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남다른 관찰력이 시어로 승화되었다.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다음은 시계롤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다.
도처에 시계 아닌 것이 없다. 물은 흐르는 시계고 꽃은 피어나는 시계고 사람은 늙어가는 시계고 철새는 날아가는 시계고 바람은 불어가는 시계다. 생명들도 생명 아닌 것들보다 다 무엇인가의 시계이며 거대한 우주라는 시계의 부품이다.
방학을 맞은 우리 집의 시계는 6살된 ‘막내 아들’이다. 아들이 깨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끼니를 먹거나 놀이를 하거나 하루가 저물어 아들이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막을 내린다.
전원마을, 푸른마을, 강변마을..... 이름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이름들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알 수 있다. (중략) 풍경에 폭력을 가하면서 그 폭력성을 당당히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하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다가 빛의 계단을 오르면 지상에서는 신령스러운 산은 부동산밖에 없다고, 믿을 건 부동산밖에 없다는 신흥 종교의 교세가 대단했다. 이미 방방곡곡 시골 마을까지 그 세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땅은 더 이상 먹거리를 생산하는 순수한 생성의 모태가 아니었다. 투기의 대상이었고 자본의 접전 구역이 되어 있었다.
시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뻘, 바다, 섬, 자연, 나무, 그리고 시인 주변의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스님이 무소유가 아니라 풀소유를 했다고 비난을 받았던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함민복 시인이 오히려 구도자의 삶, 수행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