이 초밥을 싫어하는 나와 그로 하여금 소통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든다. 중간 매개체는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언덕배기에 올라서면 동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듯, 어떤 무언가가 한 사람으로 하여금 더 높은 곳에 오르게 만들면 만들수록 그 사람은 자신이 내려다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눈에 담고 직접 손을 뻗어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안효주는 초밥으로 큰 세상을 그의 눈에 담았다. 나는 무엇으로 나의 세상을 마음에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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