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025 

 오르페우스 신화는 무덤 바닥에서 올라오는 방법을 알려준다.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뒤에 두고 너는 계속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그럴 때만, 오직 그럴 때만 너는 네 소중한 것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

p038

 2015년 미국 의학연구소는 미 보건복지부 등의 지원으로 만성피로증후군을 실재하는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하는 연구 보고서를 내놓는다. 심한 피로, 활동 후의 증상 악화, 인지 기능 장애, 기립성 조절 장애 등의 병의 진단 기준을 새로 제시하면서 보고서는 병의 새로운 이름도 제안하는데, '전신성 활동 불내성 질환systemic exertion intolerance disease' 이 그것이다. 설명하자면 신체를 쓰든 머리를 쓰든(신체적, 인지적, 감정적)힘을 써서 활동하면 증상이 악화되는 병, 몸을 쓰는 걸 몸이 못 견디는 병이라는 것이다. ...

p062

 "통증은 소통되지 않고, 미칠 정도로 주관적이며, 언어와 계량에 저항하는 자기 혼자만의 현실이다. 통증 속에 사는 것은 고립 속에 사는 것이다."

p088

...때로는 매몰차게, 때로는 겸연쩍게 문을 닫으면서 내미는 말들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다. 너만 힘든 거 아냐. 나는 그런 얘기 하는 거 안 좋아해. 좀 의연하게 마주하는 게 어때. 왜 전화해서 울어? 가장 예상치 못한 반응은 자신도 중병을 앓았고 그 경험을 감동적인 글로 쓴 적도 있는 친구에게서 왔다....내가 해독해낸 그의 메시지는 이랬다. 네가 그렇게 특별한 일을 겪을 리 없어. 나는 고통 이야기를 함으로써 관심과 애정을 받아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비뚤어질 수 있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남의 고통을 질투하기도 한다는 것을 몰랐다....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알아가는 게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알고 지혜로워지는 일이기만 할까. 그건 알게 됨으로써 나 역시 훼손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글로 써서 발표하는 사람들을 자주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디 음침한 구석이 없는지 살피는 음침한 사람이 됐다...

 ....고통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충족된 상태인 환희와는 다르게 고통의 호소가 필요의 호소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목, 이해, 인정, 연민, 공감, 치료, 도움, 지원, 정의, 행동, 변화.....고통 말하기는 듣는 이에게 요구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크든 작든 자신의 시간과 관심과 자원을 쏟길 요구받는 것이며, 남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보고 공감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같은 가장 사소한 연민에 드는 에너지조차 결코 적지 않다.그리하여 남의 고통을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할 수 없을 때, 시혜적인 위치에서 동정해주며 도덕적 만족감에 뿌듯해하는 일 이상을 해야 할 때, 상대의 고통이 미심쩍거나 충분치 않다고 여겨질때, 고통과 연민의 대차대조표를 그려보며 문득 억울한 마음이 들대('내가 힘들 땐 별로 관심 못 받았는데')사람들은 고통의 청자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화제 전환과 '나도 아프다'와 아픈 사람 비난과 고통의 사소화와 끊어버리는 전화들은 벗어나는 방법들이다.

; 벗어나고 싶은 그 마음들도 이해가 되는데...요즘은 어떤식으로든 모두들 힘들 수 있으니까. 

  화자만이 공감받고 자신의 아픔을 알리고 싶은게 아닐 수도 있지않을까...

p097

...무엇보다 브뤼헐의 이카로스를 잊지 말길. 농부는 밭을 갈아야 하고 양치기는 양을 쳐야 하고 낚시꾼은 낚시를 해야 하고 배는 항해해야 한다. 모든 것이 무너져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p108

 여행을 했어. 너무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지만 또한 그 바다 위에 혼자 있었기에 아름답고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었어. 아무리 불러도 신은 대답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거기 신이 있더라.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것이 그 내내 나를 이끌어왔어. 나는 그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어. 나는 평생 목마르게 찾던 것을 찾았어.

p124

...'라 둘루 la douleur'이며, 둘루 둘뢰르 이 두 단어는 '쪼개다' '찢는다'는 뜻의 어원에서 왔다. <라 둘루>는 도데가 세상을 뜨기 삼년 전까지 십 년 가까이에 걸쳐 쓴 메모를 모은 글이다. 도데의 아내이자 문인이었던 쥘리아 도데가 이 글을 출간하면 남편의 문학 경력이 끝장 날 것이라고 설득했기에 생전에 나오지 못했고 남편의 사망 후에도 계속 출판을 망설여서 <라 둘루>는 알퐁스가 세상을 뜬지 삼십여 년이 지나서야 출판된다.

 ...."통증의 실제 느낌이 어떤지를 묘사할 때 말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는가? 언어는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잠잠해진 뒤에야 찾아온다. 말은 오직 기억에만 의지하며, 무력하거나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다.".....

p136

...삶은 내 몸이라는 상황을 포함하여 내가 던져진 상황 안에서의 발버둥이고, 세계의 작용에 대한 내 반작용의 총합이며, 나는 궤도를 볼 수 없는 롤러코스터에 오른 겁먹은 승객이다.

p143

더 많이 울었기 때문에 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많은 겨울을 맛보았기 때문에 더욱 달콤하게 봄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고 그래서 삶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 수 있었다.

p146

 곧 배웠다. 미래를 생각하는 건 금기였다. 사막의 너비를 가늠하지 마라. 과거를 생각하는 것도 금기였다.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뒤에 두고 너는 앞만 보고.....내다보거나 뒤돌아보는 일 모두 자해였으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루씩만 살자. 하루씩만. 나의 만트라가 된 말.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자고 일어나고 먹을지,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그 모두를 알려주는 고통은 표지였고 조련사였고 온갖 세세한 것을 전부 통제하는 미친 관리자였다. 한편으로 고통이 정한 루틴은 내게 종교이기도 했다. 루틴만 믿고 따르면 언제나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먹고 자는 일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도 루틴만 지켜지면 괜찮은 것이다. 그러면 아무도 눈치재지 못한다. 나 자신도 속일 수 있다. 신마저도 내가 괜찮은 줄 알 것이다.....

