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

 모든 존재가 존엄한 것은 자기 안에 버릴 것도 없고 세울 것도 없는 '참 나'를 가졌기 때문이다. 비슷하면서도 더욱 확정적으로 동학의 최시형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한 기운이 천지 우주의 본래 기운과 한 줄기로 서로 통하고, 나의 한 마음이 조화 귀신의 부림과 한 집으로 드러나니, 그러므로 하늘이 곧 나이고 내가 곧 하늘이라.

p9

 협동조합의 미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단지 협동조합이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경영적 전략 문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을지에 대한 사회적 가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특히 정성을 다해 협동조합 하는 분들에게 있어 그것은, 협동조합을 매개로 할 뿐 결국에는 자기 사유의 성장이고, 자기 존재의 새로운 의미 부여다.

p27

 협동조합이 '성명'을 통해 처음 성찰을 시도한 지 이미 25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큰 변화를 겪었다. IT기술의 눈부신 발전, 젠더 의식의 대변화, 고용의 불안정과 양극화의 심화, 정치 불신과 포퓰리즘의 등장,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인구의 고령화와 저출산,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의 혼란 등등, 세계는 한층 혼미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속에서 협동조합은 오히려 일반기업의 논리나 방식을 좇아 이름만 협동조합이지 주식회사나 진배없게 되어가고 있다. 협동조합에 꿈을 싣기는커녕 오히려 협동조합의 미래를 우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p32

 협동조합에 관해서는 많은 학자나 정부 관계자들이 자기 나름의 견해를 피력한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이다. 협동조합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학자나 정부 관계자들이 협동조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보다 협동조합 하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그것이 비록 하는 일에 조금씩 다르고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할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규정이고 신념이고 지침이라는 점에서 '성명'이 갖는 의미는 크다.

 같은 '성명'안에 담겨 있어도 <정의><가치><원칙>은 그 방향이 다르다. <정의> 협동조합 바깥을 향한다면, <가치>와 <원칙>은 철저히 내부를 향한다. 맥퍼슨에 따르면 <정의>는 정부가 협동조합 관련 법률을 제정할 때 참고로 하고, 협동조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등에서 협동조합을 설명할 때 활용해주기를 바라는 목적에서 명문화한 것이다. 이에 비해 <가치>는 내부적으로 협동조합과 그 조합원이 지녀야 할 자세와 역할을 정리한 것이고, <원칙>은 이런 가치들을 실제 협동조합 운영에 적용하는 데 있어 지침이 되게 하려고 정한 것이다.

......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심화하는 것은 결국 가치의 재발견과 심화에서 시작된다.<가치>를 뺀 <원칙>은 가야 할 곳을 잃고 운전대를 잡는 것과 같다.<정의><가치><원칙>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다.

p37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이다.

p40

..."1. 협동조합은 자율적인 결사체"인데 그 결사체는 "2.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한" 것이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한 이유는 "3.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기 위해"서이며, 이런 필요와 염원의 충족은 "4.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달성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말에서는 수식하는 단락이 수식받는 말 앞에 위치하기 때문에 4. 수단-3. 목적- 2. 주체- 1. 본질의 순으로 되어 있지만, 영어에서는 그 순서가 뒤바뀌기 때문에 1. 본질- 2. 주체- 3. 목적- 4. 수단의 순으로 문장이 구성돼 있다.

p46

'wiktionary'(영문판)에 따르면 'autonomous'는 "지적이고 감각적이며 자기 인식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독립적으로 통치하는 것. 아이가 부모나 보호자의 지배를 받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사람이 스스로 혹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p56

...<정의>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자율적인 결사체"이고, 사업체는 결사한 조합원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수단이다. 아무리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더라도 해설은 똑바로 해야 하는데, 누구라도 알 만한 내용을 왜 곡해해서 교육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p65

