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깅이 - 청소년을 위한 <지상에 숟가락 하나> 담쟁이 문고
현기영 지음, 박재동 그림 / 실천문학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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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의 숟가락 하나' - 책을 펼치면 활자에 갖혀있던 제주의 자연이 서서히 눈 앞에 살아난다. 거친 바위, 용연, 초원, 돌담, 나무에 인간의 삶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없다. 한 생명이 나타나는 소설의 시작처럼 작가는 제주의 자연이 품은 생명력을 한 인간의 성장의 동력으로 그려냈다.  

  '똥깅이' 표지에 쓰인 '청소년을 위한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보며 책장에 꽂혀있던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다시 꺼내들었다. 책 마지막 속지에 적어 놓은 짧은 감상이 눈에 띄었다. '똥깅이'의 첫장을 넘기며 궁금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서사성과 서정성이 버무려진, 제주의 자연이 살아있는 듯 느껴지던 그 묘사를 어떻게 청소년용으로 바꿔놓았을까?  

 결론으로 말하자면 그 아름다운 묘사와 이미지들은 그 느낌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분명 '지상에 숟가락 하나'보다 가벼운 것 같은데 그 뜨뜻하고 애잔한 느낌은 그대로다. 아마 그것은 이야기의 한 부분을 잘라낸다고 변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필력이 그대로 담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4.3 항쟁의 학살과 관련된 부분이나 똥깅이와 그 친구들이 성에 눈뜨는 부분은 일부 생략되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4.3항쟁 부분은 아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워 생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비해 가볍고 밝은 느낌이다. 4.3항쟁은 간략한 각주로만 사건에 대해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4.3 관련 내용이 빠진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적인 사건은 이야기를 통한 전달력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4.3항쟁은 이 소설을 통해 아이들이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할 듯 하다.

  판형도 한 손에 쏙 들어오고 편집도 아이들이 보기 편하게 시원시원하다. 특히 박재동 화백의 익살맞으면서도 정다운 삽화는 소설의 내용을 유쾌하게 뒷받침하면서도 어른들의 애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서사의 범위가 깊고 풍부하다는 점이다. 4.3 항쟁부터 전후의 혼란기 속에서 겪는 한 인간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책을 통한 간접체험이라는 교과서적인 이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책을 읽으며 그 시대의 시공간에 충분히 빠져들게 된다. 또한 60여년을 거슬러 시작되는 이야기지만 요즘 아이들이 느끼는 성장기의 외로움, 모험심, 두려움, 방황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 시선 의식하며 괜히 고독한 척 하는 게 어디 그 시대의 유행이던가. 그러니 시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성장기의 공감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해 두자. 물론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출간된 뒤 청소년 소설로 다시 출간되어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청소년 독자에게 다가가는 시도로는 좋지 않을까. 어쨌든 요즘 청소년 소설이 지나치게 현재의 상황에만 한정이 되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걱정을 씻어줄만한 소설이다.  

 또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고통을 거쳐온 제주의 자연을 참으로 섬세하고 유려하게 펼쳐낸 작가의 필체는 '똥깅이'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아픔을 고스란히 체험하고 그 체험을 내면화하며 성장한 '똥깅이'가 전혀 어둡고 음울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아마 제주의 자연에 애정을 듬뿍 담아 그려낸 작가의 필체에 있지 않을까.  

 제주 자연 속에 영원히 살아 꿈틀대는 한 인간의 유년의 기억이 다시 눈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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