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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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모나 학력 등 각종 스펙에서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기적 유전자'의 소유자라 부른다. '이기적 유전자'란 용어는 1976년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이론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것처럼 특정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은 '이기적 유전자'를 담기 위한 하나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그전까지 진화생물학은 그 논리적 기초를 다윈의 자연선택론에 둔다고는 했으나 많은 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의 단위와 대상에 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생물은 모두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이나 종의 보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도록 진화했다고 믿었다.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끌어내려 진화를 설명했다. 오늘날의 정규 수업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하루 아침에 생물 개체 수준에서 유전자로 보는 관점으로 생명체를 관찰하기란 쉽지 않은 일─실제로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본질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거나 염세관에 빠졌다고 한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토머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을 빌려서 이해하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그것들을 구성하는 자연 지식의 내용이나 과학적 사실들은 유사할지 모르나 패러다임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과학적 개념이나 범주, 자연관 등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사본을 만드는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고대의 자기 복제자(replicator)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복제자는 오래 전에 자유로이 뽐내고 돌아다니는 것을 포기하였다. 이제 복제자들은 거대한 군체 속에 떼지어서 로봇 안에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하였으며 그들을 보전하는 것만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다.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자기의 생존 확률을 증가시켜온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 단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 유전자가 들어앉아 원격 조정으로 교묘하게 다루고 있는 생명체가 이기적인 특성을 띠는 건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생명체를 오로지 이기적인 특성으로만 판단하기에는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그 부분에 대해서 도킨스 박사는 ESS(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ESS)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동물들의 행동을 분석하여 생명체의 이기성을 논리적으로 관철시켰다. 하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의 '이타성'에 주목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생존기계인 모든 생명체에 대한 이타성은 유전자 단위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라는 유명한 게임 이론이나 사회성 곤충의 습성을 이용하여 그 논의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부분은 꽤 흥미로웠다. 

 인간의 특이성으로 '문화'를 언급하면서 그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진화되는 것으로 유전자 이외에 '밈(meme)' 을 내세웠다. 모방을 통하여 뇌와 뇌 사이를 전달될 수 있는 실체로 정의되는 것이 바로 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그의 '이기적 유전자'이론으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 특유의 성질에 대한 끊없는 의문점이 밈 이론으로 하여금 어느 정도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밈'이 인간이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 주장하는 저자 스스로의 유일한 희망인지,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인간의 유일한 특성을 나타내는 단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살펴본다면 정말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란 한낱 유전자의 보존을 위해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모든 생명체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은 이미 유전자에 의해 설계된 프로그램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논리를 하나하나 잘 좇으며 이해한 사람이라면 마냥 비관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우리에겐 유전자의 이기적인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뇌가 존재한다. 실례로 인간은 그의 말대로 '피임'을 활용하여 유전자의 번영을 제어하고 있지 않은가.  

 자연과학 전공자나 이과 학생들이라면 수식과 도표가 거의 배제된 채 모든 설명을 일상적인 언어로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어 좀 지루한 감─실제로 한참 읽다보면 심리학이나 자기계발 서적을 읽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종종 들었다.─이 없진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 서적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다만, 정치, 윤리,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어딘가 모르게 다소 불편할 것이다. 그건 이 책의 의도를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얽히고설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만, 순수 과학의 현상에 대한 이해만큼은 여타 학문의 관점을 배제한 눈으로 살펴봐야지만 그 순수한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과학 이론이 종교 재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인간 중심의 사고가 과학적 진보의 발목을 붙잡은 적이 어디 한두 번 뿐이었으랴. 그러니 도킨스 박사가 들려주는 생물학과 진화론을 열린 자세로 듣고자 하는 자세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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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미학 - 통계는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이다
최제호 지음 / 동아시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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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말자, 화장발! 다시보자, 추론발!