...자유와 평등을 사회 전체에 구현해가는 과정에서 자유와 평등이 실재하는 작은 사회로서 사람들이 만든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덕분에 바깥세상에서는 비록 자유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더라도, 그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했다. 때로는 어렵고 때로는 힘들어도 협동조합을 만들고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이 근대의 사람들에게는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은 신분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평등한 사회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평등화되어가는 사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근대와 함게 태동하고, 근대의 두 이념을 실체화하면서 성장해온 협동조합은 앞으로 그 성장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p69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네크워크론이라는 게 있다. 이에 따르면, 네트워크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하고, 그 관계가 쌓여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형성된 네트워크가 이번에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자기운동을 전개한다. 지금까지 사람과 사람이 관계해서 네크워크를 형성해왔는데, 네트어크가 형성된 다음부터는 자신의 높은 기술력과 서비스를 가지고 오히려 사람들을 관리해간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네트워크 안에 두지는 않는다. 네트워크 측에서는 이용 촉진을 목적으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오지만, 진짜 자기와 진짜로 자기를 드러내는 타자와의 관계는 다른 공간에서 찾는다. 정보의 이용자는 많아져도 정보의 발신자는 줄어들고, 마침내 네트워크는 서서히 죽음의 공간이 되어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네트워크론에서는 '구조적 공백'과 '부드러운 연계'를 강조한다. '구조적 공백'이란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먼저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고, '부드러운 연계'란 사람들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면 먼저 자신이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촘촘하게 짜인 기존의 네트워크를 더 많이 이용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을 넘어 허술하게 빙ㅁ으로써 사람들이 그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한다. 이렇게 들어온 사람을 향해 부드럽게 열린 관계를 맺어감으로써 점차 네트워크 안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다시 형성되도록 한다. 한마디로 비워야 채워지고, 부드러워야 다시 엮인다는 것이 네트워크론의 주장이다.

 협동조합에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협동조합이 이미 체계화된 사업에 조합원 참여와 이용을 독려한다고 한번 떠나간 조합원이 다시 돌아올 리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놀 공간을 마련해야 비로소 그 안으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돌아온 사람들을 향해 협동조합이 조심스럽지만 꾸준하게 관계할 때, 그 안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결사가 태동한다. 이렇게 돌아온 사람들의 필요와 염원에 협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그 안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업이 태동한다. 그리고 이렇게 태동한 새로운 결사와 사업이 기존의 그것들과 중층적으로 결합할 때, 그 안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구조 즉 공동체가 태동한다. 지금까지의 협동조합이 결사체와 사업체라는 이중 구조였다면, 복수의 결사와 사업이 공동체를 통해 융합하는 삼중 구조를 갖게 된다.

p78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경제는 그 역사, 방향, 대상이 전혀 다르다. 사회적 기업이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된 기업의 새로운 형태라면, 사회적 경제는 유럽,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의 사회 전망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 인간을 위한 자본의 결합이라는 데 그 본질이 있다면, 사회적 경제는 배제된 인간을 향한 인간의 포용적 연대에 그 본질이 있다. 사회적 경제는 배제된 인간을 향한 인간의 포용적 연대에 그 본질이 있다. 사회적 기업이 미시적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면,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나 국가경제처럼 거시 경제를 대상으로 한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둘을 적당히 혼합해 '사회적 경제 기업'이라고 이름 부티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런 논리로라면 일반기업은 '시장경제 기업'이라 불러야 옳고, 정부나 공기업은 '국가경제 기업'이라 불러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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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과제2. 다른 협동조합도 공유할 수 있게 

소비자 협동 조합 특유의 것들

- 남은 과제3: 협동조합의 새로운 실천을 담아

사회적 협동조합, 

일반적 관심사(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지원하고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 마련해주기 위한 사업 전개).

불특정 다수의 이익(공익) 추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정부와 공기업이 해야 한다.

사회적 협동조합과 전통적 협동조합은 이익추구 방식 완전 다르다. 목적도 다르고. 하지만 동질적 사람들 중심으로 하는 협동조합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앞으로의 방향은 사회적 협동조합?

- 정리

협동조합이 무엇인지(정의), 어떤 뜻을 품고 나아가야 하는지(가치) 이를 구체적으로 협동조합 운영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원칙) 다시 돌아보기

'이념적 위기''사회적 관계''협동조합'에서 '한 사람'으로, 협동조합의 '이념적 위기'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사회적 관계'로 지금의 시대 변화집중해서 봐야 협동조합 나아갈 방향 찾아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타자와 관계할 것인가

제5장. 개인화 시대, 협동조합의 길

- 협동조합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포스트 모던, 포스트 트루스의 시대, 시민사회와 가족이 무너지고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왔던 공통의 신념과 가치가 그 영향력 상실해가는 속에서 협동조합은?

- 시대의 변화 1. 말의 재귀

보장된 자유를 어떻게 하면 만끽하고 살아갈지, 

삶을 자유 의사에 따라 어떻게 꾸려갈지가 주된 관심사

시민으로서의 동질성은 약화해 가고 자기다움을 향한 열망은 강한 시대.

