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지음, 오수연 옮김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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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은 무지무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떨 때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감정이 거의 안 느껴지는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주 지쳤을 때는 들어오는 것도 내치게 된다. 그렇지만 내친다고 생각해도 그걸 뚫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고, 그렇게 들어올 것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달 초에, 겨울이 시작되고 힘들었을 때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읽고 그의 시들을 사랑하게 된 이후로 세상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시인을 손닿는 데까지 찾아봐야 갰다고 마음먹었었다. 팔레스타인의 시인이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시인이라는 설명에 시집을 사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고등학생 때와 대학교 1학년 때,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동네의 이름들을 익히며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영어로 손으로 전하는 얘기를 들었다. 언론에 실리지 않는다는 참상을 들었다. 불안한 뉴스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을 지나갔다.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다정했다. 인사하면 꼭 차를 대접해주셨다. 시인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다가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고향을 말하는 이야기가 시의 곳곳에 담겨 있다.


 



 

"




언젠가 집에 닿으리.


 

 

 

어깨에서 짐 내려 문간에 놓으리. 거기 아무도 없으리. 빈집의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서 조용히 앉으리. 석양빛의 검이 집을 반으로 가르고: 어두운 쪽, 밝은 쪽. 나는 어둠과 빛 사이에 앉아 있으리. 과거는 냇물처럼 내 뒤로 흘러가고, 미래는 달팽이처럼 내 앞에서 꾸물대고, 나는 시간을 모르고. 거기서, 침묵 속에서, 빛과 어둠 사이에서, 나는 돌이 되리. 테두리가 부조로 장식된 거대한 바위 위 석상이 되리. 조각가의 손이 정으로 내 허벅지를 새기리: 이것이 경계. 이것이 댐. 과거의 물은 과거로 흐르고, 미래의 물은 반대쪽으로 흐르고.


 

 

 

<언젠가 집에 닿으리>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여기 주민이오. 닭을 길렀소. 하늘에 별을 뿌리고 땅바닥에 등 깔고 누워 세었소. 하나도 빠뜨림 없이 세었소.


 

해가 떨어지더이다. 문에 뚫린 구멍으로 한 다발의 석양빛이 들어와 내 가슴에 꽂혔소. 빛이 나를 죽였소. 나는 빛에 살해당한 자요. 언어가 남쪽으로 기울더니, 나는 죽어 있더이다. 나는 언어로 살해당한 자요.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


 


 

 

 

무함마드의 시에서 가장 와 닿았던 감정은 절망이다. 시의 화자들은 떠도는 사람이다. 이 떠도는 사람들이 절망을 얘기할 때, 때로는 절망이 절망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오랜 절망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 모든 절망 위에서 화자는 절망이 절망이 아니라는 듯 그 위를 거닌다.


 

 

 


 

"


 


내가 잠들면 오는 친구가 있어. 나는 묻지. "넌 어디에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사라져버렸어?" 그는 미소만 짓고 답하지 않아. 말 너머의 미소, 내 가슴이 따뜻해져.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는 그가 삼십 년 전에 죽었다는 걸 깨달아. 매번 그래. 매번 나는 그의 죽음을 새로이 알게 돼.


잠 속에는 죽은 사람이 없어. 거기에는 손실이 없어. 생시에 잃은 것을 잠 속에서 찾지. 그게 내가 잠자기를 즐기는 이유야. 어떤 이들은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듯이, 들에 나가듯이 잠자리에 들어.


 

 

 

<내가 잠들면>


 

 

 

 



 

발이 고통을 지워. 걷는다는 건 삭제의 잔치야, 앨리스.


말은 열린 들판을 그리워하지만, 사랑은 닫힌 축사야. 앨리스.


 

 

 

<한때 너를 사랑했지>


 

 



 

다만 당신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접시를 깨는 거다. 접시를 깨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일들이 있다. 나는 여기 이 밑에 있지만 내 영혼은 저 위로 솟구친다.


