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품집 청소년문학상 작품집 1
강선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강가에서

강가에는 고요가 깔리고
햇님은 붉은 그림자를
잔잔한 물결 위에 드리웁니다.
절벽과 바위와 작은 모래 알갱이들은
시간을 초월한 형제와 같고
어느 노부부는 나의 길을 가로질러
저편 강둑의 집을 향하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었습니다.
이편의 나와 저편의 그들의
세월의 냄새가 향긋하게 스쳤습니다.
기러기도 없는 강둑엔
조개 껍질들이 밀려와 쌓이고
갈대들이 무성히 피었다가 지고
이름 모를 풀들이 담뿍한 숲이 시들어 갔습니다.
조금만 돌아가면 보이는
사람들의 집 아래 강마루엔
아직 거두어지지 않은 누런 호박들이
서리를 맞은 채 굴러다니고
나는 햇님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강물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부부의 모습이 저 멀리로 하나의 점이 되어 멀어져 가고
나 혼자 남은 이편의 강에서는
또 하루의 번뇌가
한숨처럼 가볍게 날리고는 사라집니다.
나는 물결이 미치는 젖은 모래를
다음 물결이 밀려오기까지 발자국을 내며 걸었습니다.
때가 되면
그 발자국은 물결이 담아
나는 갈 수 없는 저 먼 세계로 전해 갑니다.
어느 해질 무렵 강가에는
고요가 쌓이고
고요 속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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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고3때 우연히 참가하여 입상하였던 문학사상사 청소년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찾았다. 고등학교시절 문학은 나에게 자동사였다. 내가 절절한 가난 속에서 전후기 대학입학시험 조차 포기하고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만으로 유한대학 전산과에 입학할 때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 길이 그저 돌아가는 길일뿐, 내가 문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로 돌고 돌아 이십년이 넘게 흘렀다. 나는 문학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극적 소비자로 살고 있었다.
지금은 ?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개월이 지난 지금은 책이, 시가, 생산의 대상도 소비의 대상도 아닌 삶의 위로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공기로 숨을 쉬듯이 모든 고민하는 자들 의문을 품은 자들이 당연히 모이는 곳. 그곳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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