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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지음 / 난다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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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째 아무 이야기도 쓰지 못하고 커피로 속을 버려가고 있는 남자를 걱정하던 친구가 건네준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 이야기를 끄집어내야한다고! 초조하게 몸을 앞뒤로 흔드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 고정시킨 친구는 책의 표지를 가볍게 톡톡 두들겼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제목을 확인한 남자가 화들짝 놀라 책을 집어들고 바라보자 친구는 가볍게 끄덕였다.

남자는 희망에 가득차 책을 폈다. 머리 속에 있는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깔끔하게 종이 위, 혹은 모니터 위에 풀어줄 기계를 기대하고 있던 남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로 만든 소박한 기계장치였다. 이게 뭐지? 책장을 아무리 넘기고 뒤적여봐도 남자가 원하고 바라는 기계는 보이지 않았다. 점점 굳어가는 남자의 얼굴을 보던 친구는 남자가 타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남자는 친구의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었으나 화가 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어 손 안에 들린 책을 탁자 위로 내던지듯 놓았다. 매끄러운 탁자 위에서 미끄러지던 책은 친구의 커피잔에 부딪혀 내용물을 뒤집어썼다. 남자는 허둥지둥 일어나 매끄러운 표지 위의 커피를 털어내고 휴지를 뽑아 문질렀다. 그래, 책에 무슨 죄가 있겠어. 어차피 나오지도 않는 이야기를 쥐어짜고 있느니 페이지를 훌훌 넘겨가며 쉬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에 남자는 새로 내린 커피와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집어들고 편안한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는 남자가 앉을 때 너무 오랜만에 앉는 것 아니냐며 뾰루퉁하게 삐걱 거렸지만 금세 남자의 몸에 편안하게 와 닿았다.


남자는 곧 책에 빠져들었다. 책에 나오는 기계 장치들이 남자의 목적에 맞는 것들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기계장치, 혹은 조각에 설명처럼 붙은 짧은 글들이 남자의 머리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디서 읽은 것 같지만 어디서든 읽어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과 어느 누구도 쓰지는 않았지만 수없이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 누구도 읽어보지 못했고 누구도 쓰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핑글핑글 남자의 머리 속을 맴돌았고, 남자는 서둘러 일어나 종이와 펜을 찾았지만 그 사이에 이야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고 남자는 한숨을 쉬며 다시 의자에 주저 앉았다. 힘없이 페이지를 뒤적이던 손은 다시 집중해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고, 남자는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이야기들에 살을 붙여보고, 아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방문하는 사람의 상상 속의 끔찍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집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을 상상했고, 악마의 검은 피를 신의 축복인 줄 알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환경 오염의 대해 생각해보았고, 배를 타고 달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그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이씨 아이, 짐을 잔뜩 진 노새, 하늘에 갇힌 새 등의 조각들을 볼 때에는 글도 글이지만 그 모양새에 감탄했으며, 개와 의자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의자', 그리고 '개'가 한 말을 곰곰히 따져보았다.


마침내 책장을 덮었을 때 그의 머리 속에는 처음에 흩어졌던 이야기와 다시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얘기들이 사이좋게 손을 잡거나, 나란히 앉아 자기 자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의자에서 벗어나(의자는 화가 났다는듯 다시 한 번 삐걱였다) 조금은 딱딱한 다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상 위의 노트를 펼쳤다. 노트의 제일 처음을 '마무리 후 친구에게 커피 대접'으로 채운 후, 그의 펜은 천천히 그러나 막힘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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