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지음, 오수연 옮김 / 강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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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은 무지무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떨 때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감정이 거의 안 느껴지는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주 지쳤을 때는 들어오는 것도 내치게 된다. 그렇지만 내친다고 생각해도 그걸 뚫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고, 그렇게 들어올 것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살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달 초에, 겨울이 시작되고 힘들었을 때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아담 자가예프스키를 읽고 그의 시들을 사랑하게 된 이후로 세상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시인을 손닿는 데까지 찾아봐야 갰다고 마음먹었었다. 팔레스타인의 시인이고,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는 시인이라는 설명에 시집을 사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고등학생 때와 대학교 1학년 때, 두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동네의 이름들을 익히며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영어로 손으로 전하는 얘기를 들었다. 언론에 실리지 않는다는 참상을 들었다. 불안한 뉴스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을 지나갔다.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다정했다. 인사하면 꼭 차를 대접해주셨다. 시인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다가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고향을 말하는 이야기가 시의 곳곳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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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집에 닿으리.


 

 

 

어깨에서 짐 내려 문간에 놓으리. 거기 아무도 없으리. 빈집의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서 조용히 앉으리. 석양빛의 검이 집을 반으로 가르고: 어두운 쪽, 밝은 쪽. 나는 어둠과 빛 사이에 앉아 있으리. 과거는 냇물처럼 내 뒤로 흘러가고, 미래는 달팽이처럼 내 앞에서 꾸물대고, 나는 시간을 모르고. 거기서, 침묵 속에서, 빛과 어둠 사이에서, 나는 돌이 되리. 테두리가 부조로 장식된 거대한 바위 위 석상이 되리. 조각가의 손이 정으로 내 허벅지를 새기리: 이것이 경계. 이것이 댐. 과거의 물은 과거로 흐르고, 미래의 물은 반대쪽으로 흐르고.


 

 

 

<언젠가 집에 닿으리>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여기 주민이오. 닭을 길렀소. 하늘에 별을 뿌리고 땅바닥에 등 깔고 누워 세었소. 하나도 빠뜨림 없이 세었소.


 

해가 떨어지더이다. 문에 뚫린 구멍으로 한 다발의 석양빛이 들어와 내 가슴에 꽂혔소. 빛이 나를 죽였소. 나는 빛에 살해당한 자요. 언어가 남쪽으로 기울더니, 나는 죽어 있더이다. 나는 언어로 살해당한 자요.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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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의 시에서 가장 와 닿았던 감정은 절망이다. 시의 화자들은 떠도는 사람이다. 이 떠도는 사람들이 절망을 얘기할 때, 때로는 절망이 절망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오랜 절망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 모든 절망 위에서 화자는 절망이 절망이 아니라는 듯 그 위를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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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면 오는 친구가 있어. 나는 묻지. "넌 어디에 있는 거야? 왜 그렇게 사라져버렸어?" 그는 미소만 짓고 답하지 않아. 말 너머의 미소, 내 가슴이 따뜻해져.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는 그가 삼십 년 전에 죽었다는 걸 깨달아. 매번 그래. 매번 나는 그의 죽음을 새로이 알게 돼.


잠 속에는 죽은 사람이 없어. 거기에는 손실이 없어. 생시에 잃은 것을 잠 속에서 찾지. 그게 내가 잠자기를 즐기는 이유야. 어떤 이들은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듯이, 들에 나가듯이 잠자리에 들어.


 

 

 

<내가 잠들면>


 

 

 

 



 

발이 고통을 지워. 걷는다는 건 삭제의 잔치야, 앨리스.


말은 열린 들판을 그리워하지만, 사랑은 닫힌 축사야. 앨리스.


 

 

 

<한때 너를 사랑했지>


 

 



 

다만 당신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접시를 깨는 거다. 접시를 깨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일들이 있다. 나는 여기 이 밑에 있지만 내 영혼은 저 위로 솟구친다.


오, 이 따위 믿지 마. 시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 나는 손이 떨리고 다리를 전다. 그런데 시는 사물을 뒤집어놓는다:


절망에 날개를 달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


 

 


<접시를 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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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하게 되는 순간은 다른 매체에서 담을 수 없는 통찰이 하나의 시 안에 담겨 있을 때 같다. 무함마드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는 화자가 느낀 통찰이 나에게 전해져올 때가 유난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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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이란, 예컨대, 엄청난 단어지. 손아귀에 가득 차는 돌처럼. 나는 이 돌을 던져 죽음의 이마를 맞추겠네.


'침묵'은 제 불을 제 입으로 꺼버리는 등잔처럼 연기 나는 단어.


 


 

<언어>


 

 

 



 

그런데 없는 게 있습니다: 대추야자나무 밑에서도, 샘에서도 그걸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거 없이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


 


뭔가가 없습니다.


저는 속이 빈 토상,


신이여, 제게 뭔가 없다는 것만 압니다.


 


<없는 것>


 

 

 

 


 

그런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청구가 아니라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불가능은, 신이여, 우리가 그 밑에서 태어난 나무예요.


 

<불가능>


 


"


 

 

 

 


시간을 두고 한 번, 그리고 인용하면서 두 번을 읽었는데 시간을 더 들여서 읽고 싶은 시집이었다. 때로 어떤 시집은 내가 느끼던 고통들과 감정들이 뭔지에 대해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설명서 같다. 언어로 표현되면서, 언어에 담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언어에 담겨지면서 시가 곁에 와서 앉는다. 시의 화자를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도 알아도 알아도 알 수 없는 존재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알고 싶은 생각들이 있고 궁금한 마음들이 있다. 신경이 쓰이는 마음이 있고 공감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음악을 하면서 이 마음들을 열어놓는다는 생각을 한다. 알 수 없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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