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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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판 안나 카레니나 번역본과 함께 찍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책이 한국에 있다.) 

 
 
 십칠 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 [잠]을 덮자마자 잠이 나를 덮쳤다. 폭력적으로 쏟아진 잠깐의 낮잠에서 깨어났더니 [잠]이 나를 덮쳤다. ([잠]은 하루키 단편집 [TV피플] 속 <잠>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밤낮으로 자지 못하게 된 여자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고 남은 시간과 가족들이 자는 밤 시간 동안 책을 읽기로 한다. 잠을 자지 못한 첫날,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안나 카레니나]. 고등학교 때 읽은 적이 있지만, 도대체 그 시간들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녀는 줄거리를 거의 기억 하지 못한다.   

1. 내가 주목한 것은 여자가 읽는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언급된 부분들이다. 

 
 
처음 일주일 동안에 [안나 카레니나]를 연거푸 세 번을 읽었다.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그곳에는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그 장대한 소설에는 다양한 수수께끼와 다양한 시사가 가득 차 있었다. 세공한 상자처럼 한 세계 속에 더 작은 세계가 있고 그 작은 세계 속에도 좀 더 작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들이 복합적으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우주는 내내 거기에 있으면서 독자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기껏해야 그중 한 조각밖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꿰뚫어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톨스토이라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독자가 무엇을 읽어내기를 원했는지, 그 메시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소설로서 결정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그 소설의 무엇이 결과적으로 작가 자신마저도 능가해버렸는지. p.73

첫 문장이 언급된 부분

 처음 일주일 동안 3번을 읽을 만큼 여자는 잠을 못 이루는 그 시간을 온전히 [안나 카레니나]에 쏟는다. 그 후 여자는 톨스토이의 다른 책을 집어드는데, 하루키는 이를 통해 '레프 톨스토이'의 책(특히 [안나 카레니나])을 추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루키가 추천하는 것들을 덩달아 하루키 팬들이 따라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첫 번째 문장의 번역 비교로도 유명한 고전인데, 이 책에서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거기서 거기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로 번역되어있다. 어느 출판사판을 인용했을까 궁금했는데 역자만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번역본은 문학동네 판으로 이러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영문판도 출판사별로 각기 다른 첫 문장들을 가지고 있다.

  

 

 

 

 

2.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폭발적인 하루키의 관심 외에 '수영-몸'에 관한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읽은 거라곤 [1Q84] 3권 밖에 없지만,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면 책 속에서 발견하는 다른 책과의 연관성과 소재를 찾는 것 또한 재미이다. (상관없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이를테면, 여자는 오후 시간에 스포츠클럽에서 수영을 하는데 평소에는 30분이면 충분했던 것이 잠을 이루지 못한부터는 오히려 몸에 힘이 넘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아래의 인용 부분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감에서 [1Q84]의 여자 주인공 아오미야가 연상되었다. (아오미야는 요가 강사이고 수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없는 것에 비해 몸에는 특별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남편이 병원으로 돌아간 뒤, 나는 수영복과 타월을 챙겨들고 자동차로 스포츠클럽에 간다. 그리고 삼십 분쯤 그곳에서 수영을 한다. 수영을 하는 행위 그 자체를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수영을 하는 것은 그저 단순히 몸에 쓸데없는 살을 붙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부터 내 몸매의 선을 좋아했다. 내 얼굴을 좋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이 좋다. 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그 부드러운 윤곽이며 균형 잡힌 생명감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거기에는 뭔가 내게 무척 중요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

만일 서른이 된 여자가 자신의 육체를 마음에 들어 하고,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든 상태로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p.22)]

  

 

 

 후에 자신의 탄력있는 몸에 대한 예찬하는 장면이 또 나온다. 위의 부분을 읽고 나도 취미 삼아하고 있는 수영이 당장 하고 싶어졌다. 수영하는 장면은 여자의 불면증 기간 동안 책 읽기를 제외하고 시간을 보내는데 약간의 비중을 차지한다.

책의 메인 소재가 되는'불면증-잠'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지만, 결혼하고 미국에 온 이후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나의 생활이 불면증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삶과 맞닿아있는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에 이 책이 공감이 되었다. 

'고전'이란 몇 번의 실패와 포기 끝에 '마침내'읽게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백영옥). 뜻밖의 책에서 만난 [안나 카레니나]는 잠 못 이루는 여자를 통해서 하루키가 추천하는 책일 것이다. 하루키가 예찬해 마지않는 '위대한 개츠비'처럼 책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 [안나 카레니나]는 하루키의 추천 외에도 읽어야 할 의무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세공한 상자처럼 한 세계 속에 더 작은 세계가 있고 그 작은 세계 속에도 좀 더 작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들이 복합적으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우주는 내내 거기에 있으면서 독자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_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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