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1 펭귄클래식 10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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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길들여진 새는 날 수 있는가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은 세계 3대 관현악단이다. 수석지휘자를 단원들의 투표로 선발하는 민주적인 전통이 유명한 반면, 지나친 보수성으로 페미니스트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1982년 수석지휘자였던 카라얀이 첫 여성 연주자로 채용한 자비네 마이어는 734의 투표 결과로 임명이 취소된 바 있다. 하프 파트 외에 여성 연주자가 정단원이 된 건 2000년에 이르러서였다.


마리 퀴리는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과학자다. 방사능의 발견으로 1927년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지만,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끝내 그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학은 비밀스럽게 여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847년 샬롯 브론테는 남성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발표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프랜시스 버냇의 소공녀를 비롯하여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등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감성 소설이 차례차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여성이 쓰는 소설은 미래의 아내와 어머니를 위한 도덕적 교훈 안에서 주로 생존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20세기에 들어서야 재평가되었으며,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로만 알려진 메리 셸리의 정치적 입장을 작품 속에서 찾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소녀문학이 번성하기 시작한 1868년에 작은 아씨들을 발표했다. 에세이와 스릴러 장르를 거쳐 오다가 소녀문학에 이르러 큰 성공을 거둔 루이자는 다시 성인용 작품으로 회귀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루이자가 상업성과 타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기 위해 여성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드물었다. 여성 작가들의 고뇌와 갈등은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 중 조를 통해 잘 드러난다.


소설을 팔아 자립의 기쁨을 알지만, 상업적인 통속소설에 매진했다가, 반성하고 예술성을 추구하기까지 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그 시기에 조는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었다. 병아리 예술가였다. 에이미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기는 사람은 비웃음만 당할 뿐이라고 말하자 조가 대답한다

비웃음에 굴하지 않는 혁명가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결코 잘 돌아가지 못할걸. 너는 오래된 세상에 묻혀 있고 난 새 세상을 갈망하니까 생각이 다를 수밖에. 넌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 난 가장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살 테니.(2102p)


그러나 결혼 적령기를 넘기면서 조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을 향해 눈을 돌린다

예전에 조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뭔가 굉장한 일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는데,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이 주신 행복만큼 자신도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애쓰면서 부모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2311p) 

그리고 현실을 바라본다

노처녀, 이게 미래의 나야. 펜을 배우자로 삼고 자식들 대신 글을 가족으로 삼아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약간의 명성을 얻겠지.(2318p) 

결국 조는 바에르 교수와 결혼하고, 예술가가 아닌 교육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조는 실패한 걸까. 현실 앞에서 타협해버린 걸까. 가부장제 사회에 길들여지고 만 걸까.


그러기에는 조의 행동이 파격적이다. 조는 바에르 학원에 장애인과 혼혈아까지 받아들인다. 작은 아씨들의 시대 배경인 1863년은 노예 해방 선언이 발표된 직후이지만, 인종차별은 그대로 남아 있어 혼혈아를 받아들인 학교는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는 혁명가처럼 그 일을 해치운다. 그로부터 십여 년 뒤에 조는 말한다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때를 기다릴 거야. 이 모든 경험과 모습들이 내 글에 녹아들 날이 오겠지.(2391p)


새를 키우는 주인들은 애완조의 안전을 위해 윙 트리밍을 한다. 윙 트리밍이란, 애완조의 속 날개깃털을 잘라 멀리, 오래, 높이 날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윙 트리밍을 하면 새장 밖으로 나와 산책할 수 있지만, 윙 트리밍을 하지 않으면 새장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조는 여성성이라는 윙 트리밍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시대에 갇힌 여성들이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작은 아씨들의 저자인 루이자 메이 올컷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과는 달리 조는 바에르 교수와 결혼한다. 바에르 교수는 연인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두루 갖춘 데다 흔치 않은 여성의 조력자였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남성상이기에 저자는 그 인물에게 가난과 나이라는 굴레를 얹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아씨들에서 체제에 순응한 교훈성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저자의 지성과 유머는 선한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기꺼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섬세하게 그려낸 소녀들의 고민과 성장담은 현재에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개성적인 인물들이 한데 모여 벌이는 일은 모험소설 못지않게 흥미롭다. 사랑해야 할 딸들이 그 안에 모두 있으니 감히 그 매력을 거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덕분에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작은 아씨들에 숨어 있는 새로운 생각들을 불편함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베스의 여성적인 희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러주거나, 조에게 불행한 결혼을 하느니 혼자 사는 게 낫다고 충고하거나, 매기와 존에게 평등한 부부 역할을 강조하거나, 독신 여성을 비웃지 말라고 당부하는 부분들이 그러하다. 만약 작은 아씨들이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그 말들이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었을까. 때로는 전복보다 조화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견고한 가부장제의 벽은 현대에 와서도 유리천장처럼 곳곳에서 발견된다. 윙 트리밍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행복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마치가의 딸들은 한 차례 탐색과 저항 뒤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따뜻한 가정으로, 평온한 죽음으로, 진실된 후원으로, 개혁적인 교육으로 실현되었다.


