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소설

피구왕 서영(황유미, 빌리버튼)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집단 속에서 쪼그라드는 자아를 마주하는 것이다.”

 

 

개인이 먼저 인가? 사회가 먼저 인가?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지만, 사회가 개인은 아니다. 만들어진 사회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고 개인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시작하여 학교, 회사, 동아리, 국가 등 사회에 속하게 된다. 그 사회 안에서 개인은 얼마큼의 자율성을 갖는가? 황유미의 소설은 집단 안에서 반복되는 사회염증을 들추어낸다. ‘집단 안에서 개인의 자아’가 소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 교실 풍경을 보면 대략적인 권력 구도를 알 수 있다. 교실 한쪽에 다섯 명의 여자아이가 모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권력의 피라미드에서 꼭대기 계층을 차지하고 있는 집단으로 보였다. 그 가운데 말수가 많지는 않아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한눈에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서 있는 듯한 여유로운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서영은 그 집단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런 육식동물과는 엮이지 않는 게 제일 마음 편한 법이라고 생각했다.

 

 

 

 

 

3월 학기 초에는 학생도, 부모도, 교사도 초긴장의 상태이다. 학생은 친한 친구가 같은 반인지, 없으면 그 반 안에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를 탐색하는 시간으로 긴장한다. 공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부모는 방학의 긴 터널을 끝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는 흐뭇함과 동시에 새 학년에 잘 적응할 것인지, 담임은 어떤 사람이 될지 긴장한다. 교사는 어떤 아이들과 만나게 될지, 어떤 선생님과 지내게 될지 긴장한다. 학교에서 3월은 그런 달이다.

 

 

교실에서 윤정이 그림자 같다면, 수현은 바닥에 붙은 껌 같았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졌을 뿐인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피하고, 가끔가다 밟게 되는 사람은 뱉으며 욕을 했다. 이미 여러 번 밟혀 딱딱하고 납작해진 채 검게 붙어버린 교실 바닥의 껌. 오늘도 아이들은 하수구를 걸고넘어지며 정글 같은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었고, 대부분의 아이가 이를 묵인하며 기이하고도 집단적인 폭력에 가담했다. 서영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방관자였다.

 

 

교실에서 형성된 관계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끝낼 수가 없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얼굴을 보고, 하루 반나절 이상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특정 집단과 관계 종료를 선언하는 순간 불편한 관계인 아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예민한 자신이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던 것을 쓴 반성문이라 했다. 오래 되었지만 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도 방관자가 아니었을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는 정글이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 층에 있던 아이들이 있었고, 성적순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지금과 달리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는데, 지금은 형식적인 관계만이 남은 것 같다.

“어디 살아?”

“은미아파트”

“몇 평이야?”

“몇 평인지는 잘 모르는데....”

 

 

현지와 서영이의 대화이다. 처음 만나 나누는 대화가 어른들의 대화를 닮았다. [어린 왕자]도 생각난다. 좋아하는 운동이 무엇인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처럼 숫자로 모든 것을 판가름한다. 학교에서도 순위를 결정하는 일에 몰두한다. 체육대회에서 달리기 한 후 1,2,3등 손목에 숫자 도장을 찍는 것, 공으로 상대를 맞춰야 승리하는 피구, 여자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짝피구 등등. 요즘 많이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학교는 순위에 얽매여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순’이라는 것이다. 최근 ‘SKY캐슬’이라는 드라마는 과장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대입과 교육문제의 민낯을 드러내고, 입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

 

 

 

학교에서는 모든 일에 순번이 매겨지는데 이런 등수 문화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앞 순위에 들지 못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일의 목적은 오로지 순위가 되어버린다. 정말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공부한다든가, 운동하는 게 좋아서 운동하는 등의 순수한 동기는 애초에 필요도 없다. 좋아하든 말든 앞 순위에 들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활동일 뿐 ‘무슨 과목, 어떤 운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계속한다.’는 것은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해서 계속하고 싶은지는 생각할 틈도 없다.

 

 

<피구왕 서영> 관계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위태로운 우리들

<물 건너기 프로젝트>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가장 벗어나고 싶은 감옥일 수 있다.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까만 옷을 입은 여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레르기> 당신만 예민한 건 아니다. 예민한 우리는 생각보다 많다.

 

 

 

피구왕 서영에 이은 다른 단편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마지막에 있는 <알레르기>는 더 공감했다. 보통 알레르기하면 땅콩, 우유, 꽃가루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알레르기는 사람에 대한 알레르기다. 소설 속이라면 나도 분명 ‘범지구 알레르기 협회’에 회원가입을 해서 회원이 되었을 것이다. 범지구 알레르기 협회에서 회원들의 고충을 덜고자 몇 가지 강령을 발표했다. 강령1. 최고의 방어는 공격. 강령2. 당신은 특이 체질이지만 당신만 특이 체질은 아니다. 알레르기 유발자들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항상 조심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