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게 말을 걸다 - 난해한 미술이 쉽고 친근해지는 5가지 키워드
이소영 지음 / 카시오페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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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관련 책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ㅎㅎㅎㅎㅎ

반복되는 그림과 화가가 늘어갈수록 읽기 편해지고 더 재미있어지니

같은 내용 반복이라 식상할 것이란 염려따윈 버려도 좋다.

  


책은 차례가 참 중요하다.

전체 글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기본 틀로 건물의 골조 역할을 하는 것.

잘 쓰인 글을 읽고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모르고 있던 사실을 깨달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나는 이것이 구성이 잘 짜여졌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 구성은 차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믿는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는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이란 주제로 꽤 공들여 구성했음이 보인다.

일상, 작가, 스토리, 시선, 취향으로 나눠 미술 작품에 접근하는데 일정한 패턴이 없어 지루하지 않다.

구성만 공을 들인 것이 아니라 그림도 많고 글도 많다.

이렇게 책을 쓰기 위해 애쓴 저자의 진심이 전달되어 중반 이후론 가슴이 뭉클할 지경.


가슴 뭉클함에 진짜, 너무, 정말, 완전, 진심, 최고 좋았던 점은 

내가 읽었던 미술 관련 책 중에 그림이 제일 많았다는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림 이야기가 나오면 대개의 경우 대표적인 그림 하나만 싣고 나머지는 말로 끝낸다.

처음엔 인터넷 검색으로 그림을 찾으며 책을 보지만 중반 이후론 답답함을 견디고 글만 읽곤 했는데 얘는 아니다.

언급하는 모든 그림을 실었다.


오락실 게임 테트리스에 등장하는 러시아의 성 바실리 대성당이 주제로 다뤄지면

실제 사진과, 테트리스 게임, 저자가 언급하는 그림이 모두 등장.

저자의 말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수가 없고,

화가나 화풍은 몰라도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를 수가 없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정말 좋아한다.

그림을 잘 그리고픈 욕망은 있으나 '붓'으로 하는 행위는 절대 사절이며

아는 그림은 많으나 화가와 작품 이름은 모르는 것이 95% 이상이고

미술을 잘 알고픈 마음도 없다.

그냥 그림을 보는 게 좋고 내가 모르는 걸 누군가 설명해주는 것이 좋아 즐기는데

그냥 그림이 좋아서 즐기려는 나의 태도와 가장 잘 맞아떨어졌던 책이라 할 수 있었던, 미술에게 말을 걸다.


글 많고 페이지 많은 것도 정말정말 좋았다.

얇은 책은 읽어서 없어지는 게 아까운 맘이 들 때가 있는데 읽어도 읽어도 끄떡없이 뚱뚱한 책이 주는 감격.

그림과 섞여 페이지도 술술 넘어가 책장 넘기는 맛을 제대로 살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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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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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영어권 문화가 익숙하다.

미국의 51번 째 주가 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런데 익숙한 영어권보다 멕시코,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여행지가 아니면 접할 수 없는 문화가 더 친근하다.

투박하고 번잡스럽고 흥분 대기상태인 것만 같은 그것.

남의 일에 참견해서 선 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우루루 떼지어 다니기 좋아하면서

친근함의 표시가 쌍욕이어도 불쾌해하지 않는 그것.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 만난 그들이 이상하게 정겨운 건 우리네 아줌마, 아저씨 문화(?)랑 비슷해서겠지?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이동이 가능한 빅 엔젤.

심지어 혼자 힘으로 휠체어에 타는 일도 불가능한 상태.

몸은 병으로 인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지만 마음과 정신만은 아직 멀쩡하다.

옷 갈아입는 아내를 바라보며 음탕한 생각이 가시지 않을 정도.

자신의 이동을 돕는 딸과 가족을 대하는 태도만 보면 곧 일어나 활동할 중년같다.

그런데 빅 엔젤이라 불리는 이 양반,

죽을 날을 받은 암 말기 환자로 70세 할아버지다.


파티면서 장례식인 정체불명의 행사를 위해 각지에서 모여드는 가족.

이야기는 이 집안의 우두머리인 빅 엔젤을 중심으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지난 날을 되짚는 것으로 진행된다.

3대를 넘나드는 대가족의 서사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애 둘 딸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반감도,

의붓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아들의 슬픔도,

이복형제 사이에서 겉돌았던 동생의 불편함도,

약물에 찌들어 버렸거나 죽어버린 아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유쾌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빅 엔젤의 집안이 그렇다.

