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네 대화 편 -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헬라스 고전 출판 기획 시리즈 3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 / 서광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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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듣는 말이다.

얼마 전에 나는 W.K.C.거드리의 "희랍철학입문"과 이 책을 추천했다. 대중적인 개론서가 요즘 많이 나오지만, 초심자가 그 중에서 좋은 책 찾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물론 있다).  개론서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많이 나열된 책을 보다보면 오히려 나가떨어지기 쉬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원전부터 읽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희랍철학 입문"을 함께 끼워넣은 이유는 그리스철학에 대한 훌륭한 입문서이기 때문이다. 철학 전체를 개론하는 것(그게 가능한가?)보다는 특정 주제에 대한 개론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입문을 위한 책은, 그 내용이 훌륭하면서 동시에 철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의 말과 삶이 모두 철학이었던 소크라테스를 읽는 건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선택이다. 하물며 그의 최후와 관련된 이 저작들은 철학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렬한 도전을 던져준다. 70세가 넘은 소크라테스로부터 뭐가 얻어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닌가. 더불어, 대화편이라는 형식은 논문식으로 써내려간 글보다 접근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대화라는 매체를 채용한 이유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최후와 관련되어 있는 4부작을 원어로부터 번역해 놓은 것이다. 현재 국내에 이보다 나은 번역본이 없는 것으로 안다. 특히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학교 과제로 잘 나오는 까닭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번역본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일단 비전공자가 영어에서 중역한 책을 사는 건 낭비이다. 이렇게 전문가의 원전번역본이 나온 이상.

때때로 각주가 본문보다 많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번역자의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해설에 감사하지만, 본인의 필요에 따라 해제와 각주를 제껴놓고 본문만 집중해서 읽는 것도 좋다. 다만, 나중에라도 주요 용어에 대한 해설만큼은 참고하는 게 좋다. 혹시라도 숙제를 위해 해제"만" 읽고 요약한다면, 그건 풍성한 과일 바구니를 옆에 두고 종합비타민 한 알 먹고 마는 격이다. 자신의 이빨로 씹어 먹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해제가 '재미'있었던 적이 있던가.

책 내용을 요약할  생각은 없다. 케케묵은 소리인지 몰라도, 역시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다르다. 대학 처음 들어갔을 때 읽었던 소크라테스는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리는 사람으로 느껴져 실망스러웠었다. 물론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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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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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가 잘 팔린 이유...와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한 번 생각해 보시길..(본문에서도 랭던 생긴 게 해리슨 포드 비슷하다는 언급-미술관 들어가는 장면에서-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이...)

=====소재상 새로운 것은 ....없다.

   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조합한 것이다. 성배니 막달라 마리아니 예수의 후손이니 성당기사단이니.. 등등  각종 배경들과 설정들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헐리우드적이다. 새로울 것도 없다. 작가는 이것들을 흥미진진하게 엮은 것이다. 헐리우스식 액션- 도심지에서의 추격장면, 비행기 타고 날아가기, 비밀 풀기...    

=====이게 다는 아니다. 단순히 기존 소재들을 헐리우드적으로 비빔밥해놓은 것만으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흥행에 성공하려면 관심을 끌 수 있는 것들을 잘 선택해 마케팅에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지금 사회에서 기독교가 어떤 의미를, 위상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대립구조는   "기독교를 뒤집는다<->(보수)기독교를 옹호한다"이다.  소설은 진실이 전자의 편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자세히  분석하자면 상당히 길어질 문제이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기독교를 뒤집기를 바라고 있다, 혹은 새로운 기독교, 현대에 맞는 기독교를 원하고 있다-라는 이 시대의 입장과 요구와 맞물려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는 바가 현실에서 얼마나 사실인가가 아니다.

소설이란 게 현실과 상상 사이에 서 있는 만큼, 이 소설에 대해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 요구하는 것도 그 사이에 있는 무엇이다. 읽는 사람도 이게 '소설'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엮은-이것도 소설의 특징아닌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호~ 혹시 정말?'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또 여기에 들러붙는 상품이 가능해지는 거다. "다빈치 코드-정말인가?"하는 식의 상품말이다. 실제로 그런 식의 방송물, 서적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것을 다시 구입하는 건 디씨인사이드식으로 말해서 "낚이는" 거다.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품들은 전혀 진실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 영상물의 경우 상당부분 저자와 견해를 일치하는-약간 미심쩍은 사람들이 상당히 비중있게 나오더군. 물론 기초적인, 다시 말해 역사학 분야의 책들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는 전달하고 있지만. ...책의 경우 저자의 약력을 보라. 그 사람이 거기에 전문가인지. (혹시 모르겠다. 히스토리 체널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데서 만든다면 달리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거기에 하나 덧붙여서, 뭔가 기존의 거대한 무엇을 뒤집는 장면을 보는 것은 쾌감을 준다. 그것이 무엇이든.  거대한 체제, 제국이 무너지는 설정의 작품들은 수도 없이 많다. 장르를 초월해서.. 하물며 상상의 마왕이 다스리는 제국도 아니고 현실에 존재하는 체제를 뒤집는걸 보는 일은 재미있는 거다.

