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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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맨부커상 수상 작가다.

'한강' 의 '채식주의자' 가 수상했던 그 상.

시대의 소음은 그런 상을 받은 책은 아니지만 작가가 쉽고 평이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을 깔아준다.


구 소련의 스탈린 시대.

작곡가는 공포에 떨며 밤마다 짐을 싸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지 않는 비밀경찰을 기다린다.

실제로 그들 앞에 불려가지만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날들,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스탈린은 베토벤을 좋아했다.

부르주아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시대에 살았으며 혁명 이전의 정치 의식으로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바라왔던 베토벤은,

스탈린이 좋아하면서 베토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붉은 베토벤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의 음악 역시 독재자에 의해, 독재자가 사라진 후엔 남겨진 체제에 의해 정치적으로 사용된다, 붉은 베토벤처럼.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스탈린인가?

왜 냉전시대로의 회귀인가?


스탈린이나 공산주의 체제가 일반 대중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창작해야 하는 예술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예술가의 어려움을 옛 체제에 빗대어서 썼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제목이 시대의 소음 아닌가.

'시대의 소음'이라는 표현을 주인공이 직접 사용하는 것을 보며 이건 빗대어 쓴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


20세기를 풍미했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일생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엄격한 규율과 규제 안에서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

자신이 얻은 명성으로 다른 예술가보다 편안한(?) 삶을 살며 체제 선전의 도구로 내몰리는(소설 안에서 그려진 모습. 실제 쇼스타코비치가 내몰린 것인지,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거부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내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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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스토리콜렉터 55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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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읽었지만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 중 하나.

007 시리즈처럼.

책 내용도 제목도 주인공인 폴리팩스 부인마저 모두 솔직담백하다.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책을 읽는 내내 007 영화가 생각났다.

반전이라고 등장해봐야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배신하는 정도.

그나마도 저 사람이 배신할 거라는 사실을 누구라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드러내주는 친절함.

주인공이 순수해서 잘 속아넘어가고 사랑에도 잘 빠지고 말이지.

뭔가 엉성하고 유치한데 넋을 놓고 보게 만드는 매력이 넘치는 바로 그 영화.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이 딱 그러하다.


솔직담백한 제목처럼,

폴리팩스 부인이 여덟 개의 여권을 전달하는 임무를 부여받아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야기.

치밀한 구성으로 숨막히는 전개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요,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요,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필연으로 전개되는데 자꾸 집중하게 된다.


1966년부터 쓰여진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는 2000년에 끝이 난다.

미소냉전 체제의 잔재가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

등장인물도 순박하기 짝이 없다.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게 사람을 해치는 인간성 상실의 이야기들 속에 살다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휴식처같은 느낌이랄까.


오랜 세월 사랑받는 작품은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내가 읽은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맘이 훈훈해지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렇게 순진무구한 캐릭터들이 떼로 등장하는 소설이 또 있을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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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스토리 - 어떻게 가난한 세 청년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무너뜨렸나?
레이 갤러거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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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에어비앤비.

언제나 여행을 꿈꾸는 나 역시 들어보고 훔쳐보았던 그 에어비앤비 스토리다.


이런 책을 뭐라 불러야 할까.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기업 경영서라고 보기도 어렵고.

처음 읽어보는 장르다.

기업에 관한 책을 읽고자했던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



 

기업경영에 관해서는 모르겠다.

기업경영은 관심이 없으니 거의 일자무식에 가깝지만 에어비앤비 스토리였기에 "그냥" 궁금했다.


해외여행을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간다면 한 도시에서 2달씩 살아보고픈 로망을 품은 여행계획자.

언제 실현될 지 알 수 없는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에어비앤비.

이런 도시,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냥 생각이 아니라 현실처럼 보이는 그곳.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줄 에어비앤비는

모두에게 외면당했던 꿈을 자신들의 힘으로 실현시킨 현장이다.

세 청년이 돈이 없어 씨리얼 박스를 만들어 팔며 돈을 벌어 만들어낸 기업. (우유조차 사치였다며 팔다 남은 씨리얼을 씹어 먹으며 버티던 그들의 집념에 박수를)

성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에 보조를 맞춰가야 할 정도로 고속성장하게 되면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었던 그들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


제3자가 서술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보다 객관적이고 재미나다.