오, 이 따위 믿지 마. 시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 나는 손이 떨리고 다리를 전다. 그런데 시는 사물을 뒤집어놓는다:


절망에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접시를 깨는 이유>


 

 

 

"


 



 

시들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하게 되는 순간은 다른 매체에서 담을 수 없는 통찰이 하나의 시 안에 담겨 있을 때 같다. 무함마드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는 화자가 느낀 통찰이 나에게 전해져올 때가 유난히 많았다.


 




"


 


'영원한'이란, 예컨대, 엄청난 단어지. 손아귀에 가득 차는 돌처럼. 나는 이 돌을 던져 죽음의 이마를 맞추겠네.


'침묵'은 제 불을 제 입으로 꺼버리는 등잔처럼 연기 나는 단어.


 


 

<언어>


 

 

 



 

그런데 없는 게 있습니다: 대추야자나무 밑에서도, 샘에서도 그걸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거 없이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


 


뭔가가 없습니다.


저는 속이 빈 토상,


신이여, 제게 뭔가 없다는 것만 압니다.


 


<없는 것>


 

 

 

 


 

그런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청구가 아니라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불가능은, 신이여, 우리가 그 밑에서 태어난 나무예요.


 

<불가능>


 


"


 

 

 

 


시간을 두고 한 번, 그리고 인용하면서 두 번을 읽었는데 시간을 더 들여서 읽고 싶은 시집이었다. 때로 어떤 시집은 내가 느끼던 고통들과 감정들이 뭔지에 대해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설명서 같다. 언어로 표현되면서, 언어에 담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언어에 담겨지면서 시가 곁에 와서 앉는다. 시의 화자를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도 알아도 알아도 알 수 없는 존재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알고 싶은 생각들이 있고 궁금한 마음들이 있다. 신경이 쓰이는 마음이 있고 공감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음악을 하면서 이 마음들을 열어놓는다는 생각을 한다. 알 수 없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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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세트] 그린빌에서 만나요 (총4권/완결)
유시진 / 서울미디어코믹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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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꼽을 수 있는 만화 가운데 하나인 유시진님의 <그린빌에서 만나요>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새해 기분이 새로운 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섭섭해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새로운 일들은 일어나니까요.


그러니, 준비하세요. 모든 새로운 것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만화 스터디에서 발표할 계획을 세우느라 들춰 본 시점과 딱 맞는 말이 적혀 있었다. 가을에도 새로운 일이 일어날까?


 

주인공은 도윤이. 플루트를 전공하고 있는 우울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다. 우울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도 않고. 새로운 것이라곤 익숙하지 않은 도윤이의 아래층에 이름이 ‘사이비’와 ‘사이언’인 남매가 이사 온다. 고양이를 협동해서 구조한 것을 계기로 이 셋은 친해진다. 친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여러가지겠지만, 이들은 우선 서로를 조금씩 편하게 대하기 시작하고, 같이 밥을 만들어 먹고, 고양이와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도윤이는 혼자서만 가지고 있던 자신의 트라우마에 관한 여러 생각과 관련된 질문들을 이 남매와 묻고 답하기 시작한다.


 

질문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확장되고,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한다. (주인공 도윤이는 관심이 없지만) 도윤이를 친구로서 좋아하는 친구 한수. 그리고 도윤이를 찍고 싶어 하는 영화부의 바다. 인간관계는 어느 하나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게 없다. 예상하지도 못한 친구의 말에 잊고 있었던 트라우마가 끌어올려지기도 하고, 그 트라우마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도윤 자신이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 만화를 구성하는 대사의 반에 가까운 분량이 주인공 도윤의 독백이라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도윤의 대화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는 거울처럼 기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타인과 나누는 대화는 그럴 수가 없어서, 도윤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자꾸만 새로운 사실을 깨우쳐 간다. 감정 때문에 자기 자신 외에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기. 도윤이와 이언 형이 나누는 대화를 잠깐 보면 이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나 하는 게 와 닿고, 새삼스럽게 타인과 나의 삶 또한 그만큼이나 다르다는 걸 인식하게 된다.


