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앙드레 드 리쇼 지음, 이재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모든 결핍은 욕망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욕망은 사랑과 더불어 위태롭게 존재한다. 재채기만 해도 소문 날 것 같은 한적한 마을에 남편을 잃고 정착한 테레즈와 아들 조르제의 비극적 이야기다. 사회적 테제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지만, 끝내 그 억압을 떨쳐내는 욕망이 더러 있다. 그런 욕망은 종종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테레즈의 욕망이 그러했다. 홀로 외롭던 테레즈의 사랑은 정당하였으나 아들 조르제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아들의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을 끝내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일까. 욕망과 사랑의 동거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위태로운 질문은 그저 고통스럽다. 


어떤 사랑이든 자기 마음을 인정하느라 보내는 최초의 시간은 축복받은 시간이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존재들에게는.(84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비극 아래, 엇갈린 욕망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어머니와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파국을 맞이한다. 소설은 주로 밤에 진행된다. 어둠의 음울함은 강력한 메타포로 이 소설을 지배한다. 알베르 까뮈는 이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고통>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하게 묶여 있던 매듭을 풀어주었고 속박에서 나를 놓아주았다. 


까뮈의 <이방인>은, 이 소설에 빚진 바가 있을 것이다. 조르제는 <이방인>의 청년 뫼르소의 어떤 고독과 닮아 있다. 허나 뫼르소는 그 고독을 의연하게 물리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뫼르소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년 시절 나의 고독과 욕망도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뫼르소처럼 의연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프다. 어머니의 욕망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 나의 욕망,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겐 슬픔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슬픔이 못내 원망스럽다. 조만간 까뮈를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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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앙드레 드 리쇼 지음|이재형 옮김|문학동네2012)

티타티타(김서령 지음|현대문학2010)

모두가 기적 같은 일(송성영 지음|오마이북|2012)

사랑 아닌 것이 없다(이현주 지음|샨티|2012)

모든 것이 은혜다(브레넌 매닝 지음|양혜원 옮김|복있는사람|2012)






1. 고통  모든 결핍은 욕망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욕망은 사랑과 더불어 위태롭게 존재한다. 재채기만 해도 소문 날 것 같은 한적한 마을에 남편을 잃고 정착한 테레즈와 아들 조르제의 비극적 이야기다. 사회적 테제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지만, 끝내 그 억압을 떨쳐내는 욕망이 더러 있다. 그런 욕망은 종종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테레즈의 욕망이 그러했다. 홀로 외롭던 테레즈의 사랑은 정당하였으나 아들 조르제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아들의 욕망은 어머니의 욕망을 끝내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일까. 욕망과 사랑의 동거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위태로운 질문은 그저 고통스럽다. 


어떤 사랑이든 자기 마음을 인정하느라 보내는 최초의 시간은 축복받은 시간이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는 데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존재들에게는.(84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전쟁이라는 시대적 비극 아래, 엇갈린 욕망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어머니와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파국을 맞이한다. 소설은 주로 밤에 진행된다. 어둠의 음울함은 강력한 메타포로 이 소설을 지배한다. 알베르 까뮈는 이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고통>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하게 묶여 있던 매듭을 풀어주었고 속박에서 나를 놓아주았다. 


까뮈의 <이방인>은, 이 소설에 빚진 바가 있을 것이다. 조르제는 <이방인>의 청년 뫼르소의 어떤 고독과 닮아 있다. 허나 뫼르소는 그 고독을 의연하게 물리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뫼르소가 생각났다. 그리고 유년 시절 나의 고독과 욕망도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뫼르소처럼 의연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프다. 어머니의 욕망을 끝내 허락하지 않는 나의 욕망,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겐 슬픔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슬픔이 못내 원망스럽다. 조만간 까뮈를 다시 읽어야겠다.