--길게 쓰자면 참 길어질 것 같지만 소설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하자. 체계적으로 길게 쓰고 싶진 않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할 가치도 못느낀다.

================"새로울 것도 없고, 헐리우드적인 소설"이라고 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소장용 서적은 아니다.

나도 인디아나 존스를 재밌게, 그것도 여러번 보았고, 이 책도 읽었다. 팝콘에 콜라 들고서 헐리우드 영화 보러가는 게 뭐 어떻단 말인가. 단,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은 방금 말한 바의, 그 뿐이라는 것이다. 소설을 가지고 고증하자고 덤비는 것도, 이걸 진실로 믿는 것도....바보 짓이다. 이건 소설이다. 관심이 있다면 각각의 소재에 대한 전문서적을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장미의 이름"과 비교하는 건 좀 안맞는다. "장미의 이름"도 헐리우드적인 양념으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대중적이진 않다. 그 책은 팝콘과 콜라보다는 대학교 교양수업에 어울린다. 철학을 전공한 나조차도 중간에 살짝 지루한 감이 드는 부분이 나오는 정도이니 말이다... 뭐, 대략 중세랑 상관있는, 이런 저런 지식들이 좀 나열되는 소설들의 광고에는 으레 "장미의 이름"이 언급되긴 하지만. 

차라리 난 이 책보다도 만화책 "용오"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에 예수의 자손과 관련된 부분이 낫다고 본다. 만화방에서 단 돈 몇 백원이면 빌려볼 수 있다. 미안하지만 "다빈치 코드"는 내 기준으로는 사서 볼 책이 아니다. 한 시즌 장사하고 지나가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DVD로 소장하는 게 좀 그렇듯이 말이다.

나의 제언==========이 책 두 권 살 돈이면 정말 제 값주고 사서 소장해야 할 책들을 살 수 있다(난 이 책 선물받았다)   이 책의 소재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기호학이나 그림의 도상해석학에 관련된 책으로 말이다.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에 관련된 책 하나 사보라. 이것도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소설'이 아니다.  책 자체를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내게는 이런 책이 이토록 오래 잘판린다는 것, 요즘도 지하철에서 이걸 읽는 사람을 보는 것은 ... 씁쓸한 노릇이다.  솔직한 심정은, 제발 이 책 때문에 저자의 다른 책들까지 덩달아 잘 팔리는 꼴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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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 희랍어 원전 번역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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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어로 낭송하는 것일 게다. 묵독하는 것과 낭독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전희랍어는 넘 어려워ㅜ.ㅡ 그래도 이렇게 원전번역이 나와서 참 좋다. 많은 작품을 원전번역 하시는 천병희씨의 노고는 길이 남을 것이다.

내용으로 말하자면,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위에 어느 분은 그 부분이 재미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책이 아니라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책일 것이다. 파리스의 심판이야기도 안나온다. 심지어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빼앗아 오는 장면도 없다! (파리스가 작중에서 '알렉산드로스'라고 불리는 점도 재미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즈를 빼앗았다고 아킬레스가 화를 벌컥내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장례식을 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약10년간의 전쟁기간 중에 이 작품이 다루는 것은 대략 50일 정도이다. 거기서 이래저래 빼면 실제로 자세히 다루는 것은 며칠 안된다. 그럼 그 며칠 안되는 기간을 채우는 것은 뭔가? 이래저래 전승되어 오던 영웅적인 전사들의 전투이야기, 싸우기 전에 서로 Ÿ슭箏遊?족보이야기("나는 누구의 아들인데, 우리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누구의 아들이고 어쩌고 저쩌고..."), 실제 전투장면(창을 던졌더니 방패를 뚫고 내장에 닿았다느니, 골을 바수웠다느니...) 등이다.

