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어 ㅣ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평점 :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는 저 연어들처럼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연어가 강에서 보내는 시간은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의 십 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은빛 몸체가 펄떡거리며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풍경이 떠오른다.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흥얼거리기라도 하면 그 풍경은 생생하게 뇌리에 와 박힌다. 그러니 과학적으로는 틀릴 말일지언정 문학적으로는 쉽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연어에게 강물은 태어난 곳, 고향을 의미한다. 성장해 바다로 떠난 연어는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고 돌아와 삶을 마치기 전에 알을 낳는다. 따라서 고향은 과거인 동시에 미래이기도 하다. 연어는 강물을 따라 내려가면서 과거를 현재와 엮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를 미래와 엮는다. 다시 태어난 연어는 부모가 한 일을 되풀이하지만,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과 다르듯이 연어의 삶 또한 항상 같지 않다. 부모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바뀐다. 그러니 연어에게 강물이란 고향이자 숙명이다. 강물의 냄새를 기억하는 건 제 본성을 간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아무리 바다에서 오래 지내더라도 연어의 코끝에는 언제나 강물 냄새가 묻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안도현의 『연어』는 어떤 냄새가 날까.
물론 강물 냄새일 것이다. 다만 그 강물은 인간사회에서 비롯되었으며, 인간의 과거를 역사라 부르기에 1996년 당시 상황을 살펴보았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한 데 이어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그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고, 『연어』가 출간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화 운동과 전쟁이 있었다. 자유, 라는 말을 감히 입에 올리기 어려운 억압의 시대에 사람들은 연어 떼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 새로운 미래를 만들었다. 구시대가 무너지고 새 시대를 맞이하듯이 『연어』의 결말은 매우 희망적이다.
연어에게 강물이 고향이며 미래이자 숙명이듯이, 『연어』에게 강물은 인간의 본성이고 의지이며 희망이다. 그래서 고맙다.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아주어서. 문학은 동시대의 삶을 그려내며, 특히 고전은 인간의 본질을 담기에 시대를 견딘다. 그렇다면 『연어』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게 아닐까.
『연어』라는 책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향긋한 사람 냄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