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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밥을 나누는 약자들의 생존술에서 배우다
우치다 타츠루 & 오카다 도시오 지음, 김경원 옮김 / 메멘토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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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파머는 몰락하는 사회에서 가장 먼저 죽는 이들은 약자들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몰락의 전조다. 그는 대안으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치다 타츠루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공존의 병법을 알게 된다. 이른바 `증여경제론`이다. ˝세대간의 고립과 단절, 사회 안전망의 붕괴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여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잘 곳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약자들의 상호부조 네트워크로 극복하고 복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지의 운명- 랑시에르의 미학 강의
자크 랑시에르 지음, 김상운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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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시에르의 미학 강의 모음집. 그의 미학은 정치적 저항의 모티프가 된다. 나는 종종 그것을 예술적 비약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번엔 랑시에르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지젝의 추천 덕분이다. ˝랑시에르의 글쓰기는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적 해석을 제공한다.˝
블루게이트-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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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범죄의 현장에서, 우리는 무기력한 침묵을 선택하며 서슴지 않고 공범이 된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오염되고 변절된다. 그런 까닭에, `장진수`라는 이름은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최후 고백`이라는 부제가 슬프고 비장하다. 부디, 이번엔 이 책으로 망각과 침묵의 카르텔에 맞섰으면 한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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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고 세계감(世界感)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시인의 말, 깊이 공감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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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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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손보미의 소설을 읽었다. 유쾌한 반전의 위로는 낯설었으나 반가웠다. "서사란 다만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안간힘의 소산일 뿐이다."란 평론가 신수정의 갈음에 동의했다. 닿을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일, 그러나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안간힘' 말이다. 내가 받은 위로는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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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 들국화 [2CD]
들국화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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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퇴의 조짐이 보이나, 그들은 세월을 넘어 여전한 ‘들국화'였다. "또 다시 들국화로 필래"(<들국화로 必來>)라는 노랫말에 가슴은 요동쳤다. 조동진과 김민기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겨울비>와 <친구>는 전인권의 목소리를 만나 그 애달픔을 후드득후드득 떨친다. 두번째 시디는 그들을 향한 우리의 오랜 환호를 각성시킨다. 전인권이란 독보적 보컬에 대한 추억은 최성원과 주찬권의 목소리와 어울리며 한걸음 더 전진한다. 최성원의 솔로곡들은 우정의 증표로 들국화의 노래로 새겨져 있다. 시디에만 실린 <He ain't heavy he's my brother><As tears go by>는 그들을 추종했던 우리에 대한 속깊은 배려겠다. 고이 간직하련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들처럼 들국화로 다시, 언제나, 어디서나 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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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이서희 지음 / 그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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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출간 기념 북토크 후기

2013년 12월 17일 스폰지하우스_

 

 

1. 진행자 김두식 교수는 처음부터 살짝 소외되었다. 이서희 작가와 민규동 감독의 은밀한 우정 때문이다. 이서희 작가는 민규동 감독의 이름을 풀이하며, 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멋졌다. 김두식 교수는 살짝 소외되었으나, 그 소외를 즐겼을 것이다. 어떤 기쁨은 자신의 소외됨을 기꺼이 허락한다.


2. 김두식 교수와 이서희 작가는 ‘페친’이란다. 김두식 교수는 그를 둘러싼 '페이스북 현상’에 주목하였고, 강렬한 매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흔쾌히 진행 요청을 받아들였단다. 이서희 작가의 북토크 진행을 한다고 했더니 주위 사람들이 40년 중년의 남성들로 그득할 거라고 하여 걱정하였단다. 그런데, 놀랍게도(물론 시커먼 남성분들도 제법 있었지만) 상당히 많은 젊은 여성들이 참여하였다. 난, 그것이 기뻤다. 사실, <관능적인 삶>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이들은 여성일 것이다. 이 책의 위로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합당한 것이다.