 

 

"글쎄, 원치 않아서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라면-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까? 그렇지만... 그래도 불안한걸."


"왜?"


"왜냐면 그 기억들이,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잖아? 그런데 나는 기억 못하고 있는 거고. 막막하고 갑갑해진다구. 나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 뭔가 거기에...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내가 놓치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이 말이야."


"음...내 생각에는 말이야. 기억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야. 그 기억들이 지금의 너를 이루고 있는 요소라는 것이 중요하지.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있는 너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여기 존재하는 이 순간의 너에게 제대로 집중할 수 있다면-너는 아무 것도 놓치는 게 아니야."


"...정말 그럴까? 정말로?"


"응."


"...형은?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아?"


"하하. 응. 나는 현재밖에 없는 사람이야."


 

 

왜 어떤 사람은 기록 광이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중요한 일을 기록해 두지 않고 물 흐르듯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도윤이가 자신의 삶을 이루고 있는 기억을 찾아내고 과거를 수집하려고 하는 전자의 사람에 가깝다면, 도윤이와 친해지게 되는 이비와 이언은 현재만을 사는 사람이다. 전자의 삶을 살 때 우울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건 사실이다. 일례로 나 자신을 들고 싶다. 나도 도윤이처럼 뭔가 소중한 걸 놓치지 않았을까, 어떨 때 갑자기 불안이 몰려오고는 하는데 과연 이 이유는 뭘까, 갑갑해 하면서 현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미처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 만화는 전자의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후자로 바꿀 것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 다른 삶을 비교해 보며 뻗어나갈 수 있는 생각의 여러 갈래들을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뿐이다.


 

 

[이언 형이 그런 말을 했지. 형하고 이비 누나에겐 현재밖에 없다고. 그런 식으로 살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거야.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이야.


지금 이 순간을 잡아 놓을 수 있다면, 보관해 놓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순간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린 미래 어느 시점에 꺼내 볼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지지 않을까, 생각해.


왜냐면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사랑스러우니까.


미래의 지금이 될 그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더라도


또한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지금 느끼니까.]


 

 

도윤이는 현재밖에 살고 있지 않은 이비와 이언 틈 속에서도 이렇게 이 순간을 잡아놓고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도윤이 소중한 시간을 남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기저에는 소중하게 보낸 시간이 적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혼해서 같이 살지 않는 도윤의 어머니는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도윤은 그런 무관심한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애정을 요청해봤자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요청 전부터 낙담했다. 도윤은 어머니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인 플루트를 잘 불게 되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어머니는 플루트에 관심이 있었던 거지 자신이 부는 플루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낙담은 더욱 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 이후로 플루트를 관두고, 어머니와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도윤은 정적이 가득한 집에서의 삶의 축으로 플루트를 다시 선택한다. 어쩌면 이 플루트를 계속 불다 보면 어머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도윤은 그렇게 다시 플루트를 분다. 불면서 플루트 자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플루트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공유하면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게 된다. 즐거운 일은 즐거운 일일 뿐, 처음 이 플루트를 시작한 동기라거나 앞으로도 계속 이 플루트를 불게 해주는 원동력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고, 자신이 플루트를 재미있게 불고 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 뼘 한 뼘 눈에 보이게 성장해 나간다.


 

 

바다는 그런 도윤이를 찍는다. 자신을 자꾸자꾸 묻고 싶어 하고,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다시 한 번 돌이켜 기억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도윤이를.


