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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2018 4호 - Vol 4 :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ㅣ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4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8년 10월
평점 :
바다출판사에서 나오는 계간지들 마음에 든다. 뜨문뜨문 읽으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이것도 마찬가지.
아이를 키울때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키웠더니 애들이 넘 잘 놀아서...학업에...읍읍...그래도 만족.
놀이, 스포츠,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봤다.
물론 그러다 보니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생각이 도착하게 됐지만...
p22
...놀이는 단지 결과에 집착하는 삶을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이나 혹은 단조롭고 고된 성취의 과정에서 한숨 돌리려고 가끔씩 빠져드는 행위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목표지향적인 과제에 '유희'가 스며들게 하고, 생산성에 즐거움을 부여함으로써 미래에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현재를 음미하는 순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p48
...책을 읽는 행위는 독자에게 책 속 세계의 도덕을 지지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겁에 질린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게임에는 포르노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포르노는 성적 흥분을 제공하기 위해 제작되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포르노가 보여주는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보는 사람이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빠져들어' 그것을 좋게 보고 계속 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게임도 이와 유사하지만, 게임하는 사람에게 훨씬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이기고 싶으면 그 행위에 몰입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게임하는 사람이 GTA5에서 꼭 매춘부를 살해하지 않아도 되고, 마지못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사실상 게임에서 이기기 힘들다.
그렇다면 게임을 못하게 막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가끔은 게임에서 너무 큰 재미를 느끼지는 않는지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는 있다.
; 어떤 도파민까지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것인지 그걸 조절할 수 있을지...
p71
나는 '높이 뛴다'는 효현과 '창조적 도약을 한다'는 발상이 대단히 마음에 든다. 이런 노력은 비단 유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고츠키의 발상은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에세이집 <다음 밀레니엄을 위한 여섯 가지 메모>를 상기시킨다. 이 책에서 칼비노는 창조성의 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여러 문학적 가치들을 예찬하다. 그 가치는 바로 가벼움, 속도감, 정확성, 가시성, 다중성이다. 칼비노의 설명에 따르면, 가벼움이란 '세계의 무게, 관성, 불투명성'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가벼움을 경박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가벼움이란 '세상의 무게를 뛰어넘는 시인. 철학자의 급격한 도야'으로, 이들은 '중력의 작용에도 불구하고 가벼워지는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속도감도 서두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속도감이란 '생기, 에너지, 힘, 순수함을 경험하는 삶'이다. 실제로 속도감은 우리에게 거의 '무한'의 개념을 알려주고, 영혼을 고양시키고 기운을 북돋운다. 정확성은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시성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잠재적이고 가상적인 저장소로 보는 것'을 요구한다. 칼비노는 우리가 예술을 통해, 또 창조적 정신을 적용함으로써 이런 상상 속의 콘텐츠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창의성을 키우는 데 필요한 이런 결정적인 가치들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무심함이다.
....'최고의 작품을 쓸 수 있는 상태를 자세히 알려 달라'는 질문에 자신에게 있어 '무심함'만큼 필수적인 자질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무심함이 없다면 글이 종종 무언가를 지나치게 강요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점잖거나, 설득력이 없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의 부주의함, 의도적인 무시, 장난기가 있기 때문에 저자 본연의 모습에 다가설 수 있고, 진실하고 진짜처럼 느껴지는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말이다.
p80
...'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을 뜻하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본래 정치학적 개념인 샤덴프로이데가 가장 적극적이고 부끄러움 없이 표출되는 장소가 바로 스포츠 경기장이다.
"좋은 팬이란 상대팀 팬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은 동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일부 과격한 행동들이 스포츠라는 이름 아래 기꺼이 용인되는 배경을 마련해 준다. 스퐃느느 우리가 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상스러운 말을 내뱉고 상대방의 패배를 기원하는 것이 용납되는 예외적인 행사이다."
저널리스트 브라이언 바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런 현상에도 긍정적인 면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에서 첨예한 양극화와 상대 집단을 향한 적대감이 비극적인 결말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스포츠는 매우 건전한 방식으로 욕구를 분출시켜주는 수단이다. "
한 여성은 심리과학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는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성격을 드러낸다'고들 한다......이런 기회마저 없다면 그렇게 편을 갈라서 상대방을 대놓고 미워하는 행동을 어디 가서 할 수 있겠는가?"
스포츠는 상대 집단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우리 집단에 대한 애착을 강화시키며, 구성원들에게 소속감과 자부심을 선사한다.....
.......
...스포츠는 우리의 본성에 내재된 폭력성을 표출하고 즐길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포츠에는 인간관계를 증진시키고 소속감을 향상시키며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고히 다져주는 순기능까지 있다. 스포츠팬들은 결과와 더불어 과정을 즐긴다.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다음 시합이 있다.
p86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 묘사하는 정치, 즉 주인공과 악당이 등장하고 유명인이 얽힌 흥미진진한 음모가 난무하는 끝없는 게임으로서의 정치는 철학자가 이해하는 정치, 즉 궁극적으로 사회 자원과 권력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일, 한마디로 정의에 관한 일과 무관하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정치는 여론조사 자료에 대한 집착, 철저한 '승리의 길'만 계산하는 행위, 핵심 의석을 얻는 데 필요한 유세 등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정치는 배당률을 따져 도박하는 게임과 다르지 않다. 도박업자는 선거 결과는 물론 정당 대표의 재임 기간이나 내각 개편 구도에 걸린 판돈도 기쁘게 받을 것이다. 이 게임은 대중이 정의로서의 정치, 그리고 권력 투쟁을 뒷받침할 사상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정치 공간이 텅 비어버리면, 기이하게도 스포츠 자체가 자연스럽게 정의에 관한 사상 대결의 장으로 변한다. 종종 스포츠계에서 양성 평등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에 맞선 투쟁이 벌어진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정치에는 사상을 겨루어볼 공간이 없는 데도 우리가 스포츠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쏟는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이런 현상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정의에 관한 사상을 논의할 공간을 정치 영역에서 마련하지 못하는 한, 스포츠게에서 나오는 정치적 발언은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찼을 뿐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92
...국제 수준의 시합은 솔직히 말하면 일종의 모의 전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행동이 아니라 관중의 태도다. 그리고 관중 뒤에 숨어 어리석은 경쟁에 일희일비하며, 달리고 점프하고 공을 차는 것이 국력의 시험대라고 믿는 국민의 태도도 문제다.
p153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느다'는 포괄적인 표현에는 우리의 섬세한 마음이 경기 중에 겪을 수 있는 온갖 위기가 포함된다.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를 꼽으라면 초킹과 입스를 들 수 있다. '초킹'은 선수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는 현상이고, 입스는 자세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진짜 집중해야 할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두 증상이 동시에 나타날 때도 있지만 완전히 별개로 일어날 때가 많다.
초킹; 중요한 순간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생각이나 행동이 순간 얼어붙는 현상
입스: 골프의 퍼팅에서 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나쁜 상황의 기억으로 인해 퍼팅할 때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
p160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딜레마 게임은 이기적 행동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이타적 행동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다. 자백은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 나에게 이익이 되며, 침묵은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상대방에게 이익이 된다. 물론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언제나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언제나 도덕적인 의무도 아니다.
하지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처한 사람드릉ㄴ 이기적 행동에 따른 결과보다 이타적 행동에 따른 결과를 더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