역경이 있었지만 그것을 견뎌낸 우리를 보며 너도 잘 해보라고 얘기하지 않으니 감사하다.


결국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하고

포기하지 않는 꿈이 성공을 이뤄낸다는 작지만 어려운 진리.

에어비앤비 스토리는 작지만 어려운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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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았어야 할 일
진 한프 코렐리츠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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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나 끝내줌.

어디에 갖다 붙여도 모두 말이 된다.

제목이 좋아야 한다는 것도 진작 알았어야 할 일 중 하나일까? ㅋㅋㅋㅋㅋㅋ

 

처음 시작.

)로 처리하는 말이 너무 많다.

문장이 끝나고 부연설명이면 괜찮을텐데 문장 중간중간에 마구잡이로 등장한다.

그것도 짧지 않은 문장들이라 ( )에 신경쓰다보면 원래 문장이 뭐였나 다시 봐야 하니 초집중상태.

자구 예민해진다. ㅡㅡ;;

문제는 이 (  ) 가 상당히 중요하더라는 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 )가 굵은 글자로 바뀌며, 읽는 일 자체의 어려움을 조금 덜어주었길래 망정이지 분노로 일그러질 뻔.


그런데 말이다.

처음 (  ) 덕분에 읽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초반 상황에 집중도가 올라가더라는 것.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작가가 깔아둔 포석을 피해가지 못하고,

사건이 진행되서 몰아쳐야 하는 시점부터 (  ) 가 사라지면서 읽는 행위 자체에도 가속이 붙는다.

달리는 말을 갑자기 멈출 수 없는 법.

책 속으로 마구 빠져든다.


마구마구 빠져드는데 책이 너무 두껍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빨리 뒤가 보고 싶은데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600쪽이 넘는 와중에 글씨마저 빼곡.

대강, 슬렁 읽을 수도 없어 그 많은 글자를 죄다 읽어낸다.

진작 알았어야 할 일 중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첫 번째는 600쪽이 넘는데 재미나다는 사실.

각오 단단히 하시라.


잔인한 장면 하나 나오지 않는데 섬짓해서 혼났다.

소시오패스에 대한 이야기같지만, 소시오패스가 전혀 도드라지지 않게 만드는 인간 군상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진작 알았어야 할 일' 이라며 남의 아픔을 본인만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던 심리치료사의 아픔 - 그 안에 내 모습이 보여 무서웠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은 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소시오패스의 마지막 편지가 압권이지만.


우리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은 존재할까?

우리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을 진작 알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아들은 엄마에게 진작 알려줄 걸 그랬다고 말하지만 진작 말했어도 엄마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그건 바로 내 모습이다.


 

길고 긴 책을 2권으로 나누지 않고 출판한 출판사에 이 짜증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

책의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들이로세. ^^


오래간만에 책 읽은 보람을 느낀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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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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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책만 골라 읽는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출판계의  흐름은 "노년"과 "죽음"이 확실하다.

초반엔 내 관심사가 '늙음' 이어서 찾아 읽은 것이 맞지만 이젠 애써 찾지 않아도 손에 잡히는 것이 '늙음' 과 '죽음' 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역시 노년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 중에서도 정말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인 치매에 관한 이야기.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그의 머릿 속에서 주고 받는 수많은 이야기들.


손자와 할아버지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할아버지는 많이 세련됐다.

읽고 있는 나는 많이 슬프다.

이런 일이 내게 닥치면 나는 어떨까 생각하니 섬짓하다.


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감상과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밖에 없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손자라기보단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의 입장에 서게 되므로.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이다.

그가 지금껏 보여줬던 위트는 없다.

오히려 시(時)적이어서 빠른 호흡으로 읽어내기 어렵다.

천천히, 하루, 하루, 이별의 날을 보내듯이 그렇게 읽게 만든다.




"무서우세요?"

"조금.  너는?"

"저도 조금요." (104쪽)


손자와 할아버지의 이 대화가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인 그들의 마음과

하루하루 늙음과 죽음으로 다가서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마음을 완벽하게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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