 

"내가 찍고 싶은 건...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움직임. 소소한 것들. 처음으로 생각해보고, 깨닫고, 뭔가 느끼는 현장.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 작고 사소해도 절실한 것들. 그런 재료들을 모아서 그들의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리도록 정리하고 다듬어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이야.“


 

이런 것들을 찍고 싶어 하는 바다와 도윤은 도윤의 이야기로 구성된 몇 장면의 다큐를 찍는다. 처음에는 캠코더에 대고 얘기하는,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기분으로 얘기해 나가던 도윤이는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이 캠코더 뒤의 바다에 대고 얘기하고 있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관계는 친구라는 사실도.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들이 기대에 가득 차 다가오다가 사실은 도윤에게 아무것도 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멀어져 가는 게 두려워서 도윤은 일부러 방어 대책을 세우듯 모두를 무신경하게 대해왔다. 그렇지만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친구가 어느새 되어 있다는 사실에 도윤은 놀란다.


 

도윤이 처음으로 아주 사랑했던 이비와 이언은 (도윤이는 정체를 모르지만, 그리고 만화 내에서도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인간은 아니다. 이비는 인간의 시력을 먹고 살고, 이언은 인간의 미각을 먹고 산다. 그들이 노렸던 도윤이가 점차 성장해가고 서로 사랑하며 보내는 날들 속에서 그들은 도윤이의 시각이나 미각을 빼앗고 싶지 않다고 결론짓는다. 먹지 않아서 점차 투명해져가는 나날들 가운데서 그들은 도윤이에게 작별인사와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도윤이는 그들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당황한다. 인간은 왜 사랑한다는 말을 말로써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사랑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지 겁먹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 바다의 소통 방식대로 도윤은 비디오를 녹화해서 사랑한다는 말을 그들에게 전하기로 결심한다.


 

 

 

[내 입으로 말을 하는 것... 전하려고 하는 것... 그 부분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몰라. 응. 전해야 할 거야. 당신들이 듣고 싶어 하니까. 내 마음을. 오고 가는 것이 기본일 테니까. 그게 소통이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걸. 내 사랑이 사랑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불안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건 내 한계 내에서 사랑이 맞는 거고... 나름대로 내 안에서는 가장 빛나는 것이니까... 너무 초라하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녹음한 도윤의 비디오테이프는 이비와 이언 집 우편함에 넣어지고, 벌써 그들이 이사를 갔다는 걸 확인한 도윤은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찾지만 벌써 뜯겨져 있다.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만큼 그들이 자신의 비디오테이프를 확인해 주었을 것이라고 도윤은 근거 없이 확신한다. 또한 그들이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를 믿을 만큼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남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돌고 돌아 만화의 시작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막 이사 온 이언과 이비는 주어 없이 사랑한다는 고백이 담긴 도윤의 비디오테이프를 우편함에서 발견한다.


 

모든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말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 거고. 이 만화 속에서 상상되는 ‘소통을 도와주는 외계인들’이 정말 이들의 사랑고백을 연결해 주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들의 사랑, 조건부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점차 조건 없이 마음을 나누고, 서로가 주고받는 사랑만큼 커가는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과정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했다. 이들이 기억날 때마다, 이들이 어디선가 행복하고 있기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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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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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과 관련해 읽은 최근의 책은 트위터의 저쪽님께서 선물해주신 플로베르의 단편집 <세 가지 이야기>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 중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이다. 플로베르가 자신의 지방에서 전해지는 전설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다. 무시무시하고 잔인하면서도 속죄에 관한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 쥘리앵은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다. 아버지가 들은 예언은 쥘리앵이 장차 황제가 되리란 사실, 어머니가 듣는 예언은 쥘리앵이 장차 성인이 되리란 것. 쥘리앵은 자라면서 사냥에 몰두하게 된다. 누구보다 잔인하게 살육을 하던 중 사슴 무리들을 죽이고, 그 중 한 사슴이 쥘리앵에게 당신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이 예언을 듣는 쥘리앵은 사냥을 관두고 은둔 생활을 하면 부모님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실수로 어머니를 화살로 맞출 뻔 한 다음에는, 성에서 도망쳐 나와 영영 돌아가지 않는다. 쥘리앵은 용병이 된다. “도망친 노예들,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 돈 한 푼 없는 사생이들 등 온갖 용감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깃발 아래로 몰려들어 하나의 부대를 이루었다.” 그러던 중 스페인의 황제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황제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의 딸과 쥘리앵을 결혼시킨다.


