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9  

 사회 민주주의에 따르면, 모든 일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 평등. 정의. 연대는 사민주의자들의 핵심 가치다. 하지만 이들은 자유와 평등,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내놓지는 않는다. 사회는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힘을 합쳐 나아갈 뿐이다.

 사민주의자들은 경쟁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인정한다. 또한 단번에 완벽한 세상이 이루어지리라 믿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조금씩 줄이고 복지 혜택을 늘려 가는 가운데, 조금씩 세상은 살기 좋아지리라 믿을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보편 복지'와 '보편 의료', '국민 연금과 실업 급여', 같은 직업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봉급을 받는 '표준 임금제' 등은 사회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힌다.

p73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꿈구었던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반면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욕구는 만족시킬 수 있어도 탐욕은 채울 길이 없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만큼의 소비'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우리 사회가 모두에게 보장할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으며지나치지 않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p91

 지도자가 사라진 순간, 포퓰리스트가 지배하던 나라는 위기를 맞곤 한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혼자 국가를 좌지우지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정치에 필요한 능력을 기를 공간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곳은 지도자가 사라져도 사회가 흔들리지 않는다. 국민의 뜻을 귀담아듣고 펼치는 과정이 제도로 굳어져 있는 덕분이다. 시민들도 평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까닭에 민주주의를 이끌 능력이 몸에 배어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이 자리 잡기 어렵게 한다. 다양한 언론들은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다. 이 가운데서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부족한 주장은 걸러지곤 한다. 아무리 귀에 끌리는 소리를 늘어놓아도, 시민들은 늘 반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p123

 물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될 경우도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인생을 허비했다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빅터 플랭클은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누구도 내 과거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에 치열하게 뛰어들었던 경험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그때 느꼈던 뿌듯함 또한 누구도 앗아 가지 못한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튼실했던 삶의 순간은 아무도 앗아 가지 못할 '나의 가치'로 내 삶을 굳세게 다잡아 줄 것이다.

 사르트르도 비슷한 말을 한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는 '앙가주망'(참여)하는 데 있다.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행동하는 것이어야말로 내 인생을 스스로 만들고 개척하는 일이다. 남들이 나를 받아들일지, 사회가 나를 인정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매 순간의 결정과 행동이 어느 누구도 빼앗지 못할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

p138

중도: 치우치지 않은 바른 도리 또는 집착과 분별을 떠난 경지

반야: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

공성: 온갖 것이 모두 공이라는 이치를 깨우칠 때 나타나는 본성

여래장: 여래(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중생의 청정한 본마음을 가리킨다.

p141

 해체주의는 솔직하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옳고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점에서 해체주의는 정의롭기까지 하다. 세상의 주된 것, 바람직한 것, 올곧은 것이 없다면, 진리를 내세우며 상대를 공격할 명분이 없다. 나아가 모두가 중심이고 옳고 바람직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그 자체로 다 가치 있고 소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체주의는 이원론을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앞서 살펴보았듯, 인간의 생각과 언어는 이원론을 넘어설 수 업삳. 다만 이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김보현 교수는 데리다의 노력을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에 견준다.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한 장 한 장은 뜻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여러 장이 쌓이고 모이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조금씩 드러난다.

 차별을 막기 위해 차이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려는 해체주의의 노력에는 '뚜렷하지 않지만 분명한'메시지가 있다. 불교의 고승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라고 충고한다. 봐야 할 것은 달이다. 해체주의자들의 말장난에 머리 싸매기보다, 말과 행동으로 전하려는 그들의 의도에 더 주목할 일이다. 물론, 해체주의는 한 가지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이해를 그 자체로 즐길 일이다.

p152

 테리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아무런 전망도 저항도 하지 못하게 하는 불임의 유행'이라며 강하게 몰아붙인다. 예를 들어보자. '인종차별은 나쁘다'는 주장은 차별을 받는 사람들만 고개 끄덕일 소리가 아니다. 인종 차별이 역사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진리에 가깝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나 '역사 발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반론을 펴기 위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모으지도 못한다. 이것 자체가 다양한 생각을 억누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생각이 가치 있다면, 올곧지 못한 주장에 반론을 펴야 할 이유 또한 흐릿해진다.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과 목표 의식이 스러진 사회, 사람들은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 연예인 소식이나 스포츠 뉴스가 정치나 인권 같은 이슈와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이야기 되는 시대, 과연 문제는 없을까?