사람들이 영화에서 본 것과 상당히 다른 점들도 있다. 이를테면 헥토르가 그렇게 멋지게만 나오지는 않는다. 싸우다 무서워서 도망가고 그런다-_-a 뭐, 자기가 죽으면 안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그리고 신들이 정말 뻔질나게 개입한다. 사람들 싸우는 틈에 끼어서 서로들 싸운다. 심지어 아프로디테는 피 흘리면서 도망간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뭔가? 파리스가 헬레네를 훔쳐 왔다는데, 실제로는 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런 거 발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서로들 오래 싸우다가 지쳐서 트로이측에서 막대한 보상금과 헬레네를 주면 돌아가기로 합의봤었기 때문이다ㅡㅡ; 영토확장이 목적이었으면 그랬을 리가 없잖은가. 이런 외적인 사건보다도, 그 이면에서 갈등을 이끄는 요인은 다름다닌 hybris이다('오만불손함'으로 번역되었다). 원래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신들조차 자기 영역이 있고 이것을 넘어서면 안된다. 이 작품에서 예를 들자면 아프로디테가 사랑과 결혼이라는 자기 영역을 넘어 전장에 왔을 때,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전쟁의 신 아레스에 의해서 말이다. (그녀가 울면서 아빠에게 뛰어오자 제우스는 그녀에게 '넌 네 일이나  잘 하려무나. 전장에 얼쩡대니깐 그러잖아.' 그런다ㅡㅡ;;) 아가멤논이 아킬레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투, 즉 아킬레스 없이 양진영이 싸우는 부분이 줄었을 것이고 일리아스도 훨씬 얇아졌을 것이다.

뭐 내게는 그렇게 읽혀졌다. 오만불손과 관계된 표현에 주의하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휘브리스 어쩌고 해도 -이 작품의 범위를 벗어나긴 하지만- 사실 그 이전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은 파리스의 심판이었다. 헤라와 아테네가 끝까지 그리스편을 들어서 복수하려는 게 그런 이유다...자꾸 길어지니 이정도로 하련다.

나가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인물들이 좀 평면적이다보니 전쟁물이라고는 해도 삼국지같은 정략, 전략과 갈등 같은 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단순비교는 곤란하겠지만.   어쨌든 고전에 시간을 투자하면 손해보지 않는다. 고전의 힘 중 하나는 (생각)꺼리를 풍부하게 던져주는 풍요로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읽으면서 니체 저작에 나왔던 내용들을 상기하게 되었다(니체는 원래 고전문헌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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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의 세계
브루스 J.말리나 지음 / 솔로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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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우리는 성경을 읽거나 QT를 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입장에서 본문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라 스스로 의식하기 전에 '이미 항상' 우리를 감싸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 예수님 당시의 문화를 비교해보면 그 해석학적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보다 객관적인 이해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저자는 서론에 구조기능주의, 갈등이론 등 문화인류학의 모형들에 대해 설명한 다음 이것들을 바탕으로 1세기 당시의 지중해 세계의 모습에 접근해간다. (성경공부 책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명예), 개인과 집단, 한정된 자원에 대한 인식, 친족관계와 결혼전략, 정결규례 등을 다룬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더군다나 저자의 배경인 미국에서는 더욱 더-  '개인'이란 것이 당시에는 그다지 당연하지 않았다. '국가'라는 관념이 역사 속에서 발명된 것인 것처럼, 인간에 대한 이해(규정)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매 장마다 미국인들과 당대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표로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로서는 미국인들의 생활방식까지 덩달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like us) 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해준다.  하나님이 인간이 된다(incarnation)는 것은 인간 역사의 특정 시점에 특정 지역에 특정 문화 속에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에 낯선 사람은 좀 익숙하지 않은 접근법이지만,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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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 살림지식총서 25
이경재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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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중세를 암흑기라고 단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그게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규정해왔는지, 정말 그런지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그냥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다.

 '악의 축'이라고 규정되는 이들이 있다면,  자신을 '선의 축'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중세가 암흑이라고 규정되고 있다면, 자신을 빛으로 표방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그런 주장들이 사태를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상대방에 대한 (동시에 자신에 대한) 왜곡이 일어난다. 나쁜 것들은 타자에게, 좋은 것들은 자신에게 할당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이 나온 게 참으로 반갑다. 이 책은 이를테면, 일방적으로 중세는 빛이었다고 항변하고 있지 않다. 어느시대나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금까지 사장되어온 측면들을 드러내고 있다. 지면의 한계로 중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지는 않지만 중세를 암흑기로 보고 접근조차 하려하지 않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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