빠른 길이 어렵다면 돌아가면 된다. 짧은 날갯짓일지언정 새장 밖을 맛본 새에게 새장 안은 답답하기 마련이다.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새장 밖 세상은 서서히 넓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회고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작은 아씨들을 웃으며 읽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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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 2015-10-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글이네요. 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울림이 남을 듯합니다. 작가와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푸릇푸릇 2015-10-18 22:59   좋아요 0 | URL
느낌 한 조각 공유해 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과 다르게 <작은 아씨들>을 보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닥터 지바고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9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박형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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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던 한숨처럼

 

 

1917, 군의로 일하다 부상당한 지바고는 병원에서 간호원이 된 라리사와 재회한다. 멜류제예보에서 지바고는 라리사에게 말한다.

혁명이,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던 한숨처럼, 의지와는 관계없이 터졌죠. 모든 이가 소생하고 재생했으며 모두가 전환점을 맞아 변하게 됐죠.


1905년 철도파업이 일어났을 때 지바고와 라리사는 아직 유라와 라라로 불리는 학생이었다. 빠벨, 또냐, 니까, 미샤도 학생이었다. 그보다 어린 아이도 있었다. 빠벨과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유수쁘까, 즉 갈리울린이었다.


철도파업을 공모한 찌베르진은 비열한 세계를 미워했다

지나치게 먹고 살이 찐 마나님이 노동자들을 오만하게 얕보며, 이러한 부류들의 희생물이 되어 술고래가 된 사람들이 기껏 자신의 동료들이나 괴롭혀서 쾌감을 느끼는 비열함과 허위의 세계

그런 세계를 바꾸기 위해 파업을 공모했으며 파업은 곧 혁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터져 나온 한숨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멜류제예보에서 라리사는 갈리울린을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건 <어린아이들이 총을 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모두가 병사로 이곳에 있고, 모든 평범한 국민이 그 아파트와 그와 똑같은 마을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라리사는 빨치산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지바고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인,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우리들의 세대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에요.


어쩌면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내전은 그처럼 격렬하게 흘러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혁명이 시작되는 와중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전쟁은 어린아이를 싸울 줄 아는 어른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혁명은 싸울 줄 아는 어른에게 명분을 주었다. 그들은 적과 백으로 갈라져 적백내전을 시작한다. 전쟁처럼 한쪽을 끝장내는 살육전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빠벨은 적군이었고, 갈리울린은 백군이었다. 이념 앞에서 개인적인 감정은 가치를 잃었다.


라라는 이어서 말한다.

주된 불행은, 그러니까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악의 근원이 된 것은, 개인 의견의 가치를 믿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이제 스스로의 도덕 감각에 쫓아 행동하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맞추어 함께 노래 불러야 한다. 외부에서 억지로 떠맡긴 관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번진 거예요.


커다란 물살에 휩쓸릴 때는 그 물살이 해일인지, 소용돌이인지, 파도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라라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그 정체를 올곧은 눈으로 직시한다. 그것은 줄곧 지바고가 키워왔으나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한 개성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다. 영혼의 짝을 만난 지바고는 쏟아내듯 시를 쓴다.

예술이란 늘 미에 봉사하고, 미는 형식에서 오는 기쁨이고, 형식이란,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이것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유기체적 생명의 열쇠이며, 따라서 비극까지 포함한 모든 예술 작품은 존재의 기쁨을 표현한다고 하는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지바고와 라리사의 행복은 짧았다. 혁명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혁명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혁명은 다시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 아이들은 지바고의 시에 열광한다. 또 다른 한숨을 담아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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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이야기 - <연어>, 그 두번째 이야기
안도현 지음, 유기훈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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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견디는 저 연어들처럼


1997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12월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복권으로 석방되었다. 2001년에는 911 테러가 있었고, 2003년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벌어졌다. 2009년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이 발생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2010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 달 뒤 천안함이 침몰했고, 다시 한 달 뒤 연어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그래서일까. 안도현의 연어 이야기는 사뭇 조심스럽다.