2. 티타티타  삶의 주요 변곡점마다 친구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어느 때부터인가 친구가 아닌 직업이나 어떤 사건이 그 변곡점을 차지할 때부터 난 슬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친구를,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였다. 소설 속 소연과 미유가 연주했던 '티타티타'(젓가락 행진곡)의 선율은, 마치 내게도 그 언젠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 같다. '우리'에서 '나'로 변해가고, '나'는 '우리'를 그리워하지만, 못내 그리움을 극복하지 못한채 나의 영역만 지키고 있다. 속상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슬픔과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외다리 아빠를 버리고 미혼모로 소연을 키웠던 엄마, 그런 언니와 조카 때문에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사는 이모 연희, 자식들을 위해 바람 피는 남편을 참고 살아가는 미유의 엄마, 아버지의 높은 기대감에 늘 좌절하며 살아야 했던 언니 은유.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하나 그들의 상처는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도 그러하다. 우린 지극히 평범하나 우리의 상처는 다른 무엇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아프다. 작가는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듯 소설을 쓴다. 작가의 문장은 마음의 언어를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 작가의 서사는 시각적 감성을 담보하되 시간의 속성을 한껏 활용한다. 배우고픈 글쓰기다. 

  김서령의 단편들을 주로 읽었는데, 장편 소설은 처음이었다. 같은 '1974년'생이란 이유만으로, 순전히 그 이유만으로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무언가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은 마치 나의 친구처럼 우정을 말해주었다. 이 소설도 그러하다. 숱한 소설을 읽으나, 추억이 되는 소설은 흔치 않을게다. 요즘 작가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곧 그의 에세이가 나온단다. 반가운 소식이다. 


의심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지옥도 같이 시작되는 법이니까.(123면)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나는 자클린의 말을 빌려 묻는다. 소리 내지 않았기에 아무도 나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241면)


언젠가 우리는 땅속 지하철에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밖에 뭐가 보여?" "온통 검은 세상." "정말?" "아니……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검은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말끄러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우리 모습만 도리어 비치는 것이 아니었던가. 아무것도 없는 땅속에서 땅 밖의 세상을 감지하지 못한 채로 한동안 가두어지는 것. 땅 밖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동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몸이 꾸물꾸물해지는 불안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쯤 우리도 다 알아, 라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주눅.(285면)


나는 처음 와보는 대학병원의 로비에서 나의 한 시절과 작별하는 중이다. 한 장의 인생이 악보처럼 지나갔으니, 이제 다른 인생이 또 시작될 것이다. 나도 엄마처럼, 연희 이모처럼 또 다른 어른들처럼 훌쩍 키가 자랄 것이다. 그러니 괜찮다. 이쯤은.(288면)






3.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던 글을 엮은 책이다. 송성영은 글쓰는 농부다. 충남 공주에 살던 지은이가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결국 그곳을 떠나 전남 고흥에 거하는 과정을 소박한 글쓰기로 잘 그려 놓았다. 적게 벌고 적게 쓰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저자의 철학은, 현실에서 만만찮은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하지만 낙천적인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소신껏 개척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기적 같은 일로 가득하다. 전라도 땅 끝 고흥 바닷가에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땅을 찾고, 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또 동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기증한 책들로 도서관은 가득 채워졌다. 정말, 모두가 기적 같은 일이다. 

  책 속에 소개된 여러 이야기들이 다 그렇지만, 가장 감동 깊은 것은 가출한 저자의 친구 아들과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는 장면이다. 소위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오만은, 그 스스로 고립될 때가 많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걷되, 이웃과 사람들과 연대하는 길을 택했다. 저자는 가식없는 정직으로 소통하는 법을 안다. 그것이 몹시 부럽다. 진리에 다다른 진심은 기어코 기적을 이루어 낸다.  


저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우파니샤드>의 구절을 읊조려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37면)


부조리한 세상을 등지고 시골에서 혼자서만 잘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부대껴 살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224면)


돼지 같은 세상, 그래도 자유를 꿈꿔라 아들들아.(246면)


세상 살이는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한쪽에서 필요 이상으로 누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만큼 고통당하게 됩니다.(326면)



4. 사랑 아닌 것이 없다  이현주 목사는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성가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은 그의 동화이다. 이 책은 이레에서 2001년에 출간된 <물物과 나눈 이야기>의 개정판이다. 이레에서 붙인 제목처럼, 돌, 쓰레기통, 나무 젖가락, 안경, 잠자리, 손거울, 단소, 빈 의자, 송곳, 도기 등의 사물과 나눈 우화집이다(사물을 의인화하여 대화한다고 어설픈 신학적 잣대를 들이댈까봐 겁난다). 

  화자인 사람은 어떤 사물을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재단하고 정의하여 개념화한다. 개념화된 사물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유하고 멋대로 다룬다. 그러나 사물들은, 도리어 인간을 부끄럽게 하여 세상 사는 지혜를 가르친다. 세상 사는 이치에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역할을 한다. 생물학적 정의로 생명을 가져다 붙이지 말라. 생명은 그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호흡할 것이다. 생명은 무릇 그런 것이다. 이 책은 이현주의 동화나 우화가 늘 그러하듯,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읊는다.  


