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때리는 법을 보여 줘야겠나?〉 그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소. 〈지금 장난하나? 장난하는 거냐고.〉
그러더니 대령은 스웨이드 장갑을 낀 힘센 손으로 겁에 질린 병사의 얼굴을 갈겼소. 그 작고 약한 병사가 따따르인의 벌건 등을 제대로 힘껏 내리치지 않았다는 이유였소.

그러고는 미소를 띤 채 〈어떤 일이든 규범을 지켜 해야겠죠〉라고 말하고는 딸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박자를 기다렸다오.
마주르카 연주가 시작되자 대령은 한 발을 민첩하게 구르고 다른 한 발은 내뻗으며 그 크고 육중한 몸을 때로는 조용하면서도 유려하게, 또 때로는 소란스럽고도 격렬하게, 구두창을 부딪치고 발과 발을 부딪치면서 홀 주위를 움직여 나갔소.

특히 날 감동시킨 건 그의 장화였다오. 끈으로 잡아 늘인 장화였는데 좋은 송아지 가죽이었지만 유행에 뒤떨어진 신이었소. 끝이 뾰족하고 낡은 데다가 펑퍼짐하고 굽도 없었소. 부대의 제화공이 만든 신발이 분명했지. 〈사랑하는 딸을 사교계에 보내고 입히기 위해 자기 자신은 유행하는 구두도 사지 않고 집에서 만든 신발을 신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그 펑퍼짐한 장화가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진 거요.

〈새 막대기를 가져와!〉 그가 소리쳤소. 그러면서 돌아보다가 날 발견했다오. 그런데 그는 날 못 알아본 척하더군. 악의에 찬 얼굴을 무섭게 찌푸리더니 재빨리 몸을 돌렸소. 난 마치 내가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다가 발각된 양 창피해져서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눈을 내리깔고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소.

집에 가는 길 내내 내 귓가에는 고적 소리가 맴돌았고 〈형제들, 자비를 베푸시오〉 하는 말이 들렸소. 또 대령이 〈지금 장난하나? 장난하는 거냐고〉라고 소리 지르던 자신만만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도 웅웅거렸소

「사랑? 그날부터 사랑은 사라지기 시작했소. 여느 때처럼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생각에 잠기면 바로 광장에서 보았던 대령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요. 그러면 왠지 불편해지고 불쾌해지니 그녀와의 만남이 점차 뜸해질밖에. 사랑은 그렇게 끝나 버렸소.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방향을 틀기도 하는 거요

자, 여러분은 내가 그때 본 게 추악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전혀 그렇지 않소. 〈그 일을 그처럼 확신에 차서 실행했다면, 그리고 모두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한 바였고,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했다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나 그 이후에도 알아낼 수가 없었소

난 대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를 대령은 알고 있는 거야. 그가 아는 걸 나도 안다면 내가 본 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광경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령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안 되니 군대에서 복무할 수가 없었소. 그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말이오. 그리고 군대만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하지 못했고, 그러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마트에서 울다>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작가의 이야기다. 어머니와 특히 사이가 좋은 작가는 25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는다. 힘든 시기를 겪은 뒤, 어머니가 떠오를 때마다 “h마트”라는 한인 마트에 가서 한국 식재료를 사서 한국 음식으로 고통을 이겨낸다.

만약 내 어머니가 25살 때쯤 돌아가신다면 나는 어땠을까? 문득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가 떠올랐다. 그 친구의 슬픔을 위로해주지 못한 건 두고두고 후회로 남아 있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친구의 슬픔을 나누고 싶다. 남의 슬픔도 나의 슬픔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중생A 1~5 (완결) 세트 - 전5권 - 너와 나, 우리들의 성장 드라마, 6월 영화개봉! 김환희, 김준면(엑소_수호) 주연
허5파6 지음 / 비아북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 보급 초창기(2000~2005년)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다. 주인공은 중학교 3학년의 여자아이인데, 가정환경이 무척 열악하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고 어머니와 주인공은 가정폭력을 당하기까지 하는, 말 그대로 파탄난 가정이다. 평범이란 누군가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꿈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이 만화를 통해 알았다.

