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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신화 속에서 인간 찾기, 개정판 ㅣ 거꾸로 읽는 책 22
유시주 지음 / 푸른나무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그리스 로마신화는 학창시절부터 필독서로 한 두번씩은 다 접해 보았을 것이다. 복잡한 신들의 이름부터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복수하고, 죽고... 혹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거나. 신화라고 치기엔 유치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필독서로 읽기엔 잔인하고 또 문란한 느낌도 들었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읽히려고 산 만화로 된 그리스 로마신화도 그 틀은 크게 틀리지 않았고,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이 한참 그 책에 필이 꽂혀 20권짜리 만화책 전집을 읽고 또 읽더니 하는 말이 ˝엄마, 그리스 신들은 사랑하고 애기낳고 복수하는게 전부인 것 같아요.˝ 였으니.
이 책은 내가 토요일마다 다니는 안산독서포럼 토론서로 읽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2주에 걸쳐 읽고 토론하는 모임인데 매주 토요일 2시간씩 모여서 토론을 하니, 한 권당 주어진 시간은 네시간이 된다. 네시간이면 웬만한 책은 그냥 읽어버릴 시간인데, 첨엔 뭐 그리 할말이 많은가 했지만 실제로 참여해 보니 항상 시간이 모자라다. 이 책의 경우에는 책은 읽었지만, 나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2주 모두 참석을 하지 못해서 모두들 모여서 이 책에 관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궁금하다. 물론 포럼후기가 밴드에 올라 오긴 하지만, 그 생동감이나 세세한 이야기들은 느끼기 어려우니까..
p.98-99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 길이 없었는데도 (중략),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를 왕비를 취한 것은 욕정 때문이 아니라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테베를 구해준 선행때문이었음에도, 어머니 이오카스테가 부은 발을 보고도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는데도 왜 모든 책임을 오이디푸스가 뒤집어 써야 한단 말인가.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기능을 `연민과 공포의 카타르시스` 라 갈파했다. 비극을 봄으로써 우리는 가련한 주인공에게는 연민을,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 앞에서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현.실.이 아니라 극장의 무대위에서 그것을 경험함으로써 훨씬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설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카타르시스`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운명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악행 때문에 오이디푸스가 파멸했다면 그에게 연민을 느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하는 반문으로 그만 오이디푸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다스리기로 하자.
* 신화라면 당연히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나의 편견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저자의 탁월한 식견에 무릎을 칠 뿐이다. 오이디푸스가 진정 자신의 악행으로 불행해 졌다면, 얼마나 김빠질 일인지. 삶은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선업으로 되는 것도 아니니 내가 불행에 처해 있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일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억울한 일에 처해있든지,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으로 방방 떠 있든지 나의 잘 잘못 때문은 아니다. 출발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이와 흙수저 물고 태어난 이가 따로 있듯이 인생은 공평한 것이 아니고 같은 길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 변덕스런 신들의 사랑이 언제까지 갈지 행운의 고개에서 웃기만 할 일도 아니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누군가 속삭여도 미다스의 손처럼 행운을 내가 망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니 행운이 꼭 행운인 것도 아니다.
p. 203
자신의 요구와 소망을 과대평가하고 앞세운다는 점 때문에 나르시시즘은 이기주의와 가끔 혼동된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객관세계를 주관적으로 왜곡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냉정하고 객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적인 사람은 객관적인 `이익`이 아니라 주관적인 `만족감`을 구하기 때문에 아무런 이익이 없는 일에도 집착할 수 있다. 요컨데 자기 자신과 바깥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는 게 이기주의와 구별되는 나르시시즘의 특징이다. 따라서 나르시시즘적인 사람은 자신을 미화하게 되고 자신의 결점이나 한계를 볼 수 없게 된다.
* 나르시시즘의 특징을 너무나 잘 설명해 준 부분이다. 밑줄을 긋고 별표를 쳐가며 읽었다.
이 책의 여러부분들이 다른 그리스로마신화의 책과는 다르다. 그리스 로마신화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 신화를 모티브로 한 신과 인물의 평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저자의 다양한 지식을 총 망라하여 분석한 그리스로마신화의 창을 통해 바라본 새로운 세상보기 같기도 하다. 신화와 세계 각국의 역사, 예를 들면 미국 서부개척시대 포티나이너즈-골드러쉬에 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와 미다스, 이카로스의 날개와 남미 혁명가 체게바라 , 트로이 목마와 한국의 군사독재시절을 연결하여 사고를 확장시키고 이해하기 쉽게 비교함으로 독자의 머리속을 쏙쏙 파고든다. 읽다가 흥미를 느껴 연관된 책들을 찾아보게 되니 독서의 길잡이서로도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을 느낄때, 생각의 정원을 거니는 마음으로 읽어보아도 좋겠다. 인생의 부조리는 나만 가두어 둔 감옥이 아니고, 오이디푸스에 비한다면 내 작은 억울함은 그닥 가슴을 칠 일도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