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교역을 위해서예요. 도시에는 생산 시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산도즈, 내가 그 도시의 이름을 알아냈다고 말했던가요? 가이저르인지 가이주르인지, 하여튼 그런 이름이에요. 어쨌거나, 각각의 마을은 특화된 교역품을 가지고 있어요." 소피아는 일종의 마을 회의처럼 보이는 토론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더는 미사에서 찬송가를 부르지 않았다.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루나가 불안감과 당혹감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와 유리, 그리고 나머지 물건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크가 말했다. "지구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볼리비아의 고원 지대에 간다면 중세로 돌아간 기분이 들 겁니다. 하지만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라파즈에서는 인공위성의 부품을 설계하고 화학 물질을 합성하죠. 이 마을은 그저 보다 발전된 문명의 변방에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는 산업을 발전시킬 필요 자체가 별로 없어요." 앤이 말을 이었다. "거의 항상 햇빛이 있는데…… 전등이 왜 필요하겠어요? 어디나 강줄기가 흐르는데, 도로 포장이나 육상 교통수단이 필요할까요? 식량의 종류도 풍부하고, 그저 기다렸다가 수확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마누자이는 이방인들이 라카트에 떠오르는 가장 작은 태양의 침침하고 붉은빛 아래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겨우 목소리가 나오게 되자, 산도즈가 말했다.
"누군가는 디가 먹거나 마신 무언가가 그를 아프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음식 때문에 아플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디만 병이 났어." 마누자이가 빈틈없는 논리를 댔다.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줘야만 해."

"모든 병의 원인은 하나야." 마누자이가 산도즈에게 말했다. "그의 마음이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이지."

라카르 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약속한 가격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수파아리 바게이주르는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최초의 땅을 구입했다.

그는 루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안다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 지식이 이윤을 낳았고, 수파아리가 축적한 부는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루나와 친하다는 점은 멸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가이주르의 존경받는 자나아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소외당했다.

그래서 수파아리의 세상은 경쟁자인 다른 셋째들과, 그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먹잇감에 불과한 루나로 이루어졌다.

상인인 수파아리 바게이주르와 마찬가지로 흘라빈 키서리 역시 셋째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공통점은 그 밖에도 더 있었다. 둘 다 서른 해 전 같은 계절에 태어났다. 셋째로서 그들은 법정 불임이었고, 따라서 합법적으로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레시타의 경우, 셋째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가족의 수치가 아니라 시기를 잘못 타고난 귀족적인 탄생일 뿐이었다. 전통적으로 귀족 가문에서는 아들이 전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손을 많이 낳곤 했다.

과거에는 레시타가 형제의 지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삼각 동맹 체제하에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셋째 대부분이 그저 무의미한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편안함 속에서 나태해지고 무의미한 쾌락에 무뎌졌다.

"노래 때문에 누가 곤란에 처하진 않을까요?" 그러자 앨런 페이스가 대답했다. "꽃을 가져오면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다시는 지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충격이 가시고 나자 망연한 상실감도 사라졌다. 지미의 말이 옳았다. 상황은 더 나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일행은 필요한 것들을 가졌다. 그들은 스텔라 마리스 호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여기서 장기간 생존할 수 있었다. 단지 목숨을 이어 갈 뿐 아니라, 배움과 사랑으로 충만한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산도즈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느껴지는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루나는 채식주의자였고, 처음 인간들이 진공 포장된 쇠고기를 꺼냈을 때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그들이 사용했던 동굴은 출입금지 지역으로 선포되고, 영구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고기 냄새로 거래 상대방이 자나아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루나는 냄새만 맡아요." 그녀는 수파아리가 분명 루나와 다른 존재라고 짐작하며 제안했다. "하지만 왠지 당신이라면 우리처럼 마셔 봐도 좋을 것 같네요."

"이 사람은 수파아리라고 합니다. 카하아나 혈통의 셋째 아들로, 지성(地姓)은 바게이주르입니다."

‘첫째라면 전사겠군.’ 수파아리가 짐작했다. 이유는 틀렸지만 맞는 말이었다.

"자나아타나 우리 인간과 비교하면, 루나는 그다지 창의적이거나 사상적이라고 보기 어렵지. 혹은 독창적이지 않다고 해야겠군. 하지만 일단 어떤 단초가 주어지면 그것을 정교하게 만드는 일에는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곤 해."

예를 들어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정당한 요구를 거절당하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면 그자는 포레이 상태에 빠져. 포레이라는 건 마음이 슬프다는 뜻이고, 그러면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어.

