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버리 소설집 1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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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와 여름, 여름의 장소>


 

 

레이 브래드버리를 읽는다. 브래드버리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 가운데 하나일 <화씨 451>은 몇 해 전 여름에 읽었는데, 이 소설이 특별히 흥미롭지는 않았기에 좋아하는 작가가 될 줄 몰랐다. 그러다 재작년 겨울 장편 소설 <민들레 와인>을 읽고 나서는 곧바로 브래드버리의 팬이 됐다. 이번 여름에는 브래드버리의 단편 모음집 <멜랑콜리의 묘약>을 읽었다. 한 권짜리 단편집인데 편수가 많아서 한국에서는 <멜랑콜리의 묘약>과 <온 여름을 이 하루에>로 나뉘어 번역되어 있다.


 

브래드버리 하면 생각나는 단어는 여름. 아마도 브래드버리는 여름을 누구보다 깊게 사랑했으며, 여름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여름을 생각하며 보냈던 사람 같다. <멜랑콜리의 묘약>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단편들은 꼭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느껴진다.


 

(이 단편집 한 편에서만도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여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여름 피서를 가게 된 조지가 자신이 사랑하는 화가를 모래사장에서 만나게 되는 <어느 잔잔한 날에>, 여름 해질녘을 배경으로 체격이 같은 사람들이 멋진 양복 한 벌을 돌려 입으며 벌어지는 소동이 그려지는 <멋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색 양복>, 다락방에서 자신이 살아 온 여름들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 사막 한 가운데의 호텔에서 뙤약볕 아래 살아가는 투숙객들이 나오는 <영원히 비가 내린 날>, 7년 동안 내리는 빗속에서 태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잔혹한 이야기 <온 여름을 이 하루에>, 여름날 마지막으로 운행하는 전차가 그려지는 <마지막 전차 여행> 등.)


 

이 단편들 중에서도 <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의 다락방, <영원히 비가 내린 날>의 사막 호텔과 <마지막 전차 여행>의 전차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한국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다락방이 없고, 나도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락방에 대해 어떤 종류의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린다. <하이디>에서는 묵을 곳이 없는 하이디에게 할아버지가 다락방에 짚을 깔아 침대를 만들어주고, 다락에서 하이디가 보는 별이 가득한 밤이 참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봤던 공포 영화에서 다락방은 무서우면서도 결정적인 사건이 마지막으로 벌어지는 곳이었다. <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의 다락방으로 한 번 떠나보자.


 

"당신은 다락방이 뭔지 알아? 다락방이란 타임머신 같은 거야. 거기 있으면 나 같이 늙고 어리석은 사람도 4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일 년 내내 여름철이고 아이스크림 장수의 수레 주위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던 그때로 말이야."


 

다락방에 쌓여있는 물건들은 어떻게 보면 세월을 건너오면서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다. 다락방에 다시 들어가는 순간 내 앞에 도착한 과거의 시간. 사람들 대부분이 옛 추억이 담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자 하는 것도 이 물건들이나 사진들을 남겨두는 행동은 지나간 시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 중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리라. 단편 속에서는 다락을 "그곳의 분위기 자체가 '시간'인 곳"이라고 일컫는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 중에서도 여름을 특별히 사랑한 윌리엄은 다락방에서 엉뚱한 착상 속으로 이끌린다.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세월 사이를 달려간다면, 한 해와 한 해 사이를 오가면서 일주일은 1909년을 살고 또 하루는 1900년을 살고 한 달이나 보름 정도는 1905년이나 1898년의 어디쯤에서 보낼 수 있다면, 당신은 평생 여름을 살아갈 수 있어."


 

여름만 살기.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아마도 이전에 들었다면 혹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계절 속에서 여름을 생각하며 보내는 일, 봄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는 일들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알기 때문에 이런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할 것 같다.


 

 

<영원히 비가 내린 날>은 사막에 있는 호텔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다. 이야기는 사막과 더위가 불러일으키는 무더운 이미지, 더위만으로도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미지에 충실하다. 사막의 호텔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중 생각나는 창작물은 정말 좋아하는 만화 <호텔 아프리카>, 그리고 호텔 아프리카 이전에 나왔던 영화인 <바그다드 카페(이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이 단편에서 주인공들은 에어컨이 없는 열약한 호텔에서 일 년 중 하루, 비가 아주 거세고 시원하게 오는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왜 일 년 중 하루만, 그리고 딱 그 날에만 비가 오느냐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안에는 터무니없고 설명되지 않지만 절대적인 사건이 있지 않은가. 그 같은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범위를 한 사람에서 여러 사람으로 태연하게 확대해 놓은 것이 브래드버리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비는 약속을 어긴다. 그렇지만 비대신, 비보다 더 인간적이고 우아한 또 다른 기쁨이 이들을 찾아온다.