다른 이와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을 넘어 나만의 특별한 존재로서 대접받기를 바라고, 인간을 넘어 다른 생명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

계급으로서의 동등성은 약해지고 타자에 대한 불평등 의식은 더욱 치열해진 시대

- 시대의 변화 2: 사람의 재귀

'우리의 인간다울 권리'에서 '나의 나다울 권리'로 변화 중. 개인화 자기는 자기답고 타자는 타자답게 살 수 있게 서로 도와가는 그런 사회. 관계를 통해 실체화되는 개인화

사회주의 : '사회적'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생각과 실천. 개개인의 자기다움 짓밟는 '전체주의'에 저항해서 모든 책임을 개개인에게 떠넘기는 잘못된 '개인주의'에 맞서서 개인과 개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 통해 각자의 자기다움 실현하려 했던 생각과 실천이 '사회주의'

- 고독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

고독하고 불안한 개인은 어떤 집단과 자신을 쉽게 동일시하고 불안의 요인이 실은 다른데 있음에도 특정 집단에 그 원인을 돌려 자기들 불안을 해소하려 든다.

- 시대의 변화3: 마음의 재귀

불안이 일반화된 개인화 시대. 근대 이전의 두려움은 외부의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것이었고, 그것을 우러러 봤었다. 경외

근대 이후에는 이 두려움과 우러러봄을 인간 마음 밖으로 끄집어냈다. 경외의 감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줌. 개개인의 마음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두려움을 옮긴다.

과거에는 나를 괴롭히는 감정의 대부분이 미지의 외부에서 왔다면 지금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 내 감정이 나를 괴롭힌다.

이 시대의 불안은 세상과 혼자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게 된 피동적인 감정이라기보다 혼자인 것을 즐기며 살아갈 힘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생겨나는 자기내면의 감정.

다른 이와 비교해서 내가 실제로 못나서라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자기 가치를 충분히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겨난 내 안에서의 감정이다.

SNS, 무관심에 따른 짜증. 타인의 시선 의식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에 대한 글인데 인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

- 협동조합의 위기

'자유, 평등, 의미의 창출, 희망의 분배 필요하다'

말에 의해 조합원이 지배당하면 안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옹호하기 위한 법이 국민 통제하는 수단 되어버린 것처럼

- 소외의 시작

소외: 어떤 이가 주체가 되어 만들어온 것이 점점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 급기야는 그를 지배하게 되는 것.

원시적 공동체 때부터 소외는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자의식

- 신화에서 유추하는 소외의 구조.

공동체 공동의 자의식, 개개의 자의식.

내 안의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드 드러낸 것을 다시 내안에 끌어들이는 행위는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역사나 문명은 결국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작용이다. 

자연과 하나였던 나를 돌아가 지금의 나와 다시 대면하는 것이 소외 지양의 시작이다.

- 협동조합은 말이고 관계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협동조합에서 실재하는 것은 사람들의 말, 관게

- 협동조합에서 소외란 

사람이 사라지고 역할과 기능만 남았다...

가짜 말과 관계가 협동조합이 되어 있는 모습에 대한 자기 말과 관계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종의 위화감.

국가가 국민 참여를 아무리 강조해도 선거율이 낮아지는 것은 참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국민도 알기 때문이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그치만 일단 참여도 해야지.

- 침묵(내화) 와 자기표현(다시 외화)

협동조합은 무리로서의 사람들이나 협동조합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개개인의 자기다움을 어떻게 지켜줄 것이냐가 협동조합 존재의 가장 큰 이유다.

- 기우뚱 돌아가는 생명으로의 귀환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은 미래. 어던 정해진 모습을 향해 질주하는 '진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는 개개 사람과 생명을 향해 끊임없이 손을 내어주는 '확장'에 있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 자체가 생명의 본성 깨달아 그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지금보다 내일이 더 나아진다는 것 자체가 실은 경계 없는 자연 닮아 사회적 관게 넓혀간다는 것.

'무릇 생명이란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퍼져나가면서 지속하고 확장한다.

- 개인주의 협동조합을 향해

주권을 가진 개개인이 스스로 통치하는 개인주의 존엄한 개개의 존재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게 서로 돌보는 것

내부적인 동질성을 강화하기 위한 학교에서 각자의 이질성을 유지 함양하는 학교로.

보통 사람들이 그 사회의 주인공임을 훈련하는 장에서 서로 다른 타자와 함게 살아가기를 즐기는 장으로 함께 살아가는 타자의 범위를 보통 사람 축에도 못끼는 사회적 약자로까지 확장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과도 함께 살아가기를 즐기는 장으로 거듭나면 이런 자유의 호혜성이 개인화시대에 더욱 살아남을 협동조합이 되게 할 것이다.