폭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외치며 연어 떼를 이끌던 은빛연어와 달리 은빛연어를 닮은 자식은 종내 벽을 뛰어넘으려고만 한 걸 후회한다. 대신 바다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연어 떼는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하던 초록강은 이제 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며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한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사랑을 이루고 앵둣빛 알이 꿈꿀 미래로서 북태평양을 그렸지만, 그 자식들은 죽음으로 이별하고 험난한 현실로서의 북태평양으로 뛰어든다.


노인과 청년의 시각차라고 이해해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거기에 시대적 흐름을 더해 본다. 과거 억압의 시대에는 저항의 대상이 분명했기에 두드려 부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통제의 시대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로, 학교에서 자라는 연어들은 비록 몸집은 커졌을지언정 꿈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를 원망하거나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통제의 시대에는 저항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며드는 것을 선택한다. 절망하여 포기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병들어버린 사회를 살아가기 버겁더라도 제 안의 강물 냄새를 끊임없이 기억한다. 강물의 냄새를 잊지 않아야 비로소 그것은 숙명이 된다. 북태평양을 떠나 강물을 다 거슬러 올라야 겨우 다다를 수 있기에 한 차례 저지르는 행동보다 꿋꿋이 견디는 의지가 더 중요해진다. 연어에서 폭포를 올라가는 행동이 조명되었지만, 연어 이야기에서는 거친 바다를 견디는 삶이 조명된 이유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두 강물의 원류는 동일하다.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저자에게 고맙다.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아주어서. 단순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한차례 뭇매를 맞은 뒤에도 꿋꿋이 지켜낸 믿음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은 계속되는 사건사고에 지치신 듯하지만 또 한번 그만의 시각으로 희망을 노래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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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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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냄새를 기억하는 저 연어들처럼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연어가 강에서 보내는 시간은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의 십 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은빛 몸체가 펄떡거리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풍경이 떠오른다.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흥얼거리기라도 하면 그 풍경은 생생하게 뇌리에 와 박힌다. 그러니 과학적으로는 틀릴 말일지언정 문학적으로는 쉽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연어에게 강물은 태어난 곳, 고향을 의미한다. 성장해 바다로 떠난 연어는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고 돌아와 삶을 마치기 전에 알을 낳는다. 따라서 고향은 과거인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연어는 강물을 따라 내려가면서 과거를 현재와 엮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를 미래와 엮는다. 다시 태어난 연어는 부모가 한 일을 되풀이하지만,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과 다르듯이 연어의 삶 또한 항상 같지 않다. 부모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바뀐다. 그러니 연어에게 강물이란 고향이자 숙명이다.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는 건 제 본성을 간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아무리 바다에서 오래 지내더라도 연어의 코끝에는 언제나 강물 냄새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안도현의 연어는 어떤 냄새가 날까.


물론 강물 냄새일 것이다. 다만 그 강물은 인간사회에서 비롯되었으며, 인간의 과거를 역사라 부르기에 1996년 당시 상황을 살펴보았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한 데 이어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1996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고, 연어가 출간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화 운동과 전쟁이 있었다. 자유, 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억압의 시대에 사람들은 연어 떼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다. 구시대가 무너지고 새 시대를 맞이하듯이 연어의 결말은 매우 희망적이다.


연어에게 강물이 고향이며 미래이자 숙명이듯이, 연어에게 강물은 인간의 본성이고 의지이며 희망이다. 그래서 고맙다.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아주어서. 문학은 동시대의 삶을 그려내며, 특히 고전은 인간의 본질을 담기에 시대를 견딘다. 그렇다면 연어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게 아닐까.


연어라는 책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향긋한 사람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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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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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이 문을 두드린다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셋 모옴의 작품 중 <>라는 단편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국의 섬에서 선교사가 창녀를 선교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선교사는 창녀를 본국으로 송환 신청하고, 창녀는 감화원에 수감되지 않기 위해 매달리지만 거절당한다. 벼랑 끝에서 창녀는 회개한다. 매일 선교사는 창녀를 찾아가 새벽까지 기도한다. 본국으로 가는 배가 도착한 날, 선교사는 창녀를 겁탈하고 자살한다. 창녀는 그동안 자신을 몰아세운 이들을 경멸하며 비웃는다.


