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젠가 고스트바둑왕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다 본 적이 있었다. 바둑에도 약간 관심이 있었고 간만에 본 애니라서 그런지 정말 푹 빠져서 봤다. 다 본 후에 뭔가 끝이 이상한 것 같아서 만화책을 알라딘에서 구매를 했다. 그런데 웬걸! 내용이 애니메이션과 거의 똑같았다.(아니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이 원작에 대단히 충실했다.) 만화책에서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할 무렵에서 애니메이션이 끝나는데 만화책을 2부를 제대로 시작하는 듯 하다가 어정쩡하게 끝나버려서 얼마나 허무했는지 모른다. 히까루가 한국의 고영하한테 지는 걸로 끝나서 지금의 바둑 정세를 제대로 반영했느니 어쩌니보다도 2부가 얼마 가지도 않아서 끝나버렸다는데 더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완결편까지 갖고 있다는 안도감에 다행해야 할까?
고스트바둑왕을 방에 둘려니까 책장에 마땅히 빈 곳도 없고 아직 책장을 살 만한 여력도 안되서 책상아래에다가 쌓아뒀다. 옆에 조금 보이는 부분은 바로 앞에 올린 북새통이 쌓여있는 자리다. 보통 의자에 앉게되면 발을 북새통 위에다가 올려놓는다. 계속 쌓여가면 어쩔지는 그때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고스트바둑왕은 내가 대학들어와서 처음으로 산 만화책이다. 대학 들어왔다고 만화책을 기피한 것은 아니고 주로 만화방에서 보거나 책방에서 대여해서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소장해보고 싶은 욕심에 그랬다. 잠시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당시에도 만화를 좋아했지만 더욱 좋아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아이큐점프라는 주간 만화잡지에서 드래곤볼을 연재하면서 나는 일본만화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전에 단행본으로 봤던 만화들이 대부분 일본에 원작이 있는 걸 그대로 베낀 거라는 걸 일본만화를 보면서 깨닫게 되면서 붉은 매, 열혈강호 등 몇몇 만화를 제외하고는 일본만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만화책들을 용돈 아껴가며 직접 사서 모으는 재미에도 빠졌다. 그 첫 시작은 당연히 드래곤볼이었고, 나중에 북두신권과 시티헌터로 이어져갔다. 그런데...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국내에서는 포켓북 형태로 드래곤볼, 북두신권, 시티헌터 등이 시중에 나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드래곤볼 단행본을 아이큐점프에서 출간하는 것을 중단하는게 아닌가. 그 때 23권 쯤에서 끊겨 버렸을 때 느꼈던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설마 여기서 중단할리가 없다면서 끝내 기다리던 어느날 나는 그동안 모아놨던 만화책을 박스에 담고 헌책방으로 갔다. 별다른 흥정없이 헌책방 주인이 건네준 금액은 채 만원도 안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포켓북이 사그러들기 시작하자 아이큐 점프에서는 드래곤볼 단행본을 다시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면서 다시는 만화책을 사지 않으리라 다짐했던게 벌써 십년이 넘었다. 아이큐점프는 몇년전 드래곤볼 오리지날 무삭제판을 다시 간행했다. 북두신권도 원래 제목인 북두의권으로 소장판으로 출간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고스트바둑왕을 보고 난 후 인터넷바둑을 열심히 뒀다. 엠게임, 한게임, 넷마블 세 곳에서 동시에 시작해서 엠게임에서는 18급에서 10급까지 올렸지만 지금은 바쁜(?) 관계로 바둑을 접은지 수개월이 지났다. 만화책을 본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지금도 가끔은 늦은 밤 귀가길에 집근처 책방에서 만화책을 대여해서 보곤 한다. 책도 나에게 많은 것을 줬지만 만화책도 나에게 짧은 순간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더불어 소장하고픈 만화책을 접한다면 더할나위가 없다. 누가 나에게 그런 만화책을 소개해 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