"고맙구먼. 먼저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 주시니... 산다는 게 무엇인가? 나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사람 발에 밟혀도 보고, 자네는 밤길에 돌을 밟아 넘어져도 보고... 그러는 게 사는 것 아니겠나? 자네가 넘어져 상처를 입는 것도 그게 다 자네가 살아있어서 겪는 일일게. 그러니, 그래도 굳이 '너 때문에 사는 맛 한번 봤다. 고마워.' 눈 한번 뜨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상이 거기 있다네."(15면, '너 때문에'/돌)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을 모아서 주의 깊게 보아라. 그렇게 주의 깊게 볼 때 너는 네가 보는 사물과 함께 깨어나게 된다. 그런 일을 되풀이해라. 습관이 되도록 반복해라."(20면,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다'/쓰레기통)


"그래도 나는 '갈 데까지' 갑니다. 그러니 슬플 이유가 없어요."

"어디가 너의 '갈 데까지'냐?"

"당신도 나와 함께 그리로 가고 있으니, 나한테 묻지 마셔요." 

(38면, '끝은 본디 없는 것이다'/아기 도토리) 


"타고난 목소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참말은 골목 밖에서 들리지 않고, 고운 노래는 언덕을 넘지 않는 법. 제발 너도 나를 믿지 마라."(58면, '고운 노래는 언덕을 넘지 않는 법'/마이크)


"자네 몸에서 나는 냄새가 무슨 냄새든 어차피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는 것이 자네의 숙명일진대, 역겹고 썩은 내가 아니라 향긋한 향내이기를 바라겠네."(119면,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떨어진 꽃)


"자네는 꼭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딱한 종자(種子)로구먼!"(150면, 돌아가는 몸짓/감꽃)


"이현주는 우리의 그런 고민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 눈을 맑게 씻어준다. 평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고민했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도 모두가 성스러운 목숨들이다. 정말 눈물겨운 생각들이 구슬처럼 꿰어져 있다."(214면, 권정생의 글)






5. 모든 것이 은혜다  "부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침없는 열정적 사랑(체스터턴이 말한 대로 'the furious love of God')이다. 복음에 담겨진 하나님의 은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눈부신 은혜. 그 은혜 앞에 그저 자격 없는 부랑자처럼 우리의 존재를 조아릴 뿐이다. 하여 브레넌 매닝은 그 은혜를 ‘부랑아 복음’이라고 불렀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매몰된 사람이다. 프란체스코회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스페인으로 건너가 사역하던 그는, 어느 한겨울 밤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중략) 물론 브레넌은 그다음에도 숱하게 무너졌고 넘어졌다. 사제로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는 듯 보였지만, 어느샌가 그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사역을 중단하고 건강을 잃었다. 사제직을 내려놓고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바 하나님은 그를 붙잡았고, 그는 늘 그 십자가를 기억했다. 돌아갈 집이 그에겐 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직면한 우리 존재의 가난함은, 이제 더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그분의 ‘맹렬하고도 미칠 듯한 사랑’의 대상인 까닭이다. '그분은 까닭없는 사랑이시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레넌 매닝의 마지막 저작이자 회고록인 <모든 것이 은혜다>를 권하고 싶다. 그의 인생, 그 자체가 은혜의 역설이며, 부활의 증거이다."("큐티진" 3월호에 쓴 서평 중에서)


이 책은 또한 이리들 틈에서 산 마음이 여린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27면)


내가 그 ‘더’를 찾았다기보다 그 ‘더’가 나를 찾았다. 기독교는 어떤 도덕 규칙이 아니라 연애였고, 나는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100면)


브레넌 형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It's Okay not to be Okay", 116면)


내가 은혜의 세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실패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187면)


환상을 잃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환상에 의지해서 살기 때문이라고 나는 수도 없이 말했다. 암이 우리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자신이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 전까지는 복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거짓을 다 벗겨 내신다. 왜냐하면 벌거벗은 채 진리 속에서 사는 것이 옷을 입고 환상 속에서 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벗김’의 시간이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누더기밖에 없다. 부랑아 복음을 전한 사람에게 제법 어울리는 모양새라고 하겠다. 전에는 내가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부랑아다. 부랑아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자비 그 자체다. 혹은 현재 내 인생의 언어로 말한다면, 도움이다.(218-219면)