- 몇 가지 반론에 대한 답변

개인주의와 에고이즘은 다르다. 에고이즘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행위의 기준으로 삼고 타자나 타자와의 관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이고 행위.

저자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개개인의 자기다움과 함께 타자와의 관계성도 중시.

자기답게 살 권리가 중요한 만큼 다른 이의 자기답게 살 권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고이고 행위.

'세상에 하나뿐인 나'와 '세상에 나밖에 모르는 나'는 전혀 다른 것.

도를 넘는 자기 사랑은 오히려 타자의 자기 사랑 위협한다.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이도 소중히 대해야 하고, 모두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돌볼 때 비로소 나도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내가 가진 권리는 다른이에게도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근데, 나의 이익과 충돌할 때는?)

추진된 결과에 대해 공동으로 성찰하고 언제든 수정할 만한 유연한 구조. 자기성찰의 유연한 구조. 협동조합 안에 구축할 필요가 있다.

- 결론을 대신해

협동조합은 실체가 없고 협동조합에서 실재하는 것은 오직 사람들의 말과 관계 뿐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실은 협동조합에 관한 우리의 말이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다른 이와의 관계이지, 협동조합 자체의 어떤 특징이나 본질이 아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실은 협동조합에 관한 우리의 정체성이다.

만들어진 대상에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주체에 정체성이 있다.

목적어를 주어로 여기는 전도된 사고야말로 소외된 의식이고 이런 의식 통해서는 소외를 극복할 주체도 소외를 극복할 대안도 찾아지지 않는다.

우리의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에서 나온다.

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인간으로서 자기다움을 찾고 자기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소소한 자기 생각과 일상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건 협동조합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협동조합의 모습은 확고하다.

정의의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충분히 설득된다. 어쩌면 그게 무거워서 자연들임에 가입 못하는지도.

그래도 협동조합에 그치는게 아니라 그게 지역사회, 나라의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래보게 된다.

부록) 뷔세의 노동자 협동조합 원칙

습체 델리치의 도시형 신용협동조합 원칙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원칙.

꼭 협동조합원이 될거라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이야기들 아닐까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삼부작 다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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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 푸른색과 금색이 섞인 음악대 유니폼을 제이컵 게이하트보다 기꺼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그는 해버프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리라.

;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

p38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 신변과 재산, 감정과 생각...

p69

...도시에는 외로움을 느낄 공간이 넉넉하다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고, 루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애달픔에 허덕인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는 시골의 허허벌판과 다르기에 혼자 서서 애끓일 일이 없었다. 슬프고 낙담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눈에 띈 적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차에 묶인 말처럼 홀딱 젖은 부랑자들이 쉼터에 들어가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옆에는 웬 노인이 보도의 쇠창살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를 쐬고 있었다.

 보통 루시는 자산이나 다른 누군가가 느낄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풍선을 쫓는 남자아이처럼 급한 마음으로 거리를 확보했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이 모든 사람이 동지인 듯했고, 그들에게 겸허한 애정을 느꼈다.

p83

...세상 만물이 순리대로 흘러가기 시작했으며 사소하고 성가신 것들은 시야 박으로 밀려낫다. 생은 단순하고 고귀한 것으로 거듭났다. 아무렴, 생은 즐거운 것이었다. 서배스천이 종종 부르는 슈베르트의 <송어> 처럼 세월과 변화에 마모되지 않는 즐거운 것이었다.

p101

 매일 밤 적막 속에 혼자 있을 때, 그때 루시는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하루가 다 지난 후에! 왜 그런 것일까. 그는 알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그날 오전을 이루는 순간순간을 전부 곱씹었다. 그 어떤 것도 잊지 않았다. 노래 한 소절도, 서배스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나 손짓 하나도 잊지 않ㄴ았다. 조용한 밤에는 생각할 시간이 충분했고, 1월 4일 이후의 몇 주가 그 전까지 살아온 21년보다 더 풍요로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은 숫자로 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과거의 삶이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처음 시카고에 온 뒤로 줄곧 행복했다. 작은 마을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살게 된 것, 파울 아우어바흐처럼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아득한 과거였다. 처음 클레멘트 서배스천의 목소리를 들었던 밤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 루시의 손에 들려 있던 것들은 전부 하찮고 허무맹랑했다.

