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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우물에서 만나 ㅣ 높새바람 56
윤수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6월
평점 :
'보름 우물'은 한 달의 절반은 맛 좋은 물을, 나머지 절반은 마실 수 없는 물을 주는 우물이라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실제 보름 우물의 모티브가 된 '석정 보름 우물'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버려진 아이인 '정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정이에게 있던 비단 조각을 보고 데려다 기르면 나중에 친부모가 찾아와 보상을 해 줄 것이라 기대한 정우의 부모가 데려다 길렀는데, 10년이 지나도록 친부모가 찾지 않자 찬밥 신세로 전락해 하녀처럼 부려지고 있었다. 그러한 정우의 부모도 결국 정이를 버리고 떠나고, 정이는 고아원 격의 유집소, 거지촌을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복순이, 개똥이와 만이 등 또래 아이들도 만나는데, 그들은 정이에게 호의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있었다. 누명을 쓰고 멍석말이를 당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생을 이어가는 정이의 신분이 궁금했다.
거지촌에서 만난 왕초 홍월, 그리고 그녀의 지인인 북촌 마님, 그녀들 모두 정이의 부모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후반부에 들어서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동화임이 밝혀지는데, 바로 조선 후기 천주교인 박해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다. 초반부에는 그저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 정이의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정이가 만난 인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게 되는 이야기는, 자생적으로 조선 땅에 퍼졌던 서학과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순교했던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스케일이 커지게 된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누군가는 그것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밀고하고, 누군가는 가슴에 품고 뜻을 이어가는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려워 할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초연하게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이 땅의 순교자들이 떠올랐고, 그들이 그렇게 신분을 막론하고 서로 사랑하며 평등한 세상을 꿈꿔왔다는 사실을 정이와 인물들을 통해 되새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