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교역을 위해서예요. 도시에는 생산 시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산도즈, 내가 그 도시의 이름을 알아냈다고 말했던가요? 가이저르인지 가이주르인지, 하여튼 그런 이름이에요. 어쨌거나, 각각의 마을은 특화된 교역품을 가지고 있어요." 소피아는 일종의 마을 회의처럼 보이는 토론에 참석하도록 허락받았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더는 미사에서 찬송가를 부르지 않았다.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면 루나가 불안감과 당혹감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와 유리, 그리고 나머지 물건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마크가 말했다. "지구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볼리비아의 고원 지대에 간다면 중세로 돌아간 기분이 들 겁니다. 하지만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라파즈에서는 인공위성의 부품을 설계하고 화학 물질을 합성하죠. 이 마을은 그저 보다 발전된 문명의 변방에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는 산업을 발전시킬 필요 자체가 별로 없어요." 앤이 말을 이었다. "거의 항상 햇빛이 있는데…… 전등이 왜 필요하겠어요? 어디나 강줄기가 흐르는데, 도로 포장이나 육상 교통수단이 필요할까요? 식량의 종류도 풍부하고, 그저 기다렸다가 수확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마누자이는 이방인들이 라카트에 떠오르는 가장 작은 태양의 침침하고 붉은빛 아래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겨우 목소리가 나오게 되자, 산도즈가 말했다. "누군가는 디가 먹거나 마신 무언가가 그를 아프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음식 때문에 아플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디만 병이 났어." 마누자이가 빈틈없는 논리를 댔다.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줘야만 해."
"모든 병의 원인은 하나야." 마누자이가 산도즈에게 말했다. "그의 마음이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이지."
라카르 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약속한 가격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수파아리 바게이주르는 여기서 얻은 이익으로 최초의 땅을 구입했다.
그는 루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안다는 명성을 얻었다. 그런 지식이 이윤을 낳았고, 수파아리가 축적한 부는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루나와 친하다는 점은 멸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가이주르의 존경받는 자나아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소외당했다.
그래서 수파아리의 세상은 경쟁자인 다른 셋째들과, 그가 좋아하기는 하지만 먹잇감에 불과한 루나로 이루어졌다.
상인인 수파아리 바게이주르와 마찬가지로 흘라빈 키서리 역시 셋째로 태어난 아들이었다. 공통점은 그 밖에도 더 있었다. 둘 다 서른 해 전 같은 계절에 태어났다. 셋째로서 그들은 법정 불임이었고, 따라서 합법적으로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레시타의 경우, 셋째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가족의 수치가 아니라 시기를 잘못 타고난 귀족적인 탄생일 뿐이었다. 전통적으로 귀족 가문에서는 아들이 전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손을 많이 낳곤 했다.
과거에는 레시타가 형제의 지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삼각 동맹 체제하에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셋째 대부분이 그저 무의미한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편안함 속에서 나태해지고 무의미한 쾌락에 무뎌졌다.
"노래 때문에 누가 곤란에 처하진 않을까요?" 그러자 앨런 페이스가 대답했다. "꽃을 가져오면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다시는 지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충격이 가시고 나자 망연한 상실감도 사라졌다. 지미의 말이 옳았다. 상황은 더 나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일행은 필요한 것들을 가졌다. 그들은 스텔라 마리스 호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여기서 장기간 생존할 수 있었다. 단지 목숨을 이어 갈 뿐 아니라, 배움과 사랑으로 충만한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산도즈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느껴지는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루나는 채식주의자였고, 처음 인간들이 진공 포장된 쇠고기를 꺼냈을 때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그들이 사용했던 동굴은 출입금지 지역으로 선포되고, 영구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다.
고기 냄새로 거래 상대방이 자나아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루나는 냄새만 맡아요." 그녀는 수파아리가 분명 루나와 다른 존재라고 짐작하며 제안했다. "하지만 왠지 당신이라면 우리처럼 마셔 봐도 좋을 것 같네요."
"이 사람은 수파아리라고 합니다. 카하아나 혈통의 셋째 아들로, 지성(地姓)은 바게이주르입니다."