 그때부터는 생각도, 행동도, 심지어 외모까지도 너무나 달라져 자기 자신을 몰라볼 지경이었다. 다만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더욱 충실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자기 것을 취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거부할 힘을 찾아낸 듯했다.

p141

...아내는 아이들이나 가정부가 잠에서 깨기 한참 전에 일어나 아우어바흐의 아침을 만들었다. 루시에게 말하기를, 나이가 들면 남편에게 해줄 것이 많지 않기에 온 집을 혼자 쓰며 근사한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아우어바흐는 종종 해리 고든에 관해 물었다. 마음에 드는 청년이었던지라 루시와 잘됏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루시는 해리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상처받았으나 경멸하는 척했다. 해리에게는 결혼할 권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루시 게이하트의 남자였으니까!

p143

...살아간다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루시도 알게 될 거야.

 루시는 삶의 방식이 하나뿐인 것은 아니지 않냐고 대꾸했다.

 너 같은 여자라면 하나뿐이란다, 루시. 루시는 너무 착하잖아. 위대한 재능과 대단한 야망을 품은 여자들이라 해도, 글쎄, 모르겠다. 꽤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럽지는 않더라고.

 다음 날 아침 루시는 연습실 창문을 열고 건너편 호수를 내다보며 더는 아우어바흐네 댁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기가 꺾였다. 아우어바흐는 진중하고 철저한 독일인 음악 선생이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p173

 "있는 힘껏 즐겨라, 루시. 삶을 사는 것 외에 중요한 건 딱히 없어. 삶에서 누릴 건 다 누리렴. 난 이제 다 늙어서 잘 안다. 성취는 삶의 장식품 같은 거야.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때로는 사람들이 실망스럽고, 때로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어쨌든 중요한 건 계속 살아가는 거란다. 루시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봄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낙담하면 안 돼. 네 앞에 긴 여름이 있는 데다가 모든 일은 때가 되면 풀리기 마련이니까."

p174

 작은 마을에서는 여럿의 삶이 바투 붙어 굴러간다. 사랑과 증오가 옷깃이 닿을 만큼 가까이서 두근거린다. 집 밖으로 나갈 때마다 모두가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를 속이고 배신했던 남자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간절히 원했던 여자와 몇 마디 간격을 두고 스쳐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여자의 치맛단이 살짝 닿을지도 모른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아슬아슬한 탈출. 저 넓은 세상에는 이토록 아슬아슬한 탈출이 없다.

p182

...그는 일어서고 무너질 줄 아는 사람, 살아 있는 사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한자리에 붙박여 있지 않았고, 게으르지 않았고, 겁쟁이도 아니었다. 대부분 자신만만한 채로 꾀부리며 살았으나 때때로 무언가 번쩍였다. 그 모든 방어적인 외피 밑에 한 남자가 있었다. 길들지 않은 마음을 지닌 남자였다. 그가 루시에게 손을 얹거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래전의 암호 같은 눈빛을 밟혀주면 루시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 동력을 제공하고 나아가라고 등을 밀어줄 것만 같았다.

p192

 문득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너무나도 선명한 깨달음이었으니 외부에서, 미동조차 없는 적막에서 도래한 것이 분명했다. 만약, 만약 생 그자체가 연인이라면? 저 먼 도시에서, 바다 건너편에서 루시를 기다리는 연인. 루시를 끌어당기고, 유혹하고, 마법을 거는 연인. 루시는 부드럽게 창문을 열고 창가에 무릎꿇고 앉아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머리카락과 달아오른 볼에 눈송이가 닿아 녹아내렷다. 아, 이제는 알았다! 루시는 가져야만 했다. 도망칠 수 없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야 햇따. 그 광휘가 아직 지상에 남아 있으니구하고 싸워 얻어야 했다. ㄱ그 속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온 마음을 바쳐 천상에 있는 그를 바라본다면, 분명 그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처음부터, 루시가 처음 찾아갔을 때부터 그는 그렇게 노래했다. 이제 루시는 그 진정한 뜻을 알았다.

 루시는 창문으로 다가가 눈보라를 향해, 그 뒤에 있는 미지를 향해 팔을 뻗었다. 다가오기를! 전부 돌아오기를! 루시를 배신하고 조롱하고 마음까지 부숴놓기를, 그가 바라는 바이니까!