 

 

 

<마지막 전차 여행>은 제목이 스포일러인 경우. 정말로 전차가 운행되는 마지막 날의 전차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애틋한 이야기다. 전차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도시에서 전차가 다녔던 걸 옛날 영화들을 통해서 알았다. 전차를 배경으로 한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은 영화 같게도 영화를 찍은 바로 그 날이 전차가 운행을 하던 마지막 날이었다고. 부산을 걸어 다니다 보면 군데군데 전차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길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를테면 중앙동의 40계단 밑에 있는 거리들에 남아있는 전찻길. 10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가 눈으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기만 하고, 이 길 위에 전차가 다녔다는 걸 상상으로도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그렇게 얘기만 듣고 영화만 봤던 전차를 원 없이 타본 건 홍콩에서의 일이었다. 홍콩은 아직 2층 전차들이 지나다니고 있고, 대개 그 구간을 지나는 가장 저렴하면서 빠른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직도 전차를 애용한다. 아주 낡은 전차도 있는 반면 만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티가 나는 전차들도 있다. 기관사들은 모두가 남성들인 게 아니어서, 여성 기관사님이 몬 전차를 탄 날에는 왠지 신났다. 전차를 타보지 못하고 그려보기만 했던 시간이 긴 탓일까 막상 전차를 타고 나서는 내가 전차를 타고 있다는 것에 적응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전차가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동안 시간 역시 흐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체험되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다른 교통수단을 타도, 타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흐르는 시간만큼 교통수단이 더 멀리 나아가는 건 매한가지인데도. 전차를 타고 있는 동안 전차를 탄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본 이미지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주로 전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사진 찍으며 보냈고, 어떻게든 전차에 내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실감시키려 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가 정말 전차를 좋아하는구나 깨닫기도 하고.


 

 

전차를 잘 모른 채로 사랑하는 나도 '전차의 마지막 운행'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슬픔이 차오르는데, 전차와 함께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 전차와 맞게 되는 작별이란 얼마나 슬플까. 이런 슬픔과 대조되듯 소설 속에는 눈부신 여름날의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전차는 마법에 걸린 증기 오르간처럼 서서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전차가 놋쇠 냄새를 풍기는 동안 아이들은 잘 익은 체리를 먹었다. 아이들 옷에 스민 밝은 전차의 향기가 여름 바람을 타고 멀리 퍼졌다."


 

"전차는 아이스크림 가게 안처럼 고요하고 시원하고 어두웠다. 아이들은 연한 초록색 벨벳 천이 바스락대도록 조용히 의자를 돌렸다. 그리고 고요한 호수와 버려진 야외음악당과 해변을 따라 걸을 때면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실로폰 같은 산책로를 등지고 자리에 앉았다."


 

이런 문장들 앞에서 무슨 수로 여름날 떠오르는 풍경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물질적인 전차는 마지막으로 운행되지만, "다시 꿈이 시작되면서 전차는 땅속 깊이 숨겨진 철로를 따라 어딘가 묻혀 있는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나리라."


 

 

소개한 세 편의 이야기 외에도 <멜랑콜리의 묘약>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아포칼립스 이후, 혹은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레이 브래드버리 본인은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듯 평생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 기차만 타며 여행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게 많은 사람이 왜 항상 폐허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금은 아포칼립스 이후,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어떻게 보면 최악의 상황이 닥치고 나서도 삶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힌다. 아포칼립스 이후의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재밌기도 하지만, 삶이 상실된 자리에서도 삶이 계속될 수 있으리라는 바람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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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 검은 머리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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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그 이유 중 하나는 뒤라스가 자신이 겪었던 삶의 비밀을 말로 표현할 수 있든 표현할 수 있지 않던 기록 하고자 한 작가라는 이유다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스라치는 깨달음의 순간이깨달음 이후로 깨달음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단절을 만들어내는 깨달음의 순간이 존재할 거다어떤 사람들은 이 깨달음을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고 표현하고또 다른 사람들은 동심을 잃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또 어떤 사람들은 어른이 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사실 이 깨달음은 무게만 무겁고사람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는 변화만 만들어낼 따름이지 어느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서는 전혀 가치가 없을 수 있다한 사람은 이 깨달음을 알기 때문에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더 제멋대로가 되어버릴 수도 있고죽음과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런 비밀의 순간변화의 순간을 목도하고 난 뒤에 작가는 이 순간을 돌이키며 다시 적는다그렇지만 적을 때읽힐 때그 순간은 온전하고 생생한 현재가 된다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현실에 맞닿아 있는 채로.