3.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물었다. 자신 안에 있는 상처 때문이었다. 이서희 작가에게 관능은,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부모의 땅을 떠나 프랑스에서 갖게 된 '작은방'은 오롯이 그의 존재로 그득 채우는 최초의 경험이었고 충만한 행복의 공간이었다. 부유하는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돌아갈 '집'을 배제한 그의 모험은 맹렬하나 고독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집'에 정착했다. 일탈은 끝난 것일까. 아이를 키우며 다시 오랜 상처는 아파오기 시작했고 그는 다시 직면해야 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보았고 그 세상으로 나아가야 했다. 관능적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4. 민규동 감독은 이서희 작가의 글쓰기를 계속 북돋았다고 한다. ‘너의 연애적 본능'을 글로 마음껏 표현하라고 했단다.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비슷한 지식을 소유하더라도, 어떤 이들의 문장은 다른 빛깔로 생동한다. 이서희의 글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단다. 그리고 마침내 이서희의 글쓰기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곁에서 격려와 위로뿐만 아니라 때로는 강력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단다. 그의 글이 독자를 의식하여 수위를 조절하여 타협하는 것이 싫었단다. 이서희이니까, 그만이 할 수 있는 글쓰기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5. 민규동 감독은 계속해서 이서희 작가의 향후 행보를 주목한다고 했다. 이렇게 당부했다. 작가로서의 자기 검열에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고. 난, 그 말을 이렇게 이해했다. 이서희 작가의 관능이 독자를 고려하여 그 수위를 타협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계속하여 농밀하고 노골적인 서사를 이어가라고. 나도 같은 마음이다.


6. 민규동 감독은 언제나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음을 깨달았다. 죽을 수 있다. '메멘토 모리’, 언젠가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인생을 허비할 수 없었다. 우린 좀더 농밀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불필요한 아픔에 매이지 말고 더욱 소중한 삶을 욕망해야 한다.

 

7. 관능은 섹슈얼리티로 발휘될 수 있지만, 섹슈얼리티 자체가 관능은 아니다.

 

8. 이서희 작가는 여성의 삶을 성찰했고 도전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받는 제한적인 삶, 모성이라는 또 다른 금기를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연애만이 관능적 삶의 전부가 아니다. 관능적 삶은 여러 삶의 방식으로 수행될 수 있다.

 

9. 도주한 땅 프랑스에서 이서희 작가는 ‘관능적이다’란 소리를 처음 들었다. 낯선 시선이었지만,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누리려고 했다. 한편, 그는 연애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했다. 연인에게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충만한 행복을 누렸으며 마지막에는 제대로 정리하였다.

 

10. 성녀와 창녀 프레임은 남성의 자유도 옭아맨다.

 

11. 이서희 작가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와 순결주의자 어머니를 극복해야 했지만, '부모 때문에’란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몫이 더욱 크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아셔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부모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나쁜 아빠가 나쁜 할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고 한다. 실제 그의 아이들에게는 너무 좋은 할아버지란다.

 

12. 이서희 작가는 모국어로 글을 쓴다. 모국어를 모르는 아이들이 모국어로 된 엄마를 읽었으면 좋겠단다. 그들은 언젠가 모국어로 읽는 엄마라는 세계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에 살짝 웃음이 터졌다.

 

13. 관능은 삶을 확장시킨다. 가족이란 경계를 넘어 타자까지 보듬는 삶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삶이 확장되면 사람도 커진다. 그러면 상처는 그만큼 작아진다. 감동적인 통찰이다.

 

14. 그는 비록 미용실에서 '눈썹을 날려 버렸지만’, 사진보다 훨씬 나았다. 그의 목소리는 나의 상상보다 조금 더 매력적이더라. 관능이 존재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면, 순수(純粹)야말로 관능의 절정이 아닐까. 오늘 만난 그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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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이서희 지음 / 그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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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의 습격에 관한 소고




시인 김소연은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를 "홀림"으로,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상태'를 "반하다"로,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를 "매혹"으로 정의한다(<마음사전>, 123쪽). 그렇다면, 이 책에 대한 매혹은 합당하다. 감각을 한껏 자극하는 미려한 문장들이 그 첫째 이유다. 문장들에 스민 삶의 서사는 독자의 가슴을 도발하여 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요동친 존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체득한다. 이른바 '관능'의 습격이다. 


미셀 푸코는 성(Sex) 문제를 사회적 권력의 지배 관계로 고찰한다. 지배 권력은 '합법과 비합법, 허용과 금지'의 통치 기제로 성을 통치하려 한다. 성은 근원적 욕망의 문제인 까닭에, 사회적 통제(혹은 억압)의 수단으로도 매우 효율적이다. 성과 금기의 역사는 지배 권력과 그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기도 하다. 


푸코가 성에 대한 사회학적 맥락을 비평하고 있다면,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즘에 대한 존재론적 해명을 시도한다. 바타유는 에로티즘을 "단순한 성행위와는 차원이 다른 정신적 요구이자 죽음조차 긍정하는 삶"이라고 정의했다. 존재와 존재는 서로를 타자로 인식하고 수용하고 거부한다. 존재간의 단절은 필연적이고, 불연속적이다. 따라서 에로티즘은 '잃어버린 연속성에 대한 향수'이다. 