p196

 해버퍼드에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해리 고든이었다. 그런 것을 눈치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깊이 자연에 감응했다. 루시는 해리와 오리 사냥을 하러 갔을 때 그가 두 사람 옆을 스친 나무와 덤불과 식물을 모조리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리는 자신의 그런 특성을 잘 숨겼다. 그는 강한 사람이었기에 자기가 느낀느 것을 내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루시의 반대편이 아닌 등 뒤에 있었다면! 해링의 힘은 신체적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씁쓸한 결말까지 버텨낼 수 있는 힘, 꼭 붙잡은 것을 절대 놓지 않는 힘이었다. 루시는 그런 힘이 하나도 없었기에 상상만으로도 조금 용기가 생겼다. 언젠가 두 사람은 다시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해리는 자신만만하고 좀처럼 배우려 하지 않았지마, 루시는 그가 삶에 관해 알게 될 거라고 믿었다. 주변 사람보다 속이 깊고, 절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반대였다. 평범한 사람인 척 연기햇으나 평범하지 않았다. 조용하되 항상 움직이는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 에너지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루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취향이 좋더라도 그런 에너지가 없다면, 루시의 아버지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205

 이런 무례라니, 이런 모욕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루시는 젊고 튼튼했으며, 세상이 자신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이렇게 잔인하고 멍청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터였다. 다들 길에 얼어붙은 진흙만큼 멍청했다. 여기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울음이 터지고 말 것이다. 굴복해서는 안됐다. 어서 갈 길을 가야 했다.

p214

 ...체격이 다부지고 키가 훌쩍한 사내. 찬찬한 발걸음,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 꼿꼿한 고개, 반듯한 어깨. 낯선 사람이 보았다면 외롭고 강한 남자라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숙련되고 믿음직한 힘이 있는 남자. 그에게는 그런 힘이 필요했다. 견뎌야 할 것이 많았으니까.

p236

 ...실망을 겪고 참아내는 법을 배우는 곳 아니겠나? 게이하트 가족이 살던 집을 떠나는 길, 그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잠시 보도에 멈춰 서서 지금껏 수천 번은 족히 그랬던 것처럼 세 개의 가벼운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달아나려는 발자국을.

p238

 루시와 사랑에 빠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동경하는 이의 희소식을 듣고 들뜬 귀갓길에 제비꽃을 사 안고 오는 사랑스러움, 음악을 통해 사랑이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바그너의 오페라 앞에서 고독을 구할 줄 아는 감수성, 교수의 애제자이자 국제적인 성악가의 신뢰를 받는 연주자이지만 성취를 과시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겸허함, 화려한 경력을 꿈꾸지는 않아도 자신의 미래를 '착한 여자'의 삶으로 한정하려는 시선에 굽히지 않는 꿋꿋함, 사랑을 잃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도 짓밟히기를 거부하고 생을 다짐하는 불굴의 성정. 결국 루시는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는 결론을 건네는 인물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건만 그마저도 끝까지 버티지 못한 그가 얼마나 안타깝던지, 루시의 생이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다워서 끄끅 울며 문장을 만지던 날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생을 써낸 것일까, 캐더의 필력에 경탄하는 동시에 그가 조금만 더 분발해서 덜 비극적인 결말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을까 야속하기도 했더랬다.

 ...명랑하고 명석한 시골 여자아이가 도시로 나아가 새로운 세상과 예술을 알아가는 이야기, 환멸에 젖은 연상의 예술가가 그 풋풋한 기운에 생의 의지를 갱신하는 이야기는 과연 시대를 고려해도 새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 소설에는 사뭇 특이한 빛이 있다 "낡고 실었는 가사를 근사하게 표현해 신선함을 부여"함으로써 사랑과 전망을 잃고 낙향한 루시에게 다시 생의 의지를 불어넣은 <보헤미안 걸>의 소프라노처럼, 이 소설 속에도 무언가 색다른 것이 반짝이고 있다. 소설 초입에서 루시를 아프게 하던 밤하늘의 별, "지금 이곳에 속하지 않은 다른 생과 감정을 암시"하던 영원의 상징 같은 것이.

p241

..."사실은 모든 것의 근간"이라던 해리, 루시에게 "그렇게 상황 파악이 안돼?"냐는 질책을 들었던 실리적인 은행가 해리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는 자신과 달리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일 뿐이었던 루시를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루시 게이하트>를 정의할 수도 잇을 것이다. 자신은 루시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무지를 통과하는 사이 평생의 사랑은 달아나버렸고, 남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자기 청춘의 편린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 상실이라는 "종신형"의 기록인 것이다.

