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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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빛이 도는 보름달이 뜬다. 엄마에게도 그랬듯 딸에게도 흉조다.- 문을 열면 밖으로 손톱만한 달이 보인다. 사방은 고요하다. 숲 속 암자의 밤은 구구절절히 묘사하지 않아도 섬짓하도록 적막하다.- 손톱만한 달이 보름달이 되고, 다시 일그러졌다가 보름달이 되었을 때, 그 때가 끝이었다. 달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소설을 읽었다기 보다 영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 몽환적인 분위기에 다소 공포감도 느껴지는 그런 영화 말이다. 잡음이 심한 영사기가 흐릿한 흑백화면을 쏘아대는 느낌의 그런 영화 말이다. 눈으로 보는 글자들이 전부 영상으로 바뀐다. 스토리 중심의 소설이라기 보단 이미지 중심의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이토록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니, 작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내가 새로운 글자를 통해 영상을 만들어내듯 주인공도 자신이 모르는 영상에 쫓긴다. '피를 흘리며 숲에서 죽어가는 나, 내 몸을 기어다니는 벌레, 난 여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몸서리 치도록 선명한 그 영상과 느낌에 지금의 '나'를 의심한다. 그렇게 그 여인도 다가온다. 꿈이라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그녀. 난 그녀를 보기 위해 잠을 잔다. 그녀의 얼굴이 보고싶다. 못 견디게 보고싶다. 난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꿈이라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그녀를.....'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만드는 마지막을 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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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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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얘기다. 너무 가난해서 우동 한그릇을 놓고 세 모자가 먹는 이야기. 그것을 지켜보는 우동집 주인의 우동 반덩어리에 담긴 애정과 관심. 거기서 시작되는 정말 너무도 뻔한, 누구나 결론을 알 수 있는 해피엔딩의 이야기. 그러나 코끝이 찡하게 저려온다.
두 번 째 이야기 '마지막 손님' 역시 뻔한 이야기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과자점의 점원이 돌아가신 할머니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한다.

상투적(?)인 교훈을 담고 있으며 줄거리 역시 뻔하기 짝이 없건만 우리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코끝이 찡해지고야 만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감동이라기 보단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소설에 나오는 세상같지 않음에서 오는 서글픔 때문에 눈물이 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함에서 오는 비애 말이다. 반면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다. 우동집 주인의 우동 반 덩어리와 과자점 점원의 친절함이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만큼의 감동이었지 않은가. 내 삶의 변화와 주변인에 대한 따뜻함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동 한그릇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 나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나로 인해 세상은 살고 싶은 곳이 된다.그리하여 우린 더 이상 우동 한그릇에 감동받지 아니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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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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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재로 한 '하드보일드'(섬짓하니 밤에 읽지 마시라. ^^)와 '하드 럭' 두 개의 이야기다. 연인(?)으로 지내던 친구의 기일에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를 다룬 '하드 보일드', 결혼을 앞두고 뇌사상태에 빠진 언니의 죽음과 맞물려 다가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하드 럭'.

내가 죽으면 세상도 모두 끝이 날 것만 같다. 그러나 나 하나 사라진다고 하여 멈춰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하여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잠시 슬프고 나면 그럭저럭 살 수 있다. 그리하여 떠난 자보다 살아남은 자가 더 괴롭고 힘든 법이다. 헤어지던 날 아무도 없는 외딴 길에 그녀를 내려 준 기억이며, 화재로 인해 친구가 죽었는데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며, 언니는 죽어가고 약혼자는 시골로 내려가 나타나지도 않는데 나는 언니 약혼자의 형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 소중한 사람이 떠나건만 나는 그저 옛 추억이나 곱씹으며 미안해 하거나, 나 살던 길을 살아간다. 죽음도 결국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일까? 삶과 죽음, 백짓장의 차이가 주는 고통에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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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윤대녕 지음, 조선희 사진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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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란..... 가방에 넣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고 휘리릭 넘겨 가며 훑어보고, 다시 넣었다가 또 꺼내들고, 그러기를 잠 들기 전까지 했었드랬다. 굳이 사진과 함께 한 소설이 아니었어도 읽기 전에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책이 있다. 말하자면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 그런 부류의 책이었다.보는 즐거움에 빠진 나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턴 혼란이 몰아닥쳤다. 어떤 개연성도 없이 시작되는 주인공의 '사막'에 대한 집착, 우연히 시작된 '사막' 여행, 대수롭지 않게 묘사되다 뜬금없이 커져버린 한 여인의 존재감(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낯섦'이라고 하지만 결국 '일탈'을 꿈꾼 것은 아닐까?), '사막' 여행을 앞두고 가졌던 아내의 불안감이 현실로 벌어지고..... 모두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낯섦과 마주서기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할 뿐이다.도대체 사막은 무엇이며 피아노는 무엇이고 백합은 무엇인가. 무지몽매한 나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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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센 말로센 1
다니엘 페나크 지음, 진인혜 옮김 / 책세상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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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센의 동거녀 쥘리는 노부부가 평생에 걸쳐 만든 영화를 상속받는다. 노부부는 그 영화가 세상에 공개되길 원치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단 한 번만 보여진 후 세상에서 사라지길 원했다. '정해진 몇 명과 단 한 번' -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늘 그렇듯이 말로센의 주변에선 다시 살인이 일어나고 그 살인에 이어 수녀가 임신을 하는 따위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전편에서도 그랬듯이 역시 말로센 가족들은 조급해 하지 않는다. 말로센이 범인으로 몰려 유치장 신세를 지고 있는 와중에서 그것을 소재로 소설까지 써댈 만큼 상황을 즐긴다(?). 모두 모이면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산만하고 북적대는 식구들이 갖는 여유로움과 엉뚱함... 그래서 우리는 말로센 가족을 사랑한다.

지금까지의 말로센 시리즈 중, 가장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개연성 없는 사건(영화 필름이 사라진다. 노부부가 살해된다. 창녀들이 사라진다. 살해된 줄 알았던 여자가 나타난다. 수녀가 임신한다. 쥘리의 아기가 이유없이 중절수술을 당한다....)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각 사건을 또 다른 각각의 사람들이 해결하고 그것이 조금씩 범위를 좁혀서 결국 하나로 모인다. 황당하면서도 즐거운 결말, 인간미 넘치는 추리소설, 늘 속엣말로 지껄이는 말로센의 매력, 경쾌한 다니엘 페낙의 문체 모두를 이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시리즈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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