 모든 사상은 시대의 문제를 담고 있다. 모더니즘은 차별이 심하고 경제가 주저앉은 시대를 이기기 위한 사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낳은 환경 파괴, 획일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운데 태어낫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도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또다시 '포스트'시킬 사상은 무엇일까?

p160

 정치학자 워커 코너는 말한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다."무엇을 이루기 위해 고생하는지 아는 사람은 까닭 없이 시달리는 이들보다 힘든 현실을 잘 견뎌 낸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인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사실적으로'분명하게 일러준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운찬 예술'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은 늘 '낙관적 전망'을 담고 있다. 현실은 괴롭지만 노력하면 결국 모두가 잘사는 사회주의를 이루리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식이다.

p187

... 파시즘이라는 말은 라틴어 파스케스에서 유래했다. 파스케스는 로마의 최고 행정가가 들고 다니던 상징이었다. 도끼에 나뭇가지들을 돌돌 묶은 모양인데, 도끼는 지도자를, 나뭇가지는 전체 시민을 뜻했다.

 무솔리니는 강력한 지도력과 단결을 나타내는 파스케스의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파시즘이라는 말은 그가 이탈리아 국가 파시스트당을 만들면서 세상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파시즘이란 한 마디로,'지도자를 중심으로 전체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강력한 독재 권력'을 뜻한다.

 등 따습고 배부른 상황이라면 파시즘은 헛소리처럼 들린다. 자유를 억누르고 지도자에게 절대 복종하라는 요구가 달가울 리 없다. 그러나 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는 어떨까? 살아남기 위해서 선장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p195

내 삶이 신산스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까닭은 '누구'도는 '무엇'때문인가? 이 '누구'또는 '무엇'을 없애고 내 삶을 제대로 세우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대의 논리를 파시스트들의 주장과 견주어 보라. 과연 그대의 삶은 '그 사람' 또는 '그것'때문에 꼬인 것일까?

p245

 혼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농부는 남는 농산물을 나눠 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상품'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짓고, 자신도 필요한 것을 사서 살아가는 농부는 그럴 수 없다. 자기가 생산한 상품이 공짜가 되면 수입도 사라져 버리는 탓이다. 그러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 따라서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쌓아 두고 버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편에서는 물자가 넘쳐 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273

 수능 성적을 올리는 데는 야간 자율 학습이 꽤 효과적이다. 하지만 평생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한다면 어떨끼? 개발 독재도 마찬가지다. 개발 독재는 결코 영원히 이어지지 못한다. 성장은 공평한 분배와 민주주의라는 열매로 맺어져야 한다. 성장만 있고 분배와 민주화가 없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제 뜻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는 부잣집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만 시끄러운 정치판, 주춤한 경제를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진정 개발 독재는 사라져야 할 악일까? 민주주의는 최상의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을가?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단순히 더 많은 수입을 바라기 때문일까? 민주주의를 한층 발전시키려면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할테다.

p278

 한스 큉은 신유교 윤리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서도'다. 이는 자신이 우너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둘째는 '인도'다. 내 뜻대로 하고 싶으면 남이 먼저 자기 뜻대로 하게 하고, 내 뜻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면 남이 원하는 바를 먼저 받아들이는 태도다.

p315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잘못을 바로잡기보다,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좀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지 않을까? 옛 일본은 열등한 동양 세계에서 벗어나 우수한 서구 문명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OECD''선진국'등의 잣대에 목을 매는 우리의 모습은 그들의 절절했던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우리의 발전이 다른 이들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침략의 논리인 오리엔탈리즘을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는 이유다.

p332

다운시프터: 고소득이나 빠른 승진보다는 비록 저소득일지라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사람들. 다운시프트는 원래 자동차를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이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듯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생활의 여유를 느끼며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p341

 관공서에서 하는 일은 다르다. 관료적 관리에서 조직원들의 역할은 이윤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에 있을 뿐이다. 관료 조직에서 돈을 버는 것과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업무'다. 돈을 쓰는 쪽(예산을 집행하는 부서)에서는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보다, 절차와 규정대로 해서 책잡히지 않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은 누가 질까? 비난의 손가락은 관료 조직으로 향하지 않는다. 비난을 받는 쪽은 법을 만든 이들과 정책을 펼친 정치가들이다. 이 때문에 관료들은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해서 굳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이유가 없다. 큰 조직의 분위기가 복지부동, 무사안일로 흐르곤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약 이윤 관리를 좇아 조직을 합리적으로 꾸려 온 최고 경영자를 모셔 와 관료 조직을 꾸리게 하면 어떨까? 이는 지금도 공기업 등, 관직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제스는 <관료제>에서 별 효과가 없을 게 분명하다고 잘라 말한다.

관료 조직의 개혁을 위해 기업가들을 관료 조직의 장으로 임명해봤자 소용이 없다. 예전에 기업가였다 해도, 정부 관청의 책임을 맡으면 그는 사업가가 아니라 관료가 되어 버린다. 그의 목표는 더 이상 이윤을 낳는 데 있지 않다. 그의 새로운 목표는 규칙과 규정을 제대로 따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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