 몇 년 전, 출구조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출구조사란 대한민국의 모든 유권자(모집단)들 중에 여론조사 기관이 대표성이 있다고 본 투표권자들(표본)에게 어느 후보를 선택했는지 조사하는 일이다. 조사원으로서의 임무(?)에 대해 두어 시간의 교육을 받고 다음날 표본으로 지정된 어느 중학교로 이동했다. 정확히 내가 맡은 일은 투표권자들에게 설문조사─익명성은 완벽하게 보장되며 조사응답에 대한 작은 답례품도 드렸다.─를 한 뒤 그 데이터를 집계하여 조사 기관으로 전송하는 것이다. 놀라웠던 건, 알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니 개표 상황이 내가 집계한 데이터와 거의 오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후보 순위는 물론이거니와 투표율 또한 거의 2~3%의 오차만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다음부터 여론조사 기관을 꽤 신뢰하게 되었고 선거철 개표 결과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내게 통계는 여전히 어려운 학문이었다. 완벽한 공리 위에서 철학적 사색을 향유하며 논리적 증명을 펼치는 '수학적 사고'와 우연에 의해서 지배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값으로 나타낸 것을 분석하는 '확률적 사고'의 대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전공이 '수학'임에도 불구하고, 전공선택의 통계 관련 강의들에게는 눈길조차 안 주었으랴.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통계학과 친구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통계학과'가 따로 생길 만큼 '통계'와 '수학'은 조금 상이한 학문일 것이라는 비겁한 속임수로 애써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다 우연히 최제호씨가 쓴 『통계의 미학』이란 책을 발견했다. 제목보다 부제로 보이는 '통계는 세상을 움직이는 과학이다'라는 문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 통계는 수학보다 과학 쪽에 더 근접한 학문인 거야! 미소가 지어졌다. 내 비겁한 속임수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일단 관심이 가는 책이었으나 그동안의 '통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에 무턱대고 구매하기가 두려워서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책 날개를 펼치자 눈에 들어온 저자 최제호씨의 경력은 화려했다. 그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삼성, POSCO, KT등의 대기업에서 통계에 대한 교육과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통계학 박사였다. 그동안의 통계 교육 경험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통계적 사고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는 어렵고 복잡한 수식보다 다양한 사례들을 위주로 통계의 원리와 용어를 설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내게는 평이한 감이 없진 않았다. 통계의 <기본서>라기 보다는 <입문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자신의 경험담까지 내세우며 '산포'의 중요성에 대해 1/4의 지면을 할애한 저자는, 정작 자신이 '일반인들의 통계적 사고 능력의 산포'를 고려하지 않은 사실을 잊은 것 같다. 덕분에 중,고등학교의 확률과 통계를 익힌 수준의 독자라면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통계 관련 책들은 확률 분포에 대한 소개가 먼저 나오기 마련인데 이 책은 통계의 기본 바탕이 되는 데이터의 선정과 해석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있다. 중요도와 난이도 활용면을 고려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인용된 사례의 대부분은 저자가 책을 쓸 당시인 2007년도에는 최신 자료들이었겠지만 지금은 좀 빛이 바래서 그 당시를 회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법률, 생명공학, 스포츠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친 사례들은 저자의 박학한 지식에 놀람과 동시에 통계가 이렇게 우리 일상생활에서 다방면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느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1, 2부는 확률의 기저가 되는 데이터 수집의 중요성과 데이터들이 갖는 다양성의 이해에 대해 다룬다. 어차피 두 챕터(Chapter) 모두 데이터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유기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딱히 구분을 지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모집단에서 전체를 대표하는 표본 선정의 중요성과 표본 대상이 가지는 다양성의 이해에 대해 논리적인 분석 위에서 그 주장의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1부에서 나오는 선거에 이용되는 국내·외 여론조사의 사례들을 통해 잠시나마 통계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출구조사 아르바이트가 떠올라 잠시 묘한 감상에 젖었다. 저자의 염려와 달리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 부분까지 다 읽은 독자라면, 2부 마지막에 나오는 '통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 계산에 대한 무지 또는 오용이 거지말 통계를 만들어 낸다.'는 저자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3부는 앞에서 선정하고 요약한 데이터를 가지고 적절히 구분하고 비교한 결과를 가지고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추론하는 방법을 다룬다. 결과를 설명하는 원인에 해당하는 '변수'와 이를 계량화한 '결정계수'의 정의와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객관성'과 '사실성'에 근거한 통계와 데이터라 할지라도 그것을 분석하는 주체의 이해관계나 통계적 사고의 결여가 개입되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방송이나 신문사가 통계적 사고에 어두운 시민들을 상대로 내놓은 유의성이 결여된 결과에 대한 보도들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나비현상을 연상케 하는 끔찍한 공포였다. 이제는 외쳐야 한다. 속지말자, 화장발! 다시보자, 추론발! 