 실제로 캐더는 이 소설을 두고 결말 부분인 제 3부가 가장 훌륭하다고 했다. 루시와 서배스천의 이야기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절절하게 읽었던 독자로서 조금 멋쩍기도 하지만 사랑했으나 이해하지 못햇던 사람, 이제는 없는 사람을 기억하며 그 아픔까지 오롯이 받아들이는 해리의 현재를 귀히 품지 않을 수 없다."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하자 삶이 시작되었다"라는 캐더의 유명한 문장을 상기할 시점이 지금일까. 그에게 미래란 과거, 즉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다짐이었다. 루시 역시 절절한 마음으로 동경하기를 그만두고 기억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루시의 동경과 기억의 대상이었던 서배스천 역시 고통스러운 기억을 거듭 복기하고 있었다. 당신은 왜 그랫을까.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됏을까. 불가해한 인연의 엇갈림에 눈물을 흘린 이는 이야기 밖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 눈물을 감상주의라 해야 할지 사랑이라 해야 할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생의 겨울에서 잇따른 상실 끝에 써낸 캐더의 기이하고 꿋꿋한 이야기, 그 안에서 무엇보다 기억의 숭고함을 감각한다. 다가오는 봄 앞에서 자꾸만 주저하는 것은 그 시린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은 까닭일까. 임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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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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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라는 젊은이의 이야기.

너무 젊어서 너무 아프고 아쉬운 청춘이야기.

시골 동네에서 시카고로 공부하러 간 이쁜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

해리 고든, 서배스천 클레멘트와의 이야기.

젊었을 때 알아볼 수 있는 감상적인 삶, 현실적인 삶.

현실적인 해리고든을 참지 못하고 루시는 이별 통보를 한다. 어리니까...그럴 수 있지.

루시의 착하고 순수하기만한 사랑.

서배스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순수한 사랑의 끝. 남은 루시의 아픔.

노래 잘하는 서배스천에게 경애로 시작한 루시의 사랑. 그걸 알아차리고 화답한 서배스천. 

서배스천도 세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루시의 순수한 젊음과 사랑에 대한 존중이었을 거다.

어쩌면 이상적인 관계였을텐데...비극적인 결말.

시작의 잔잔함과 달리 끝이...급박하고 어쩌면 허무하다.

루시의 순수하기만한 청춘의 열기.

현실에 발붙인 해리쪽이 맘에 더 들지만.

어쩌면 일찍 죽은 루시 덕에 해리에겐 청춘의 조각이 온전히 남아있는 것일지도.


해설. 깨진 빙판으로 가라앉은, 한 시절 뜨거웠던 삶들.

작가 생의 겨울. 찬란하고 명랑한 여자아이. 

삶을 진심으로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의 감정대로 사는 사람, 시기 마음에 들었다.

처음 느낍보다, 작가의 말처럼 3부 정리되는 느낌. 반백살이 되고 보니 앞부분 루시의 감정선은 내게 아득한 옛날 같아.

스무살 언저리에 읽었다면 2부가 더 와닿았을 수도.

젊기 때문에 너무 젊어서 그랬겠지...너무 순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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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의 말을 과학한다

과학이 따르지 않는 말에 대한 믿음은 결국에는 나를 협동조합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뿐이라서 과학해야 한다.

그 말에 거짓이 없는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 말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는지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렇듯해 보이는 말도 결국에는 나를 지배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말, 언어를 따져보는 걸 과학이라고 하는거?

- 과학과 주문의 겸비

마르크스는 권력의 말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자 계급이 단결해 권력을 찾아봐야 한다고 강조. 저자는 권력의 말에서 벗어나려면 내 말을 갖고 내 말을 믿는 것 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말을 믿는 것.

사람이 입으로 먹는 말. 주문.

간결하고 모호, 적게 얘기하고 많은 의미를 숨기고 있고 모호하게 표현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주문을 되뇌이는 가운데 자기도 몰랐던 힘이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

신비는 미신이 아니다. 미신이란 눈앞의 서로 다른 두 현상을 잘못된 인과관계로 엮는 것.

신비란 드러나 현상 깊은 곳에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느끼는 것

- 왜 주문인가

주문을 함께 되뇜으로써 내 성찰에 깊이가 더해지고 내 선택에 용기를 얻게 되기 때문.

두레 생협의 생활이 생명이다.

일본 그린코프 생협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하기 싫은 것은 거절한다.

자기 활동의 자발성과 의미되뇌는 훌륭한 주문

- 내 안의 소리를 믿고

신란의 '천명죽이기'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인연에 놓여서 죽이지 않을 뿐이지.

죽일 수밖에 없는 인연에 놓이면 내 의지 와는 상관없이 죽이게 된다.

믿음- 소박한(있는 그대로의 꾸밈없는 나) 내 소리를 믿는 것

내 안의 소리가 이끄는 방향을 믿고 살아가는 것.

