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점
김희재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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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미술시간에 배웠던 그것.

멀고 가까운 거리감을 표현하는 원근법에서 결국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그 지점을 지칭하는 소실점.

소실점이라는 제목으로는 내용을 짐작도 할 수 없게 자극적인 표지로 일단 시작한다.


작가가 영화 실미도와 공공의 적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만 글의 진행 속도가 남다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장면 전환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장면 전환은 장소의 이동을 통해 일어난다. 

작가가 이끄는대로 장소를 따라 움직이다 보면 이야기에 빠져들어 사건을 추리할 여유가 없다.

표지만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도 자극적이니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은 10초도 확보할 수가 없다.


재벌가 며느리, 빼어난 미모,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 철저한 사생활 관리까지 완벽했던 아나운서의 죽음.

화려한 그녀의 삶을 파헤치는 검사는 상대적으로 평범(?)하지만 능력을 인정받는 여자.

용의자는 부와 명예와 좋은 평판까지 모두 가진 화가 겸 교사.

전문직에 보통 이상의 경제력과 능력을 갖춘 등장인물은 삶에 찌든 일상이나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재미나게 끌어가는 본인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뿐.

덕분에 독자는 큰 고민 없이 - 단숨에 결론으로 달려갈 수 있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소실점"으로.


책을 읽었다기보다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휘몰아치듯 푹 빠졌다가 나와보니 '나쁜 놈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확 박아넣은 영화 '공공의 적'을 본 그런 느낌.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남에게 쉽게 보여줄 수 없으나 역시 '나' 인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을,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위한 '사랑'의 이야기를,

돌려 말하지 않고 전달한다,

아주 극단적인 인물을 통해, 자극적인 묘사를 통해.


폭풍이 휘몰아치듯 단숨에 읽어내리게 되는 책, 소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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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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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내용까지 모두 독특한 책이다.

읽기 시작하면 정신 놓고 재미나게 본다.

그런데 한창 읽다보면 내가 뭘 읽고 있는 지 모르겠는 이상한 책. ㅋㅋㅋㅋㅋ
  

한동안 에세이를 주구장창 읽으면서 에세이라면 토가 나오게 싫다고 말하는 중에도 "랩걸"은 거부감 없이 읽힌다.

에세이인데 소설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실험실과 연구와 박사학위와 교수직과 나무와 토양과 곤충 이야기가 한가득.

에세이지만 낯선 세상의 이야기는 신비롭고 재미난 법.


불쌍하고 처절한 일상을 위트와 자조 섞인 웃음으로 넘기는 건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100% 일치한다.

희망을 가져야지, 어렵지만 견뎌야지 따위의 교훈은 없다.

병원 가서 우울증 약이라도 받아오라고 하자 돈이 없고 시간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 느낀다고 답하는 랩걸.

그럼 그 약을 받아서 니가 돈을 조금밖에 주지 않아서 집도 없이 사는 나한테 주라고 말하는 그.

돈이 없어 살 집이 없고, 그래서 창문조차 없는 연구실에서 사는데 새벽까지 잠이 안 온다고 전화질을 하는 너를 받아주는 나도 우울하지 않겠냐? 라는 뜻을 내포하지만 비난이 아닌 애정이 듬뿍 담긴 대화.

'힘 내자' 라는 말 따위 한 마디 건네지 않아도 지지리 궁상으로 그냥 전진하는 그들.

랩걸과 그가 연인이 되지 않아 더욱 애절한 로맨스처럼 보여 재미나다. ^^


그렇다면 랩걸은 로맨스 에세이일까?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2016년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 인에 선정된 여성 과학자다.

여성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풀브라이트상을 세 차례나 받기도 했고.

지지리 궁상, 밝은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성장기와 나무의 성장을 묘하게 섞어서 쓴 글은,

제대로 된 목재(책의 표현을 빌어서)가 되어 가는 나무와 본인의 자서전이라 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나무는 맨 위쪽 이파리가 맨 아래쪽 이파리보다 작고 색도 옅은 초록색이라고 한다.

작은 이파리들 사이로 해가 들어 아래쪽 이파리가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크기가 작고, 아래쪽 이파리는 적은 양의 햇빛으로 양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진한 초록색을 가져서 그렇단다.

주변 나무보다 성장이 더디면 다른 나무에게 양분을 빼앗겨 생존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존재.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게 치밀하게 짜여진 전략으로 나무는 자라야 한다.


