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 홀로 먼 길을 가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함민복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 에세이 # 섬이쓰고바다가그려주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함민복, 시공사)

함민복 시인이 누구인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이 시는 많이 듣고 읽어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시인의 이번 에세이에도 실려 있다. 제목은 [긍정적인 밥]이다. 아래의 시를 읽으면 아 그 시가 함민복 시인의 시구나 생각이 들 것이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위 시를 읽으면서 윤동주의 [너무 쉽게 쓰여진 시]도 생각이 났다. 항상 시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축약된 시어 그 이면에 시인이 담고 있는 무엇인가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어떤 말을 시인이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어렵게 느꼈던 것 같다.

이 책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는 시인이 강화도에 살면서 쓴 에세이를 모았다. 저자 소개도 인상적이다.

자본주의와 물질로부터 소외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소박한 문체와 감성적인 시어로 고발하고 환기시켜왔다. 현대인의 삶에 침잠한 욕망과 부조리에 날선 비판을 가하기보다는 낡은 것들을 가까이하는 투박한 일상과 자연의 내밀한 가르침을 보여줌으로써 응수한다. 느리고 가난하게 살며 시로 세상을 그려낸다.



이 대목에서는 소로의 [월든]이 생각났다. 무엇이든지 잘 보고, 정확히 보려면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어서 우리의 욕망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소로나 함민복의 글을 읽고, 자연 속에 사는 삶을 동경하는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시인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던 에피소드 하나. 마당에 텃밭을 하면서 토마토를 심었더랬다. 북상하는 태풍에 토마토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고 끝물이고 해서 토마토를 베었다. 다음 날 토마토 포기마다 한 뼘 정도 되는 땅이 동그랗게 젖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잘린 토마토 줄기가 젖어 있었다고. 이렇게 토마토는 포기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그래서 토마토를 뽑고 무를 심으려던 계획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는. 같은 상황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마음, 이런 것이 시인의 마음인가 보다.



시인의 남다른 관찰력이 시어로 승화되었다.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다음은 시계롤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다.

도처에 시계 아닌 것이 없다. 물은 흐르는 시계고 꽃은 피어나는 시계고 사람은 늙어가는 시계고 철새는 날아가는 시계고 바람은 불어가는 시계다. 생명들도 생명 아닌 것들보다 다 무엇인가의 시계이며 거대한 우주라는 시계의 부품이다.


방학을 맞은 우리 집의 시계는 6살된 ‘막내 아들’이다. 아들이 깨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끼니를 먹거나 놀이를 하거나 하루가 저물어 아들이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막을 내린다.


전원마을, 푸른마을, 강변마을..... 이름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이름들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알 수 있다. (중략) 풍경에 폭력을 가하면서 그 폭력성을 당당히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지하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다가 빛의 계단을 오르면 지상에서는 신령스러운 산은 부동산밖에 없다고, 믿을 건 부동산밖에 없다는 신흥 종교의 교세가 대단했다. 이미 방방곡곡 시골 마을까지 그 세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땅은 더 이상 먹거리를 생산하는 순수한 생성의 모태가 아니었다. 투기의 대상이었고 자본의 접전 구역이 되어 있었다.


시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뻘, 바다, 섬, 자연, 나무, 그리고 시인 주변의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스님이 무소유가 아니라 풀소유를 했다고 비난을 받았던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함민복 시인이 오히려 구도자의 삶, 수행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