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심리학은 '내가 왜 그랬는데'를 이해하고 '그래서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다루고 있지. '그런 내가 모여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느다.
마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학적인 학문 특성상, 심리학자들과 심리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개인적이고 신중하며 내성적이다. 하지만 하태균 교수는 그런 심리학계에서 다소 예외적이다. 그는 좀 거칠고, 강하고, 주장적이며, 논란을 좋아한다. 심리학이란 원래 그래야해서, 그는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변명한다.
p9
이런 지옥 속에서 문화. 정신, 전통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유일한 목표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생존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고매한 가치와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도 극단적인 배고픔 앞에서는 쓰레기통을 뒤질 수 밖에 없다. 처음이 힘들 뿐, 그것 또한 익숙해지고 만다. 전쟁이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인간을 극한까지 몰아넣고,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 행동을 결국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정신은 그 단계까지 갔었다. 그 이전의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수많은 가치는 더 이상 그들의 심리와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심리는 극심한 진통을 겪으며 그대 다시 탄생되었다.
p11
...과거에 대한 평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채워지지 않는 현재의 욕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짓눌린 모습은 사춘기 청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p34
이런 삶의 모습과 일상적 행동에서의 차이는 제도나 법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와 법은 그 구성원들의 가치와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가치와 생각의 차이가 바로 문화심리적 차이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은 서양 심리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비슷하지 않다. 그래서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 심리학자가 주가 되어 일본인과 미국인을 비교해서 만든 이론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주장이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공통점, 동양인으로서의 특성을 결코 가볍게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쩌면 한국인의 심리를 구성하고 있는 마음의 98펴센트는 서구의 사람들, 일본인들, 중국인들과 똑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 2퍼센트의 차이가 인간과 원숭이를 구별 짓는 것처럼, 한국인 마음의 2퍼센트가 안국인을 한국인답게, 한국 사회 고유의 특징들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p47
행복한 지옥과 지루한 천국의 대비를 생각해봤을 때, 그럼 느려져서 지루해지기만 하면 천국은 가까워지는 것일까? 사실 그건 아니다. 느린 사회가 천국이 되려면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도 같이 느려져야 한다. 그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단시간 안에 인생역전을 꿈꾸지 않으며, 물질적 성공에 매달리지 않고, 성공이나 성장 이외의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고, 원칙이나 규범에 의해서 자신이 손해 보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소위 이미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사회의 대학진학률은 50퍼센트가 넘지 않는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자기의 고유한 적성과 소질에 맞는 일을 하며 잘살기 때문이다.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잇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근사한 요리 실력을 소유하고, 사회적 정의에 민감하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 중산층의 기준 역시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성공과 무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사회에도 한순간에 성공하거나 사다리를 타고 계층을 순간 이동하는 이들이 있으며, 우리는 그런 얘기를 뉴스를 통해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그만큼 특이하기 때문에 한국에 사는 우리의 귀에까지 들리는 것이다. 인생역전한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그렇게 살다가 그냥 그렇게 죽는다. 그런데도 그들의 행복도가 우리보다 훨씬 높고, 그 사회가 지루하면서도 천국인 이유는, 아마 우리 사회보다 더 역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역동성이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다.
p79
...이들의 갑질의 시작은 대부분 '너 나 무시하지?'로 시작해서 '내가 누군지 알아!'를 외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하나밖에 없다. 더 많은 한국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있게 될 때, 한국 사회의 갑질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p91
...실제 적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는데도 이를 새 떼로 오인하면, 아군은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반대로 새 떼를 적비행기로 오인하면, 아군은 쓸데없는 경계태세로 물질적 손해를 입고 피로감만 쌓이게 된다. 이런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한 종류의 오류를 막으려고 하면 다른 종류의 오류의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트레이드 오프의 한계다. 만약 레이더병의 상관이 평소에 절대 적비행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면, 레이더 속의 애매한 신호에도 그 레이더병은 쉽게 비상사태를 외칠 것이다. 이때는 당연히 허위경보의 빈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상관이 쓸데없는 허위경보로 인한 피해를 강조한다면, 그 레이더병은 웬만하면 비상벨을 울리는 것을 망설일 것이고, 이 때문에 실제 공습을 놓치는 빈도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사법판단의 오류도 본질적으로 똑같은 원리로 작동하지만, 단지 차이는 사법체계는 제도적으로 허위경보와 1종 오류, 즉 처벌오류를 최소화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사법부의 판결은 국민의 기대에 미흡하다. 세월호 사건, 윤 일병 사건, 스리랑카인 여대생 살인사건,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만삭부인 살인사건 등과 같은 일반적인 형사사건은 불쌍한 피해자가 억울한 피해를 입었기에, 국민들로 하여금 강한 처벌 욕구를 일으킨다. 그래서 반드시 범인을 잡아서 처벌하고픈 마음과 동시에, 그 나쁜 놈을 처벌하지 못할 대 강한 죄책감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너무나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처벌오류를 피하려는 사법부를 보면, 마치 무슨 눈치를 보는 듯한, 피의자를 처벌하고 싶지 않는 것 같은 왠지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법부가 상식적으로 판다하는 일반 국민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판결을 내린다면 사법판단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라서 원칙을 지키는 사법부는 국민들로부터 (최소한 어느 정도는) 미움받을 수밖에 없다.