나무를 공격하는 대상이 생긴다면 (텐트나방 애벌래 얘기가 나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파리에 독소를 만들어내고, 적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그 방법을 다른 나무에게 전달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땅속 신호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기 중의 무언가 (사람은 알 수 없는 유기 화합물을 만들어 공기중으로 보내는 방식이라고 말함) 를 통해서 말이다.

랩걸은 이 놀라운 나무(식물)의 세계를 연구하고 밝혀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과학계의 여성차별,

자신과 빌의 관계를 라벨을 붙여 규정짓고 싶어하는 시선,

엄마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정신의 결핍,

해서, 엄마보다는 아빠 역할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 말하는 당당함을 스치듯 꺼내 놓는다.


랩걸 (Lab Girl).

연구실 소녀.

딱딱한 과학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삶과 밀접한 식물 이야기.

책을 덮으면 나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져 있음을 느끼리라.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라도 아껴서 쓰게 되리라.

그리고 하루를 그냥 열심히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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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없어도 함께할 거야 - 삶의 끝에서 엄마가 딸에게 남긴 인생의 말들
헤더 맥매너미 지음, 백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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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

2년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엄마의 이야기.

너무 슬플까봐 읽지 않으려고 했다.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눈물이 나서 환장하겠는 요즘 죽어가는 엄마가 자식에게 남기는 말을 애써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뭔 얘긴지 왜 이리 궁금한거야.

아마존 독자 평점 만점에 빛난다는 띠지의 광고가 자꾸 눈길을 잡아끈다. ㅡㅡ;;


결론은,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눈물 질질 짜는 얘기 아니다.

마지막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긴 했지만 울지 않았다.

'곁에 없어도 함께할 거야" 라는 제목이 너무 서정적이라 눈물 짤 거라 예상하지만

눈물 따위 없이 "이렇게 사는 게 진짜 제대로 사는 것" 이라고 몸소 보여준다.


저자는 원고를 탈고한 후 사망했다고 한다.

남겨질 딸 아이를 위해 카드를 쓰는 것에서 시작한 이야기.

학교에 입학할 때, 처음 운전 면허를 딸 때, 결혼식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힘없고 우울한 날.......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을 날들, 딸에게 해주고픈 말을 카드에 쓴다.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넌 사랑받는 아이였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파서.

엄마가 곁에 없어도 늘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녀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뎌낸다.

모든 것을 의사에게 맡기고 '취급주의'라는 딱지를 붙인 독극물과 같은 약을 투약하고 부작용과 싸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면 딸 아이와 춤을 출 수 있고, 쇼핑을 갈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주사를 놓으러 오는 간호사가 장갑에 마스크에 혹여라도 약이 한 방울이라도 튈까봐 조심하는 그 약물을.

몸 안에 넣고 견뎠으니, 나도 내가 하고픈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며 포도주 파티를 여는 그녀.

보고팠던 콘서트를 다녀오고 그녀에게 주어진 말기 암환자라는 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면 다방면으로 이용(?)하여 도움을 얻는다.

포스터에 쓰인 표어가 아니라 진정으로 '매 순간'을 살아내는 그녀.


36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그 죽음은 너무도 고통스럽게 찾아오고,

죽음의 순간을 하루라도 늦추기 위해 살아 있는 순간마저 괴로워야 하지만,

그녀는 슬픔과 연민과 괴로움과 고뇌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장례식을 식물원에서 파티로 직접 준비하는 그녀.

아무도 자신의 장례식장에선 울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기억할 땐 모두 즐겁고 신났던 일만 떠올리길 바란다.

그녀를 모르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나도 그녀의 이야기 "곁에 없어도 함께할 거야" 를 보며 즐겁고 신나게 살았던 그녀를 떠올리게 되었으니 그녀의 바람은 이뤄진 것이겠지?


브라보!!!!

소장용 책 등극.

눈물 질질 짜는 책이 아니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매 순간을 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보다 더 절절하게 그려낼 수는 없으리라.

자식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에 대해 이보다 명확하게 보여줄 수는 없으리라.

나도 내 아이에게 말한다.

곁에 없어도 언제나 함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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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 16년차 부장검사가 쓴 법과 정의, 그 경계의 기록
안종오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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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어수선하니 검사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다.

