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구이 가는 길은 더욱 아름답다. 길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핀 하얀 조팝꽃이며, 우리네 누추한 삶의 버짐처럼 희게 피어나는 산벚꽃, 지붕 위로 피어나는 살구꽃, 아슬아슬한 벼랑에 피어나는 애처로운 산복숭아꽃 꽃빛은 나를 어지럽게 흔든다. 어쩌자고 봄이 오면 저 꽃들은 저리도 흐드러지는지. 평화동 형무소를 막 지나면 정리되지 않는 골짜기의 봄과 가을 아침, 그리고 저녁 햇살이 나를 사로잡는다.
늦은 가을 미나리들은 빈 들에서 그 얼마나 새뜩하게 푸른가. 아, 눈 쌓인 모악의 그 넉넉한 자태며, 비 개인 날의 그 아기자기한 골짜기들, 산이 시작되고 들이 시작되는 모악. 수많은 전주의 화가들이 이 모악을 그렸지만 아직도 모악은, 모악이다.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