4부는 정보와 인과관계에 대한 가설 조합으로 상황 판단하는 법에 대한 가설 조합으로 상황 판단하는 법을 다룬다. 지금까지 다뤄왔던 개념들을 총망라하여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확률을 활용하는 예들을 보여줌으로써 가장 실용적인 통계의 모습을 소개한다. 몬티 홀 TV쇼의 확률 문제나 러시안 룰렛 게임, 야구 감독의 통계적 사고 같은 사례들은 통계적 사고력의 필요성을 정점으로 치닫게 한다. 개인적으론 마지막 4부를 읽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어느새 통계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보면 마지막 장과 마주했을 때 통계 강의가 끝난 아쉬움에 한동안 나처럼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통계'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데이터 자료─그가 그토록 중요시했던 ─의 오류와 오탈자도 비교적 많이 눈에 띈다. 작가의 논지에 대한 신뢰성까지 의심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는 점에서 참 아쉬운 일이다. 만점 주고 싶었지만 평점의 별을 하나 뺀 건 그 이유다. 내가 읽은 책은 2007년에 인쇄된 초판 2쇄본이라 지금은 전부 수정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정보의 시대에 자료 선정 방법과 활용 능력이 부족하면 남이 내놓은 유의성이 결여된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섭취하기 쉽상이다. 그렇게 되면 통계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될 피·지배 관계는 어찌보면 자명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통계적 사고'가 시급한 때다. 이 책은 통계는 무조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기피하던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의 선입견을 없애고 '통계적 사고'의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책이 안내하는 통계의 길을 따라가며 당신도 나도 부디 눈 뜬 숫자맹인이 되지 않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오류들! 


오류1.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Q3값은 각각 14,000만원과 6,750만원으로 엄연히 다르다. 책 중간 부분의 부연 설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왼쪽의 Q3 자체 값이 오른쪽에 비해 더 크다(상자의 윗선).'라고 명백히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상자그림(Box-plot)에서는 '삼성 라이온즈'나 '두산 베어즈'가 모두 같은 Q3값을 같고 있다. <상자그림2>의 '두산 베어즈'의 Q3값 즉, 상자의 윗선을 6,750만원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116p)


 


오류2.   각 학과별 합격률이 C. D, E 학과의 경우에는 남자가 더 우세하다고 하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D학과의 경우에는 여자의 합격률이 더 우세하다. 따라서 D학과의 남자-합격률을 여자-합격률보다 우세하게 수정하든가 D학과를 여자가 합격률이 높다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파란색 박스의 남자-지원자, 여자-지원자, 남자-합격자, 여자-합격자의 총합 계산이 전부 틀렸다. 총합의 값이 위에서부터 2691, 1835, 1400, 772로 수정되어야 한다. (144p)


 


오류3.  왼쪽 페이지에 치료약의 환자 치료율을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 '7명 이상이 될 확률을 계산해보면 1-(6명 이하로 치료될 확률)=1-0.8281=17.19%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 방법대로 계산을 해보면, 

이 약을 사용하여 10명 중 8명 이상이 치료될 확률은 1-(7명 이하로 치료될 확률)=1-0.9453=6.47%,

 약을 사용하여 10명 중 9명 이상이 치료될 확률은 1-(8명 이하로 치료될 확률)=1-0.9893=1.07%가 된다. 따라서 파란 형광펜이 칠해진 부분 중 0.1%라는 수치는 1.07%로 정정되어야 한다. 같은 오류를 범한 이 뒷장에 나오는 동전 던지기 부분도 다 수정되어야 한다. (284~285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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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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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MMORPG 게임(World of Warcraft, 리니지, 아이온 같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 쉽게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노력한 만큼의 성과물을 매 순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게임 속의 몬스터를 잡는 수에 비례하여 자신이 플레이하는 아바타가 경험치를 획득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현상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에서는 노력한 만큼 성과물이 비례하여 나타나지도 않을 뿐더러 그 결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기도 힘들다. 아마 현실도 게임과 같은 방식의 운영 시스템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지 않을까?     