다른 누군가를 포레이로 만든다면,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게 돼.

"루나는 거의 혼자 있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사회적 상호 작용도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문 일이죠.

종종 이견이 발생하죠. 논쟁이 커지면 양 당사자는 ‘피에르노’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피에르노란 시끄러운 소리란 뜻이죠. 피에르노를 만들면 폭풍을 불러온다고 여겨집니다. 사납고 무서운 폭풍을."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거라, 안 그러면 금방 폭풍이 불어 닥칠 거야.’ 라카트에는 폭풍우가 잦습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과 궂은 날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컨대 루나는 손가락이 열 개인데, 숫자 체계는 6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자나아타의 손가락이 세 개뿐인 걸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조지와 지미는 처음부터 카샨에서 볼 수 있는 루나의 문명이 우리를 라카트로 이끈 라디오 신호를 만들어 낸 문명과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표현이 문법적으로는 언제나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표현과 같다는 점도 당신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 같군요. 루나가 자나아타 이야기를 했더라도 당신들은 그것이 무슨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남성 자나아타와 여성 루나는 전체적인 생김새나 크기가 아주 비슷합니다."

"여성 자나아타들은 격리 상태로 보호받거든. 그래서 루나와 닮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어. 루나의 성별은……." 산도즈가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 "구분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남성들이 훨씬 작죠

성 역할 또한 우리의 예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로비쇼가 그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그림은 아마 성 요셉과 아기 예수로 제목을 바꿔야 할 겁니다."

우리는 드자나다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히 자나아타와 관련 있는 단어였죠.

"마누자이는 아스카마의 양육을 맡았고, 자기 아내보다 덩치가 작았습니다." 산도즈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여성이라고 생각했죠. 차이파스는 언제나 여행을 다녔고 거래를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남성이라고 여긴 겁니다. 루나 역시 우리에 대해 마찬가지 오해를 했고."

"루나는 어떻게 대가를 지불했죠? 마을에 대한 설명만 들어 보면 그다지 물질적인 사람들 같지 않던데요."
"그들은 꽃잎을 수확하고 임금으로 공산품을 얻었지. 향수, 배, 도자기, 리본 같은 것들 말이네. 그리고 이자가 쌓이는 은행 같은 제도도 있었어. 마을이 얻는 수익은 모두 공동 소유였고.

"루나와 수파아리 같은 상인들 사이의 계약 이행을 누가 강제하오?" 지울리아니가 물었다.
"자나아타 정부가 합니다. 둘째로 태어난 아들들에게 세습되는, 거래의 법적인 측면을 감독하는 행정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족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 법원도 있습니다. 판결은 첫째로 태어난 자나아타로 이루어진 군대 경찰이 강제합니다."

생산 활동은 모두 루나가 맡는단 말이군요.

수파아리 바게이주르처럼 셋째로 태어난 상인들은 두 종족 사이를 오가며 거래를 중개하지. 상인들은 루나 마을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서 자나아타 인구를 먹여 살렸소

자나아타들이 명예와 정의를 매우 중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들은 자신들이 루나의 후견인이자 보호자라고 생각해. 더 열등하고 의존적인 자들을 위해 의무를 다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끼지.

바라카트 인구에서 자나아타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3~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어. 그들이 폭정을 일삼는다면 루나가 들고일어날 거야."

"하지만 루나는 폭력적이지 않잖아요."

자나아타의 군대 경찰은 무자비해. 그럴 수밖에 없지. 수적으로 절대 불리하니까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머릿수뿐이지

수파아리가 당신 일행이 오기 전에는 자나아타와 루나 사이에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는 걸 기억할 거요."

"수파아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루나는 역사를 기록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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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는 미국이 달에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일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만큼 어려운 일에 도전해서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느끼고 내면의 무언가를 찾을 기회

반면에 요하네스 펠커는 산도즈를 단지 외부적인 통제가 사라지자마자 끔찍한 행위를 저지르고 만 위험한 범죄자로 여겼다. ‘우리는 남들에게서 자기와 닮은 부분을 볼 때 상대방을 두려워하게 되지.’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펠커가 비번일 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만약 하느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면, 인제 와서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설사 산도즈가 자기 자신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지 않았다고 해도, 앤 외에는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몇몇 사람에게는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과거의 어떤 시점이 존재했다.

