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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평점 :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이다. 그래서 더 끌렸는지 모른다.
이제 서른이 되었다. 이십대의 마지막이라는 어설픈 감상에 사로잡혀 힘겨웠던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비하면, 서른이 되는 것은 그냥 하루밤이 지나가는 것과 같았다. 친구 말대로 유난떨 것 없이 그냥 나이값해야 하는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 뿐이었다. 다만 스물아홉이 끝날 무렵 몹시도 나를 지치게 했던 관계를 끊어내며 혼란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맞긴 하나 보다. 서른이 되며 나이값을 하느라 그랬을까, 관계를 돌아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서 그랬을까.
혼란을 겪으며 그간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내가 내가 남성중심사회에서 얼마나 조신하고 참한 여성의 이미지를 강요받아왔는지,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얼마나 나의 욕망을 누르고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제도권안에서 어느정도 인정받는 여성이 되었는지는 모르나, 서른이 되어 돌아본 나의 자아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남성 의존적 자아였다. 어쩌면 나를 지치게 했던 그 관계에서 내가 더 당당하지 못하고, 더 결단력있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도 나의 불안한 자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핍을 채우려 여성심리학, 페미니즘 서적을 찾아 읽다가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언제나 일탈을 꿈꾸지만 꿈만 꿀 뿐 틀을 깨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의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라니! 이 문장에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제도에 대한 상당한 도전이 담겨 있다. 외국 남자와 팔짱만 끼고 전철을 타도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사회에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도전과 용기에, 여성으로서 남성중심사회에 가하는 날카로운 비판에, 결코 '운동권'이 아니었으나 어느 '운동권'보다 진보적인 그녀의 생각과 행동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그녀가 결코 삶을 관념적으로 살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깨지면서 얻어낸 철학임을 알 수 있었다. 새겨두고 싶은 문장에 표시를 해 두었더니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조금 일찍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삶이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혁명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책을 통해 가부장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어떤 고정관념에도 매이지 않고 내 스스로의 가치와 선택을 믿고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의 자세에 한 발 내딛을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녀처럼 국경을 넘어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선택한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사회적 제약이나 안락함을 위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갈망하는 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그녀가 국경을 넘은 것과 같은 수위의 모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에 나의 선택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깊은 곳에 숨겨둔 기분이랄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오래된 노래 가사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내 영혼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가치임을 일깨워주었다.
또 하나, 진정한 진보란 관념적인 구호를 외칠 뿐 정작 삶에서는 관습과 허위로 일관하는 '운동권'이 아니라 삶의 작은 영역에서부터 진보를 실천하는 '생활 좌파'를 말하는 것이다. 모순 덩어리의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거친 구호와 단결된 집단의 투쟁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민 세력의 거대한 힘과 투쟁은 사회를 변혁하는 강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 힘의 원동력은 개인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대학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갖고 있는 혼란- 조직을 위해 개인의 취향이나 욕망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불편함-이 이 책을 통해 해소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나라의 문화 정책에 대한 제안이다. 그녀는 문화와 예술이야 말로 공공서비스 영역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그녀의 생각에 지지한다. 예술은 인간의 감성을 창조적이고 풍부하게 한다. 감성이 풍부하고 상상력이 충만한 사람의 삶은 물질적인 조건을 떠나서 삶이 여유롭고 풍요롭다. 문화 예술이야말로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다. 의료, 교육은 말할 것 없고 문화 역시 공공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이 문화적 취향마저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이 시대에 과연 언제쯤 가능할까.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의 용기에 감탄하고 그녀의 시도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닌 나를 향한 질문 '나는?'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질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대한 구조 속에 순응하며 살아온 '나'에 대한 질문은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해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답이 있는 곳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게 도와주는 것일 뿐. 혁명적인 삶을 살아갈 용기는 여전히 없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것이 아주 작고 미약한 것, 내 삶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활좌파.
'내가 투자한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p.100
그 어떤 세월도 또 다른 세월을 위한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의 20대, 30대, 40대는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나의 모든 시간들에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즐거움을 배분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 -p.110
가우디의 뛰는 심장이 느껴지는 곳곳에서 뱃속의 칼리에서 말했다.
"그 어떤 고정관념에도 현혹되지 말고 자유롭게, 완전히 너 자신만의 가치와 의지로 선택한 너의 인생을 누리렴." -p.135
최근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 -p. 290
삶을 즐길 줄 모르면 좌파가 아니고, 하면서 신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다. 모든 엄숙주의와 모든 '묻지마 일벌레'들은 결국 위선으로 그 세월을 보답한다. 휴일도 반납하고, 밤잠도 안 자는 파란지붕 집의 사람들이 엄청 사로를 치고 있는 중이다. 당연하다. 사람은 일하는 기계로 태어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기계가 될 수 없듯이. -p.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