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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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영어권 문화가 익숙하다.

미국의 51번 째 주가 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말 다 했지.

그런데 익숙한 영어권보다 멕시코,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여행지가 아니면 접할 수 없는 문화가 더 친근하다.

투박하고 번잡스럽고 흥분 대기상태인 것만 같은 그것.

남의 일에 참견해서 선 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우루루 떼지어 다니기 좋아하면서

친근함의 표시가 쌍욕이어도 불쾌해하지 않는 그것.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 만난 그들이 이상하게 정겨운 건 우리네 아줌마, 아저씨 문화(?)랑 비슷해서겠지?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이동이 가능한 빅 엔젤.

심지어 혼자 힘으로 휠체어에 타는 일도 불가능한 상태.

몸은 병으로 인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지만 마음과 정신만은 아직 멀쩡하다.

옷 갈아입는 아내를 바라보며 음탕한 생각이 가시지 않을 정도.

자신의 이동을 돕는 딸과 가족을 대하는 태도만 보면 곧 일어나 활동할 중년같다.

그런데 빅 엔젤이라 불리는 이 양반,

죽을 날을 받은 암 말기 환자로 70세 할아버지다.


파티면서 장례식인 정체불명의 행사를 위해 각지에서 모여드는 가족.

이야기는 이 집안의 우두머리인 빅 엔젤을 중심으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지난 날을 되짚는 것으로 진행된다.

3대를 넘나드는 대가족의 서사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애 둘 딸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반감도,

의붓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아들의 슬픔도,

이복형제 사이에서 겉돌았던 동생의 불편함도,

약물에 찌들어 버렸거나 죽어버린 아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유쾌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빅 엔젤의 집안이 그렇다.

그리고 그 안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다.

반감, 슬픔, 불편함, 애통함, 두려움, 어색함...... 모든 불쾌한 감정 위에 존재하는 가족애.

각자의 상처로 떨어져 지냈어도 결국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함께하기 위해 나타나는 그들만의 끈끈함은

감동과 뭉클함을 몰고 오는 게 아니라 유쾌함을 동반한다.


어릴 적, 달리는 자전거 바퀴에 발을 넣어 뒤꿈치가 찢어진 적이 있었다.

찢어진 상처에 담뱃재를 뿌린 후 혼자 아물게 뒀던 그 시절,

옆집 아줌마는 아이들이 잘못하면 동네 길목 어귀에서 빗자루로 때리거나 집 밖으로 아이를 내쫓기도 했다.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일텐데 생각하면 피식피식 웃음나는 옛날 이야기.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 피식피식 웃음나는 내 옛날 추억이 들어있다.

밥숟가락 놓자마자 밥상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30대의 내 아빠가 있다.


이 돌I 같은 사람들이 정말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가족 소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멕시코 가족 문화의 투박함을 세련된 문체로 즐겁게도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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