p93
서양의 가치관은 일반적으로 흑과 백, 낮과 밤, 선과 악 등과 같이 양분법적이고 이들 간의 갈등과 충돌의 가치관은 그들의 사고와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세상과 절대 타협할 수 없고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하며,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을 통해 무언가를 얻는 대신에 다른 하나를 잃게 된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동양의 가치관은 일반적으로 그런 가치들이 충돌하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서로 통하고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고 보는 관점이 더 일반적이다. 음양의 조화, 택극의 의미, 윤회설 등 수많은 개념이 바로 이런 극단의 화합과 조화를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굳이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게 만들고, 결국 선택을 즐기지 않는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낸다.
p97
...위험하지도 않고,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을 주체적으로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체적 판단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객관적으로 법률만으로 따진다면 다 비리고 규정위반이고 범죄다. 그래서 개개인을 보면 별로 나쁜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국 사회가 부패지수, 비리, 범죄,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냥 시키는 대로, 정해진 대로 무조건 다르기에는 너무나 주체적인 사람들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p98
나쁜 권위를 없애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문제는 무엇이 나쁜 권위인가에 대해 누가 판단할 것인가다. 주어진 상황에서 모든 국민들이 각자 알아서 판단하게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동안 각종 불필요한 권위도 무너질 만큼 무너졌다. 이제는 어떤 권위는 살리고 어떤 권위는 죽일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논의해도 되지 않을까? 사법판단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오류는 가능한 한 밝혀내고 고쳐야 한다. 하지만 그 오류 여부는 각 개개인이 판단할 일은 아니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또한 주체성이 강하기에 스스로 판단하기를 즐기는 한국인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지혜 역시 필요하다. 억울한 처벌을 내리지 않기 위한 결정이 범인을 풀려나게 할 수 있다는 사법판단의 한계를 인정할 때, 사법 판단에 대한 불신이 아닌 신뢰가 형성된다는 역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하지않을까.
p143
...심리학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떤가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지. '어떡해야 한다'라든지, 무엇이 '잘못됐다'라는 판단은 되도록 피한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그것도 산 채로 잡아먹는다고, 심지어 동물원의 사육사를 잡아먹는다고 사자를 탓할 일은 아니다. 사자는 원래 그렇게 타고 났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선한 본성만큼이나 악한 본성을, 합리성만큼이나 비합리성을, 지혜만큼이나 착각을, 이타성만큼이나 이기성과 공격성을 가졋다고 해서, 심리학자는 이에 대해 실망하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최소한 필자는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오히려 항상 스스로를 살짝 긍정적으로 보려는 인간의 본능적 착각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밝혀내는 데 더 초점을 맞추다보니, 심리학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데 중독된 것처럼도 보일 수도 있다(그래서 기존의 심리학은 부정심리학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최근에는 긍정심리학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런 심리학은 결코 우리가 스스로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믿게끔 도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의 본질과 한계를 명확히 알 때,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데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심리학은 가치중립적이려고 노력한다.
p154
대중의 힘을 얻어 리더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뽑힐 때는 대중의 마음에 기대고 뽑히고 나서는 이러한 마음이 잘못됐다는 논리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너무 다르다는 간사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보다 더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런 한국인의 마음이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그 마음에 어떻게 적절히 대응하느냐일 것이다.