‘첫째라면 전사겠군.’ 수파아리가 짐작했다. 이유는 틀렸지만 맞는 말이었다.
"자나아타나 우리 인간과 비교하면, 루나는 그다지 창의적이거나 사상적이라고 보기 어렵지. 혹은 독창적이지 않다고 해야겠군. 하지만 일단 어떤 단초가 주어지면 그것을 정교하게 만드는 일에는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하곤 해."
예를 들어 누군가 어떤 식으로든 정당한 요구를 거절당하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면 그자는 포레이 상태에 빠져. 포레이라는 건 마음이 슬프다는 뜻이고, 그러면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어.
다른 누군가를 포레이로 만든다면,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게 돼.
"루나는 거의 혼자 있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사회적 상호 작용도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문 일이죠.
종종 이견이 발생하죠. 논쟁이 커지면 양 당사자는 ‘피에르노’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피에르노란 시끄러운 소리란 뜻이죠. 피에르노를 만들면 폭풍을 불러온다고 여겨집니다. 사납고 무서운 폭풍을."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거라, 안 그러면 금방 폭풍이 불어 닥칠 거야.’ 라카트에는 폭풍우가 잦습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과 궂은 날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컨대 루나는 손가락이 열 개인데, 숫자 체계는 6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자나아타의 손가락이 세 개뿐인 걸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죠. 그리고 조지와 지미는 처음부터 카샨에서 볼 수 있는 루나의 문명이 우리를 라카트로 이끈 라디오 신호를 만들어 낸 문명과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표현이 문법적으로는 언제나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표현과 같다는 점도 당신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 같군요. 루나가 자나아타 이야기를 했더라도 당신들은 그것이 무슨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겠죠."
하지만 남성 자나아타와 여성 루나는 전체적인 생김새나 크기가 아주 비슷합니다."
"여성 자나아타들은 격리 상태로 보호받거든. 그래서 루나와 닮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어. 루나의 성별은……." 산도즈가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 "구분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남성들이 훨씬 작죠
성 역할 또한 우리의 예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로비쇼가 그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그림은 아마 성 요셉과 아기 예수로 제목을 바꿔야 할 겁니다."
우리는 드자나다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히 자나아타와 관련 있는 단어였죠.
"마누자이는 아스카마의 양육을 맡았고, 자기 아내보다 덩치가 작았습니다." 산도즈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여성이라고 생각했죠. 차이파스는 언제나 여행을 다녔고 거래를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남성이라고 여긴 겁니다. 루나 역시 우리에 대해 마찬가지 오해를 했고."
"루나는 어떻게 대가를 지불했죠? 마을에 대한 설명만 들어 보면 그다지 물질적인 사람들 같지 않던데요." "그들은 꽃잎을 수확하고 임금으로 공산품을 얻었지. 향수, 배, 도자기, 리본 같은 것들 말이네. 그리고 이자가 쌓이는 은행 같은 제도도 있었어. 마을이 얻는 수익은 모두 공동 소유였고.
"루나와 수파아리 같은 상인들 사이의 계약 이행을 누가 강제하오?" 지울리아니가 물었다. "자나아타 정부가 합니다. 둘째로 태어난 아들들에게 세습되는, 거래의 법적인 측면을 감독하는 행정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족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 법원도 있습니다. 판결은 첫째로 태어난 자나아타로 이루어진 군대 경찰이 강제합니다."
수파아리 바게이주르처럼 셋째로 태어난 상인들은 두 종족 사이를 오가며 거래를 중개하지. 상인들은 루나 마을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서 자나아타 인구를 먹여 살렸소
자나아타들이 명예와 정의를 매우 중시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들은 자신들이 루나의 후견인이자 보호자라고 생각해. 더 열등하고 의존적인 자들을 위해 의무를 다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끼지.
바라카트 인구에서 자나아타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3~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어. 그들이 폭정을 일삼는다면 루나가 들고일어날 거야."
자나아타의 군대 경찰은 무자비해. 그럴 수밖에 없지. 수적으로 절대 불리하니까
수파아리가 당신 일행이 오기 전에는 자나아타와 루나 사이에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는 걸 기억할 거요."
"수파아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루나는 역사를 기록하지 않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