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9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박형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던 한숨처럼

 

 

1917, 군의로 일하다 부상당한 지바고는 병원에서 간호원이 된 라리사와 재회한다. 멜류제예보에서 지바고는 라리사에게 말한다.

혁명이,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던 한숨처럼, 의지와는 관계없이 터졌죠. 모든 이가 소생하고 재생했으며 모두가 전환점을 맞아 변하게 됐죠.


1905년 철도파업이 일어났을 때 지바고와 라리사는 아직 유라와 라라로 불리는 학생이었다. 빠벨, 또냐, 니까, 미샤도 학생이었다. 그보다 어린 아이도 있었다. 빠벨과 같은 아파트에서 살던 유수쁘까, 즉 갈리울린이었다.


철도파업을 공모한 찌베르진은 비열한 세계를 미워했다

지나치게 먹고 살이 찐 마나님이 노동자들을 오만하게 얕보며, 이러한 부류들의 희생물이 되어 술고래가 된 사람들이 기껏 자신의 동료들이나 괴롭혀서 쾌감을 느끼는 비열함과 허위의 세계

그런 세계를 바꾸기 위해 파업을 공모했으며 파업은 곧 혁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터져 나온 한숨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멜류제예보에서 라리사는 갈리울린을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건 <어린아이들이 총을 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자라서 모두가 병사로 이곳에 있고, 모든 평범한 국민이 그 아파트와 그와 똑같은 마을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라리사는 빨치산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지바고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인,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우리들의 세대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에요.


어쩌면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내전은 그처럼 격렬하게 흘러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혁명이 시작되는 와중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전쟁은 어린아이를 싸울 줄 아는 어른으로 키워냈다. 그리고 혁명은 싸울 줄 아는 어른에게 명분을 주었다. 그들은 적과 백으로 갈라져 적백내전을 시작한다. 전쟁처럼 한쪽을 끝장내는 살육전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빠벨은 적군이었고, 갈리울린은 백군이었다. 이념 앞에서 개인적인 감정은 가치를 잃었다.


라라는 이어서 말한다.

주된 불행은, 그러니까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악의 근원이 된 것은, 개인 의견의 가치를 믿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이제 스스로의 도덕 감각에 쫓아 행동하는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맞추어 함께 노래 불러야 한다. 외부에서 억지로 떠맡긴 관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번진 거예요.


커다란 물살에 휩쓸릴 때는 그 물살이 해일인지, 소용돌이인지, 파도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라라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는 와중에도 그 정체를 올곧은 눈으로 직시한다. 그것은 줄곧 지바고가 키워왔으나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한 개성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다. 영혼의 짝을 만난 지바고는 쏟아내듯 시를 쓴다.

예술이란 늘 미에 봉사하고, 미는 형식에서 오는 기쁨이고, 형식이란,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이것 없이는 살 수 없을 만큼 유기체적 생명의 열쇠이며, 따라서 비극까지 포함한 모든 예술 작품은 존재의 기쁨을 표현한다고 하는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지바고와 라리사의 행복은 짧았다. 혁명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지만, 혁명은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혁명은 다시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 그 아이들은 지바고의 시에 열광한다. 또 다른 한숨을 담아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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