<>에서는 두 불청객이 등장한다. 선교사에게는 성적 본능이 그것이다. 창녀에게는 윤리라는 문명이 그것이다. 두 불청객이 각각 문을 두드리고, 선교사는 지금껏 휘둘러왔던 문명의 힘이 도리어 자신을 겨누자 자살한다. 창녀는 문명의 힘에 기대어 마음의 안정을 얻지만, 결국 선교사에게 큰 상처를 받는다. 이국의 섬에서 문명은 속절없이 본능에 패배한다. 만약 도시였다면 문명이 승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그것도 당대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서 끊임없이 문명을 거부하며 본능의 승리를 일구어낸 이가 있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다.


주식중개인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스트릭랜드는 하루아침에 부인과 자식들과 집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비록 그림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였지만, 비난받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미친 거냐고, 양심도 없냐고, 헛수고일 거라고 던지는 말에 스트릭랜드는 답한다

나도 나 자신을 어찌할 수가 없단 말이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수영을 잘하고 못하고가 무슨 상관이겠소. 어떻게든 물에서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고 말 거요.


스트릭랜드는 편안하게 타성에 젖어 정주하기 마련인 마흔일곱의 나이에 물에서 빠져나온다. 그 어떤 비난도 스트릭랜드를 막지 못했다. 심지어 굶주림이나 병고도 소용없었다. 스트릭랜드는 문명이 요구하는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그동안 억눌러왔던 본성을 좇기에 바빴다.


본성(本性)을 사전에서 찾으면 사람의 본디의 성질. 타고난 성질.”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의 성질에서 문명을 걷어내면 스트릭랜드가 될법하다. 그럼 스트릭랜드의 본성이 좇은 예술이란 무엇일까.


얼핏 예술이란 말은 어렵게 들린다. 복잡한 가전제품 설명서처럼 대중이 쉽게 이해하기에 버거워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달과 6펜스에서 화자는 말한다

예술을 마치 예술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기술로 보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예술은 감정의 표현이며, 감정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말대로라면 예술이란, 사람에게 감정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유명한 그림이나 소설을 보고 감동하지 못한 사람이 특별한 요리나 기계를 보고 감동할 수도 있는 법이다. 수학이나 과학도 극에 달하면 예술이 된다고 한다. 물론 아무나 감동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스트로브가 말하듯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지식과 섬세함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최초의 그림은 동굴벽화였다. 아직 예술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 이미 예술이 존재했다. 감정은 사람의 기본적인 본성이기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예술가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예술을 좇은 것이 아니다. 본성을 좇았기 때문에 예술가가 되었다.


예술가라고 모두 스트릭랜드처럼 괴팍하지는 않다. 소설가 조정래는 매일 꾸준히 글을 쓰고 평범한 가정생활을 꾸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기 위해 마라톤을 하고 윤리적 발언을 한다. 예술가들의 삶에도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성실한 주식중개인이 아닌 막돼먹은 스트릭랜드를 동경한다면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에서 비로소 문명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스트릭랜드는 동그란 구멍을 막고 있는 사각 마개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구멍의 모양이 너무도 다양했기에 그 어떤 모양의 마개도 그리 어긋나지는 않았다.

 누구나 문명의 틀에 맞추어 산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음악가가 본성인 사람이 대기업에 입사하는 건 동그란 마개를 사각 구멍에 끼워 넣는 꼴이다. 그는 언젠가 스트릭랜드처럼 물에서 뛰쳐나오거나 아니면 익사해 버릴 것이다. 누가 시켜서 예술을 할 수 없듯이 누가 시켜서 인생을 살 수 없다.


불안하니까 사람이다에서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산다는 것은 죽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다.”라고 했다. 인생에서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일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난 과거 따윈 생각하지 않네. 중요한 건 영원한 현재뿐이지.

행복하냐고 묻는 화자에게 스트릭랜드는 대답한다

행복하네.

본성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그 끝에 예술이 있고, 행복이 있으리라 믿는다.


의사 쿠트라는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걸작을 본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그림 속의 나무들은 야자수나 바니안나무, 불꽃나무, 아보카도같이 내가 매일 보는 것들이라서 그 후로는 그것들이 새삼 다르게 보입디다. 마치 그 나무들이 영혼이나 신비한 수수께끼라도 품고 있는 듯 말이오.


늘 보던 것을 예전과 다르게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면 달과 6펜스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 발밑의 6펜스를 보느라 하늘의 달을 못 보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불청객이 문을 두드린다. 어떤 불청객에게 문을 열어 줄지는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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