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억울한 일이다.고대 그리스의 서사 시인 호메로스의 고향 터키의 이즈미르까지 찾아다닌 나에게 그것은 참으로 부끄럽고도 억울한 일이다. -17쪽
만일 <삼국유사>가 없다면 우리의 고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우리는 민족사의 첫머리에서 단군 신화를 지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건국 신화를 갖지 못한 허전함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향가 14수를 잃어야 하리라. 그리하여 노래가 없고 서정이 사라진 건조한 고대사를 아쉬워해야 하리라. -18쪽
남성 원리인 호랑이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매운 마늘과 쓴 쑥을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갔다. 호랑이는 '바깥'이 그리워 '안'과의 싸움을 계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성 원리인 곰은 그 어둠을 '기다림'으로써 '안'과 싸우면서 삼칠일, 즉 스무하루를 견디고는 사람의 몸을 얻었다. -87쪽
한 사물에 이름이 지어지면 사물은 그 이름을 한동안 위태롭게 간직해야 한다. 사물은 저에게 붙여진 이름이, 붙여진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승인하고, 해석이, 이름이라고 하는 갓 괸 물을 휘정거리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면 물은, 샘물 자체의 속성에 따라, 그 물을 괴게 한 주변의 율법에 따라 되맑아지게 마련이다. -89쪽
리상호는 단군 신화에서 곰의 승리는, 호랑이 토템 부족에 대한 곰 토템 부족의 승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106쪽
고등 종교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 땅에는 종교가 있었다. 신라 학자 최치원에 따르면 그것은 '옛부터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바로 풍류도'다. 풍류도는 샤머니즘과 도교적 신선사상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라인들의 세계관이었다고 한다. 풍류도를 쫓는 화랑 및 그 우두머리 국선은 인위를 좇지 않았다. 그들은 생명이 있는 것들과 생명이 없는 것들을 나누지 않고 하나되어 살고자 했다.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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