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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아파트 사는 애랑 왜 친구하면 안 돼?
김해나 지음 / 해나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이야기의 주인공 '지유'는, 발레를 전공한 엄마를 따라 발레를 하게 되면서 재능을 인정받아 영재 소리를 들으며 각종 상을 휩쓴다. 그러나 몸이 자라는 고학년이 되고, 더이상 발레가 예전처럼 재밌지 않게 되었다. 엄마의 못다이룬 꿈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 나 때문에 희생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힘겹게 발레를 이어가고 있다. 예술중학교 입학을 위해 경기도에서 무리해서 서울로 이사를 왔고, 엄마의 대학 동기들을 불러 화려한 집들이를 치르고 그들 중 한 명이 놓고 간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 나갔다가 지유는 엄마와 대학동기들의 관계를 알게 된다.
서울로 전학을 와서 엄마 친구 딸이자 발레를 하는 서연이, 그리고 매번 해외에서 간식을 가지고 오는 해주, 그 곁에서 충실한 심복 노릇을 하는 수영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옷차림이 남루한 은주를 무시하고 괴롭힌다. 엄마는 지유에게 임대아파트에 살면 가난병이 옮아 발레리나도 될 수 없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순진한 지유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받아들인다. 은주와 짝이 되었지만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웠던 지유. 그러던 지유가 계단에서 넘어질 때 밑에 깔린 은주가 다치면서 둘 사이가 가까워진다.
대회에서 항상 특상, 1등만 도맡아 하던 지유는, 엄마의 라이벌이었던 민희 아줌마의 공연에서 선발하는 아역에 도전했다가 엄마 친구 딸인 서연이에게 밀린다. 그 일로 지유의 엄마가 민희 아줌마 머리채를 잡는 것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고, 학교에서 지유는 뒷담화를 듣게 된다. 은주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지유는, 점차 가까워진 은주의 집에 방문하여 사고를 당해 자택에서 요양중인 은주 어머니를 보게 된다. 은주 부모님은 고등학교 교사였으나, 은주 어머니가 은주 동생을 임신했을 당시 뺑소니 사고를 당해 겨우 목숨만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고 치료비를 대느라 임대아파트에 살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술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지만, 정작 초등학교 무대에서 실수를 하게 된 지유.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다친 몸을 이끌고 친구들과 택시를 타고 할머니댁에 갔지만 그곳에서 엄마와 이혼을 준비하고 평온하게 지내는 아버지를 보고 되돌아온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더이상 유명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발레가 아닌, 자신이 좋아서 하는 발레를 하겠다고 외치고 눈물을 흘린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것인데, 그러기까지 희생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짊어지기에는 그들에게 있어 삶의 무게가 너무 크다.
사는 집, 입는 옷, 먹는 음식... 이런 것들로 그 사람의 가치와 인생을 재단하는 실수를 어른들은 자주 범하곤 한다. 그리고 그들의 경험에서 얻은 불확실한 정보를 그들의 자녀에게 가르친다. 아이들은 뜻도 모르고 '임거(임대아파트에 사는 거지)'와 같은,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병균이 옮는다니...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힘들게 하는 요인은 다르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과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 건강한 몸, 그리고 건강한 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는지, 내가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무시하고 비난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해주는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