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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아직 폴 오스터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소설을 펼쳐들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시작은 '여기'에서 하지만, 결말에 가서 내가 '어디'에 던져져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 폴 오스터가 차표를 끊어준 우연의 기차를 계속해서 갈아타다 보면, 나는 정말로 낯선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괴물>에서도 그렇다. 소설 첫머리에서 '삭스의 죽음'이라는 종착역의 정체를 미리 통고받지만, 어떤 선로를 따라 그곳에 가닿을지는 도무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펜'을 들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과 싸우던 작가 삭스는 일련의 우연적인 사건들을 거치면서 전혀 새로운 투쟁의 수단을 찾게 된다. 그 과정 속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때때로 그 우연성이 너무 지나쳐, '우연을 이야기하는 작가' 폴 오스터가 쓰지 않았더라면 황당하고 작위적이라고 욕을 먹었을만도 하다. 이를테면, 삭스가 낯선 곳에서 우연히 살해한 사람이 친구 마리아가 아는 사람이라는 식의 우연...(그 넓은 미국 땅에서!)
하지만, 폴 오스터는 이런 작위적인 우연을 통해 오히려 우연의 본질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우리가 허구로 꾸며 내는 일들이 아무리 허무 맹랑하더라도 현실 세계가 끊임없이 토해 내는 예측 불가능한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p.276)라고 말한다.
수많은 우연을 거치면서 삭스가 선택한 투쟁수단은 '폭탄'이다. 극단적인 변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펜'과 '폭탄'이 뭐가 그리 다른가? 그는 폭탄으로 미국 곳곳에 세워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폭파하고 다닌다. 자유의 여신상이 지니는 상징성를 고려해 볼때, 실제로 미국에서 이런 사건이 터졌다면 그 사회적 반향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의 테러 행위는 몇 개의 조형물을 박살내버린 것에 불과하다.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폭탄을 설치하는 삭스는 여전히 테러리스트라기 보다는 '상징'을 이용해 투쟁하는 인물이다. 그가 '펜'으로 싸울 때 그랬듯이.
치명적인 우연 속에 누군가가 '변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지 모른다. 오히려, 거듭되는 우연과 그로 말미암은 선택의 순간들은 우리 자신의 본색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아닐까?
물론, 삭스에게 그런 '특정한' 우연들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폭탄'이 아닌 다른 수단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사건들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그들도 역시 폭탄 테러리스트가 되었을까? 그것은 삭스에게만,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삭스에게만 해당되는 결말이었던 것이다. 낯설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낯설지만은 않은 결말. 그래서, 우리는 우연의 결과를 종종 '필연'으로 읽을 수 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때때로 내 자신이 놓여있는 곳이 무섭게 낯설 때가 있다. 험한 꿈을 꾸다 일어났을 때 옆자리에 잠들어 있는 얼굴을 보고 '이 사람이 누구야?'하고 놀라기도 하고, 눈 앞에 펼쳐진 방안 풍경이 새로워 '여기가 어디야?'하고 눈을 씻기도 한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삼십여년의 우연의 역사가 아찔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게 나때문이었음을 안다. 나의 '요모양 요꼴'을 차마 우연의 신 탓으로 돌리지는 못한다. 내가 단 한순간도 우연의 빗줄기를 피할 수 없었듯이,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난 적 역시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폴 오스터, 그는 분명 다음 작품을 자꾸 자꾸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