 그렇게 하루씩이었다. 지겨운 반복,....

; 보통 얼마쯤은 다들 그렇...

p150

...그리고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배우고 익히고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법. 숨만 쉬고 있어도 박수 칠 일이다. 기다리는 법. 그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때가 있다. 제한 속의 자유로움. 내 몸이 정해준 한계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은 같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앎. 나는 내가 어떻게 견뎠는지 안다. 내 몸부림을 안다. 다짐과 맹세를 안다. 내 밤의 꿈과 악몽과 기도를 안다. 무엇이 나를 지탱하는지 안다. 내가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그렇게나 커다란 공포와아름다움, 그게 모두 내 안에 존재할 수 있으며 내 마음이 그걸 버틸 수 있다는 걸 안다. 혹은 산산조각난 마음으로도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지침이 된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바심, 과거에 대한 향수나 후회로 질식되지 않은 현재를 살아야 한다. 나의 최선이 닿은 곳이 여기임을, 여기, 오직 여기임을 믿는다. 쓰기의 기술 몇 개. 그건 앓기의 기술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고독 속에 번창하기, 두 현실을 살기,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기, 자신에게 분명해질 때까지 실험하기, 두려움 속에 계속하기, 불확실성 속에 계속하기, 더이상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계속하기.....

 그 어떤 아름다움도 경이도 배움도 무의미해지는 밑바닥의 시간을 충분히 많이 겪고 난 지금, 이중 어떤 것은 더이상 내 마음을 밝히지 못한다. 한때 자부심을 가졋던 앎에도 무감해졋다. 병이 계속 악회되었다면 할 수 없을 소리라고 여기게 된 것도 있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내 삶에서 가장 놀랍고 중요한 변화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게 미미하게나마 존재하는 끈기와 단단함과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전부 아팠던 시간에서 왔다. 내 언어와 비밀과 사랑의 수원. 병의 시간은 내게 그렇게 남을 것이다.

p154

나는 마침내 본다.


내가 어둠- 나를 내던진 그 어둠- 으로부터 비틀어 짜낸

모든 지식이 무지만큼이나 무가치하다는 걸.

무에서 나오는 건 무다.

어둠에서는 어둠이 나온다.

어둠에서 나오는 건 고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지혜라 부른다. 그것은 고통이다.

- 랜들 자렐. <북위 90>

p189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평온한지. L과 함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달콤한지, 규칙적이고 정돈된 생활, 정원, 밤의 내 방, 음악, 산책, 수월하고 즐거운 글쓰기." 이렇듯 병을 포함해 자신이 마주한 상황들과 씨름하면서도 자신에게 딱 맞는 공간과 시간과 인간관계를 끈질기게 마련해가고 누린 사람에게 허약하다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병에 시달리며 살았다는 말 역시 환자의 무력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울프가 평범하게- 다른 이들처럼 바쁘게 자기 일을 하며,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과 보통인 기분을 오가며- 보낸 대부분의 날을 지운다.

p191

 ...취약함을 비하하지 않을 것이다. 단어들을 재정의할 것이다. 가령 강인함은 무너진 적 없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돌아오는 것이 될 것이고, 행복은 괴로움의 유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곤경을 수용하고 통과하는 기술에 관한 것이 될 것이며, 충만함은 즐거움만 가득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픔도 기쁨도 전부 온전히 살아낸다는 뜻이 될 것이다. 또한 취약함을 결함으로 고정해두지 않는 그런 언어는 현상의 양가적인 이면을 함께 이해할 것이다.'진짜 멋지고 높은 파도와 지옥같이 깊은 심연'을 오가는 흔들림은 고통스러운 부침일 뿐 아니라 경험의 넓은 진폭일 수 있다. 남들보다 커다란 삶의 용량이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기반일 수 있다...얇은 피부와 과민함 역시 공포의 조건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울프의 글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렬한 감각의 조건이고, 대상과 삼투함으로써 획득하는 직관과 통찰의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계 지점까지 나아가는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임상적 질환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 울프의 천재성, 독창성과 연관되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p197

"이제 육백 쪽을 고칠 때까지 달걀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살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엄청난 용기와 부력/ 회복력이 있어야 한다."

 "침착하고 강인하고 담대하게, 이 책을 완성해야만 한다."

p226

 조지 클루니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그래, 계속 가봣자 뭐할 거야. 살아봣자 뭐하겠어. 그렇지만 일단 가기로 마음먹는다면 계속 해봐야지." 무엇이 날.

 깨달음과 결단으로 이어지는 익숙하고 바람직한 서사로 글을 끝맺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p253

...사실 아픈 사람이 깨닫는 진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이다. 우리가 각자의 몸 안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 내가 느끼는 고통을 너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 너는 내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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