'필한 절망'에서 '기필한 매혹'으로 비상하는 관능의 서사



서두가 길었다. 이서희의 책 <관능적 삶>은 페이스북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등장했다. 'Sophie Ville'라는 필명으로 일기를 쓰듯 기록한 관능의 서사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서사들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관능의 연대기를 이뤄낸다. 이서희의 에로티즘은 우선 바타유의 사유를 충족한다. 그녀의 관능은 억눌린 존재의 저항과 해방 서사인 동시에,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필사적인 열망인 까닭이다. 

 

'관능'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표준국어대사전). 첫째,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의 기능. 둘째, 오관 및 감각 기관의 작용. 셋쩨, 육체적 쾌감, 특히 성적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 첫째 의미가 관능의 본질이라면, 셋째 의미는 오늘날 일상에서 통용되는 맥락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관능은, 국어사전적 의미를 거슬러 반추한다. 즉, 아슬아슬한 성적 감각의 충만한 자극에서 출발하되 결연히 존재하는 생명의 지극한 본질까지 전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 그는 회사로 출근하고 홀로 남은 '그의 방'에서 '세수도 하지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그의 책과 놀았다'. 이렇게 부연한다. 

"읽지 않은 그의 책만큼 요염한 것은 없었고, 나는 그의 책을 유혹하듯 펼치고 열고 더듬고 따라갔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세상에는 포르노그래피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이미 이곳은 지독히 관능적이고 불순하고 관음적인 시선으로 넘쳐나는데, 이토록 은밀하고 매혹투성인 세상에서 그 이상의 터치는 조금도 관능적으로 보이지가 않는 걸."(24쪽) 


그녀의 관능에 매혹당하는 순간은 '침대'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여인의 풍경 속에서, 그녀가 탐하는 그의 책에 대한 은밀한 열망을 목격할 때이다. 아슬했던 시선이 당도한 매혹의 순간이다. 그녀는 '당신의 글자 페티시즘'에 대해 고백한다. 체취 어린 글씨야말로 어떤 존재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추동한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마시라. 그녀는 사랑, 연애, 키스, 섹스를 한치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존재의 끈질기고도 가열찬 욕망을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은 '황홀한 절망'일 것이나, '기필한 절망'은 기어코 '기필한 매혹'으로 비상할 것이다. 연애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이며,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 전부를 거는 것이다. 따라서 연인과의 은밀한 밤을 묘사하는 농밀한 문장과 관능적인 서사들은 필연적이다. 


그녀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족이란 이름의 억압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서울대 법대로 상징되는 소수 엘리트의 허위를 떨쳐버린 그녀는, 프랑스 파리로 떠나 영화를 공부했으나 그것은 핑계였을 것이다(어찌 학문 따위가 관능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사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여럿이나, 그녀는 그들 모두와 각각의 시공간에서 각기 다른 빛깔의 사랑을 이룬다. 탐험하듯 닿은 그란 존재는, 그녀에게 개별적인 추억으로 간직된다. 


"지금도 생각한다. 관계의 황홀경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을 때 찾아왔다가 그 사랑을 지속하기로 선택한 순간에 지극해진다. 존재의 연루가 관계의 단단함으로 이어지는 자리. 그곳은 인연의 결말이 어떠하든 눈부시다."(46쪽) 


'일탈과 저항의 관능'에서 '지금, 여기에서의 관능'으로



저자의 시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흔 즈음에 이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의 아른한 일상에 다다른다. 뜨겁게 질주했던 청춘의 관능을 회고하고 추억하는데, 불쑥 도드라진, 깊고 아득한 상처들과 조우한다. 골방 속에 갇혔던 그녀의 상처는 오랜 세월 고독했다. 그 상처들은 푸코가 직시했던, 억압된 성의 역사와 관련 있다. 아득한 슬픔에 대하여 그녀는 아우성치지 않았다. 다만, 그토록 갈구했던 자유는 일탈과 저항의 관능으로 결행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여기에서의 관능을 희망한다. '까마득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해한' 관능의 의미들도 있겠으나, 그것이 단지 추억일 뿐이라면 얼마나 허망할까. 하여, 그녀의 관능은 여전히 절박하다. 불행에는 겸허하되 행복에는 당당하다. 그녀 고유의 열정은 언제나 오늘 다시 시작한다. 관능의 문장은 필사적이고, 관능의 서사는 생동하며, 관능의 존재는 언제나 건재하다. 관능은, 존재하는 모든 이의 심장에 거친 호흡을 선사한다. 그녀의 관능에 매혹당한 나의 심장은 펄떡펄떡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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