"하나님은 당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마땅이 되어야 하는 당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되어야 하는 모습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2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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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1+2집 17종세트 (17disc)
스크린에듀케이션(DVD)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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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결코 빨리 오지 않는다

빨간머리 앤의 희망이 되어준 사람들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상상력뿐인 한 소녀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 전부터 이미 고아였던 아이, 부모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타고난 아이,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알아버린 아이…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스쳐 지나는 보잘것없는 사물과 풍경 하나하나에 이름을 부여하고 상상을 덧붙여 온갖 희망을 재잘거린다. 그 재잘거림에 어떤 사람들은 좀 모자란 아이로 여기기도 하고, 또 어떤 어른은 고아라서 그런다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고아인 그 아이는, 못생기고 주근깨투성인 데다가 머리마저 사나워 보이는 빨간색이었다. 빨간머리 앤의 이야기다. 


한적한 시골 마을 에이번리에 살던 독신 남매 매튜와 마릴라는 노동일을 도울 남자아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착오로 앤 셜리라는 여자아이가 오고, 마릴라는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다. 앤이 살게 된 초록지붕 집은, 그 아이에게 찾아온 첫 번째 기적이었을 것이다. 앤은 사과나무 가로수 길에게 기쁨의 하얀 길이라는 이름을, 밸리 아저씨의 집 앞 호수를 지나치며 반짝이는 호수라는 이름을, 창 밖으로 하얀 꽃잎으로 흩날리는 벚꽃 나무에겐 눈의 여왕이란 이름을, 창가를 지키는 화분에겐 포니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이름을 갖게 된 풍경들은 의미가 부여된 어떤 존재들로 회복된다.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지난한 일상의 찰나가 기쁨의 일상으로 변주된다. 앤의 상상력은 버려진 자신의 존재를 추스리는 힘겨운 희망이었고, 가까스로 주어진 첫 번째 기적을 살아내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영화 "빨간머리 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앤의 희망이 되어준 사람들


사실 앤의 희망은 힘겹고 실낱 같은 것이었다. 홀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앤에게는 마릴라 아주머니가 있었다. 앤과는 달리 섣부른 희망은 입에 담지 않는다. 그녀에게도 사랑하던 연인이 있었다. 그녀의 첫사랑은 훗날 앤의 라이벌이자 연인이 되는 길버트의 아버지였다. 첫사랑을 잃은 마릴라는, 평생 홀로 살아간다. 고요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기에게 주어진 숙명을 바르게 곧게 살아간다. 정직과 원칙에 집착하는 그녀의 태도는 아마도 그 숙명에 대한 성실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애초 남자아이를 원했으나 여자아이가 집에 왔을 때, 그 착오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 여자아이가 인정사정 없이 매몰찬 가정으로 끌려가는 것도 끝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앤은 그녀의 아이가 된다. 


열한 번째 에피소드 사라진 브로치 편은 앤과 마릴라의 관계에 하나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다룬다. 아무도 없는 마릴라의 방에 브로치가 놓여있다. 우연히 앤은 그 브로치를 발견하고 언제나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잠시 뒤, 마릴라는 브로치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앤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마침 다음날은 교회 소풍이 있는 날이었고 앤은 평생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브로치를 만졌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앤은, 더욱이 신뢰하기 힘든 고아였던 아이였기에, 마릴라의 의심과 벌은 합당해 보였다. 자신이 누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앤도 속이 타지만, 거짓말하는 앤을 바라보는 마릴라의 속도 탄다. 앤은 거짓 자백을 준비하고, 마릴라는 집안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자신의 원칙을 지켜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없어진 듯 여겼던 브로치가 우연히 발견되고, 앤은 누명을 벗고 가까스로 소풍에 간다. 마릴라는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그리고 앤의 거짓 자백을 회상하며, 앤에 대한 편견을 거두기 시작한다. 


저런 아인 여태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오라버니 말대로 확실히 재미있는 아이이기는 하군요. 나까지 저 아이가 다음엔 무슨 말을 꺼낼 건가 하고 기다려지거든. 나한테도 마법을 걸 작정인 게지.


마릴라 아주머니는 엄하고 보수적이었지만,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정직과 성실함, 그리고 삶의 원칙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혼란스러웠을 어린 앤에게, 변치 않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앤이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앤은 어느덧 성장하여 어른스러운 눈빛을 가진 예의 바른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면 마릴라는 되려 쓸쓸한 마음을 읊조린다. 