   

 

  대부분의 뒤라스의 소설은 이 깨달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인지한 상태로 쓴 소설이다깨닫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과거가 다시 한번 살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상태가령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뒤라스의 소설 <파란 눈 검은 머리>에서 주인공인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여름의 한순간에서 시간 상으로는 벗어나 있지만기억으로는 벗어나 있지 못한다그들에게 현재는 없는 거나 다름없다다른 말로 바꿔 말하자면그들에게 과거의 그 한순간은 어느 때보다 더 현실적인 현재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수한 역설 속에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안다이 이야기에서는 한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이 말하기 시작한다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은 동성애자 남성으로그 남성이 (동성애자이므로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 남성을 사랑한다동성애자 남성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성적 욕망을 실현해주지 못한다그들은 함께 그 불능을 본다사랑의 불가능함을 본다.

 

 

  그런데 그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또 다른 욕망이 생겨나고사랑이 진행된다. (리베카 솔닛과 다른 사람들이 말했듯욕망은 욕망을 가진 주체가 욕망하는 대상과의 거리가 절대 좁혀지지 않는 때에야 발생할 수 있으니까주체와 대상 간의 합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욕망은 충족되고 충족 이후에는 소멸이 뒤따른다욕망의 바깥에는 욕망이 생겨난 사유가 있고한 사람이 욕망의 안으로 들어서고 나면 그 사람은 사유를 망각하기 마련이다망각해야지만 온전한 욕망 속에 존재할 수 있으므로소설 속의 두 인물은 그러나 이 욕망을 사유한다사유하는 과정에서 욕망은 분석된다.

 

 

  소설은 이 분석의 과정을 보여준다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로 그 일을 겪고 난 사람이 일의 원인을 찬찬히 분석해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자세로인물들은 더는 말할 수 없는 상태에 관해서 말한다.

 

 

  만약 사랑의 가능성이 사랑의 불능에 있다면아마도 헤테로 사이의 사랑은 남성과 여성이 너무나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될 것이다동성 사이의 사랑은 그들이 같은 성별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르다는 사실다르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으나 그 사랑할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다 말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통속적이라고 불리는 삼류 영화 삼류 이야기들의 사랑에 관해서 생각해봤다이 이야기들은 모두 인위적인 구석이 있다작가가 이야기를 만들 때 이 인물들이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조건화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예를 들어 가진 돈의 양이 다르다는 것에서 비롯된 신분의 격차또는 사랑의 대상이 어긋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삼각관계혼인으로 묶인 사람이 있으나 그 약속 외의 사람을 사랑하게 되며 발생하는 불륜그러나 이 사랑할 수 없는 이유 속에서 얼마나 자주 사랑이 발생하곤 하는가사랑하면 안 될 사랑이 발생하곤 하는가.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랑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사랑의 주체들조차 불가능한 조건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각본이 생성한 사랑 안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이 사랑과 거리를 지키며 사랑의 출처를 묻는 행위, "그녀가 말한다사람들은 지금 그들이 사는 모양새로 살게 될 거라고사막에 내버려진 육체를 가지고 그와 함께마음속에는단 한 번의 키스와단 한마디 말과단 한 조각 시선을 하나의 오롯한 사랑을 떠안는 기억으로 품고서." 라는 구절처럼 이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며 사랑에 대한 기억만을 가지고 살겠다는 행동은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이 과정과 이 경험은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닐 수 없는 사랑이 되는 거라고 소설은 이야기한다인물들은 사랑을 깨닫는다깨닫는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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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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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즐겁게 읽고 있는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 이 책은 추억에 대한 기억과 장소(주로 대만)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나에게 더없이 필요한 책이다.

 

 

 

책의 초반부에는 다른 환경에 내던져져 살아가게 되면서 삶도 욕망도 완전히 달라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나도 정확히 같은 경험을 했다욕망의 작동은 무의식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삶과 연결되어 있다미래의 방향을 현재에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는 대부분 욕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나도 모르는 새에 욕망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향하기 마련인 것 같다.