이제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것이 주어진 운명

그들은 많은 종류를 맛 때문에 제외했다. 대부분의 나뭇잎은 너무 썼고, 과일은 너무 신맛이 강했다. 어떤 과일은 맛이 아주 좋았지만 지미조차도 설사를 했다. 앨런이 한 번 발진을 일으켰고, 마크도 한 차례 구토를 했다. 하지만 조금씩 인체에 무해해 보이는 먹거리의 목록이 늘어났다

다만 그런 음식에서 어떤 유용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 점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주로 지구에서 가져온 음식물로 이루어진 식단에서 현지의 먹거리로 구성된 식단으로 천천히 변경해야 했다.

죽음과 마주하면 사람들은 이유를 찾는다.

죽음의 자의성과 그에 대한 무지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리에 있던 물린 자국은 어떻소? 그리 크진 않았고 우리 모두 물린 적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앤, 뭔가 이유가 있을 게 틀림없소."
"이유를 원해요?" 앤이 야브로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는 그녀의 말투에 놀라서 말을 멈추고 자신의 상념으로부터 빠져나왔다. "이유를 원하냐고요. Deus vult, pater.(신의 뜻이에요, 신부님.) 신이 그가 죽기를 원했어요, 신부님. 됐나요?"

이상주의적일 나이가 아닌가, 열일곱 살이면

"사람들이 사제의 길을 걷게 되는 동기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면 놀랄 걸세. 내 경우에는 가난의 맹세가 속죄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나폴리 항을 향해 배를 돌려서 또 다른 고깃배에 다가가자 이번에도 시끄러운 이탈리아어가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했다. 펠리페는 마침내 이들에 대한 뭔가를 알아차렸다. 그는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어부들 중에 진짜로 고기를 잡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요?"
"아니. 아마 없을걸세." 지울리아니가 상냥하게 말했다. "자기들이 어디로 배를 몰아야 하는지는 잘 알지만 고기를 잡지는 않겠지."
이제는 어리둥절해하며 펠리페가 그를 쳐다봤다.
"이 사람들과 모두 아는 사이시죠?"
"맞네. 대부분은 육촌들이지."
펠리페가 눈치를 챈 듯하자, 지울리아니가 씩 웃었다.
"믿을 수 없군요. 마피아라니! 저 사람들은 마피아예요, 그렇죠?"

재미있지 않나. 나의 조부와 에밀리오 산도즈의 조부가 같은 업종에서 일했다니. 산도즈는 우리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군. 그분도 자기 부류끼리 있을 때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신뢰하지 않거나 불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언제나 딱딱하게 굴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거든.

마피아는 시칠리아 사람들이지. 나폴리에서는 카모라라고 부르네. 결국에는 같은 뜻이지만

에밀리오 산도즈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 사생활과 보호를 제공하는 것 또한 그런 돈이지. 그래서 우리가 나폴리에 있는 걸세, 레예스. 우리 집안이 이 도시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소. 그들은 그런 절차를 ‘하스타아칼라’라고 불렀소." 그는 상인이 구매자에게 기다란 천을 보여 주는 것처럼 두 손을 탁자의 거친 표면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것들을 응시했다. "고문은 아니었소. 때때로 자나아타들은 친한 친구에게 이런 시술을 한다더군. 수파아리는 우리가 이 상처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지 보고 놀랐소. 자나아타의 손에는 우리처럼 그렇게 신경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지 않아서 그럴 거요. 그들은 정교한 수작업을 좀처럼 하지 못하니까. 그런 일은 모두 루나가 하지

"심미적인 이유에서 이루어지는 일인 것도 같소. 아마 긴 손가락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오. 혹은 우리를 통제하려는 방법일지도 모르고. 우리는 일할 필요가 없었지만 바꿔 말하면 할 수도 없었지. 우리를 돌봐 주는 하인들이 있었소. 그때까지 살아 있던 사람은 마크 로비쇼와 나뿐이었소. 내 생각에 이런 손은 오히려 명예롭게 여겨지는 대상이었소."

"그런 명예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소. 아마 수파아리겠지. 자기가 쓸모없는 식객을 부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하오."
"중국의 귀족 여성들이 전족을 하는 것과 비슷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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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은혜를 베푼 친구를 대하듯 당신 자신의 몸을 대하시오

그 모습을 곁눈질하면서 소피아는 남자들이 여자를 쫓아다닐 때보다 일에 몰두할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자기들 스스로도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여자에 목을 매는 남자는 별로였다.