마릴라는 문득 앤이 훌쩍 커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지 못한 사이에 앤은 숙녀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앤에 대한 대견함은 표현하기 힘든 그리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작고 깡마른 몸에 커다란 눈을 하고 머릿속에 뭉게구름처럼 떠도는 모든 상상을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아이가 어느 사이엔가 다소곳한 숙녀의 모습을 하고 자신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품속에서 언제나 그렇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조금은 생소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앤의 달라진 모습은 마릴라에게 가슴 한 곳이 허전해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침묵 속에서 깊어지고 밤의 정적 속에서 목메는 슬픔으로 바뀌어 버린다.


앤도 어느새 숙녀가 되었지만, 마릴라도 어느새 앤의 어머니가 되어있었다. 마릴라는 앤이 더 이상 자신의 보호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펐지만, 이제는 앤이 그녀의 필요가 되어줄 차례였다. 매튜가 죽고 마릴라가 시력을 점차 잃어가던 즈음, 마침 앤은 꿈에 그리던 에이브리 장학금을 받고 더 큰 세상으로 초대받는다. 하지만 앤은 장학금을 포기하고 마릴라 곁에, 초록지붕 집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앤은 마릴라의 기적이 된다. 마릴라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화 "빨간머리 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영화 "빨간머리 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앤의 희망이 되어준 사람들은 또 있다. 매튜 삼촌이 그러하다. 언제 다시 고아원으로 쫓겨날지 모르는 낯선 집에서, 언제나 앤의 편이 되어주었다. 마릴라가 엄격한 훈육으로 앤을 가르쳤다면, 매튜는 늘 용서하는 엄마의 사랑으로 앤을 품었다. 앤이 가장 많이 한 대사 중 하나, 제 기분을 알아주시는 군요.는 늘 매튜에게 하던 말이었다. 어린 소녀 앤이 가장 간절히 받고 싶어하던 소매 부푼 옷을 사온 것도 결국 매튜였다. 


평생의 벗이 되어준 다이아나. 처음 교회에 간 앤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 초라한 옷차림, 붉고 노란 꽃으로 장식한 모자, 그리고 고아란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교회나 주일학교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리는 앤에게, 다이아나는 상상 이상의 친구였다. 무엇보다 다이아나는 소매가 부푼 옷 따위로, 고아라는 이유로 편견을 갖지 않고 앤을 대했다. 무엇보다 다이아나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다이아나가 빌려주는 책들로 인해, 앤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물론 둘은 성장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잠시 헤어지기도 하지만, 어렸을 적 앤의 곁에 다이아나가 없었다면 앤의 낭만과 상상력은 금새 좌초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길버트 블라이스. 짓궂은 장난꾸러기 길버트는 한때 앤의 앙숙이었다. 열네 번째 에피소드 교실소동에서, 길버트는 앤의 빨간머리를 잡아 당기고 홍당무라고 놀려, 앤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건드린다. 그리고 이후 둘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두고 다투는 라이벌로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앤이 에이브리 장학금을 포기하고 초록지붕 집에 남기로 결정했을 때, 길버트는 에이본리 소학교의 교사 자리를 앤에게 양보하고 둘은 점차 연인이 되어 간다. 



ⓒ영화 "빨간머리 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영화 "빨간머리 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신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안하도다


빨간머리 앤은 고아였던 한 아이가 자신에게 숙명처럼 주어졌던 절망들을 이겨내고 한 성숙하고 지혜로운 여자로 자라가는 성장 드라마이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상상력 많은 앤은 그저 철없고 못생긴 수다스런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희망에 대한 앤의 상상력이, 앤이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숙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녀의 곁에는 늘 변함없는 원칙과 정직, 성실함으로 보살피는 마릴라와 매튜가 있었고, 편견없는 우정으로 자신을 대하는 다이아나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기꺼이 내려놓는 길버트가 있었다. 그들 때문에, 앤의 트라우마는 치유되고, 앤의 희망은 기적처럼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 곁에 희망이 필요한 숱한 사람들이 있다. 고아 앤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 있다. 대물림 되는 가난이란 숙명에 맞서 저항하거나 바둥대는 사람들이 있다. 뜨거워야 할 스무 살 언저리의 청춘이지만, 세상에서 그저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이미 늙어버린 청춘들도 있다. 그리고 쌍용차, 한진, 용산, 재능교육, 콜트콜텍, 대추리, 강정마을 등에서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가련한 백성들이 있다. 희망이 필요하나 희망이 아득한 아픈 사람들이 있다. 