특검이 활동을 잘해서 검사 이미지가 더욱 추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대통령 탄핵 정국이 아니더라도

모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언행을 선보여 우리를 경악케 했던 집단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내게 검사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이들로 인식된 존재.

이런 존재가 쓴 책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할 순 없다.

깊은 사색의 결과물로 나의 인식의 폭을 확장하고 인생의 지표로 삼을만 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없다.

제목 그대로 기록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외화 광고처럼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타클하면서 드라마틱한 - 외국어로 덕지덕지 포장한 사건을 기대했다.

내가 기대한 그대로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타클하면서 드라마틱하게!!!!!!

작아도 너무 작은 동네 호프집 싸움 사건 등장.

작아도 너무 작은 동네다보니 그 싸움의 현장엔 판사만 빼고 피해자, 피의자, 증인, 검사 모두가 있었던 상황.

호프집 주인과 알바생은 단골 손님을 재판장에서 검사로 만난 것에 더욱 놀랄 뿐이고. ㅋㅋㅋ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넘쳐서 실망(?)스럽다.

권력지향적이고 비인간적인 냉혈한일 줄 알았어, 내 이럴 줄 알았어......라고 손가락질이 하고팠나보다. ㅎㅎㅎ


사건의 과정을 담은 기록.

수사 과정에서 남긴 작은 메모 하나가 재판의 결과를 뒤바꾸기도 하고,

누군가 놓친 단어 하나가 여러 사람에게 해를 입힌 악인을 세상에 풀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건 기록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람이고 인생인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과 삶을 뒤바꿀 수 있는 기록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사람, 검사.

그래서 검사는 더 큰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


검사 안종오는 내가 가진 '검사' 에 대한 선입견을 뒤흔들었다.

죄나 힘이 아닌 사람을 쫓는 인간적인 검사들.

내 가정과 개인의 일상이 뒷전으로 밀려나도록 업무에 쫓기는 근무환경.

단합대회와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 

기록 너머엔 피의자와 피해자라 불리는 사람의 인생이 있지만 검사라 불리는 사람의 인생도 있더라.


사람만이 희망이라지 않던가.

안종오라는 검사를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었던 시간.

기록 너머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내가 느낀 실망(?)은 곧 사람에 대한 희망이고 안도감이니, 날 실망시켜줘서 감사하다 말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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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김영건 지음, 정희우 그림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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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 이야기.

동네 책방에 젊은 사장님이 오셨는데 젊은 사장님은 할아버지 사장님 아들이다.

그리하여 동아서점이라 불리는 그 책방은 "3대째 이어지는" 이란 타이틀을 획득한다.

오징어 순대, 닭강정, 포켓몬고에 이어 "속초 동아서점" 으로 연결되는 속초 명물.

이라고 나 혼자 결정한다. ㅋㅋㅋ


책 제목이 입에 붙지 않았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라니.

서정적인 이런 느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책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주 맘에 들었다는 뜻이겠지? ^^


서울 살이 접고 속초로 귀향한 젊은 책방 사장의 소소한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켜켜이 쌓인 동아서점과 아버지와 책에 관한 추억에 현재라는 시간이 다시 덧 씌워진다.

어린 시절의 동아서점과 아버지와 책에 관한 생각의 편린을 감정을 걷어내고, 교훈 없이 담백하게 풀어낸다.

서가 안내를 하얀 종이에 자필로 써서 붙여내는 그의 모습이 문장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귀향을 결정한 후 먼저 떠오른 것이 서울의 인프라를 더이상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이런저런 변명 따위 늘어놓지 않는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가는 책 작업을 하고는 있다만 이걸 서점이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고향에 가니 추억이 있고 마음이 푸근하고 서울과 다르고 따위의 사설을 늘어놓았다면 실망했으리라.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아 열심으로 일을 했고 아이디어를 내서 달라지려 노력했다고 말했다면 혀를 끌끌 찼으리라.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일상.

주어진 일이 어쩌다보니 3대째 이어지는 서점이었을 뿐.

내게 주어진 일이 속초 동아서점이니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로 당신에게 말을 걸었지만

누구든, 어디든, 무엇이든 당신에게 말을 걸 수 있으리라.


담백하고 덤덤한 일상 이야기, 당신에게 말을 건다.

조만간 속초 동아서점 방문기가 이어지겠지? ㅋㅋㅋㅋ

맘에 든다, 이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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