 

쥘리앵의 부모는 아들을 찾기 위해 성의 호화로운 생활을 뒤로하고 나서서 떠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물으며 돈을 지불하느라 가진 돈도 다 떨어졌다. 그러던 중 마침내 쥘리앵이 살고 있는 궁궐에 도착하게 된다. 쥘리앵의 아내는 자신의 침대에 그들을 재운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쥘리앵은 침대에 있는 두 사람을 아내와 불륜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들을 죽인다. 이 충격으로 쥘리앵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가 빌어먹는 생활을 한다. “ 기억의 무게를 짊어지고 그는 많은 지역을 떠돌아다녔다.”


 

마침내 한 강가에서 그는 뱃사공이 되어 사람들을 실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속죄의 행위처럼 그 일을 한다. 어느 날 한 문둥이가 배에 탄다. 문둥이는 쥘리앵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많은 것을 요구한다. 태워줄 것, 먹을 것, 잘 것.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상상을 초월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문둥이는 쥘리앵이 자신을 껴안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입 맞춰줄 것을 요구한다. 쥘리앵은 그렇게 한다. “자기 입술을 그의 입술에, 자기 가슴을 그의 가슴에 갖다대고, 쥘리앵은 그의 몸 위에 완전히 엎드렸다.


그러자 문둥이는 그를 껴안았다. 그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머리카락은 태양의 빛줄기처럼 길게 뻗쳤다. 그의 코에서 새어나오는 숨결에서 장미꽃 내음이 풍겼고, 화로에서는 향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으며, 물결은 찬양하듯 노래했다. 그러는 동안, 아득해져가는 쥘리앵의 영혼 속으로 넘치는 환희와 상상도 할 수 없을 희열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두 팔로 쥘리앵을 껴안은 사나이의 머리와 발이 오두막의 양쪽 벽에 닿을 만큼 점점 커졌다.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맑고 푸른 하늘이 활짝 펼쳐졌다. 자기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보며, 쥘리앵은 푸른 하늘로 올라갔다.”


 

단순하게는 가장 속되고 더럽고 비천한 것과 맞닿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성스러움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죄를 지은) 쥘리앵이 받는 속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쥘리앵이 잔혹하게 사냥하는 장면이 실은 인간 대부분들이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살육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가장 신비한 점은 이야기가 이토록 초월적이며 이토록 마음을 울리는 이유에 대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쥘리앵은 자신이 받은 세 가지 예언을 실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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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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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일반인 레즈비언 김규진님이 아내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동성간의 혼인이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규진님의 경우 회사)에 이를 알리는 일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국에서는 커밍아웃한 게이 연예인은 있지만 레즈비언 연예인은 없다. 김규진님 이전에는 매스컴을 통해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또한 없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퀴어 결혼식을 올려서 퀴어가 있음을 알려주신 규진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난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하면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책 속에서도 나와있다시피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꿈꾸는 건 퀴어 집단일 뿐이라는 얘기, 어렸을 때부터 퀴어 결혼을 간절히 바랬지만 차차 결혼은 내가 생각했었던 결혼과 다른 거라는 걸 깨달아 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 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 동성 결혼이 가능한 국가들에 대한 부러움 등. 결혼이 뭘까? 안 해봐서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크다. 책 속 결혼에 대한 정의 중 하나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 생긴다는 것". 