내 말과 관계가 참 나 안에서 나와 쌓일 때 그런 협동조합을 통해 비로소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밝아올 것.

제 4장 <원칙>: 협동조합 운영에 필요한 일곱가지 지침

- 최초의 ICA원칙

협동조합 운영에 가치들을 적용하는데 있어 가이드가 되는 자기 지침. 일반 기업과 구분되는 운영상의 특징 제시.

각국 정부가 협동조합 관련 법률 제정할 때 그 기준으로 삼아달라는 것.

ICA가 회원 가입 승인할 때 그 자격 요건으로 삼는다는 것

1. 가입과 탈퇴의 자유

2. 민주적 운영

3. 이용고에 대한 배당

4. 출자금에 대한 이자 제한

5. 정치적 종교적 중립

6, 현금 거래

7. 고용촉진이라는 일곱가지 원칙

- 원칙 개정의 배경과 목적

제 2차 세계대전 후 다국적 기업 등에 뒤쳐지지 않고 경쟁력 갖출려고 개정. 일반 기업 같은 존재 되어 버림.

국가정책 실행의 도구로 활용되어졌다. '이념적 위기'

맨체스터 대회 개정은 협동조합 고유의 가치 실제 운영에 적용하기 위한 것.

- 베이크의 권고와 <원칙>의 구조.

조합원ㅇ, 즉 사람이 우선되어야 한다

- 제 1원칙: 가입원칙

<원칙>이 <가치>를 협동조합 운영에 적용하는데 있어 가이드가 되는 지침.

정치적 중립; 조합의 정치적 행위 금지에 가깝고

정치적 차별금지: 조합원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별금지

정파적 정치 행위 금지

'열린 조합원제, 원외 이용문제, 이용자를 조합원'으로 참여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 필요

- 제2원칙: 운영지침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것, 임원은 간부가 아니라 대리인. 자기가 생각하는 협동조합의 임원의 모습은 대외 민주주의에서 이상적인 선출직 공무원의 모습인데 현실은....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계속 되풀이된다.

- 제3 원칙, 경제지침

협동조합은 사람이 주인인 사업체

"자본은 하녀일 뿐 주인이 되지 않게"하는 것이 일반기업과 다른 협동조합 사업체의 특징

이를 위해 가능한 한 자본은 조합원에 의해 조성되어야 하고 외부에서 유치한 자본을 포함해 모든 협동조합의 자본은 조합원의 이익과 자주성과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게 조합원과의 민주적 협의 과정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

사업성과로 발생한 잉여금은 조합원 환원보다 전체의 공동자산으로 나아가 사회의 공동 자본으로 폭 넓게 배분되어야 한다.

제4원칙: 대외 관계 지침. 

자율과 독립(어쩌면 돈 때문에...)

제5원칙: 발전지침

교육과 훈련, 홍보.

'협동의 본질과 장점'을 일반 대중에게 홍보.

직원, 임원, 조합원 대상으로 '협동의 원리와 기술'교육.

홍보와 광고, 교육과 사내 연수는 무엇의 어떤 부분을 왜 알리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협동조합이 해야 할 바는 자기를 알려서 그 충성도를 높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협동이라는 인간의 본성 깨닫고 길러주는데 있다.

저자는 개정전 원칙이 더 낫다고 여긴대.

제 6원칙: 타협동조합과의 관계 지침.

조합원과 지역사회의 '필요와 염원에 가장 잘 부응하기 위해' 협동조합 간에 협동해야 한다.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기 위해' 협동하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봉사하려면 협동조합간 사업을 협동해야 하는데 그 사업적 협동이 조합원간의 운동적 연대에 기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 제 7원칙; 지역사회와의 관계지침

지역 사회: 공간(지역)과 시간(사회)의 결합

협동조합은 시간 즉 공통의 테마, 필요, 관심사에 집중해왔다.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에 생명 불어넣는 것도 시간, 생명은 항상 시간 속에서 살고, 생명의 진화한 결국은 이런 시간의 집적.

'지속 가능'과 '발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문제.

남은 과제 1. 일부 보완이 필요한 것들, 그 어떤 차별도 없이 적절한 개방과 책임 사이의 관계. 노동자와 이해관계자들의 경영참여 확대.

연합회의 민주적 운영에 관한 보다 정확한 지침 필요.

협동의 대상을 확장할 수 있을 근거 필요하다.

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차원에서의 지속가능성의 위기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위기도 해결해야 한다. 그 실천이 배려나 관심의 수준 넘어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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