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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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새해에 놓치지 말아야 할 즐거움이다. 김애란의 빛나는 성취가 질주한다. 아직 절정에 다다르지 않았을, 그럼에도 소설이란 장르마저 허물어뜨리는 그의 미학적 성취가 그저 경이롭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선 김애란을 열외로 하면, 개인적으론 편혜영의 작품에 깊은 애정이 갔다. 


그리고 소설가 김숨의 발견. 갈팡지팡하는 위태로운 존재, 소설 속 '경숙'에 깊은 연민을 가진다. 그 연민은 오늘 우리, 그리고 나를 향한 작가의 아득한 위로로 느껴진다. 혼란스럽게 시시각각 변하는 경숙의 시선 배후에 흐르는 일관된 위태로움,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존재가 아슬하다. 경숙으로 인해 나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작가에게 새삼 고맙고, 이런 작가를 알게해준 현대문학상도 고맙다. 


사족 몇 가지. 이상문학상 작품집, 참 잘 만든다. 수상 작품 및 작가에 대한 정성과 자부심이 돋보인다. 1쇄를 1월 18일에 찍었는데, 내가 가진 건 벌써 5쇄다. 김애란의 힘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집의 힘이기도 하다. 반면, 현대문학상 작품집은 90년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보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작품의 수준이 결코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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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호 자서전 책
박맹호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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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맹호 자서전은 기실 민음사의 이야기이며, 한국 출판사의 현대사다. 솔직히 출판계 혹은 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 재밌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또한 그들에게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나, 그 어둔 그늘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료로서의 가치, 그 사료에서 파생되는 여러 에피소드는 새겨 볼 만한 대목이 제법 있다(이 부분엔 대해선, 앞 부분의 정은숙의 추천사가 정리를 잘 해놓았다)


나의 이십 대까지만 해도 민음사는 최고의 출판사였다.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콘텐츠는 물론, 판형과 디자인에서도 발군이었다. 민음사의 텍스트는 늘 신뢰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특히 민음사의 고집스런 디자인 감각은, 이제 좀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회장님 시대'는 이 책으로 그만 접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민음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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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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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마흔. 이제 몽테뉴의 시대가 온 것일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도 섣부른 희망일 뿐인가? 어찌 되었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위로받았고 격려받았다. 책으로 맛본 간만의 '힐링'이었다. 자유롭고도 흔들림 없는 그의 사색은, 뛰어난 전기 작가 츠바이크에 의해 단단한 성찰의 텍스트로 전해진다. "작은 장소에 묶여 있는 사람은 작은 근심에 빠진다." 한편, 나의 세상에 직면하되 스스로를 세상의 격동에서 지켜내고, 자유로운 인문주의자로 살고자 했던 몽테뉴의 삶과 사상은, 또다른 격동의 세월에 휘말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츠바이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작가 츠바이크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을 떠나 남아메리카로 망명을 가고, 그곳에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츠바이크는 몽테뉴를 스승으로 삼되, 그토록 갈망하던 스승의 자유에 왜 이르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몽테뉴의 '위로하는 정신'은, 나를 구원할 것인가? 아마 츠바이크는 그것을 기대할 것이나, 두고 볼 일이다. 


"자신을 책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 몽테뉴는 '그 다양한 내용을 읽는 것이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 판단력이 기억을 동원하여 일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자신을 자극해서 거기에 대답하도록,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이끌고, 그래서 몽테뉴는 책에 메모하고, 줄을 긋고, 마지막에는 책을 다 읽은 날짜와 그 책이 자기에게 준 인상을 적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비판도 아니었고 문필 작업도 아니었으며, 그냥 연필을 손에 잡고 하는 대화였다."(93-94면)

"몽테뉴가 평생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질문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타나는 놀랍고도 선량한 점은 그가 이 질문을 명령문으로 바꾸려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로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110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 살기 시작한다."(102면)

"세상일에 신경 쓰지 마라. 네 안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을 구원하라. 다른 사람들이 파괴하는 동안 건설하고, 이 광기 한가운데서 너 자신을 위해 분별을 지키도록 노력해라. 너 자신을 잠가라. 너 자신의 세계를 세워라."(1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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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의 경숙 - 2013년 제58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김숨 외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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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의 발견. 갈팡지팡하는 위태로운 존재, 소설 속 '경숙'에 깊은 연민을 가진다. 그 연민은 오늘 우리, 그리고 나를 향한 작가의 아득한 위로로 느껴진다. 혼란스럽게 시시각각 변하는 경숙의 시선 배후에 흐르는 일관된 위태로움,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존재가 아슬하다. 경숙으로 인해 나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작가에게 새삼 고맙고, 이런 작가를 알게해준 현대문학상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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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품, 1976년생 기계식 완전수동 카메라 Pentax MX, 오늘의 내가 가진 정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시선과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의 가난함과 지난함을, 그래도 나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내게 남겨주신 아버지의 유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MX를 유실한 뒤 한동안 극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겨울방학 때 시작했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통해 맨 처음 구입한 사치품 역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중고 MX이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의 리얼리티는 치열하였으나 감당할만한 것이었고, 객관적 슬픔 너머 따뜻한 관조적 시선도 가질 수 있었다. 