"좋아, 한번 계산해 보자고." 조지가 화면을 지우고 태블릿에 공식을 적기 시작했다. "초의 제곱당 9.7미터라면, 중력은 1G야. 여정의 절반 동안 가속을 한 다음 암석을 180도 회전시키고 나머지 절반은 감속한다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따르면 알파 센타우리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구상에서 볼 때는 17년 정도지만,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여행하는 소행성의 승무원에게는 6개월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난 사람이 착하거나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종교밖에 없다는 생각이 아주 짜증 나.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야." 앤이 한마디 한마디를 꾹꾹 눌러서 말했다. "희망이나 보상, 처벌이 없어도. 내가 선량하게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천국으로 꼬드기거나 지옥으로 겁줄 필요는 없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여자가 한순간에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소피아는 창밖으로 통곡의 벽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멀어서 기도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관광객과 순례자의 물결이 저마다 벽을 가리키고,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고, 소원을 적거나 감사의 말이 적힌 작은 종잇조각을 오래된 돌 틈바구니에 끼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 깨달았다. 소피아는 과거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찾았던 것이다.

저는 한동안 갈고리를 달고 지냈다고요! 싱 신부님이 의수를 만들어 준 뒤에도 한동안은 아주 침울해 있었죠." 펠리페가 고백했다. "누가 편지 폭탄을 보냈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오히려 제게 일어난 일에 감사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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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2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염무웅.반성완 옮김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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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서 선택했다.
너무 좋은 강의를 들은 기분이다.

예술의 양식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각각은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다.

1. 기하학적 장식 예술 : 전제주의, 보수주의(농업 사회와 관련)
2. 자연주의적(모방적 표현양식) 예술 : 자유주의, 진보주의

저자는 자연주의적인 예술이 먼저 발생했다고 말한다. 선사시대-구석기시대의 미술을 보면 대상(주로 동물)을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이렇게 생생한 자연주의적 표현은 이 시기 예술의 목적이 주로 주술(마술)적인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대상과 정확하게 일치해야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 혈거인들은 벽에 사냥감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것을 이미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 대상 그 자체이며, 소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소망의 달성”이었던 것이다. 이런 마술적인 목적에 의해 예술이 탄생했기에 자연스레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자연주의적 양식을 띠게 된 것이다.

선사시대-신석기시대에 이르면 예술 양식은 자연주의에서 기하학적 장식 예술로 변하게 된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농업혁명“이다. 농업을 함으로써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사유재산과 지배-피지배 계층 및 종교가 생겨났다. 계층과 종교가 생긴 전제적인 사회에서 예술은 보통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구석기 시대의 자연주의에 비해, 신석기 시대의 기하학주의는 표현이 강렬하며 자연적인 형상을 고의로 왜곡한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는 게 아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크고 정확하게 그리고, 생략할 부분은 단순화시키는 예술방식이다. 그리하여 예술은 지배계층의 논리를 설파하는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기하학적 예술은 이후의 사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집트 벽화에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그것이다. 인물이 모두 측면을 향해 있고, 몸통은 정면을 향해 있는 몰개성한 그림들.

이집트인들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연적인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것(자연주의)은 눈속임과 같은 저급한 행위이고, 엄격한 형식에 맞춰 대상을 추상화시키는 것(기하학주의)이 더 고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의 인물화에서 모든 인물의 가슴은 정면을 향해 있다. 어떤 자세를 취하더라도 몸만은 정면을 향해 있는 이 원리를 “정면성의 원리”라고 한다. 그리고 이 원리는 이후로 중세까지 기나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 그림 내에서도 계층에 따라 화풍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그림에서 상류층은 정면성의 원리를 따른 기하학적 양식으로, 하인들은 자연주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엄격한 구분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운문으로, 하인들은 평범한 산문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요컨대,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고상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제주의 사회에서 기하학적 예술 양식이 유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리스 시대>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스 시기의 예술 양식을 “아케이즘”이라고 하는데, 아케이즘 이전의 예술은 모두 근본적으로는 실용 예술이었다.

이전에는 마술/종교의 수단, 지배 계층의 선전 도구에 불과하던 예술이, 순수한 의미의 예술이 된 것은 기원전 7~6세기의 일이다. 참고로 이때의 그리스(이오니아)에서는 예술뿐만 아니라 순수한 학문(철학, 자연과학), 순수한 스포츠(고대 올림픽) 등 훌륭한 문화가 꽃피는데, 이는 그리스가 해양 상업 국가였기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 무역이 발달했기에 이곳저곳의 문화를 받아들였고, 2. 화폐를 자주 사용했기에 추상적인 사고에 능숙해졌다는 것이다.

