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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강 ㅣ 텍스트T 17
지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지은 작가의 장편소설 '활강'은, 한때 알파인 스키의 유망주였던 두 소녀가 겪는 상실과 재도전을 통해 '패자도 다시 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무대는 눈 덮인 설산과 급경사 슬로프다. 단순히 스피드를 즐기는 레저나 스포츠가 아니라, 스키는 이들이 그동안 쌓아 온 노력의 총합이자, 좌절과 극복을 거쳐야 하는 무대다. 원래 꿈꾸던 길에서 벗어나야 했던 주인공이, 다시 스키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단순한 “스포츠 소설”을 넘어, 인생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비유처럼 다가온다.
한때 경쟁자였던 두 소녀가, 사고로 인해 하나는 시각장애인 선수, 다른 하나는 가이드 러너가 되어 다시 마주친다는 설정은 이 소설의 핵심 구조다. 처음에는 성향도 다르고, 마음의 거리도 있었으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했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과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면서, 서로의 상처와 불안, 두려움을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곧 서로를 온전한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이해와 연대”를 의미한다. 패럴림픽 참가를 향한 도전이 단순히 개인의 목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처음엔 경쟁자였지만, 결국 서로의 가이드가 되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존재가 된 우희와 예리. 그 여정은 단순한 스포츠의 승패를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해와 신뢰, 협동의 가치를 보여준다.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누군가와 함께라는 것, 서로를 보조하며 나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절실하게 느껴진 적은 많지 않았다. ‘라이벌’이라는 말이 오히려 누군가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역설. 그걸 이 소설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활강'은 단순한 '스포츠 소설'이 아니다. 삶이 무너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다시 설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다. 스키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이 소설은 도전과 믿음, 그리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전해주었다. 겨울이라는 계절,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그런 소설. 이 책을 통해, 꿈이란 반드시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고, 때론 부서지고 깨지고 다시 맞춰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있다면, 그 재조립의 과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이 소설이 주는 그 따뜻한 여운이, 읽는 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기를 바란다.
+ 깨알같은 잡지 인터뷰 형식의 두 소녀의 인터뷰 내용도 참신하고 재미있었다. 실존 인물처럼 느껴지고, 응원하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