카메라를,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과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난 전자에 가깝고, 사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여 스스로 좌절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좌절에 머물지 않고 렌즈로, 카메라 앵글 속에 사람을, 세상을 담아내는 것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은, 최민식에게 빚진 바 크다. 





저항하는 진실, 최민식의 리얼리즘


1928년 북녘 땅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리얼리즘 사진 작가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작품성을 인정받아 영국의 "Photography Year Book"에 사진이 수록되고 스타 사진가로 선정되기도 했지만우리나라에서는 늘 고독한 작업에 천작할 수 밖에 없는 비주류 사진가였다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렌즈에 담아낸 까닭이다독재정권 시절에는 극빈층을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들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1968년 사진집 <인간> 1집을 출간한 이후, 연작 시리즈 <HUMAN 인간>은 14집까지(최근에 1-14집까지의 사진 중 490여 점의 사진를 선별하여 <휴먼 선집>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30여 권의 에세이를 펴냈다.  


최민식의 화두는 언제나 '인간, 그 가난한 존재의 진실'이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군부가 장악했던 196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뜨거웠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담아낸 사람들은 지극한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희극적 요소가 내재된 어떤 역동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권력은 늘 왜곡된 허상으로 군중을 호도했지만, 최민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비루한 사람들의 진실을 담아냈다.


"나의 사진은 세상을 향한 발언이며 싸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과 분노,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믿는다."(<사진이란 무엇인가>, 6면)


"나는 열정을 갖고 사회정의를 위해 누구에게라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사진을 통한 투쟁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또한 나 자신이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창작해 왔다고 생각한다."(<사진이란 무엇인가>, 256면)


또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두 어깨 들썩이며 살아가는 땀내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담겼때로 처절하고 참혹한 풍경이때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잠든 아이가 담겨진 쓸쓸한 풍경은사진을 읽어내는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내 사진은 배부른 자의 장식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가난하고 누추한 삶의 진실을 사랑하는 나는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졸부들에 비해 가난한 서민의 진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 7면)





'결정적 순간'에 생의 본질은 복원된다


그의 사진들에서는 '포즈'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치열한 리얼리티을 담아내고자 했다. 사진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된 존재가 스스로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진실한 사진이란 '끊임없이 현실을 발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사진을 찍고나서 트리밍이나 포토샵 같은 작업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가난하거나 힘이 없어도 인생의 고난 앞에서 굴하지 않는 우리 이웃의 모습을 찍어왔다. 우리의 가난한 이웃의 모습에는 가식이 없고 진실만이 가득하다. 나는 그 진실한 모습을 작품화했다. 나는 사진예술의 기본 미학을 사실주의라 생각한다. 현실을 직시해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사진이란 무엇인가>, 262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고 이에 따르는 의식이 흐름이 하나로 맞아 떨어진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 생의 본질은 복원된다고 하였다. 최민식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신문 돌리는 외팔이, 쌍둥이 아이들에게 허연 젖가슴을 물린 엄마, 잘려나간 두 발 대신 구르마에 의지하는 거리의 남자, 거리에서 잠이 든 노파, 시위하는 무리들, 장터에서 흥정하다 싸움 붙은 여인들은 저마다 위태로운 존재들이나 치열한 생존 본능으로 저마다의 결정적 순간을 살아낸다. 그래서 최민식의 사진에 세밀하고도 명민한 언어를 입힌 하성란 작가는, 자칫 아득한 절망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를 사진들에 "소망, 그 아름다운 힘"이라는 합당한 제목을 지었다.  


거뜬히 한 세월 재주 넘어 건너뛸 수도 있지만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씨앗들 속에 아이도 씨앗처럼 누워있습니다. 뚜껑을 들썩이고 쉭쉭 김 내뿜으며 희망은 부풀어오릅니다. 아보면 햇빛 아래 속을 꽉 채운 우리의 삶이 익어 갑니다. 깊어집니다.”(<소망, 그 아름다운 힘>, 206-214면)





최민식(1928.3.6-2013.2.12)을 애도함


2013년 2월 12일, 시대에 저항했던 불온한 사진가 최민식이 생을 마감했다. 나에게 사진 찍는 법이 아니라, 사진으로 담아내야 할 진실의 가치를 가르쳐준 선생 최민식의 죽음에, 나의 가녀린 추억들이 슬픔에 잠긴다. 때로 나의 사진은 현실을 미화시키고 왜곡된 추억으로 과장된다. 디지털 카메라는 '한 컷'의 소중함을 도무지 알지 못하여 '결정적 순간'을 좀처럼 맞이하지 못한다. 사진 잘 찍는 비법을 알려주는 수많은 책들은, 최민식이 금기시 했던 트리밍과 포토샵의 편법에 의지한다. 오늘, 불현듯 들이닥친 이 슬픈 소식 앞에, 나의 궁색한 변명은 오갈데 없이 처량하다. 아, 나는 그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 있었다. 진실에 의지하여 평생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그의 사진집을 한 장 한 장 애달픈 마음으로 고이 쓰다듬어 간직한다. 그가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후마니타스적 리얼리즘은 결국 진실에 닿아 누군가의 굳건한 희망이 될 것이다.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내 사진은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돌온한 발언이며, 저항에 다름 아니다."(<소망, 그 아름다운 힘>,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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