책을 좋아하는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는 며칠 반복해서 같은 꿈을 꾼다. 양과 함께 놀던 아이가 자신의 손을 잡아끌더니 이집트 피라미드로 데려가는 꿈. 그러던 어느날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홀연히 한 노인이 나타나 가지고 있던 양의 십분의 일을 자신에게 주면 피라미드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쉬운 말로 NPC에게 퀘스트를 받은 것이다.─한다. 그때 행운의 표지인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두 사람 사이로 날아들어왔고, 산티에고는 운명처럼 노인에게 값을 치르고 금으로 된 흉패 한가운데 박혀 있던 흰색과 검은색 보석 '우림과 툼밈'을 받아든다. 그리고는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한 정처없는 여행길에 오른다.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여정은 예상대로 녹록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양을 전부 팔아 여비로 마련한 금화를 도둑 맞아 빈털터리가 되거나 사막에서 군대 주둔지로 끌려가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일들은 그의 마음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현재 상황의 감정을 명확히 정의할 수 있고, 또 스스로 통제가 가능하면 결코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자아의 신화에 대한 불확신한 믿음과 두려움에 대한 속삭임은 산티아고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대지의 정기에서 만물의 언어를 배우며,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음과의 대화방법을 시도한다. 굉장히 철학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나오는데 우리가 꿈을 이룰 때 내면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속삭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좋은 지표가 되어준다.

 그가 사랑하는 사막의 여인 파티마, 그녀는 산티아고가 자아의 실현을 찾는데 더없이 좋은 촉매제 역할을 했다. 자아의 실현을 찾는 걸 포기하고 싶을 때는 동기부여가 되어줬고, 시련이 다가왔을 때는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참고하여 정의를 내려본다면, 사랑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이다. 흔히들 사랑에 빠지면 더 예뻐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두세 번은 더 읽어봐야지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지혜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담긴 철학적인 이야기가 온전히 이해되는 책이었다. 늙은 왕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p.48)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생각이 많아졌다. 산티아고처럼 표지의 언어를 좇아 자아의 신화를 찾아 길을 떠날 것인지, 팝콘 장수나 크리스털 가게 주인처럼 표지의 언어를 무시한 채 마냥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는 이제 나의 몫이다. 아니면 MMORPG 게임에서 자아의 신화를 찾고 있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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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노래
백성민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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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황석영 원작의 『장길산』을 그린 만화한 이후로 역사만화에 매진한 힘 넘치는 붓질과 과감한 연출이 돋보이는 만화가, 백성민.

사실체 극화를 그리다 숨통을 튀우려 별 생각 없이 작품 속에서 자주 그리던 광대나 소, 말, 매 등을 단선으로 그려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중에서 제일 공감을 많이 얻은 9편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책 표지의 재질도 멋스럽지만 제본 방식도 접착식이 아닌 실제본으로 엮어서 고풍스러운 화첩 같다.

흰 종이 위에 붓의 농담을 자유자재로 그려낸 그의 그림은 짧은 글과 넉넉한 여백이 어우러져 흥을 돋운다.

이제 그의 마당놀이를 보려고 둘러앉은 관객들이 추임새를 넣어 줄 시간인 것 같다.

첫번째 마당 - 웃는 개

두번째 마당 - 1920 년대식 사랑이야기

세번째 마당 - 니 몸에 싹 났다

네번째 마당 - 내게도 날개가 있음을

다섯번째 마당 - 짱

여섯번째 마당 - 너와 나

일곱번째 마당 - 미련 곰탱이 할매


여덟번째 마당 - 미켈란젤로


아홉번째 마당 - 희망 조각

그의 붓이 지나간 자리엔 개가 미소를 머금으며, 생명의 기운이 싹트며, 매가 그 큰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며, 호랑이의 기상이 느껴진다.

인생의 열기에 지칠 때 한번쯤 꺼내놓고 여유로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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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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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사랑'을 논한다. 그건 이 소설, 특히 이시가미라는 사람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가미는 천재 수학자이지만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재직 중이다. 뚱뚱한 체형에 크고 둥근 얼굴과 실처럼 가는 눈(여기서 개그맨 박휘순씨가 떠올랐다;)을 가졌다. 독신이며 평소에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정보만으로는 결코 그를 알 수 없다. 이시가미라는 사람을 알려면 먼저 '수학'이란 학문을 파악해야 한다. 수학이란 논리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동시에 그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유일하게 말해주는 학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논리보다 카오스를 꿈꾼다. 이시가미의 주변환경은 수학과는 결코 거리가 좁혀지지 않을 평행방정식 속에 그의 좌표를 멋대로 던져 놓았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시피 머문 부표 같은 자신의 좌표와 마주한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 이시가미는 단순히 야스코의 외적 아름다움에'만' 매료된 것이 아니다.

