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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침 같이 찍힌 [1Q84]의 Q가 무엇인가? 처럼 question 역할을 하는 듯 하다.)
1. 책을 읽기까지
책을 구입하고 4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볼 마음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사고력이 부족했던 거라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똑똑해졌을 거라고 자만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 사이 읽었던 책들이 이 책과 나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었는지 이번엔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정의'라는 추상적인 명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예를 곁들어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칸트,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에서 근현대까지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들어 논리를 펼치기에 읽기가 다소 어렵다. [이 책의 목적은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책에서 예를 드는 구제금융, 가격 폭리, 소득 불평등, 소수집단우대정책, 병역, 동성혼을 둘러싼 논쟁은 자신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명확히 하고 그 신념의 정당성을 증명하라고 촉구한다. 아리스토 텔레스, 이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 등 정치철학자들과 함께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p.47)]
4년 전, 이 책을 먼저 읽은 선배가 (이 책 읽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도, 이 질문까지는 읽어봤을 것이다) '당신은 빠르게 달리고 있는 전차의 기관사이다. 저 앞 철로에서 일하고 있던 인부 5명을 발견하고 멈추려고 했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나 멈출 수가 없다. 대신 비상 철로로 돌리면 그곳에서 일하던 인부 1명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사례(p.36)나 '배가 난파되었다. 선원 4명은 간신히 구명 보트에 올라 탄 채 바다에서 표류했다. 구조를 기다리던 그들은 배고픔에 싸우다 그중 한 사람을 희생하기로 했다. 그들은 가장 약하고 어린 소년을 살해해 그 인육을 먹으며 연명하던 중 구조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었다.'사례(p.51)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었다. 그 당시 나는 영문도 모르고 이것저것 대답했고, 그 선배는 나를 '공리주의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설명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라는 공리주의의 논리에 나는 왠지 욕심쟁이가 된 것 같아서 부인했다. 발끈하며 이 책을 샀지만 얼마 못 읽고 책을 덮었던 기억, 따로 사는 동생과 나 각각 1권씩 소장하고 있을 만큼 인기 있는 이 책이 백만 권 넘게 팔렸다는 기록,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다가 포기했다는 말이 그 이후 들려왔다.
2. 정의를 설명하는 관점
책에서는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 정의를 자유와 연관 짓는 이론들, 정의가 미덕과 좋은 삶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이론을 살펴본다. 철학자들의 논리가 어려워 요약하며 읽은 부분에 의하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존 스튜어트 밀로 이어지고, 1980년대에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등에 의해 지지되는 '자유지상주의' 논리가 새로 제기된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칸트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목차의 제목인 '중요한 것은 동기다' 외에는 정언명령 vs 가언명령, 순수이성비판, 순수 실천이성, 도덕 형이상의 기초 등 핵심적인 단어를 요약한 것만이 기억난다. '정의론'을 설명한 존 롤스, (텔로스 telos) 목적을 중요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정의와 도덕이 도덕-정치철학의 이름으로 논리가 부여되고 단죄되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책이 쓰인 목적에 따라 나만의 생각과 반대 의견을 서로 부딪쳐가며 나만의 견해를 다듬었다. 어느 땐 자유지상주의자가 되어 낙태금지 철회와 동성애를 옹호하다가도,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형제도를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민영화를 절대 반대하기도 한다.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지지하는지는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자유방임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도 교재 기도, 낙태, 성인물 규제 같은 문화적 문제에서는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복지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 다수가 게이의 권리, 출산 결정권, 언론의 자유, 정교분리 같은 문제에서는 자유지상주의자들과 견해가 같다. (p.91_자유지상주의)]
3. 정의를 설명하는 '자유'라는 개념
최근 블로그 한 이웃님이 [데미안] 리뷰를 올린 것을 보고 데미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그 책을 읽고 참 감명을 받은 터라 다시 읽을 고전의 배열에 올려두고 있었는데, 그 리뷰를 보고 마침 다시 읽을 마음이 든 거였다. 하지만 칸트에 따르면, 누군가의 글을 보고 데미안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그리고 나는 언제든 데미안을 읽을 수 있다는 이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에 의해 설득을 당했고, 외부에서 이미 결정된 내용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유가 내 욕구와 끌림을 따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위해서는 '이성'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여전히 논리가 어렵다.
같은 의미로, 밤에 책을 읽고 있었는데 한창 야식에 대한 식욕을 참지 못하는 남편에게 딱 맞는 구절을 발견해 읊어주었다. "우리는 자유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칸트가 생각하는 자유는 좀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개념이다. 다른 동물처럼 쾌락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식욕과 욕구의 노예로 행동하는 것이다. (...)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욕구에 반응하고, 내 갈증에 복종하는 행위다. (p.153)" 이 문장을 듣고 남편은 '식욕의 노예'라는 말을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의지는 항상 어떤 이익이나 욕구에 구애받는다. 선택은 하나같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타율적 선택에 그칠 것이다. 내 의지는 결코 일차 원인이 되지 못하고, 다른 원인의 결과이자 이런저런 충동이나 끌림의 도구가 된다. (p.178)]
4. 철학서라고는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 청소부], [삶을 위한 철학 수업]만 읽어본 내가 '정의'를 이해하기 위해 칸트의 '이성'을 분석하려고 하니 참 어려웠다. 대학교 때 '법철학' 과목을 배운 기억이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거늘,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바람이 불면 '자유'를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정의'를 생각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얼른 사람을 불러 구해주는 게 마땅한 도리이자 정의이거늘,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게 되어 버린 걸 세상의 다양성을 탓해야 하는 건지, 정의란 개념을 책장 속에서 잠들 책으로 배워야만 깨우칠 만큼 세상이 하수상한건지 정말로 모르겠다.
같은 저자의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다음 책으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