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울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목구멍 너머로 울움이 나올 낌새가 보이면,
꽉 눌러버리는 거지요
실제로 울음은 꽉 눌러버리면 멈춰집니다
언젠가 출근길에 시청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지요.
이미자가 부르는 [친정어머니 오래 사세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딱 그 시간만큼 흘러나왔습니다
잠시 방심했던 모양입니다
울음이 나오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지요
진작 꽉 눌러버렸어야 했는데
미처 내가 눈치 채기도 전에
먼저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한번 터진 봇물은 줄줄 흘러나옵디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내가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망연해 있었던 거지요
주로 몇 개의 회억이 나를 자극합니다
그러니까 눈물을 막으려면
그 몇 가지의 회억만 튀어나오지 않게 잘 챙기면 됩니다
오늘 <월디>라는 친구가 쓴 책
[보통남자 삼심대]를 읽습니다
<월디>의 <민석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야말로 짐짓 냉담자로 있으려고 노렸했습니다
눈물이 나올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꾹 눌러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위로의 말도,
관심어린 언급도 하지 않고 잘 비켜갈 수 있었지요
냉담자야말로
자신이 언제 무너질지를 너무나 잘 아는,
또 몇몇 개의 회억에서는
자신이 대책 없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소심하고도 소심한 자
최소한 나의 <월디>에 대한 냉담은
이런 스스로의 방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월디>의 책을 보고 있는 동안
잠시 그 방어 장치를 가동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냥 무심한 듯 <월디>의 글을 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더러 힐끔힐끔 보고 있지만
한번 터진 눈물을 막을 수가 없군요
그 눈물이 지금까지 <월디>에게 했던
나의 냉담을 변명하는 것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월디>에게 보내는 위로의 말인 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배문성, 운다
기억의 회로..
공기처럼,
살갖처럼,
제어할 수 없는
속수무책인 울음의 경로
목구멍이 뻐근해질 때까지
여미고 또 눌러도
단단하지 못한 난,
그렇게 또
스스로를 데이고 말아요
무심하려 할수록 뜨겁게
저 혼자 물컹거리는 설움
변명도 없이..
위로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