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 심리여성학
진 시노다 볼린 지음, 조주현.조명덕 옮김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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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만족스럽고 합리적인 선택과 결정도 있지만 나는 지난 선택과 결정을 후회하고 자책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비슷한 선택을 하곤 한다.  

돌아보면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은 참으로 많았고 또 그만큼 크고 작은 후회도 많았다. 후회를 하며 잘못된 결정의 원인을 상황과 타인에게 돌려보기도 하지만 결국 문제의 원인은 선택의 주체인'나'에게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올 한해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닐 것 같은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것은 거창한 존재론적인 성찰이 아니라 미숙함과 혼돈으로 가득했던 20대를 벗어나면서, 그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성숙하지 못한 나의 정신과 심리구조에 문제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하는 질문의 끝에 '자아'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고 자괴감이나 무력감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인지적으로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판단하면서도 정서적으로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이 불편함을 해소하지 않으면 내 삶이 영원히 제자리걸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분명하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나'를 인정해야 했다. 어쩌면 그간의 실패와 두려움들은 나를 부정하면서 내가 아닌 나를 만들려고 했던 불안함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여성 심리를 그리스 신화의 여신 유형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기본적으로는 융 심리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사회적 영향에 의한 작용도 함께 고려한다. 남성주의적 사고에 입각한 프로이트에 비해 훨씬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여성을 위한 여성심리학 서적이다. 어떤 행동이나 결정, 선택을 할 때는 여성 내부에 그렇게 하도록 하는 원형, 즉 여신이 있다는 것이다. 

융의 시각은 여성들이 강력한 내부의 힘들 혹은 원형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데, 이 원형들을 나는 그리스 여신들로 의인화해 보았다. 반면에 여성주의 시각은 외부의 힘들, 즉 사회가 여성에게 제시하는 표준여성상에 의해 여성들이 좌우된다고 보는데, 나는 이 외부의 힘들이 어떤 여신 유형은 억압하고 어떤 여신 유형은 밀어 준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모든 여성은 이 두 힘 사이에 끼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으로는 어떤 여신 원형에 의해 움직이면서 밖으로는 표준 여성상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본문 p. 23 

 저자는 여성의 심리를 지배하는 원형을 그리스 신화의 일곱 여신에 비유했다. 이는 각 신화에서 여신들의 출생이나 행적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처녀 여신으로 분류되는 여신은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로 이들은 심화에서 어떤 남신들과도 관련을 맺지 않았으며 독립적이었던 만큼 이 여신의 지배를 받는 여성들은 독립심의 욕구가 강하고 목표를 추구하며 자율적이다.  

책을 읽어가며 각 여신들의 특성에서 부분적으로 나와 유사점을 발견하기도 했고 또 나를 지배하는 여신이라고 생각되는 유형을 읽을 때면 나를 객관화하여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의 반영이었으리라. 

어쩌면 나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내 삶의 과정 속에서 어떤 여신 원형이 활성화되기도 하고 또 어떤 여신 원형은 퇴화되는 변화를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내 삶의 주기에서 여러 여신들이 활성화되었던 듯 하다. 그리고 그동안 교육과 환경의 영향으로 특정 여신의 원형이 강조되고 키워져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내 삶의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여신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런 결론은 여성의 심리를 정형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물론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나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규정을 원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단순한 심리테스트를 통해 나를 어떤 타입으로 정하고 거기에 딸린 허섭한 조언을 처방전으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지배적 성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어떤 여신이 강하게 작용할 때 선택의 오류를 범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즉, 그 여신의 목소리를 누르고 다른 여신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숱한 혼돈의 시간 속에서 그동안 내가 억눌렀던 다른 여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선택이 외부 상황이나 알 수 없는 본능에 의해 강요되었다고 느끼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나 스스로 수동적인 사람, 희생양, 상황이나 다른 삶에 의해 볼모가 아니라 결정권자이자 주인공으로 설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안에 있는 여신이 주는 장점과 약점이 있다. 이 약점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선 나 자신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 본문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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