2011년, 2012년 한국의 출판계를 압도한 단 하나의 키워드가 힐링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정권이 내세우는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경기 불황은 지속되고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양극화도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이 땅의 불의는 더욱 그 위력을 과감히 드러낼 것이다. 숱하게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는 결코 힐링의 구원자가 되지 못한다. 값싼 힐링이 지나간 자리엔 더욱 허망한 허무만이 세상을 탓할 뿐이다. 


힐링은 결코 빨리 오지 않는다. 오랜 세월, 우리를 둘러싼 온갖 절망스런 조건과 환경들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상상력 속에서 그 희망은 비로소 싹틀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곁에서 편견 없는 사랑과 우정으로, 우리의 한줌 희망을 위로해주고 북돋는 사람들로 인해 그 희망은 기적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벗이 되자. 숱한 빨간머리 앤의 허물없는 길벗이 되자. 물론 낙관할 수 없다. 결코 앤의 희망은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빨간머리 앤을 다시, 같이 읽고 같이 보자고 권하고 싶다. 혹시 아는가? 앤딩 장면에서 앤이 인용한 브라우닝의 시처럼, 우리도 신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안하도다.라는 고백을 갖게 될지.  



ⓒ영화 "빨간머리 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ps.

어렸을 적, 텔레비전 만화와 동화책으로 빨간머리 앤을 보며 감동하던 추억을 기억하며, 일곱 살 딸 아이에게 빨간머리 앤을 보여주었다. 딸 아이는 만화를 보며 자주 앤의 처지가 되어 마음을 조아리고, 난 되려 마릴라 아주머니의 처지가 되어 마음 조아리게 된다. 마침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개봉했다니 가까운 시일 내에 딸과 함께 극장에서도 빨간머리 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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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노회찬 외 지음 / 꾸리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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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4일, 대법원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침탈당한 노회찬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쓴 『진보의 재탄생_노회찬과의 대화(노회찬, 홍세화, 김어준, 진중권 외 지음꾸리에2010)의 서평입니다.




부디, 노회찬을 부탁해
여전히 아픈 가슴과 뜨거운 열정으로 진보의 봄을 기다리며




2013년 2월 14일, 노회찬의 좌절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 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 권력의 비리에 맞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2013년 2월 14일, 노회찬은 대법원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가 확정되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2005년 8월, 삼성그룹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검사 7인의 이름이 담긴 소위 '삼성 X파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대법원의 유죄 선고 논리는, 'X파일'에 실린 검사들의 이름을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면책 특권에 해당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알게하는 불법이란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말도 안되는 모순을 지닌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하여 판결했다. 
  새누리당을 포함한 국회의원 159명이 노회찬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대법원은 이를 간단히 무시했다. 노회찬이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 이날은 마침, 떡값 검사 7인 중 한 명이 새 정부의 법무부장관으로 지명 받은 날이고, 오래전 안중근 의사가 처형 당한 날이기도 하다. 





숨죽여 분노하며, 다시 그의 책을 꺼내 읽다

거대 정의 담론을 말하면서도 사소한 이기심과 집착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기독교인으로 그 잘난 허영심을 붙들고 사는, 한줌 소낙비에 흩어질 나 같은 깜냥들은 그저 숨죽여 분노할 뿐이다. 이날도 그랬다. 늦은밤, 2010년 2월에 발간된 그의 책 <진보의 재탄생_노회찬과의 대화>을 꺼냈다. 이 책 어딘가에서 인용한 그의 말이, 책의 면지에 적혀있었다.   