얼마전 헤테로이신 전 직장 동료분과 공원을 산책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분은 비혼주의자이고, 결혼에 대해서 이런저런 깊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같이 한 얘기 중에 나온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은 정말 솔깃하고 배아픈 정책이었다. 예전에 게이인 친구와 정 주거문제가 막막하면 위장 결혼을 해서 혜택을 누리자는 우스갯소리도 생각났다. 어떤 집단의 혐오 때문에 누렸을 수도 있는 사회적 혜택을 못 누린다는 건 역시 암담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런 절망감이 들 때, "매일 매일 구체적이고 작은 승리에 집중하자는 것"이라는 규진님의 문장을 떠올리면서 너무 먼 미래에 벌어질 불공평한 일이 아닌 가까운 미래에 바뀔 수 있을 지도 모를 작은 일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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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지개를 타고
보배 지음 / 아토포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짤막한 초단편 에세이들이 여러편 묶여있는 에세이집이다. 작가 보배님은 한국의 퀴어 문학을 아카이빙하고 소개하는 단체 '무지개 책갈피'를 만드신 분이다. 이 에세이집에는 퀴어에 관한 이야기, 여러 편의 퀴어 문학에 관한 소개,  활동가로서의 삶 등이 담겨있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해도) 주로 비극으로 끝나곤 하는 퀴어 서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부분이나(생각해보면 나 역시 영화 <윤희에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추천해도 괜찮을만큼 좋은 한국의 퀴어 작품을 만난 적이 없었다), 왜 퀴어 문학을 읽는지 탐구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 중 마지막 챕터에 실려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고 싶다.




[ 미국의 소설가 셔먼 알렉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끔찍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 어둡고 위험한 책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도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난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토로하는 비밀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같은 병실을 공유하는 환자이자 알리바이를 도모하는 공범자였다. 우리는 고통을 공유하려 했지만 늘 실패했다.


얼마전,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었다. (...)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 그렇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통스럽다는 것, 그리고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실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고통 자체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각자가 어떻게 겪어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로 고군분투하는지를"이야기한다. 결국 고통을 통한 연대는 불가능하지만 '고통을 공유할 수 없다는 고통'을 나눌 수는 있다. 고통의 연대는 "오로지 '우회'만을 통해 가능"하다. ]






물론 모든 사람들이 슬프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또는 구원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가 생각해 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내가 하고싶은 말에 가까운 생각을 바깥에서, 책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나로 있을 수 있을 때가 있다. 고통에 직접적으로 연대하는 건 인용한 구절에도 나와있다시피 불가능하지만, 우회를 통한 연대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짤막한 초단편 에세이들이 여러편 묶여있는 에세이집이다. 작가 보배님은 한국의 퀴어 문학을 아카이빙하고 소개하는 단체 '무지개 책갈피'를 만드신 분이다. 이 에세이집에는 퀴어에 관한 이야기, 여러 편의 퀴어 문학에 관한 소개,  활동가로서의 삶 등이 담겨있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해도) 주로 비극으로 끝나곤 하는 퀴어 서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부분이나(생각해보면 나 역시 영화 <윤희에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추천해도 괜찮을만큼 좋은 한국의 퀴어 작품을 만난 적이 없었다), 왜 퀴어 문학을 읽는지 탐구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 중 마지막 챕터에 실려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고 싶다.




[ 미국의 소설가 셔먼 알렉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끔찍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 어둡고 위험한 책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도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난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토로하는 비밀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같은 병실을 공유하는 환자이자 알리바이를 도모하는 공범자였다. 우리는 고통을 공유하려 했지만 늘 실패했다.


얼마전,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었다. (...)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 그렇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통스럽다는 것, 그리고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실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고통 자체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각자가 어떻게 겪어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로 고군분투하는지를"이야기한다. 결국 고통을 통한 연대는 불가능하지만 '고통을 공유할 수 없다는 고통'을 나눌 수는 있다. 고통의 연대는 "오로지 '우회'만을 통해 가능"하다. ]






물론 모든 사람들이 슬프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또는 구원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가 생각해 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내가 하고싶은 말에 가까운 생각을 바깥에서, 책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나로 있을 수 있을 때가 있다. 고통에 직접적으로 연대하는 건 인용한 구절에도 나와있다시피 불가능하지만, 우회를 통한 연대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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