p171
이들의 말은 기술적 기능으로만 보자면 거의 틀리지 않았다. 정보유출에서 핵심내용인 금융회사가 다른 기관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공지사항이 존재했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 서류에 동의서명을 한 것도 사실이다. 또 유조선이 정유사 항만시설을 들이박아서 유출사고가 났으니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면 1차 피해자는 정유사가 맞다. 이들의 말을 전체적인 맥락이 아닌 문제가 될 만한 부분만 선정적으로 기사화한 언론의 오류도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상호반응의 기능을 생각하면, 어차피 원인을 물어본 말이니 원인만 정확히 얘기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대화법에 의존한 발언 당사자도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당사자들은 진의가 왜곡되었다며 억울하다고 얘기하겠지만 모두 알다시피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친 놈처럼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하는 데 잇다. 즉 상대방과 의견 또는 감정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정보전달이 목적이라면, 상대방의 머릿속에 그 정보가 정확히 떠오르게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정보를 전달하지도, 상대를 움직이지도 못한다면 대화는 실패로 끝난다. 자녀에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를 얘기해주면서, 굳이 성공한 사람처럼 하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부모들은 자녀가 말귀를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가갛낟. 하지만 자녀는 아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씀이 많으시지?'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이 대화는 실패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관계주의적인 한국 사람들은 말을 말 그대로 이해하지 않는다. 고도로 발달된 촉과 눈치로 그 행간뿐만 아니라 여백, 표지, 뒷면 등을 모두 고려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이런 한국 사람들에게 기술적 소통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냥 혼잣말을 한 것보다도 못한 일이 될 수 있다.
p172
진화의 과정에서 자원을 구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냥을 하고 싸움을 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남성들은 사냥의 성공과 위급상황 대처로부터 효율적인 사고와 언어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출산과 육아를 담당햇던 여성들은 표현이 부족한 자녀와 소통하고 반응해주는 심리적 기능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성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기능의 소통법에 더 익숙하고, 여성은 심리적 교류 자체를 중요시하는 상호반응의 소통법에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유교사상을 배경으로 급격한 산업화의 근대역사를 겪으면서 한국 남성과 여성의 이런 성향은 더욱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p173
시대가 변하면서 세상사 역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서 이제는 원인과 결과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과 사회적 전파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람들이 사고하는 속도는 이미 정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오항이다. 이런 시대에 진실을 파헤치는 집요함은 점점 그 중요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 진실을 다 알 수도 없다. 대부분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만 보통 6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고, 심지어 영원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의 기술적 기능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더구나 과거에 비해 인간관계가 단기적이고 피상적이 되면서, 관계주의적 한국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아'만 얘기해도 '어'가지 알아주던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상호반응적 소통에 더욱 목말라 하고 있다.
p183
다만 이 분노가 적절한 대상을 찾아 적절히 표출되고 그로 인해 다시는 분노를 경험하지 ㅇ낳게끔 기여한다면, 우리는 분노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관계주의적 심리 특성은 분노를 사람에게 풀어버리고 너무 쉽게 해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분노는 나쁜 놈에 초점이 맞춰져 잇어서, 그놈이 충분히 처벌받는 것을 보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그 책임자가 물러나거나 사람이 교체되는 선에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됐따고 믿는 데서 온 결과다. 사람처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추상적인 시스템이나 비물질적인 가치 등은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세월호 사고도 그랬고, 메르스 사태도 그랬고, 수많은 사고와 사건들을 당했을 때도 한국인들은 분노를 너무 쉽게 풀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곧 잊혀갔다.
한국인들은 분노를 시스템이나 제도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지금까지 수많은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나쁜 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거나 좋아지지는 않는다. 왜? 불행히도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런 죽일 놈이 될 후보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햇고 도 너무나 많았기 땜누이다. 오히려 그런 죽일 놈이 나올 수 없는 사회 제도와 시스템으로의 개선이 필요하고, 설사 그런 놈이 나오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p211
...자녀를 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이 밤을 꼴닥 새우면서 졸고 있는 자녀는 깨워준다든지, 더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해준다든지, 심지어 자녀가 모르는 문제를 미리 공부해서 가르쳐주는 등의 고생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열심히 빌기만 하면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녀를 짜증 나게 만든다. 그래서 이런 헛짓은 결국 자녀와 부모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인고의 착각으로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인고의 착각에 빠지게 되는 걸까? 바로 불안을 다스리는 착각적 통제감과 자신은 무조건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본능 중의 하나가 바로 통제의 욕구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환경을 조정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원하는 일을 일어나게끔, 원하지 않는일을 일어나지 않게끔 막는 영향력을 발휘해서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한다. 이는 실질적으로 생존을 위한 기본원칙이 된다. 이러한 욕구는 너무나 강해서 때로는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떠나서 단순히 통제감을 가지는 것 자체가 중요할 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