그리고 그 안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다.

반감, 슬픔, 불편함, 애통함, 두려움, 어색함...... 모든 불쾌한 감정 위에 존재하는 가족애.

각자의 상처로 떨어져 지냈어도 결국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함께하기 위해 나타나는 그들만의 끈끈함은

감동과 뭉클함을 몰고 오는 게 아니라 유쾌함을 동반한다.


어릴 적, 달리는 자전거 바퀴에 발을 넣어 뒤꿈치가 찢어진 적이 있었다.

찢어진 상처에 담뱃재를 뿌린 후 혼자 아물게 뒀던 그 시절,

옆집 아줌마는 아이들이 잘못하면 동네 길목 어귀에서 빗자루로 때리거나 집 밖으로 아이를 내쫓기도 했다.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텐데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나는 옛날 이야기.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 피식피식 웃음나는 내 옛날 추억이 들어있다.

밥숟가락 놓자마자 밥상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30대의 내 아빠가 있다.


이 돌I 같은 사람들이 정말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가족 소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멕시코 가족 문화의 투박함을 세련된 문체로 즐겁게도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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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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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의 아버지는 가곡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이다. (처음 알았음. ^^;;)

원래 성은 김씨였으나 금씨로 바꿔 아이들 이름을 모두 순우리말로 지을 정도로 우리말 사랑이 남달랐던 분.

그분이 썼던 1962년도 칼럼과 그의 아들인 금난새가 덧붙인 글 모음집이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이다.


공교롭다고 해야할까?

이청준의 '눈길'이란 단편집을 읽고 있는데 말투가 상당히 비슷하다.

문어체도 구어체도 아니면서 짧고 불친절한 그것.

시대극을 보는 듯 촌스럽지만 정겨운 말투에 유머와 위트가 한가득이다.

일제의 한글 박해에 한풀이하듯 아이들 이름을 한글로 지을 만큼 강단있는 분의 깨인 사고방식은 흐뭇하다.


아이들에게 매질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긴 연설, 긴 축사, 긴 브리핑 해설은 없어졌으면 좋다 하셨는데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 중, 가장 재미났던 건 "만화책이 가장 문제다"(50쪽) 라고 시작하는 이야기.

지금 엄마들이 들으면 만화책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할텐데 그 시절엔 만화책이 문제였나보다.

인간사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목도하는 순간.

스마트폰만 잡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싶어 혼자 깔깔댄다. ㅎㅎㅎㅎ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으면 거북선도 실제 크기로 복원을 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주인공이 잘 되어도 시기하는 습성이 있으니 주인공은 죽어야 한다는 비꼼에 탄복.

자식을 기를 때 사랑하는 것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지혜에 고개를 끄덕끄덕.

이 모든 이야기를 두 페이지 안에 짧고 간략하게 정리해내니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껴 읽어도 이야기 자체가 워낙 짧아서 호로록 읽힌다. ㅠㅠ

호로록 읽다보면 어느새 4악장, 아들 금난새의 이야기가 시작.

첫 문장의 첫 단어부터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말인데 시대의 영향을 받아 다르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


허접한(?) 에세이 20권보다 나은 책이라 소개하고 싶은,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교훈적인 이야기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걸 참으로 좋아하는데 금수현님이 그러하시다.

옛날 이야기하듯 툭툭 내던지고 알아듣거나 말거나 나는 모르겠다는 식의 옛날옛날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괜시리 가슴도 뭉클.

금난새님 이야기도 이에 못지 않으나 아버지게서 너무 임팩트가 있으시네. ^^


오래간만에 가방에 넣고다니며 짬짬이 꺼내 읽었던 책.

아버지와 아들이 비슷한 일을 하고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 있다는 게 참으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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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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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 있다.

읽고픈 욕구를 자극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처럼 다각적으로 다가와 놓치면 안되겠다는 맘을 먹게 하는 책은 드물다.


1.

저자 김진애는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알쓸신잡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내가 좋아하는 건 방송매체에 등장한 그녀가 아니라 '여자의 독서'라는 책에서 만난 김진애다. 

강단있는 말투에 신념이 묻어나지만 혁명가는 아닌 매력적인 모습.

(도시건축가로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다룬 도시 이야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2.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충격받고

'공간혁명' 에서 감동받은

도시와 건축 분야 무식자의 끝없는 지적 호기심.


3.

