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정도상 지음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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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님의 '찔레꽃'을 출간된 날 선물받았다.  80년대생인 나에게 '정도상'은 그렇게 낯익은 작가는 아니다.

단편'찔레꽃'을 창작과비평에서 읽었을 때는 은미(충심)이 겪어 온 삶의 궤적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 끼우며 읽어야 했고, 단편에 담기엔 너무 폭넓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작소설집으로 나온 '찔레꽃'을 읽으며 그가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여성의 삶이 너무나 아프게 무겁게 다가왔다.

우리가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혹은 이념이라는 잣대로 지나치게 까다롭게 바라보는 북녘의 문제를 그는 참 덤덤하게 그려내었다.

그곳에는 우리와 똑같은 삶은 사는 사람이 있었다. 깔끔하고 모범적인 남자와 강하지만 뒷모습이 슬픈 남자 사이에서 사랑을 고민하는 여학생이 있고, 부모님 몰래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선남선녀가 있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님을 돕고 싶어하는 딸의 순수한 마음이 있고, 졸업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는 여느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이 있었다.
다만 그런 인간적인 감정과 보편적인 삶조차 용납하지 않는 모순이 그녀의, 그의 삶을 처참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설은 북한의 인권을 운운하며 감상적인 눈물을 쏟아내게 하지 않으며, 이념과 체제를 문제삼으며 정치적인 선동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똑같은 인간의 삶이 왜 파괴되어야 하는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지경에 내몰린 삶을 너무나 아프게 절실하게 알려줄 뿐이다.

  북콘서트에서 정도상 선생님은 '겨울, 압록강'에서 언청이 엄마와 늙은 아버지, 어린 딸이 버스에 타서 서로를 보듬고 이별하는 부분을 낭송하셨다. 그 부분은 나 역시 뜨거운 것이 목에 걸려 쉽게 넘기지 못하고 몇 번을 읽었던 부분이다.

'낡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으며 어린 딸을 위해 육신을 고단하게 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세상의 저 숱한 아비 가운데 하나인 남자가 버스에서 내렸다.' 그곳에도 우리와 똑같은 삶이 있다.  

정도상 선생님은 2페이지 가량의 꽤 긴 부분을 낭독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 부분이 어쩌면 이 소설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주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소설을 통해서 온전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인권을 운운하지만 진정한 인권은 돈이나 식량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온전한 가정을 돌려주는 것라고 생각합니다."

아, 지금의 북한 문제에 관한 말들 중에서 이토록 명료하게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 없다. 나중에 알았지만 문인으로서 그는 40여차례 북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의 소설에 담긴 치열한 고민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학번에게 '정도상'은 '백무산, 박노해'같은 시인처럼 당시 대학생들이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작가라고 했는데 북콘서트에서 그가 하는 말에는 8,90년대를 지나온 뒤에도 무뎌지지 않은, 시대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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