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임재희 (지은이) | 작가정신 | 2018-09-20

[단편소설][소설]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임재희, 작가정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고독감을 가장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지만 자신을 알아 주는 한 사람은 필요한 것 같다.
 
폴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혼한 엄마를 만나러 한국에 들어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 비행기 스탠바이로 겪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만난 항공사 직원, 양말 장사 아저씨, 택시 기사, 호텔 근처에서 만난 유학생 등을 만나며, 하루 동안 자신이 계속 미뤄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찾으려 애쓴다. “엄마는 왜 이렇게 서택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엄마의 나라인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것 같아 안심이 든다

“그래도 첫 번째 싸워 본 지옥이 조금 낫겠지.”
폴은 지난 며칠 동안 미뤄두었던 질문과 그제야 맞닥뜨렸다. 가장 궁금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 질문으로부터 도망쳐왔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불행한 사람들의 이유는 너무나 다르고 많으며 개별적이라는 엄마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엄마가 스스로 택한 삶의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평소에도 ‘중심’이라는 말은 자본과 힘에 의해 만들어진 정의하고 생각했다. 정작 그의 온 신경은 타인이 바라본 엄마의 사회적 위치에 가 있었다. 어쩌면 그게 더 정확히 엄마 삶의 현주소를 폴에게 설명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어떤 이유든지 미국에서도 밀리고 서울에서도 밀려 멀리 끝 간 데로 간처럼 이해되었다.

[압시드(Abcd)]
 
독특한 형식의 단편소설이다. 인터뷰 형식을 취하면서도 질문이 나오지 않고 인터뷰이의 독백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국전쟁 때 입양된 후 미국에서 자란,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이. 볏짚 타는 냄새로 한국을 기억하고 있고, 이름은 압시드(Abcd). 고래학자.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관찰하고, 적고, 생태를 조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 고래를 어미로 두고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 그 이름에 얽힌 사연. 유추해낸 Abcd에 담긴 생부의 마음. 이해와 희생은 이해할수록 슬픈 말이다

어쩌면 언어란 기억 그 너머의 시간 속에 저장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이해와 희생이라는 말처럼 슬픈 게 없어요. 그 안을 들여다봐요. 그 말 속에 버려진 것들 말이에요.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피하자고요? 그래요. 나도 이제 무겁고 진지한 것은 싫어요. 남은 생은 깃털처럼 가볍고 풍선처럼 멀리 날아가려고요.

"한국에 관해 뭐가 기억나니?" "뭐 기억나는 것 없니?"
"냄새요, 뭔가 타는 냄새."
초저녁이었고, 겨울과 초봄이 뒤섞인 공기는 싸늘했고, 나는 어떤 남자와 함께 논둑을 걷고 있었어요. … 온 벌판에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어요. 내가 기억하는 그 냄새는 아마도 그때 맡았던 냄새일 거예요. 내 생각에는 그 남자가 나의 생부 같아요.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네 개의 알파벳은 한 남자의 슬픔이고, 유언이고,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라는 말이군요. 음. 일리가 있어요. 겨우 네 개밖에 모르는 알파벳으로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아비의 마음을 최선을 다해 표현한 거라고요?

위 단편을 포함해 [히어 앤 데어], [동국], [라스트 북스토어], [천천히 초록], [로사의 연못], [분홍에 대하여], [로드] 9개 구성된 단편 소설집이다.
[라스트 북스토어]는 노모를 모시고 동생을 보러 간 LA의 서점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인과의 인연에 대해서, [로사의 연못]에서는 꿈꾸는 이민자들의 성공한 것 같은 겉모습과 대비되는 허망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공통적으로 경계인이나 주변인, 외국에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들로 읽힌다. 글만으로 경계인과 주변인으로 사는 삶의 실존적 고독감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책 읽으면서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https://youtu.be/d27gTrPPA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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