 

 

 

상실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상실은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의 시작이니까신화나 전설 속에서 사람들 (혹은 신들)은 무엇인가를 잃고그것을 찾아 헤매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거나 큰 희생을 치른다무언가를 잃었고 그것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감각혹은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다는 감각은 왜 이렇게 압도적인 힘을 가질까매순간이 이전의 순간과 작별하며 멀어지는 인간에게 상실은 필수불가결한 삶의 조건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와 시간에 대해선 정말 여러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 왔다영화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그 시간을 다시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그러나 붙잡아둔 시간은 결국 본래의 그 시간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묘한 매체다특히나 시차가 많이 나는 영화들을 볼 때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것을 시각적으로 다시 체험하는 순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건 상실에 대한 방어책이면서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체험이기도 하다는 걸 느낀다.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는 잃는 방법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서답게 상실에 대한 역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런데 상실의 감각이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풍요로움에 대한 기억이자 우리가 현재에 길을 찾도록 도와줄 단서들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므로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은 과거를 잊는 기술이 아니라 손에서 놓아주는 기술이다그리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우리는 그 상실 속에서 풍요로울 수 있다."

 

 

 

상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상실이 연상시키곤 하는 무에 가까운 감정에서 건져주는 말인 것 같다상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런 것 아닐까돌이켜보면 내가 쓴 시 대부분도 추억과 관련된 시들이다이미 상실했지만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며 여전히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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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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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틈틈이 읽었기 때문에 읽는 내내 몰입해서 읽지도 못했고 부분부분 어렵사리 읽어나갔다. 초반부는 특히 더 집중이 안됐다. 그렇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이 소설을 시작하기를 너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배수아 소설 뿐만이 아니라 읽은 한국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이렇게 말한 걸 뒤엎을 만한 또다른 좋은 소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이 빈곤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한국에서의 빈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개인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더 와닿게 느껴졌을 수 있다. 

작가의 말 :"이것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빈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분명한 빈곤인 개인적으로 겪는 가난, 궁핍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자기애의 치명적인 상처 등이다. (...)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거나 혹은 직접 만나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서 빈곤을 읽었다. 가난을 겪은 사람이나 심지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말고는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읽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조차 있다. 극단적으로 단언해서, 나를 포함해서, 빈곤하지 않은 사람을 나는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인용한 부분처럼, 빈곤의 층위는 다르겠지만 살면서 한번도 빈곤의 문제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여러 모습의 빈곤과 연관된 인물들이 나오는데, (배수아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통일된 이야기를 갖고 있다거나 그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확실히 설명할 수 있지는 않다. 그들의 모습은 일화 속 조연처럼 모호하고 단편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다만 그 중 후반부에 나오는 한 사람에 대한 부분적인 이야기는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인데 그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은 야만적이다. 그것은 노동을 강요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용은 노동을 하지 않고, 친척이 노용에게 주고 나서 잊은 집에서 기거하며,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을 먹고 식당에서 남은 재료를 구해 먹는다. 노용에 대한 이 간략한 소개는 바르다의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바르다의 이 영화에서도 (노용과 노동에 관한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시장에서 버려진 음식을 줍고 쓰레기통에서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사람들을 바라보는 바르다의 애정 가득한 시선이 느껴졌었다. 이 책에서 역시 '노용'이라는 허구의 캐릭터를 알게 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작가의 애착과 더불어 '노용'이 느끼는 노동에 대한 거부감과 가난의 한 부분은 곧 읽는 누군가의 옆에 있는 사람의 한 부분, 혹은 읽는 사람 그 자신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빈곤의 기억이란 정말 묘하다. 각자 서로 정말 다른 모양의 빈곤을 경험하면서 빈곤의 기억으로 가끔씩 연결될 수도 있다니. 

그렇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작품 안에서 빈곤에 대해 공동체 의식을 느끼는 인물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시한다. 

("(백두연:) 역사란 개인사의 불행에 대한 원망의 대상으로만 머물기에는 부적합한 것이죠. 왜냐하면 그런 개인의 역사가 바로 한국의 역사이고 우리가 짊어지고 그리고 물려주는 유산이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시간을 매개로 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는 가장 영원에 근접한 존재입니다."
/(...) '그러나 곧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의 기억이 그를 순간 떨게 했다. 굶주림이나 추위, 외로움 따위에 대한 공포만은 아니었다. 집을 나간다 할지라도, 그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이 땅에서 결코 아주 다른 곳으로는 떠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왜 백두연은 공허한 웅변으로 결코 자랑스럽지도 않을 그를 자신과 같은 역사의 무리 안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일까. (...) 그들은 공통점이 없었다. 그들은 한시도 같은 '역사' 안에 머물렀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그는 일생 동안 한국인도 뭣도 아니었다. 오직 무참히 짓밟힌 인간, 그것일 뿐.')

