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지개를 타고
보배 지음 / 아토포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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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초단편 에세이들이 여러편 묶여있는 에세이집이다. 작가 보배님은 한국의 퀴어 문학을 아카이빙하고 소개하는 단체 '무지개 책갈피'를 만드신 분이다. 이 에세이집에는 퀴어에 관한 이야기, 여러 편의 퀴어 문학에 관한 소개,  활동가로서의 삶 등이 담겨있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해도) 주로 비극으로 끝나곤 하는 퀴어 서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부분이나(생각해보면 나 역시 영화 <윤희에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추천해도 괜찮을만큼 좋은 한국의 퀴어 작품을 만난 적이 없었다), 왜 퀴어 문학을 읽는지 탐구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 중 마지막 챕터에 실려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고 싶다.




[ 미국의 소설가 셔먼 알렉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끔찍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 어둡고 위험한 책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도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난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토로하는 비밀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같은 병실을 공유하는 환자이자 알리바이를 도모하는 공범자였다. 우리는 고통을 공유하려 했지만 늘 실패했다.


얼마전,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었다. (...)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 그렇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통스럽다는 것, 그리고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실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고통 자체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각자가 어떻게 겪어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로 고군분투하는지를"이야기한다. 결국 고통을 통한 연대는 불가능하지만 '고통을 공유할 수 없다는 고통'을 나눌 수는 있다. 고통의 연대는 "오로지 '우회'만을 통해 가능"하다. ]






물론 모든 사람들이 슬프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또는 구원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가 생각해 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내가 하고싶은 말에 가까운 생각을 바깥에서, 책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나로 있을 수 있을 때가 있다. 고통에 직접적으로 연대하는 건 인용한 구절에도 나와있다시피 불가능하지만, 우회를 통한 연대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짤막한 초단편 에세이들이 여러편 묶여있는 에세이집이다. 작가 보배님은 한국의 퀴어 문학을 아카이빙하고 소개하는 단체 '무지개 책갈피'를 만드신 분이다. 이 에세이집에는 퀴어에 관한 이야기, 여러 편의 퀴어 문학에 관한 소개,  활동가로서의 삶 등이 담겨있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고는 해도) 주로 비극으로 끝나곤 하는 퀴어 서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부분이나(생각해보면 나 역시 영화 <윤희에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추천해도 괜찮을만큼 좋은 한국의 퀴어 작품을 만난 적이 없었다), 왜 퀴어 문학을 읽는지 탐구하는 부분은 정말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 중 마지막 챕터에 실려있는 내용을 인용해 보고 싶다.




[ 미국의 소설가 셔먼 알렉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끔찍한 세상에 살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 어둡고 위험한 책들이 자신을 구원해줄 거라 믿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나도 슬프고 외롭고 화가 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슬프고 외롭고 화난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토로하는 비밀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같은 병실을 공유하는 환자이자 알리바이를 도모하는 공범자였다. 우리는 고통을 공유하려 했지만 늘 실패했다.


얼마전,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읽었다. (...)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고통조차 그렇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통스럽다는 것, 그리고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우리는 실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고통 자체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각자가 어떻게 겪어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로 고군분투하는지를"이야기한다. 결국 고통을 통한 연대는 불가능하지만 '고통을 공유할 수 없다는 고통'을 나눌 수는 있다. 고통의 연대는 "오로지 '우회'만을 통해 가능"하다. ]






물론 모든 사람들이 슬프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또는 구원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내가 생각해 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내가 하고싶은 말에 가까운 생각을 바깥에서, 책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나로 있을 수 있을 때가 있다. 고통에 직접적으로 연대하는 건 인용한 구절에도 나와있다시피 불가능하지만, 우회를 통한 연대는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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