그리스 시기에 이르러 예술은 다시 다소 자연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그리스 시기에는 정면성의 원리가 약해진 이유는 당시 유행했던 철학 사조인 “소피스트”와 관련이 있다. 소피스트들은 모든 계몽의 선구자로서, 교육으로 인간을 계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선천적 혈통보다는 후천적 교육을,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주장했으며 이는 시점이 고정된 정면성의 원리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다.

대상을 자연주의적으로 묘사하면 어느 시점에서든 감상할 수 있고, 개개의 시점은 어느 것이든 상대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는 그때그때의 시각이 바뀜에 따라 대상 자체도 변한다는 소피스트들의 이론과 맞아떨어지는 현상이었다. 따라서 그리스 시대의 예술은 기하학적 양식(정면성의 원리)의 속박을 벗어던지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시기 예술이 완전히 자연주의적인 것은 아니고, 기하학적 양식과 조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 시기의 미술의 특징은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미와 선의 융합)”이다. 겉으로 보기에 좋은 것을 우리는 아름답다(미)라고 한다. 도덕적으로 보기 좋은 것을 우리는 착하다(선)고 한다. 그리스 시기의 예술은 자연주의와 양식화(기하학주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는데, “슬픔에 잠긴 아테나”나 “제신의 향연“을 보면 그 조화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겐 석굴암으로 유명한 간다라 미술, 즉 헬레니즘도 이 시기의 산물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기원전 4세기)이 동쪽으로 영토를 넓힌 결과 인도 북부 근처까지 그리스의 영향력이 닿게 되었다. 원래 인도에서는 불탑으로 부처를 기렸으나, 이 시기 불교로 개종한 그리스인들이 조각상을 만들며 점차 불상이 퍼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간다라이며, 이러한 헬레니즘 문화는 최초의 국제적인 혼종문화였다.

<로마 시대>
”조각이 그리스 고전 미술을 대표하는 것처럼, 로마 시대 후기와 초기 기독교의 대표적 예술은 회화였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두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후기 로마/기독교 미술의 특징이다. 이는 서사시적, 설명적인 예술의욕이며 가히 영화적이라고까지 말할 만하다. 대표적인 것이 “트리야누스의 기둥”인데, 이 기둥에 돋을새김 된 장면들은 마치 필름을 슬라이드로 넘기는 것처럼 연속적인 특징을 갖는다.

<중세>
중세는 흔히 한 시대로 알기 쉬우나, 사실은 세 시대로 구분된다.

1. 봉건제
2. 궁정 기사 시대
3. 도시 시민 계급 시대

각 시대는 쉽게 구분될 정도로 차이점이 뚜렷하지만, 세 시대의 공통점은 바로 “형이상학(종교적) 세계관”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즉 중세는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다. 따라서 중세 예술을 알려면 먼저 기독교 예술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1. 상징주의
2. 서사시적/설명적 양식 -> 메시지 전달 중시

개인적으로 중세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똑같이 생긴 그림이 끝도 없이 나와서 재미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위와 같은 특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회화는 보통 상징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문맹이 많던 시기라 성서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자연히 정면성의 법칙(기하학적 양식화)가 부활하고,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디테일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인물이 있으면, 설령 기둥에 가려진 부분이 있더라도 인물을 기둥 앞으로 그린다든지 하는 식이다. (종교적인 믿음을 떠나) 순전히 예술적인 눈으로는 조야하게 보인다.

초기 기독교 회화는 장인이 아닌 수도사들이 직접 그렸는데, 그래서 실제로 표현력 부분에서도 조야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기독교 예술관에서 예술은 오로지 교리의 주입 수단이었기에 상관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감각보다는 정신이 우위가 되는 시기가 바로 중세였다.

다음으로는 중세의 세 시기를 시대별로 알아보자.

1. 봉건제(9~11세기)
중세 초기인 봉건제는 지방 봉건 영주가 왕만큼, 혹은 왕보다 더 세력이 강해진 시기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종교)전쟁으로 인해 왕은 전쟁 자금이 필요하게 되는데, 중앙의 자금이 부족하니 지방의 귀족들에게 땅을 하나둘 떼어주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 버린 것이다.