동일시와 동일시가 야기할 수 있는 폭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타인으로 구분지어야 하는가? 가난으로 어떤 사람과 동일시를 느끼는 게 옳지 않은 점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결국 어떤 지점에서는 동일시를 느끼는 건 어떻게 된 감정일까? 여러 의문들이 든다. 의문들이 해결될 거라는 확신이 없어도 빈곤의 문제를 다룬 영화와 소설을 보면 어떻게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타인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만큼만, 원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하는 게 그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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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가 아니다 세계사 시인선 139
이승훈 지음 / 세계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쓰고 싶은 일기가 있었는데 그새 까먹어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싶다) 산책 얘기를 했다. 생각이 유난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날들인데, 의식적으로 멈추려는 노력을 자주 한다. 아마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각이 불안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겠고, 그러기는 싫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이승훈의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에 실린 시들은 화자의 생각의 흐름을 잘 관찰해 볼 수 있는 시들이다. 시 같은 일기이고 일기 같은 시다. 손자들과의 즐거운 일상도 실려있는 한편, 


(“석준이(초등학교 3학년) 아니면 호준이(여섯 살) 짓이다 그들은 아파트 4층에 살고 나는 3층에 산다 나를 놀리는 거다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이젠 안 속는다 안 속아 또 현관 벨 소리 이번엔 나가지 말고 방에 앉아 있어야지 내가 모를 줄 알고? 계속 벨 소리다 참다 못해 호준이지? 큰소리치며 문을 열면 신문 구독료 받으러 온 낯선 사내가 서 있네”,<현관 벨 소리>)


언어에 관한 생각, 시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기도 하다. ("결국 난 시를 쓰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 시를 버리려고 언어도 버리려고 모두 버리려고 담배도 바꿨다", <시론>) 시를 말하지 않으면서 시를 말하고 있는 역설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시집을 읽고 가장 자주 느껴졌던 것, 가장 좋았던 점은 이런 시들에 관한 화자의 저항 불가능한 사랑이 느껴진다는 거다. ("시는 창조가 아니라 표류이고 이 표류가 표류가 기쁘다 목적이 없어 기쁘고 묶이지 않아 기쁘고 여기저기 흩어져 기쁘다", <시론>) 시가 뭔지도 모르고 아마 앞으로도 모르겠고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그러니까 시의 조건도 없겠지만, 그래도 시를 사랑하는 일. 남는 건 시가 좋다고 말하는 일. 시의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해도 사랑하는 일. 


 (“손이 떨려도 좋아 글자가 틀려도 좋아 감기에 걸려 또 약을 먹었지 바른 손이 저리면 왼손도 저리고 저려도 좋아 저려도 좋아 이런 시는 쓰지 않아도 좋아 감기에 시달리며 가을이 가네 그대 소식 없어도 좋아 인제 가던 길가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기침하는 가을이 좋아 떨리는 글씨가 좋아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어느 날 그대 낙지 천국에서 매운 낙지 먹고 난 고등어 먹으리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바람에 흔들리는 백지 읽을 수 없어도 좋아”

<손이 떨려도 좋아>)



이렇게 좋다는데 무작정 좋다는데, 읽는 내가 이 시들을 안 좋아하고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그저 같이 좋아할 수밖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런 세계가 있을까 감탄하게 되기도 했고! 



이승훈은 고등학교때 친구가 읽어서 어깨 너머로 좋아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전집을 산 시인이다. 전집은 이승훈이 살아 있을 때 출간되었다. 한 권의 전집에 아쉽게도 그의 모든 시들이 들어있지는 않다. 아마도 본인이 선택한 모양으로, 거의 대부분의 시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빠진 시들이 있다. 정말 좋은 시들이 빠지기도 했어서, 전집을 사서 훌훌 넘기며 읽었어도 시집 한 권 한 권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의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를 읽기 전에 잠깐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이미 아는 세계를 또 들여다봐도 괜찮을지. 읽고 나서는 역시 생각이 바뀌었다. 아는 세계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보는 것은 머무름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찾아내서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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