"여전히 아픈 가슴과 뜨거운 열정으로 꿈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진보의 봄을 기다리고 있는 까닭에"

이 책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펴낸 노회찬과 진보 논객들 간의 대화록이다. 당시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나왔고, 노회찬은 2008년 노원구에서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의 홍정욱에서 석패했다. 물론 그의 진보신당도 참패했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정한다. 이 책은 서울시장 선거 출마의 변, 노회찬이 진보의 꿈, 진보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보통 선거철을 앞두고 펴내는 여타 정치인들의 책과는 결이 달랐다. 홍세화, 김어준, 진중권, 홍기빈, 변영주, 김정진, 한윤형 등이 그와 진보 담론과 현실 정치를 화두로 치열히 논쟁했다. 때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반대편의 적보다, 날카롭고 까다로운 우리편 논객이 함께하기 더 어려운 법이다. 진보 진영은 대체로 그러하고, 노회찬과 대화한 상대들이 더욱 그러했다.  
  소설가 조세희의 말처럼, "그는 단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본 말과는 '다른 말'을 하는 정치인"이었다. 노회찬의 부모는, 아들이 그저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아름다운 감성을 가지길 바랐다. 단칸방 하나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살던 가난에도, 그의 부모는 중학교에 입학했던 아들에게 첼로를 사주었다.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종종 깊고 풍부한 언어적 감수성으로 발휘된다. 김어준은 그런 노회찬을 "진보적 결의와 인문학적 소양의 그 절묘한 동거"(120면)라고 추켜세운다. '예술가란 세상에서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방법으로 실패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사무엘 베케트의 아포리즘처럼, 그는 예술가였고 또한 늘 실패하는 사람이었다. 





진보의 꿈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노회찬은 '10월 유신' 세대로 자랐다. 고등학교 때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사회과학 공부모임을 조직했던 그는, 로맨티스트였으나 연애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채 청춘을 보냈다. 1983년 고려대학교 졸업식 날, 그는 노동자가 되어 살기로 결심한다. 용접기능사 2급 자격을 딴 그는 노동운동에 투신하다 1989년 공안당국에 의해 구속되어 1992년 만기 출소한다. 그렇게 '정치인 노회찬'의 삶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된다. 불가능해 보였던 진보 진영의 꿈이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나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살아생전에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6면)

그러나 노회찬은 늘 꿈꾸는 사람이었지만, 꿈의 낭만은 믿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4년만에 20%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불과 3년 뒤에 벌어진 대선에서 3% 지지율로 추락했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되고 만다. 꿈의 낭만은 산산조각 났지만 노회찬의 꿈은 더욱 강고해졌다. 

"이제까지 적지 않은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8면)

김어준과의 대화가 가장 재밌고 노회찬의 인간다운 면모를 잘 보여준다면, 진중권과의 대화는 정치인 노회찬의 꿈 "진보의 봄"을 보다 명확히 제시한다. 그가 꿈꾸는 진보는, 대학 서열과 학력 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한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대담자 중 가장 어린 20대 한윤영과의 대화와 가장 나이 많은 홍세화와의 대화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한윤영과의 대화 속에서 도리어 노회찬의 젊음이 돋보였고, 홍세화의 대화 속에 도리어 노회찬의 진중함이 돋보였다. 특히 홍세화와의 대화 속에 깃든 성찰의 무게는 매우 아프고 속상한 것이었다. 

"진보정치의 목적이 소수의 자기만족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진보하는 진보의식이 없이는 '지금, 여기서'의 삶은 조금치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진보의식의 진지전은 어떻게 확장해 가야 할 것인가. 우리들의 고민은 여기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429면)


진보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닫는 글은, 노회찬보다 열두 살 어리지만 그를 '친구'라 부르는 우석훈이 썼다. 우석훈은 노회찬을 위한 이 책에서, 2012년 대선 전망에 있어 뜬금없이 '박원순의 시민대연정' 카드를 내비친다(만약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의 전망이 성사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덧붙이길, '대통령 노회찬'의 가능성은 0%에 가까울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안하지만, 책을 읽은 나도 당시 한명숙을 찍었다. 이 책을 통해 노회찬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도무지 그의 승리에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대로, 노회찬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졌고, 심지어 한명숙도 오세훈에게 0.6%의 차이로 석패한다. 마치 한명숙이 노회찬 때문에 떨어진 것처럼, 노회찬은 여론의 숱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 책의 주요 정치적 전망도 대부분 좌절되었다. 진보신당은 다시 분열되었고, 노회찬은 스스로의 말을 거스르고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과 손을 잡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었다. 허나 통합진보당도 기껏 선거 한번 치르고 또다시 분열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노회찬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0개월만에 국회의원직마저 박탈당한다. 그의 실패는 처절히 반복된다. 