출판사 다산의 인문학 책이 아주 맘에 드는 요즘.

어디까지 맘에 드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의 발로.

이러한 동기들의 모임으로 시작하는 책.



도시는 익명성과 큰 규모(도시 면적, 건물의 크기, 인구 수 등등)  담보로 한다.

큰 규모는 작은 것들의 집합체로 작은 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권력과 전통, 역사가 생겨난다.

사람과 고층 빌딩이 많고 교통이 복잡하지만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살기 편한 곳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여선 도시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잡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


고화질 사진과 영상으로 집에 앉아 편안히 확인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피렌체 두오모와 바티칸의 산피에트로대성당은 같은 성당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두 성당에 다다르는 길이 달라서다.

두오모는 미로같은 길을 지나 도착하는데 어느 길로 오느냐에 따라 인상이 전혀 달라지지만

산피에트로대성당은 하나의 큰 길로 진입해 정면으로 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유명한 두 성당에서 받는 감동은 건물 자체가 전달하는 느낌이라기보단

건물로 다가가는 동안 만나는 도시의 풍경에 따른 차이이며

우리는 그것을 느끼기 위해 사진을 보지 않고 여행을 나선다.


상징성도 없고 국민에게 열린 공간도 아니면서 유명한 건축양식인 돔과 열주를 이용해

말도 못하게 튼튼하게 지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홀로 아름답지 않은 자태를 뽐내 지탄받지만,

정조의 수원 화성은 철저한 계획 아래 백성과 조화를 이루어 찬탄을 이끌지 않는가.

도시란 그런 것이다.

멋진 건축물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

그래서 담장을 높이 쌓아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문제라 지적받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안다고 인지하지 못했던 내용을 정리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군데군데 정치적이라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다만 분노가 치솟을 뿐. ㅡㅡ;;

특히 해운대 엘시티는 그렇게 문제가 많았음에도 결국 건물은 올라가고야 말았다는 사실에 더더더더더 분노하게 만들고.

내가 살아가는 터전의 문제까지 권력의 힘에 굴복해야 하는 현실에 무력감이 몰려온다.

북한에는 '부동산'이라는 말이 정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에,

비무장지대에 공원을 만들자는 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에 동의하며,

자꾸만 씁쓸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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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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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권력의 만남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자 그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결탁의 역사.

막강한 경제력이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던 시절엔 대의를 위해 작은 것(?)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국가발전이 더이상 대의가 되지 않을 땐 관행으로 불렸다.

자본과 권력의 결탁을 문제삼아

검은 커넥션, 부정부패라 하여 수면 위로 떠올라 공론화되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파장의 방향, 크기, 결을 결정하는 것도 알고보니 그들이었다.


뻔한 이야기.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더러워진 거 닦아내면 끝 아닌가, 무기력감만 보태는 그런 주제.

그런 주제로 진부하지 않은 창작물로 탄생한 소설, 반인간선언.




 



민주화운동을 했던 과거의 사람들, 국회의원, 재벌그룹 관계자, 교수, 형사, 노조위원장, 종교인, 동성애자.

등장인물의 면면이 화려하다.

화려한 인물의 집합체 한가운데 정상훈이 존재한다, 신체의 일부만 하나씩 돌아오는 시체로.

그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드러나는 뒷이야기는 인간이 아님을 자처하는 반인간선언 그 자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의 원작소설이라는데 큰 각색 없이도 드라마로 만들어졌겠거니 짐작이 가능할 정도로

책 자체의 속도감이 어마무시하다.

사건의 당위성이나 인물간 관계에 대한 설명이 모자랐지만 그것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읽힘.

무거운 주제를 추리물로 만들어 무게를 덜어낸 점도 좋았고, 충격적인 결말도 맘에 들었다.

덕분에 책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지만. ㅡㅡ;;


우리는 몇몇 영웅이 악을 제거하는 영웅 이야기에 열광한다.

더럽고 추악한 세상, 가상에서라도 통쾌하게 악을 응징하고픈 열망의 산물이겠지만

현실에서 나타는 몇몇 영웅은 용감하게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을 내던진 희생을 통해 마음을 움직인다.

반인간선언은 몇몇 영웅이 주는통쾌함을 버리고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을 둔 '희생'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인간이 아닌 짓을 일삼는 이들이 스스로 내뱉는 반인간선언인지,

인간이 아닌 짓을 일삼는 이들에게 철퇴를 가하자는 반인간선언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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