하여튼 주인공은 힙스터 취향을 가진 그런 애인데 약간 어렸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거 같기도 했다. 문학과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는데 대중적이지 않은 걸 좋아하는 그런 모습이 특히 그렇다. 하여튼 그런 주인공이 1년 동안 살아남는 내용이다.

스토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보고 난 뒤 든 생각을 주로 말하겠다.

인생이라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고통이 아닐까 한다. 중고등학교 때가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절대적인 힘듦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라 각자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는 것이다.

이 만화는 나의 그런 중고등학생 시기를 떠올리게 했고 그 시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완독한 뒤 나는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그 시기를 거쳐 내가 되었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는 오래된 뇌와 새로운 뇌로 나뉜다. 오래된 뇌는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새로운 뇌는 나중에 만들어졌기에 그 바깥쪽을 싸고 있다. 안쪽의 오래된 뇌는 “감정, 추동”을 담당하고, 바깥 쪽의 새로운 뇌는 “지능, 이성”을 담당한다. 뇌를 겉에서 보면 흰색으로 보이는데, 이는 전부 새로운 뇌며 이 부분을 “신피질(뇌겉질)“이라고 한다. 우리의 지능과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은 이 신피질이다.

신피질에는 “피질기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이 기둥은 구조가 비슷하며 기능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즉 어느 신피질에 있는 피질기둥이든 그 기능 자체는 다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전담하는지가 달라질 뿐이다.

이 피질기둥들은 3차원 공간을 이해하는 ”기준틀“ 역할을 한다. 기준틀은 피질기둥이 “대상의 형태를 정의하는 특질들의 위치”를 배우게 해준다.

”뇌는 모든 지식을 기준틀을 사용해 배열하며, 생각은 움직임의 한 형태다“ - 114p.g

“생각은 움직임의 한 형태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하는 추상적인 생각들조차 뇌의 입장에서는 3차원 움직임의 한 형태로 기억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구절이 어떤 책의 어느 부분에 있다고 기억하는 순간이 있지 않는가? 그처럼 뇌가 기억하는 원리는 공간을 기억하는 것과 밀접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여튼 ”생각은 움직임의 한 형태“라는 것은 뭔가 멋진 말 같다.

뭔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기준틀이 있었야 한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역사적 사건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 “언제”일어난 일이고, “어디서”일어난 일이고, 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식으로 여러 기준으로 평가해야 그 사건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하나의 기준틀들이 복합적으로 그 사건을 평가해야 무언가의 위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이 책 1장의 내용이다. 나머지 장들의 내용은 솔직히 1장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망스러웠다.

AI에 관한 얘기가 있긴 한데 그리 중요하진 않다.

인상적인 구절만 옮겨보자면 “자기 복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실존적으로) 위협적” - 이 구절은 나노봇이나 바이러스 같은 것의 위협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은 자기복제하기에 그 자체로 환경에게는 실존적 위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비난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입장인데, “틀린 바이러스성 신념”이라고 하며 종교를 후드려깐다. 이런 점에서는 리처드 도킨스를 떠올리게 한다. 혹시 그가 서문을 써준 이유가 종교에 대한 증오라는 공통점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1장을 빼면 그 정도로 훌륭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종교를 맞다 틀리다로 평가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종교는 과학보다는 예술과 가까워서, 그가 하는 말은 마치 예술을 맞다 틀리다로 평가하는 것처럼 들린다.

"뇌는 모든 지식을 기준틀을 사용해 배열하며, 생각은 움직임의 한 형태다" - P1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14절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17절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요한의 첫째 편지」 3장 18절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4장 8절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4장 12절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 4장 16절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의 첫째 편지」 4장 20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