실패한 노회찬의 책을 다시 읽는다. 이 책은 '삼성 X파일 사건'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에 쓰여진 것이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노회찬은 무죄를 자신했다. 정치적 전망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안위에 대한 전망도 무참히 좌절된 것이다. 진보의 봄을 기다리는 한겨울은 끝은 보이지 않고 더욱 매섭다. 노회찬을 비롯한 진보의 길을 걷는 이들이, '차마 자신에게 묻기 두려운 질문을 자신과 똑같은 상대에게 물으며'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노회찬은 이 책에서 그들과의 만남이 있으므로, '우리들의 겨울이 더없이 따뜻했다'고 적었다. 




그의 겨울이 따뜻하기를

2013년 2월, 노회찬의 좌절이 슬프고 분하다. 허나 웃으며 떠나는 그를 보며, 그의 겨울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다짐이기도 하다. 함께하기 때문에, 우리의 겨울은 따뜻할 것이라고. 언젠가 '정치인 노회찬'은 거뜬히 재기하는 날, 진보의 봄은 우리 곁에 성큼 와 있을 것이라고,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여, 그때까지 노회찬을 고이 간직하여 지켜내자고 벗들에게 청한다. 부디, 노회찬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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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 그리스도인이 살아내야 할 소유의 신학
크레이그 블롬버그 지음, 박규태 옮김 / IVP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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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명의 여지없이 충분히 부유하므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크레이그 블롬버그 지음|박규태 옮김|IVP|2012)



영국 IVP의 NSBT(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시리즈 중 첫 번째로 한국에 선보이는 책이다. 이 시리즈는 성경신학의 토대 위에서 철저한 학문적 탐구를 통해 성경의 다양한 관심을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로 풀어낸 수작들로 채워져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해에 출간된, 같은 주제의, 한국인 저자의 책이 있다. 두 책 모두 재물 소유의 문제를 성경을 통해 철저히 고찰하며 어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크레이그 블룸버그의 책을 읽으며, 돌연 그 책의 아쉬움이 도드라졌다. 철저한 성경신학적 주해란 부분이 그렇고, 처음 의욕과는 달리 오래된 청교도적 결론에 머무른 그 책에 비해, 이 책은 로널드 사이더의 급진적 대안과 상당부분 조우하는, 보다 진일보한 대안들이 매력적이다. 그 한국인 저자에겐 미안하지만(한국인 독자로서도 아쉽다!), D. A. 카슨의 추천 대로 “이 책은 부와 가난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


1장과 2장은 “재물 소유의 신학과 가장 관련성이 큰 구약 성경의 배경”을 다루며, 3장은 신구약 중간기, 4-7장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소유의 가르침을 추적한다. 당신이 목회자, 혹은 신학도라면 저자와 함께 1장부터 7장까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소유의 신학을 정립할 것을 권한다. 모름지기 주해란 이런 것이다! 명료한 문장 속에 깊이 스민 각주와 40여 쪽에 이르는 참고 문헌도 꼼꼼히 검토하라. 성경 전체를, 이렇게 쉽고 명료하게 훑을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8장의 결론 부분도 매우 유익하다. 성경 전체를 주해했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결론과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구체적인 연보의 실천을 강조한다. 우리는 변명의 여지없이 충분히 부유하므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라고 기도했던 잠언 저자처럼, 더 많이 베풀기를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편 저자의 결론은 아쉽기도 하다. 어찌하여 그의 적용점은 “개인과 교회의 행동 수준”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신약 성경에는 사회의 구조적 악을 치료하기 위해 그 구조를 바꾸어 버리라는 과격한 권면은 거의 나오지 않기”(366면) 때문이란다. 저자는 소유의 신학을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순서대로 진화하고 있다는 전제를 가졌다(35면).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 담긴 ‘과격한 권면’은 시가서와 지혜서를 통해 “심판의 날 그리고 내세의 날”이 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358면), 기어코 현실에서는 채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실현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구조적 불의’와의 싸움은 마땅히 우리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아니겠는가? 


좋은 번역과 풍부하고 친절한 각주와 참고 문헌, 색인, 그리고 사려 깊은 한국어판 서문 등 잘 만든 책이다. 다만 책의 메시지에 비해 너무 암울한 표지(그 언젠가 출몰했다가 사라진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가 연상된다)와 (물론 NSBT 시리즈 모두를 번역 출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카슨의 시리즈 서문이 생략된 것은 아쉽다. 모쪼록 이 책이 번영신학에 물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헛된 야욕을 회심케 하고, 가난한 이들의 절박한 필요에 구체적으로 응답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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