봉건제의 가장 큰 특징은 “화폐도 교역도 없는 자급자족 체제”라는 것이다. 시장이 없고, 따라서 자급에 필요한 한도를 넘어 생산할 필요가 없기에, 경제가 발전할 힘이 부족했다. 도시(수도)는 사라지고 지방이 사람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동의 자유도 없었다. 개인은 없고 공동체 위주의 종교적인 생활을 했다. 기독교적 가치를 소유하는 것만이 목적이었기에, 이를 변형하는 건 전부 교만으로 치부했다. 중세를 흔히 암흑기라고 하는데, 봉건제는 정말로 하나의 빛만 있는 시기였다.

요컨대 지금의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시기가 바로 봉건제 시기다.

이 시기의 예술 양식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있다. 엄격한 형식화(양식화)와 추상화로써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 수도원은 마치 성처럼 위풍당당했지만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갈수록 더욱 금욕적이고 소박하게 변한다.

2. 궁정 기사 시대(12세기)
중세 중기에는 기사라는 계급이 등장한다. 나중에는 세습신분이 되지만 원래 기사는 직업군인이었고, 이들은 대부분 봉건 영주들의 시종이었다. 봉건 영주들 또한 그들의 조상대에서는 군인이었으나 세습 귀족이 되면서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기에, 그들을 대신해서 싸울 사람들을 만든 것이다. 그게 바로 기사였다.

기사들은 공훈을 쌓은 뒤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세습 계급이 된다. 그들의 고용주인 봉건 영주들과 정확히 같은 전철을 밟은 것이다.

하지만 초기의 기사들은 농민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출신성분이었기에, 귀족으로 편입된 이후에도 열등감이 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혈통적이고 외면적인 귀족이 아닌, 내면적인 귀족임을 자처하고 정신을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기사도이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아는 젠틀함은 사실 기사들의 열등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움”에 집착하는 것은 뉴비들의 특징인가 보다.

기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문학의 소재로 “연애”를 끌어왔기 때문이다. 기사 문학에 나타나는 연애관은 <돈키호테>에 잘 드러나 있다. 귀부인에게 자신의 공훈을 돌리고, 영주에게 바치는 충성처럼 귀부인에게 사랑의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문학의 소재로서 ”연애”는 이전에는 전혀 없던 것이다. 중세 초기는 성자 이야기뿐이었고, 고대 그리스에서 등장하는 여자는 그저 전리품으로서 얻어지는 것 정도의 지위였다. 따라서 근대 낭만적 연애관의 근간은 기사 문학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예술 양식은 “고딕” 양식이다. 고딕은 수직적인 선을 건축에 도입함으로써, 웅장한 성당을 만들어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이 시기에는 범신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신의 본질과 일치한다”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에는 자연주의의 정신이 엿보인다. 따라서 고딕은 자연주의와 자유주의로의 회귀가 시작된다. 그러나 중세는 중세였기에 완전한 자연주의는 아니었다.


3. 도시 시민 계급 시대
봉건제 이후 중세의 중심은 지방이었으나 이제 도시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다.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는 유명한 말처럼, 도시에는 자유가 있었다. 도시에는 화폐와 상거래가 통용되었으며, 상업을 통해 큰돈을 번 사람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이들이 바로 도시 시민 계급(부르주아)다.

중세 후기는 바로 이 시민 계급이 예술의 주 수요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귀족과 농민의 중간 계급인 시민이 등장함으로써 문화(예술)의 새로운 수요층이 되었다. 이해타산에 밝고 합리주의적인 시민 계급은 이상주의적인 기사의 자리를 대체했다.

자연히 기사는 몰락했다. 기사 계급의 몰락은 점진적인 것이었으나 꾸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는 시민 계급의 심금을 울려 후에 수많은 기사 소설로 승화된다.

중세 후기에는 예술가가 일하는 장소가 건축 현장과 분리된다. 이전에는 모든 예술은 건축 현장에서 만들어졌다. 조각도 벽화(회화)도 모두 건축물을 장식하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벽화는 패널화로, 조각은 작고 아담한 형태로 바뀌면서 예술은 비로소 건축과 분리된다. 예술가의 외따른 일터가 생긴 것이다. 아틀리에의 탄생이다.

도시화폐적인 생활조건은 자연주의로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속세적인 소재가 쓰이고, 디테일과 원근법을 시도하는 회화가 등장한다.

벽화는 패널화에서 판화로 변화해 민중들에게까지 예술이 닿게 된다.

오랜 터널의 끝자락에서 시대는 바뀔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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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5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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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이런 걸로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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