 이시가미가 삶을 포기한 순간, 그의 옆집으로 이사를 온 야스코와 그녀의 딸이 이웃집에 인사하려고 찾아왔다. 두 모녀의 눈에서 그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자신이 추구하는 순수한 수학의 본질과 두 모녀의 눈이 너무나 닮아있다는 사실을. 수학은 때때로 빈틈없는 논리가 아닌, 동물의 본능적인 감각과도 같은 직관력 속에서 그 진정한 매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직관력은 수많은 수학자들이 악명 높은 정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기꺼이 바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시가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막다른 길에서 '항복'을 외치기 직전, 우연한 기회에 의외의 인물한테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이시가미는 야스코 모녀가 벌인 우발적 살인 속에서 논리적으로 완벽한 수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느 수학자들처럼 망망대해에서 건져올린 자신의 부표를 미련없이 그 속에 던져 넣었다. '용의자 X'라는 미지수로…….

※ 예상치 못한 변수,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

 그가 이런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미지수가 튀어나와 그의 완벽한 수식에 끼어들었다. 바로 그의 옛 친구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 마나부이다. 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나 마냥 즐겁기만 한 유가와와는 달리, 그의 존재가 자신의 수식에 변수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와의 재회가 불편한 이시가미다. 그래서 그는 옛 친구와의 만남으로 설레는 마음을 한켠으로 밀어 놓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수식에 더욱 집중해야만 했다. 이시가미와 유가와는 천재들답게 각자의 논리력으로 사건을 은폐시키거나 규명하려 애를 썼는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분모인 수학의 언어로 사건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가히 감탄할 만 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세상 모든 것을 이론으로 구축하고 싶어하는 야망이 있다. 단지, 이시가미는 수식이라는 블록을 쌓아올려 그 목적을 달성했고, 유가와는 우선 관찰을 하는 데서 출발하고, 그 다음엔 수수께끼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명해 나가려 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림을 보여준다.

※ 이시가미가 마지막 장면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은 이유는 무엇일까?

 수학자는 수학의 증명과정을 즐길 뿐이지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탐하지는 않는다. 수학이라는 학문을 탐하게 되는 순간 그 숭고함에 상처를 입히게 되어 그 본질은 빛을 잃고 말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시가미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그는 수학이나 야스코에 대한 어떠한 욕망도 없었다. 그저 그 대상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 좋고 바라보는 것이 행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마음 속에서 수학을 소유하고자하는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존재는 수학과 어떠한 접점도 존재하지 않는 평행방정식에 놓이게 된다. 그건 곧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체념의 순간, 순수하고 숭고한 학문인 수학과 동일한 본질을 지닌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그녀가 그의 존재 가치와 이유를 유일하게 증명해 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모녀를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의 존재가 또 한번 부정되었다. 그가 유치장에서 야스코를 발견한 순간 짐승처럼 울부짖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시가미에게 야스코는 그가 흠모하는 대상,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수식 하나를 증명해 가는 기분으로 읽었다. 소설의 초반부에 팽팽하게 자리잡은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끌고 나가며, 단순히 추리소설에서만 그치지 않고 '수학'의 본질과 추리소설을 교묘하게 엮어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솜씨에 전율을 느꼈다. 아마도 내 전공 역시 이시가미와 같은 '수학'이기 때문에 그 감동이 배가 되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모리오카(이시가미의 제자)처럼 '수학은 왜 배우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 대신 이 책을 권해줘야겠다. 여기서 서평을 끝맺으려다가 혹시 난독증이 있는 자들이 오해할까봐 덧붙인다. 수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덧셈·뺄셈 같은 실용수학(?) 일명, 돈계산 이외에 수학을 배워야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수학 문제의 증명과 풀이과정 속에서 배운 논리력과 추리력은 의외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학을 배워야 한다. 이시가미처럼 혹시 모를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을 때 완벽하게 은폐하기 위함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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