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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평점 :
요즘 정말 즐겁게 읽고 있는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 이 책은 추억에 대한 기억과 장소(주로 대만)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나에게 더없이 필요한 책이다.
책의 초반부에는 다른 환경에 내던져져 살아가게 되면서 삶도 욕망도 완전히 달라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정확히 같은 경험을 했다. 욕망의 작동은 무의식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삶과 연결되어 있다. 미래의 방향을 현재에 결정하고자 하는 욕구는 대부분 욕망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에 욕망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향하기 마련인 것 같다.
상실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상실은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의 시작이니까. 신화나 전설 속에서 사람들 (혹은 신들)은 무엇인가를 잃고, 그것을 찾아 헤매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거나 큰 희생을 치른다. 무언가를 잃었고 그것을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감각, 혹은 더 이상 되찾을 수 없다는 감각은 왜 이렇게 압도적인 힘을 가질까. 매순간이 이전의 순간과 작별하며 멀어지는 인간에게 상실은 필수불가결한 삶의 조건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와 시간에 대해선 정말 여러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 왔다. 영화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그 시간을 다시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나 붙잡아둔 시간은 결국 본래의 그 시간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묘한 매체다. 특히나 시차가 많이 나는 영화들을 볼 때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것을 시각적으로 다시 체험하는 순간 내가 경험하고 있는 건 상실에 대한 방어책이면서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체험이기도 하다는 걸 느낀다.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는 잃는 방법에 대한 제대로 된 안내서답게 상실에 대한 역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그런데 상실의 감각이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풍요로움에 대한 기억이자 우리가 현재에 길을 찾도록 도와줄 단서들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은 과거를 잊는 기술이 아니라 손에서 놓아주는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상실 속에서 풍요로울 수 있다."
상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상실이 연상시키곤 하는 무無에 가까운 감정에서 건져주는 말인 것 같다. 상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서 사람들이 일기를 쓰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런 것 아닐까. 돌이켜보면 내가 쓴 시 대부분도 추억과 관련된 시들이다. 이미 상실했지만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며 여전히 소중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